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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애문학] 내 이름 어디에도 집단 감염을 보도하는 데가 없었다. 다양한 사건들이 사람들 기억에서 코로나 세 글자를 밀어냈고, 발병하고 정확히 2년하고도 반년이 지나서야 다른 뉴스들로 뒤덮였다. 뉴스로 뉴스를 덮는다, 이거 현실 정치에서도 유용하겠지만 여자와 남자 사이 관계에서도 무척이나 유효하다. 오늘처럼 적당히 쓴 알콜로도 애매한 기운을 덮기가 어렵다면 말이다. 한 달이 지나도 응답 없음 유지하던 우리 관계도 잠시 주춤하는 건지 영원히 멀어지는 건지. 발걸음도 주춤했다. 지하철 환승 통로 한 편에 마련한 전시회에 다다른 직후였다. 익숙한 전신의 찰리 채플린이란 점 때문만이 아니었다. 머리에서 분리된 얼굴, 부르튼 발에서 벗겨진 신발, 천사의 날개를 겨드랑이에 끼운,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마르크 샤갈 냄새. 웃고는 있지만.. 2021. 4. 7. 더보기
[지애문학] 기억을 기억하는 이유 각이진 턱에서 돋아나는 입가의 주름 그 입에서 쏟아지는 무책임한 단어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했다. “얼마만이죠?” “그러게요. 마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요. 호호.” 새신자환영회실 지나쳐 곧바로 12교구 담당 전도사와 바쁘게 걷는 걸 특권처럼 생각하던 이 분위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도착한 상담실에선 그 여러 해 동안의 회포가 이어졌다. “이 교회 저 교회 전전하고 교구장까지 해봐도, 우리 교회 만하지는 않더만. 시설 좋지, 목사님 좋지, 성도들 좋지, 분위기 어때, 신앙심도 이만한 데가 없다고.” “네.”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힐 때마다 나오는 특유의 표정을 잘 안다. 살짝 고개를 기울어 다문 윗입술로 아랫입술 닫아줄 때 발생하는 무표정. 마구 휘갈겨 적는 종이 위엔 정자로 인쇄된 교적 전입처.. 2021. 4. 7. 더보기
보고 싶은 얼굴, 채현국 가끔 엄마가 보는 드라마 내용이 궁금해 물어볼 때가 있다. 내용 이해가 될 만큼의 전달력 가진 드라마일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근데 저 드라마는 다르다고 말했다. 감동을 주는 내용인데 어른이 발레를 배워서 아무튼 노인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드라마란다. 타이밍에 맞추어 발레복을 입은 박인환 배우가 자세를 취했다. 송강 배우가 차가운 표정으로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데 온화한 햇살이 70먹은 노인을 안겨주는 데에서 이 드라마는 결이 다르구나 느꼈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이야기다. 경비아저씨 이미지만 뇌리에 남았을 만큼 그가 어떤 배역을 맡았는지 모를 정도로 얼굴만 알았다. 숨을 고르며 자세를 취하고, 1분 동안만 버티면 가르치겠다던 미션에 기어이 해내고 말자 그 얼굴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 2021. 4. 3. 더보기
[현실논단] 당신의 설교를 듣지 않는 이유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가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황당한 통계인용을 보았다(2021.02.18).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가 발표한 자료를 반박하며 균형 잡힌 보도를 요구한 것이다. 크리스천투데이는 손 씨의 행동을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며”라고 보도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중대본이 발표한 종교시설 감염자 비율 17%는 국내 코로나 전체 확진자 중 집단감염 45.5% 안에서 꼽은 데이터를 의미했다. 따라서 전체 확진자 중 종교시설 감염자는 8%에 불과하니 교회는 코로나 최대 감염 경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코로나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으로 감염된다. 세 차례 코로나 파동(wave)을 겪으며 우리는 두 차례 집단감염을 목격했다. 두 차례나 종교집단 통해서 감염되었고, 그 종교집단은 개신교 내 주류에서 벗어났다는.. 2021. 3. 31. 더보기
