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고달픈 것
꼭 섹스를 해야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유독 몸의 쾌락에 집착하는 이들 일수록, 그 횟수에 소유욕을 투사한 만큼 퇴행적 자의식을 드러낸다. 걸레 딱지 붙이는 것도 우습다. 횟수도, 쾌락도 중요하지 않다. 어른이 되어가는 고통 속에서 꿈처럼 달달한 솜사탕 같을 뿐이다. 많이 넣어도 순식간에 녹아 사라져 버리는 맛. 또 입에 넣고 녹여도 다시 먹고 싶게 만드는 맛. 처음 연주에게 느낀 불편한 감정도 오해에서 비롯한다. 그 마음 깊숙한 곳에 숨은 소유욕을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몸은 어른이 되어가지만 생각은 퇴행하고 만다. 연주가 마마보이는 싫다며 호세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내가 먼저 어른이 되었다는 오만함이 아니다. 어른의 쓰디쓴 맛을 느끼기엔 아이의 달달한 맛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오피니언

[ㄹㅇ루다가] 하루에만 330명… 교회 문 열자 쏟아진 인파
[미망이의 신학 서재] “非전공자가 쓴 성경 통독서라니…”
지선 문자·전화 홍보… 하루에도 수십 통 “해도 너무하네”
[서평] 흔전동 재개발 구역에서 들려오는 네 울음 소리
퍼피레드에서 열린 결혼식, 버뮤다 순복음교회의 이야기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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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now] [주마등] 달달한 편의점 모찌롤 케 ― 잌 편의점 구석 한 편. 의자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잠은 푹 자둔 상태다. 사장님은 이것저것 지시사항 가리키고서는 퇴근했다. 그렇듯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로 응축된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신문이나 책 읽다가 심심하면 글 좀 쓰면 된다. 자정까진 손님만 스무 명 남짓. 피곤함만 빼면 꽤 괜찮다. 벽면 화이트보드엔 ‘해야 할 일’이 빼곡했다. 그닥 복잡하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청소, 선입선출. 물류도 없어서 청소 때만 바짝 일하면 된다. 종이컵에 믹스 커피 따르고 자리에 앉았다. 편의점 조끼에 배인 내 체취가 비 냄새에 가려졌다. 비 냄새라. 다소간에 불편해질 것 같다. 박스는 사장님이 준비해두셨을 테고. 발자국이 묻기 전에 깔아두면 될 텐데. 움직이기는 귀찮고. 어제는 몇 명쯤 왔을까.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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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now] [지금,여기] 사라진 촉각 되살리는: 「조각충동展」① 코로나가 유행하며 사라진 감각은 냄새와 맛뿐만이 아니다. 만지는 감각, 촉각(觸覺)도 사라졌다. 악수 대신 주먹을 맞대거나 안아주기보다 멀찍이서 바라보는데서 끝나는 상황이 2년 가까이 이어졌다. ‘조각충동’에 향한 관심도 잠시 잊힌 촉각이 떠오른 탓이다. 북서울미술관에서 다음 달 15일까지 ‘조각충동’ 전시회를 개최한다. 작품 수는 모두 66점으로 참여한 작가는 17명에 달한다. 언론에서는 젊은 작가들 특성을 강조하지만 막상 작품 앞에 서보면, 작가들 나이보다 일반인 입장에서 생각지 못한 다채로운 표현 방식에 놀라게 만든다. 단지 존재 그 자체로만 서 있던 물건에서 이름과 의미를 갖춘 작품으로 세워지기까지 작가들이 고민한 발걸음을 되짚고 싶어진다. 조각의 의미를 묻는다: [공공조각파일] [어린이 조각가].. 더보기
지애문학
[지애문학] 떠난 네 등 돌아보지 않은 이유
나 스스로를 더 사랑하라느니, 자존감 챙겨야 한다느니 같잖은 소리 허공에 붕 뜬 채로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런 말장난들은 현실 앞에 서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뿐이다. 사랑한다던 말도 그랬다. 촉이라는 걸 느꼈기에. 애써 외면하려던 결과가 허무감으로 돌변할 때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을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날 감정 쓰레기통으로만 생각했던 그 애가 보고 싶지 않았으므로. 온갖 명분 끌어다가 필요할 때만 찾는 걜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외로움 따위 견뎌내기 어려워서 다시금 입술에 담는 내가 미웠다. 따라서 외로움은 견디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경험할만한 그런 것, 인간이라면 언제든지 속절없이 견뎌야 하는 것. 딱 그쯤으로만 생각했다. 내 앞에 퍼지는 물결을 감내해가며 흔들리..
