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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18

[건조한 기억모음⑥] [3] 수련회 때마다 반복된 ‘마귀의 역사’… 외로움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수련회를 다녀올 때마다, 나는 감정 상하는 일을 경험했다. 목사는 매번 설교 시간에 나를 거론하며 “매번 삐지고 돌아온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스스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다고 믿었던 목사는 이런 현상을 두고 ‘마귀가 역사한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마귀 역사’라는 말만큼 무책임한 단어도 없다. 한창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을 강제로 수련회 합숙소에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계속해서 기독교 사상과 이념을 주입한다면 어느 누가 즐겁게 받아들이겠는가. 설교 메시지도 탁월한 것도 아니다. “너희들은 죄인이야” “게임하지 마” “부모에게 효도해” 같은 직설적인 언사를 누가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는가. 결국은 사람의 불완전성을 결함으로 비치도록 만드는 말들을, 이제 자라 나는 연약한 .. 2026. 1. 17. 12:54
[건조한 기억모음⑥] [2] 한여름 소년은 보았다 목마른 너의 가능성을 성경학교가 바꾸진 못했어도 ‘할 수 없다’는 극한의 절망 속 희망의 메신저 루디아 선교사 신학교에만 입학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나의 허상은 단 한 달만에 산산히 부서졌다. 방학이 오기 전까지 나는 무력하게 지내야 했다. 목사는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새 능력만을 설교 했지만 나는 할 수 없다 는 무기력을 느꼈다. 1980년대의 부흥을 제창하는 교회에서 2014년도의 신앙을 가진 나와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우울증은 더욱 깊어만 갔다. 할 수 있는 사회에서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은 나를 더욱 슬픔으로 몰아 갔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교회의 능력주의가 빚어 만든 결과인 것이다. 필요할 땐 은혜를 찾으면서, 정작 중요한 순간엔 행위를 강조하는 교회의 이중적 신앙이 나를 절망의 수렁으로 빠뜨.. 2026. 1. 17. 12:53
[건조한 기억모음⑥] [1] 11년 전, 금빛 하늘 아래… 아이들의 힘찬 응원가 “빠따빠따빠따팀” 2014년 여름을 달군 나의 ‘수련회 이야기’ 크리스마스 시즌도 벅찼는데, 여름방학까지 바빠진 건 신학교에 들어간 뒤부터였다. 교회 수련회에 따라다녀야 했는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교회학교와 중고등부, 청년부까지 모두 세 번. 한 번에 2박 3일에서 3박 4일씩, 한 달 가까운 시간을 교회에 바쳐야 했다. 그래서 가기 싫었다. 혼자 유유자적하게, 내 시간대로 여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바비 때문에 그러니? 목사님이 줄 테니까, 좀 가라.” 나는 결국, 하는 수 없이 교회 스케줄에 맞춰야 했다. 중고등부와 청년부까지는 수월했다. 어차피 프로그램은 이미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면 되었기 때문이다. 큰 업체에서 진행하는 행사라 교사 자격으로 아이들을 케어만 하면 됐다. 예배도 드리고, 물놀이도 하.. 2026. 1. 17. 12:53
[소녀의 이름으로②] 예고 없이 다가온 ‘신의 죽음’… 그의 대침묵이 이끈 기독 담론의 끝 연결 기사[소녀의 이름으로①] 죽음의 네 화살과 신앙의 해방… 탈교의 끝에는 소녀가 있었다 의미 잃은 신앙과 성서의 오류 모순 보이지 않는 해답 신은 말이 없고… 2017년은 오순절 신앙의 내적 종말이 가시화된 해였다. 참여교회에서의 탈출, 그리고 해방. 버뮤다순복음교회의 해체는 제도권 교회의 붕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는 신의 대침묵과 이어진다. 감성주의 사태 이후 외마디조차 사라진 신의 말없음은 곧 ‘신의 죽음’으로 해석되면서 더는 신앙이 개인과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과 마주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 신앙을 중심으로 재편된 이념과 정체성도 죽음을 비껴가지 못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은 생계와 학문, 존재의 성장에 조금도 성장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의미 없는 충돌, 관념의 반복, 자기소.. 2026. 1. 17. 12:52
[소녀의 이름으로①] 죽음의 네 화살과 신앙의 해방… 탈교의 끝에는 소녀가 있었다 배타적 복음주의가 빚어낸 인간성 상실과 심리적 탈진 탈교는 삶의 주도권 되찾기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던 때였다. 기독교가 진리를 탐색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왜곡하고 소진시키는 신념 구조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적 삶은 심리적 탈진을 야기했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의미 있는 신앙이라 해도, 기독교만의 배타적 복음주의는 성서의 민낯을 깨달은 이에게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 체계로 기능했다. 교회를 탈퇴한지 10년이 흘러서야 미신으로 인식하기에 이른 것이다. 신앙을 내려놓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과 문화, 가치관 전체가 걸린 선택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탈교 10년을 되돌아보면, 그 과정은 치밀하고.. 2026. 1. 17. 12:52
