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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237

[시대성의 창] 신연수 동아일보 논설위원 사표를 바라본다 입력 : 2020. 12. 29  06:30 | 수정 : 2020. 12. 29 06:50 | A29    4년 전 겨울에도 논설위원이 사표를 내고서 신문사를 떠났다. 그의 마지막 칼럼 ‘아버지, 지지자, 국가에 상처를 준 박근혜’는 허상의 공포심을 완화하게 해주었다. 사람들은 “저런 사람이 중앙일보에 남아 있었냐”고 힐난했다. 사람들은 같은 편이 되어주지 않은 그를 비난했다. 대통령의 불통(不通)을 지적하자 침몰하는 박근혜호(號) 갑판의 생쥐로 비유했다. 멀찍이서 바라보면 다르다. “모든 정권이 다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다”고 비호했다. 지금에까지 박근혜 향수에서 머무른 그를 바라본다. 달라지지 않은 존재는 김진 뿐만이 아니다. 중앙일보가 그렇다. 편집방향은 신문사 어디에나 존재한다. 기자윤리강령상 취사.. 2020. 12. 29. 06:30
[사설] 조국 사태라는 어른들의 정치를 바라보며, 소외된 세대는 슬픈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입력 : 2020. 12. 24  06:35 | A31사랑의교회에서 바라본 서초동 집회의 광경은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으로 집약되어 있었다. 노무현을 넘어서 내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이 조국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두 가지 세력으로 갈리고 만 서초동과 광화문 네거리엔 각자가 지켜야 할 존재들이 상징폭력으로 등장해 굿즈와 함께 소비되었다. 염원과는 다르게 법원은 23일 1심에서 열다섯 혐의 중 11개를 유죄로 인정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 추징금 1억3894만원의 실형을 선고해 법정구속 했다.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제출하기 위해 조 전 장관과 함께 허위 내용의 확인서를 발급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허위 서류는 대학들의 전형 업무를 방해했다... 2020. 12. 24. 06:35
[사설] “우리는 박해받는 선민들” 입력 : 2020. 12. 22 | A31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특별방역강화조치에 따르면 오는 24일부터 내년 1월 3일 밤 12시까지 전국 단위 5인 이상 모든 사적 모임은 하지 않도록 권고한 상황이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종교시설처럼 고위험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끊이지 않으며 지난 일주일 동안 일 평균 900명 이상 확진자가 발생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따라서 정부는 요양·정신병원·종교시설 같은 고위험시설에 대한 방역 관리를 강화하며 종사자에 대해서는 수도권이 1주, 비수도권은 2주마다 PCR진단검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신속항원감사를 활용해 일주일에 1~2회 정도 검사를 확대하도록 추진하기로 했다. 외국인 노동자 밀집 거주지역과 콜센터처럼 고위험사업장 역시 집중 현장점검 등을 실시해 방역 관리를.. 2020. 12. 22. 18:20
[사설] 조국과 추미애, 죽은 공무원까지 꺼내든 스티브 유의 文法 입력 : 2020. 12. 20  07:27 | A31 입대를 앞 둔 2002년 1월 미국으로 건너간 스티브 유(한국이름 유승준)의 미국 시민권 취득은 순전히 개인의 자유와 선택에 의한 결정이었다. 따라서 국적법 제15조에 따라 외국국적을 취득한 날로부터 대한민국 국적이 상실됐고 한국으로 입국한 스티브 유는 출입국관리법 제11조에 근거하여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 거부당했다(2002. 2. 2).이미 공익근무요원으로 판정 받은 스티브 유(2001. 9. 1)가 한 말은 변명과 회피였다. “국민을 우롱하거나 의도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서 “댄스가수의 생명이 짧은 걸 잘 알기에 번복은 했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밝히자 바른청년 유승준을 바라보던 여론은 싸늘했다. 재판부는 파기환송심에서 승소한 스티브 유에.. 2020. 12. 20. 07:27
[에셀라 시론] 내러티브의 종말 입력 : 2020. 12. 19  07:03 | A30 닫힌 사회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으로 주목했던 내러티브의 역설적인 오류를 발견하자 먼저 든 생각은 인간의 추악함이었다. 나의 세계가 존재하듯, 너의 세계도 존재한다는 그럴싸한 명제가 우리 사는 이 세계에 먹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쉽게 말해 착한 마음만을 가지고 살면 왜 이 세상 아름답지 않겠냐는 농담 같은 질문과 다르지 않는다. 그런 쉬운 방법이 가장 어려운 법이고 불가능에 가까워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하듯.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지도 않을뿐더러, 모든 사람이 감성주의자는 아니므로 더욱이 내러티브의 역설적 오류를 발견한 것도 이 때문이다.자신의 세계 속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캐릭터는 투사의 도구로 전락한다. .. 2020. 12. 19. 07:03