더보기#객관적상관물
자유의새노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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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거운 짐을 진 여고생 이야기:『내가 만드는 엔딩』 내가 만드는 엔딩 서화교 지음 | 낮은산 | 192쪽 | 1만2000원 여고생 재윤이가 감당하기엔 무거운 짐이었다. 얼떨결에 마주한 아버지 영정 앞에 넋을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충격적이었다.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 “왜 죽었을까.” 이유를 알고 싶었다.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 없었다. 스스로 세상과 등진 아버지를 생각하며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되짚는 열여섯 소녀 이야기다. 만일 소설에서 죽음을 다룬다면 두 가지 방향 중 하나일 것이다. ➀죽은 이가 남긴 기록이나 기억을 곱씹는 일 ➁죽은 이와 함께한 이들 기억을 되짚는 일. 둘 중 하나를 고르기도 하지만 모두를 다루기도 한다. 죽음은 신중해야 할 소재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남발하면 작품이 말하려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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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미술대학 정보디자인 10년 기록:『비주얼 스토리텔링』 비주얼 스토리텔링 윤주현 지음 | 홍디자인 | 352쪽 | 2만5000원 7년 전 책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정보디자인 수업 10년 기록을 담아선지 풍부하다. 정보를 어떻게 담을지를 고민했다. 예쁘기만 하면 된다는 디자인 편견을 부순다. 나 자신의 족적을 다루는 일부터 도시, 환경, 공동체, 데이터, 문제 해결 등 비주얼그래픽 완성본을 선보인다. 정보와 디자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보를 배치하기 위해서는 원래의 자료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디자인이 예쁜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세심히 다루어야 한다. 정보는 까다롭다. 입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배치에 따라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다. 다채로운 그래픽 완성본을 보면서 ‘이렇게도 만들었구나’ ‘저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생각이 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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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그 사람] 강이지, 너라면 언제든!:『열여덟 너의 존재감』 세상은 네게 가혹할 테지만 원망스러울 거야. 네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집에만 들어오면 부모는 싸우고 있고. 아이들은 고성(高聲)에 울기만 할 뿐이고. 태어난 것 자체로도 억울한 감정이 앞서지만 견뎌야 할 네 마음,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한국은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나라 같아. 이지, 너의 배려는 섬세해. 너의 그 배려를 모든 사람이 알아주지는 않을 거야. 그럼에도 네 몸에 각인 된 감각을 잃지 않고 다채로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네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멋져. 오랜 시간 흘러야 ‘그 애가 나를 생각해주었구나’ 깨닫게 만드는 배려도 있겠지만. 어쩌면 죽은 후에도 모를 배려도 있을 거야. 순정이가 너의 마음을 알아준 것처럼, 앞으로도 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어갈 거야. 지금은 경찰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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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년아!” 이런 존재감 처음이야:『열여덟 너의 존재감』 열여덟 너의 존재감 박수현 지음 | 르네상스 | 214쪽 | 1만1000원 시커먼 교복은 어색하지 않았다. 갓 입학한 지 머지않아 야간자율학습 공지를 들었다. 중학교 시절과 분명히 다른 무거운 감정을 느꼈다. 자율적이지 않은 자율학습이 가져다 준 암묵적 권위에 순응하는 이 분위기가 낯설게만 느껴진 탓이다. 담임은 20대 후반에 키 160㎜ 조금 미치는 가냘픈 여자였지만 서른여섯 학생들을 단번에 제압하는 카리스마 때문인지 현장을 더욱 권위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연애나 가벼운 오락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워낙 무거웠으므로. 저서는 2010년대 고등학교 분위기를 정확히 묘사한다. 나만 느낀 무거운 감정이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무거운 분위기는 사람 통제하기 가장 쉬운 방식이란 걸 깨달았다. 미.. 더보기