[고마운 이름들⑦] 그분은요, 버려진 꽃에게조차 예쁘다 하신 그런 분이셨어요 조전혁 씨가 유포한 ‘전교조 명단’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감정이 이 신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전교조 조합원이었다니”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 나는 조선일보를 읽기 시작했다. 정치 성향과 역사관은 보수, 그러니까 우파에 맞춰질 운명이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면서 어떻게 경선 투표 결과를 조작할 수 있는지 말문이 막혔다. 애국가 제창을 거부하는 이들의 모습이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이 와중에 전교조 명단은 나의 애국심에 불을 지폈다. 당시 신문은 기록한다. “이번 사태는 전교조가 종북좌파이자 이적단체로까지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일파만파로 퍼질 것으로 보인다” 나를 가르치던 꽤 많은 선생님이 전교조 소속이.. 2025. 11. 1. 07:00
[건조한 기억모음⑤] [2] 똥 팬티 세탁에 매일 청소까지… 그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방장에게 노예 생활하던 중 나는 강렬한 신앙 체험을 했다. 내 인생의 각도를 튼 놀라운 사건이었다. 대학교에서는 학기 초 대학부흥회를 연다. 포도나무교회 여주봉 목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했다. 주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다.나는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오랜 시간 삶의 변화를 꿈꾸었다. 좀더 성실하게 살기를 바랬다. 정직하고 경건하기를 바랬다. 언제나 여색(女色)은 발목을 붙잡았고 마음을 괴롭게 했다. 그런데 여 목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만큼 그리스도인의 삶이 변한다”고 주장한 것이다.여 목사는 탈출기를 해설하며 하나님조차 자신의 목적과 수단으로 활용하는 자기중심적 인간의 삶을 비판했다. 나는 좌절했다. 이제껏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삶의 액세서리 쯤으로 생각해온 지난 날이 적나라하게 보였.. 2024. 12. 14. 07:10
[건조한 기억모음⑤] [1] “그날의 주먹, 용서할게요”… 다시 만난 형은 무릎을 꿇었다 기숙사 새 방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대충 언제 오느냐는 물음이었다.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 같다. “잘 모르겠다?”되묻는 물음에 느낌이 싸했다. “막내가 벌써부터 빠져가지고….” 방학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구린내가 진동했다. 똥군기의 서막이었다.스무살 학부 때의 일이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에 발디딜 무렵이었다. 3인실 쓰다가 5인실을 경험해보니 놀라웠다. 나무에 그늘진 방이 내 어둔 미래를 암시했다. 막내에게 주어진 의무는 가혹했다. 이틀에 한 번은 세탁을, 방장과 중방의 옷까지 말아야 했다. 먹기 싫은 야식도 내 돈 주고 먹어야 했다. 그 야식, 방까지 배달해야 했다. 꼬박 인사하는 건 기본이고 기분 좋은 선배 대접에 과제물 파일까지 메일로 보내줘야 했다. 다른 막내도 있었지만 나보.. 2024. 12. 14. 07:00
[고마운 이름들⑥] 그 시절 누나에게 교회는 ‘마지막 등불’ 내 기억 속 누나는 언제나 활짝 웃는 사람이었다. 세상이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않을 그런 강직한 사람. 그런 누나가 갑자기 사라졌다. 인사도 없이 교회를 나오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누나의 행방이 궁금했다.머지않은 시기였다. 나도 새능력교회를 탈퇴했다. 목사의 신앙과 나의 신앙은 대립각을 세웠다. 그리고 갈등했다. 교회를 나오면서도 인수인계를 철저히 했다. 방송실 근무자 민찬이에게도 여러 번 강조했다. “교회를 나오는 건 목사님하고 신앙이 달라서야.” 차마 내 입에서 목사의 신앙이 틀렸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예의였다.훗날 새능력교회가 젊은이의 노동력을 갈취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달에 교통비 5만원만 주면서 생색내는 목사가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2024. 12. 4. 07:00
[고마운 이름들⑤] 말없이 도둑놈 놔주며 “됐다, 그만 가 봐라” 버찌씨도 2센트도 아닌 ‘빈손’에 지난 번 초코칩쿠키는 대성공이었다. 허겁지겁 삼키느라 제대로 음미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리라 다짐했다. 점원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슬쩍 왼쪽 다리에다 겹쳐다가 홧김에 나와 버렸다. TV에 정신 팔리느라 못 보는 것 같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때는 초등학교 2학년. 오늘도 챙겨오라던 준비물을 빼놓고 갔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존나 아픈 기억만 남은 걸 보면 손바닥 아작 날 만했다. 불과 20년 전 엄한 회초리와 귀싸대기가 일상이던 시절의 얘기다. 그땐 거짓말이 일상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도둑질도 많이 했다. 친구네 집에서 훔쳐온 장난감만 몇 주먹이나 쥐어야 할 정도였다. 실컷 놀다가 배가 고파졌다. 상가 건물에는 1층에 마트와 맞은편 교회가 .. 2024. 5. 8.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