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을 달군 나의 ‘수련회 이야기’
크리스마스 시즌도 벅찼는데, 여름방학까지 바빠진 건 신학교에 들어간 뒤부터였다. 교회 수련회에 따라다녀야 했는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교회학교와 중고등부, 청년부까지 모두 세 번. 한 번에 2박 3일에서 3박 4일씩, 한 달 가까운 시간을 교회에 바쳐야 했다. 그래서 가기 싫었다. 혼자 유유자적하게, 내 시간대로 여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바비 때문에 그러니? 목사님이 줄 테니까, 좀 가라.”
나는 결국, 하는 수 없이 교회 스케줄에 맞춰야 했다. 중고등부와 청년부까지는 수월했다. 어차피 프로그램은 이미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면 되었기 때문이다. 큰 업체에서 진행하는 행사라 교사 자격으로 아이들을 케어만 하면 됐다. 예배도 드리고, 물놀이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밤에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몸치 박치였던 내가, 이 세계에선 인기 교사?
문제는 교회학교였다. 중고등부와 청년부가 전국 단위로 여는 빅 텐트라면, 교회학교는 강원도 영동 지방의 교회들이 모여서 여는 스몰 텐트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일손이 필요한 규모의 여름성경학교인 것이다.
“선생님, 나가서 율동 좀 추세요.” 몸치 박치인 내가? 예배 중 갑작스러운 부탁에 시끌벅적했던 대성전이 한순간 고요해졌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두어 번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시작부터 어긋나 버렸다. 말 그대로 무대 위로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나는 마지못해 무대 위로 올라갔고 속으로는 울면서 어설프게 율동하고 말았다. 동시에 마음의 상처도 입었다. 나와 이 여름성경학교는 맞지 않는 옷 같았다.
혼자 상처를 다독이다가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규모도 작고 나의 손길이 필요한 여름성경학교라…. 반대로 내가 나설 수 있는 무대이지 않을까. 무언가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안고 예배 중 율동과 게임 등 다양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풀이 죽어 있던 교사가 갑자기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게 된 아이들도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툴툴 거리는 아이에게는 “대충대충춤추면서 하나님을예배해도돼 뭐든지 강제로하는건 하나님도좋아하지않으셔” 싸우는 아이에게는 “아니아니무슨일이야? 누가널화나게했니데리고와” 이제는 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율동도 추면서 찬양 인도자보다 더한 성령 충만한 몸동작을 선보이며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문제가 터지면 터진 대로 찾아가 수습하고, 물어보면 물어보는 족족 방언 터진 것 마냥 성경적으로 대답하니 나도 아이들도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교회에서도 매일 방송실에서만 살다 보니, 내가 이렇게 붙임성 있는 인간인 줄은 몰랐다. 특히나 아이들과 이렇게 가까워질 줄은 상상조차 못한 것이다.
죽어도 하기 싫은 일
몸치 박치인 내게 선뜻
“선생님, 율동해주세요”
어색한 강요 분위기에
끝끝내 마상까지 입고
그래, 좋아, 그거야
‘오히려 내 무대 아냐?’
180도 달라진 내 모습
율동도 인솔도 ‘갓-벽’
그럴 듯한 새 별명
아침엔 다정 순둥한 쌤
밤엔 ‘빠따 선생님’으로
고학년까지 압도하고
절망 속에서도 발견한
고압적인 담목 태도에
숨이 막혀 몸져눕기도
그래도 아이들의 응원
한마디에 한마음 한 팀
‘너희가 있어 나도 있다’
◇그날 밤, 몽둥이를 들고 새벽까지 서 있던 ‘빠따 선생님’
그럼에도 모든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건 아니었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아이들은 내 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나를 무시하기도 했다. 내 나이 스물한 살, 이렇게 위기가 다가오는 것일까. 짧으면 짧은 7년,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나를 스쳐간 아이들만 열댓 명.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학생들에게 어필한 적은 없었다. 친하게만 대하기엔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모두가 잠든 밤이었다. 유난히 긴 밤을 보내야 했던 고학년 아이들에겐 고역이었다. 밤 10시에 무작정 자야 한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숙소도 그리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낮에는 50명의 아이들이 예배하던 공간에 남자아이들만 꾸역꾸역 넣었으니 말이다. 저학년 아이들은 이미 잠들었는데 고학년 아이들만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바깥에서 꽤 괜찮은 아이템 하나를 발견했다. 철제로 된 긴 막대기였다. 공교육 12년의 교훈이 스쳐 지나갔다. ‘아, 이래서 호랑이 교관이 필요한 거구나.’
