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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이름으로①] 죽음의 네 화살과 신앙의 해방… 탈교의 끝에는 소녀가 있었다

의미 잃은 신앙과 성서의 오류 모순 보이지 않는 해답 신은 말이 없고…

2017년은 오순절 신앙의 내적 종말이 가시화된 해였다. 참여교회에서의 탈출, 그리고 해방. 버뮤다순복음교회의 해체는 제도권 교회의 붕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는 신의 대침묵과 이어진다. 감성주의 사태 이후 외마디조차 사라진 신의 말없음은 곧 ‘신의 죽음’으로 해석되면서 더는 신앙이 개인과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과 마주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 신앙을 중심으로 재편된 이념과 정체성도 죽음을 비껴가지 못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은 생계와 학문, 존재의 성장에 조금도 성장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의미 없는 충돌, 관념의 반복, 자기소진의 정체성으로 귀결된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파생된 전통적인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가치가 뒤바뀌기 일보 직전의 상황을 맞이한 이유다.
신의 대침묵이 이끈 것은 성서로의 귀환이다. 성서 읽기에 머문 신앙이 성서 해석으로 한 단계 발전하면서 기독 담론의 끝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성서의 오류와 무오는 양립 불가능하며, 성서에서 느껴진 것은 신의 숨결이 아닌 자신의 모순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오만한 신의 침묵뿐이었다.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 무력한 신, 자신을 변론하지 않는 허무한 신, 오로지 믿음으로 추앙 받는 만들어진 신, 예고 없이 다가온 신의 죽음.
거꾸로 본 아담과 이브의 ‘창세 설화’…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성경의 절대 존엄 전통성 무너지고
문학적 해석으로 등장한 너머담론
성경의 재인식은 변혁의 시작이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범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창세 설화로 재인식하면서 역사적 문헌이라고 믿었던 성경을 문학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변함없는 말씀, 불변하는 진리의 가르침이라 믿었던 성경은 허점투성이었다.
재인식을 통해 타락과 반역을 가르치는 전통적인 교회의 해석에서 벗어났다. 오히려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범함으로써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게 된 존엄한 해방의 순간을 맞이했고, 성경의 거룩함과 절대적인 존엄함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성경은 더 이상 경전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며 문학으로 전락한 것이다.
역사, 문화비평은 성경을 절대적인 자리에서 쫓아내었고 빈자리를 철학과 문학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서사를 통해 구원론을 확정 지은 것처럼 문학 서사로 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자세로 탈바꿈하면서 내러티브의 문학적 기능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성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은 도리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었고 이목은 진리에서 ‘대화’로 쏠리기 시작했다.
성경의 시각이 아닌, 성경 바깥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은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이성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인간의 본성에 주의를 기울이며 성경 바깥의 세상에 주목했다. 경전이 종교적 기능으로만 머물면서 담론이 재편된 것이다. 신 죽음의 시대 이후 ‘너머 담론’으로 말이다.
인류를 죄악으로 몰고 간 여성? ‘앎’을 깨닫게 하고 해방시켜준 영웅
고립된 자아 대신 타인과 공존으로
神 권위 무너져도 남는 것은 윤리성
아담과 이브의 원죄론이 기독 담론의 핵심이자 교리의 주류라면, 페미니즘적 해석 이를 테면 이브의 선악과 사건이 오히려 인간을 ‘앎’을 깨닫게 한 해방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성경을 새로운 비평의 눈을 열었다. 성서 비평은 창세 설화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데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죄의 저주였던 선악과를 인간 해방이자 여성의 승리로, 인간 본연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의 존엄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담론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신의 권위가 해체되어도 인간의 존재는 여전히 존엄한 것이다. 과거의 헤게모니를 넘어 존재는 판단하고 책임지는 주체로 재정의되었다.
존재는 더 이상 고립된 자아가 아니라 타자와의 공존을 통해 완성된다. ‘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의 삶 자체가 중심을 이루며 담론을 형성했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대상이 아닌 공존하는 파트너이자 타자는 나와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상으로 시야의 재조정이 이루어졌다. 비로소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세계관으로 발전하게 된다.
윤리는 바로 이 세계관에서 발견되었다. 신을 위해 살아왔던 일방향적 삶이 사람과 소통하는 양방향적 삶으로 발전하며 물음이 등장한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너머 담론은 신 죽음의 시대 이후의 담론이자 삶의 방향과 윤리를 묻는 실재적 질문이자 정답으로 향하는 길로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절대적 명령에서 주체적 삶으로… 신 죽음의 소산 ‘신앙 주권주의’
제도 교회에 매이지 않고 주체적 자아가 삶을 믿는
존재의 정치와 신앙 주권 비로소 되찾은 뿌리 질문
신 죽음 이후 인간은 삶의 해석권을 제도 종교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삶의 의미를 구성할 권리를 발견했다. 신 죽음의 시대 이후의 담론은 삶에 분명한 정답을 제시한다. 우리의 권리를 제도권에 내맡기지 않고 가치를 인간이자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삶의 방향을 가늠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앙 주권주의는 너머 담론에서 파생된 새로운 방식의 신앙 양상이다. 제도권에 매이지 않으며 주체적 자아가 삶을 신앙함으로써 윤리에 답변하는 것이다. 신과 인간, 타자의 공존으로 삶을 사유하며 전통 신앙의 양식을 기반으로 현대의 뿌리 질문에 응답한다.
존재의 정치는 윤리를 기반으로 권력의 근간을 훑는다. 이제까지 보수와 진보는 무엇을 위해 응답했는가를 묻는다. 신과 교회라는 집단을 위해 복속했다면, 존재의 정치는 신과 교회를 해체함으로써 권력의 분배를 윤리로 응답하여 분산한다. 여기서 핵심 질문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일하는가’이다.
신앙 주권주의와 존재의 정치는 너머 담론 이후 등장한 새 가치로 전통을 해체함으로써 현대의 뿌리 질문에 응답하려는 시도이다.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 주권주의는 기존의 기독교 전통을 해체함으로써 현대적 방식으로 응답한 신앙과 정치의 산물이다. 이는 오순절이 종말하면서 등장한 윤리의 소산이다. 앞으로의 삶은 묻는다. 어떻게 믿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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