[현실논단] 전 한국인 공동체를 움직였던 한국교회 입력 : 2020. 12. 16  08:17 | A30  일천구백칠년의 일이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개최한 평안남도 겨울 남자 사경회에 참석한 신자들은 저녁 집회에서 성경 공부 후 통성으로 기도하자 청중들을 어떻게 통제할지 상의할 정도로 울음이 이어졌다.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고 하니 회개의 위력은 진중했다. 주목한 건 그 다음날이다. 거리에서 서로 죄를 고백했고 배상했다. 도둑맞은 물건이 돌아왔다. 빚이 청산됐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은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한국인 공동체를 움직”였다고 한다.장대현교회에 모인 신자들은 방언으로 기도했을까? 아니다.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방언으로 기도했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심금과 정서를 적신 통곡은 행동으로 옮겨갔고, 옮아가듯 반성과 .. 2020. 12. 16. 08:17
[일과속기록] 정지사본궁목 입력 : 2020. 12. 10 | A31  우리 뇌는 이미지로 기억하면 더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시험이 다가오면 앞 글자만 따서 외운다고들 하는데 중학교 3학년 도덕 시간도 그랬다. 하나도 외워지질 않으니 운율로 따서 외우기로 했다. “정지사본궁목” “정지사본궁목” “정지사본궁목” 짝꿍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정서적, 지향적, 사회성, 본래성, 궁극성, 목적성.” 하루 동안 한 문제에 적을 단어 “정지사본궁목” “정지사본궁목” “정지사본궁목”을 주문처럼 외웠다.듣기 싫다며 귀 막았던 친구들도 나의 “정지사본궁목” 세례에 질색했고 손사래 쳤지만 종국엔 고맙다는 말로 돌아왔다. 내 정신없는 ‘정지사본궁목’ 덕분에 다 적었다나. 어처구니없어 친구들과 피식거렸고 도덕의 무엇이라 기억했던 정지사본궁목은 외.. 2020. 12. 10. 05:18
[자유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선 홍콩을 보면 外 입력 : 2020. 12. 01 | A1  ○美國과 中國 사이에 선 홍콩을 보면 다시 民族主義로 회귀하려는 것인지, 威脅이 威脅을 낳고 衝突하려나.○‘異端 미혹’에서 ‘地獄 갈 수 있다’로 바뀌었다는 모 敎會 광고. 恐喝脅迫 아직도 통하는 줄 아는 너희의 敎會.○코로나가 만든 神 죽음의 時代. 개신교회 소모임 금지 반대 청원했던 27만명도 함께 죽음에 동참하는구나. 2020. 12. 7. 21:10
[지애문학] 시내버스 3100번, 일오구삼 입력 : 2020. 11. 23 | C10  높은 빌딩에서 바라본 강변북로로 향하는 길목의 네거리는 출근길로 분주하다. 8시 53분, 쉬면서 뭐라도 하기엔 애매한 시간에 도착해 스틱 커피를 타고 창가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이제 도착하려는 직장인들과 환승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러시아워 바라보는 모습이 미니어처 구경하던 꼬마 아이 같을 때가 많다.몇 초 남지 않았을 패딩점퍼는 요리조리 사이를 스쳐가며 여유롭게 건너자 그 뒤로 성큼 걷는 백팩 배 뿔뚝 아저씨. 내 키보다 높은 하이힐과 유선 이어폰이 거슬려 찡그리는 듯 누가 봐도 직장인 아가씨, 답답해진 마스크로 헐떡이며 유랑하는 할아버지, 시루마냥 담아온 버스들이 줄지어 도착하고 네거리는 출근길 정점을 찍는다.유독 관심을 기울인 건 매일 이 시간 이.. 2020. 12. 1. 22:45
[사설] 녹림청월이 지키려던 캐릭터가 잊혔듯, 한국교회가 지키려던 예수도 잊게 둘 텐가 입력 : 2020. 11. 30  23:30 | 디지털판 우리 사회에 바이러스처럼 퍼지고만 ‘유지하기’ 논리는 집단으로 등장한 녹림청월에서 도드라졌다. 자신들이 지켜야 했던 신념을 만들어진 캐릭터에 투영해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유지하기 방식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의 공격점은 자신들과 생각이 달랐던 파편화된 개별자로, 뭉치기도 어려운 개인에게 향했다.백여 개가 넘는 가계정으로 구성한 녹림청월의 일관적인 주장은 유지하기라는 논리에서 비롯했다. 아홉 단계에 달하는 자작극을 공모해 ‘우리의 목소리가 옳다’ ‘집단이 맞는다’고 설파했으며 지금의 한국교회 논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을 비겁하고 한심한 철없는 것들의 유지하기 방식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15년이 흐르고 이들의 실체는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2020. 11. 30. 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