이로써 나는 밤엔 무서운 선생님으로 돌변하게 되었다. 중요한 건, 적당하게 아이들에게 겁을 줘야 한다는 점이다. 아침에는 순연한 똘끼로 충만하던 선생님이, 밤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분위기를 잡으니 나의 어색한 온도 차에 고학년 아이들도 말을 듣기 시작했다. 잠들지 않으면 혼내겠다는 위협(?)이 먹힌 것이다. 그렇게 몽둥이를 턱에 걸친 채 서서 새벽 1시까지 버티고 또 버텨야 했다.
다음 날, 나의 별명은 ‘빠따 선생님’이 되고 말았다.

◇”빠따빠따빠따팀!” 그래, 너희들이 ‘나의 힘’
날이 밝을 무렵이었다. 나는 카리스마 빠따쌤에서 다정하고 순둥한 교회학교 교사로 변해 있었다. 누군가 나를 잠에서 깨우기 시작했다. “쌤! 누가 가운데에 똥 싸질렀어요!” 나는 벌떡 일어나 상황을 파악하기 바빴다. 일단, 누군지를 찾지 않았다. 누가 저질렀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괜히 누가 실수했는지를 밝히면 부끄러워할 게 뻔했다. 더구나 의도적인 건 아니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 보니, 어두운 대성전을 돌아다니다 화장실을 찾지 못한 녀석이 아무도 자고 있지 않는 곳에다가 볼일을 봤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놀리거나 괜히 호들갑 떨지 말라고 단호하게 일렀다. 부장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처리를 부탁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침 예배부터 점심 예배까지 둘째 날 행사에 흠뻑 빠져들었다. 오히려 수렁에 빠져든 건 나였다. 담임 목사가 둘째 날에 돌아오면서부터다. 목사는 여전히 고압적이었다. 누구보다 여름성경학교에 흠뻑 빠졌던 나였지만 목사가 등장하면서 기가 죽기 시작했다. 광란의 똘끼를 차마 목사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숨어버렸다. 나는 목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마치 문제라도 저지른 양 바라보는 시선, 칭찬 한 마디 내뱉지 않는 오만한 태도, 뭐든 다 안다는 듯한 착각이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오래도록 기가 죽어 있어야 했다. 아이들이 실컷 물놀이하고 있는 동안, 나는 대성전 한 편에서 몸져누워 있어야 했다.
저녁이었다. 마지막 밤 예배를 드리고 각 교회마다 피자 파티를 하던 중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녀석이 내게 다가와 “선생님! 쟤가 괴롭혀요!”라고 이르는 것이었다. 찾아가서 중재해 주려던 차, 담임 목사가 나서서 고압적인 한 마디를 내던졌다. “재현, 넌 어느 교회 선생이야?” 마음속으로만 ‘우리 모두의 교사’를 되뇌어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떠오를 해는 당당히 떠올랐다. 마지막 3일 차엔 다소 차분히 교회학교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은연중에 ‘빠따 선생님’이라고 놀리던 고학년 아이들이 대놓고 응원 구호를 바꾸기 시작했다. 남들은 “우리우리우리팀!”이라고 응원할 때면 녀석들은 “빠따빠따빠따팀!”으로 나를 응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입에서 미소가 맴돌았다. 그리고 같이 응원했다. “빠따빠따빠따팀!” 그 순간, 아이들과 나는 한 팀이 되었다는 걸 느꼈다.
선생님들까지 내게 물었다. “이번 여름성경학교를 보내면서 바뀌어야 할 점 없으셨어요?” 모든 선생님들이 보완해야 할 점들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사뭇 다른 태도였다.
빠따 선생님으로서의 즐거운 감정은 집에서 홀로 쉬던 중에도 여운처럼 남았다. 나는 잘 해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여름성경학교가 한바탕 분위기를 압도한 캠프가 되어버렸으니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너희들이 있어, 내가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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