- 2023년 자유의새노래 편집방향: 덤덤한 마음의 기록 먹먹한 마음 담은 이 활자 이 신문 자유의새노래 다채로운 이들 목소릴 기억으로 연결하겠습니다 이 신문 자유의새노래는 주필이자 한재현 이름을 가진 저 자신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창간한 1인 미디어입니다. 2013년 12월 7일 무거운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조판해 나아간 시간이 지금도 제 가슴에 살아 숨 쉽니다. 창간호도 없는 제1호를 읽다보면 당시의 저 자신과 마주합니다. ‘무엇이 그리 힘들었기에 이 신문을 만들었을까.’ 돌아오지 않을 대답은 신문 활자로 박제되어 완성된 지면으로 말할 뿐입니다. 사라지지 않은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변호하듯 글자로 채워 만든 이 신문이 올해 열 번째 해를 맞았습니다. 신문을 제작하면서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혼자서 제작하는 신문이라 놀랍다던 반응이 제일 많습..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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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조금씩 틈으로 벌려내어 박살내는 것:『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0쪽 | 1만1500원 처음 세 가지에 놀랐다. ①형수라고 부르기에 형의 아내를 일컫는 단어인 줄 알았다. 웬걸 남자애 이름이었다니. ②은재라는 이름으로 PC방을 오가며 ‘다크나이트’로 불리는 모습에 남학생인 줄 알았는데 여학생이었다니. ③이 모든 광경을 CCTV로 지켜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행운이란 실체 없는 존재가 관찰 중이라니. 그렇다. 행운이란 주인공이 불행과 죽음 사이에 선 아이들을 지켜본다. 스포일러 주의 ◇상처가 만들어 낸 냉소적인 은재 여중생 은재는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해왔다. 다크나이트라 불린 이유도 얼룩진 상처를 가리려던 검은색 카디건 때문이다. 은재가 아버지로부터 머리채 잡힌 모습을 지켜본 건 같은 반 우영과 형수였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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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의 탈을 쓴 소설, 차라리 수필이었다면:『서울 사는 외계인』『대한 독립 만세』 서울 사는 외계인들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56쪽 | 1만3000원 고등학생 나이의 남자 아이가 무화과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집 2층으로 이사 왔다. 덥수룩한 머리, 신문지로 창문마저 덮어버린 음침함, 자퇴한 듯 짱 박혀 지내는 어두운 분위기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아, 미친! 개쓰레기! 양아치 새끼! 이거 정신병자 아냐?”(10,4) 딸의 험한 욕설에도 주인집 아주머니는 친히 끓인 팥칼국수를 문 옆에다 두었다. “너 말 조심해.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또라이, 또라이 하니? 내가 보니까 아주 선하게 생겼더구먼.”(28,7) 2층에 세 들어 사는 자퇴 소년 사우에게 집주인 아주머니가 한글을 배우면서 서로 위로를 건네는 내용의 소설이다. ◇2010년대 후반에 나온 소설이라기엔 믿기 힘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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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지 않은 괴물이라 다정한 화괴:『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 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 명소정 지음 | 이지북 | 308쪽 | 1만4000원 참신한 소재라 하기엔 당장에 떠오른 두 영화가 겹쳐보였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그리고 ‘늑대소년’. 머지않아 여학생이 괴물 남학생을 쥐고서 흔들고 있겠구나 예상마저 들었다. 정해진 각본처럼 눈앞에 펼쳐진 내용이 낯설지 않은 이유였다. 우연한 밤 도서관을 방문한 여자 주인공 세월이 괴물의 형상으로 나타난 남학생 혜성과 마주친다. 정체를 들키고 만 혜성이 세월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굽실댄다. 혜성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기억을 먹어야만 했다고 해명한다. 사람의 기억을 먹으면 단박에 정체가 탄로 날 것을 우려해 기억이 담긴 책을 몰래 먹으면 괜찮을 거라 말했다. 세월은 비밀로 해줄 테니 상담 동아리를 만들면 어떨지 제안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