[시대성의 창] 교회 바깥 나서면서 시작되는 것 채플하기 싫어서 대강당을 나가려던 차에 동급생과 눈이 맞았다. 점심을 먹자기에 식사했고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대학원 카페에서 2차를 보냈다. 세 시간 이어진 대화는 지난 번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신학교에 입학해도 무얼 해야 할지 모른다며 한 숨 지었다. 기나긴 대화는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을 이끌어 가셨는지 재차 확인하던 자리였다. 그러나 그 뒤에 찾아오는 빈 공간, 다음 인생사 이야기를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를 모르는 막막함이 느껴졌다. 촉. 그 때의 촉은 빗나가질 않았다. 미소는 밝지 않았다. 일찍이 자퇴한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까지 보여주며 소개시켜 주겠다고 말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영적인 세계에 몰두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은 내 앞에 앉아서 곱상하게 웃기만 하던 이 자매는.. 2021. 3. 31. 더보기
[사설] 누구에게나 그리워했을 어린 봄에 주목한 신애의 유려한 글줄을 보며 떳떳이 과거 기억을 소환해 해명을 요구한 여자 아이돌 (여자)아이들 멤버 서수진의 질문에 배우 서신애가 입을 열었다.(2021.03.26) 서신애는 분명한 글줄로 “무리와 함께 불쾌한 욕설과 낄낄거리는 웃음”으로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어떻게 연예인을 할까’ ‘어차피 쟤는 한물간 연예인’ ‘저러니 왕따 당하지’ ‘선생들은 대체 뭐가 좋다고 왜 특별 대우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며 공개적으로 서수진을 지목했다. 일반인 위치에서 서수진 행적(行跡)을 공개한 여덟 차례 증언과 다르지 않게 분명한 글줄로 피해 사실을 주장한 것이다. 학교폭력은 오래 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진실을 규명하기 어렵고, 규명하는 과정에서 사실로써 증명할 만한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여덟 차례 게시물은 서수진이 살아온 다층적·.. 2021. 3. 27. 더보기
[에셀라 시론] 2016년 3월 19일, 난파선을 벗어날 때 스친 파수꾼 앞에서 무슨 말을 더할까 입력 : 2021. 03. 19 23:30 | A30 난파선 바깥에서 헤매는 사람을 누구든지 유랑하는 자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괴로운 광경을 경험해 본다면 누구든지 유랑이란 단어를 말하지 않는다. 고고하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파도를 생각할 여력 하나 없이 그저 살기 위해 난파되어 흩어진 나뭇조각 보노라면 그 단어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구조적 문제도 개인적 내부의 문제도 관찰할 시간도 없다. 처량하게 움직이는 몸동작도 비웃지를 못한다. 유동하는 파도 속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하나의 생각만이 들어찬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면 유랑 같은 단어를 떠올리지 않는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느껴지는 복합적 감정도 그렇다. 남자라면 겪어야 했을 구조적 문제들 앞에서, 한낱 힘없이 스러.. 2021. 3. 19. 더보기
[시대성의 창] 가해자 文法 입력 : 2021. 03. 01 19:38 | A29 모든 사람을 두 부류로 분류할 수는 없다. 인간의 다양한 결을 관찰하다 마주치는 아름다움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내 편과 네 편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은 비정상이고, 나는 정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문법을 발견했고, 이 문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실장으로 자처한 녀석도 같았다. 나보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미모가 누가 봐도 호감을 주었고 선생님의 신임을 받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와 사이가 틀어졌다. 실장이란 녀석이 특정 과목 선생님을 왕따 시키려고 모의하질 않나, 철없는 친구들의 주먹 다툼에도 아랑곳 않으며 말리지도 않으니. 그 녀석의 인간적.. 2021. 3. 1. 더보기
[돌아보는 사건] 미안한 게 없는 DSP 입력 : 2021. 03. 01 19:00 | A29 1. 에이프릴 전 멤버 현주(23)의 동생이 올린 글이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여자 아이돌 에이프릴 내부에서 “큰 괴롭힘”과 “왕따”로 인해 누나인 현주가 공황장애, 호흡곤란을 겪었다는 폭로였습니다. 이어지는 친구들의 게시물은 에이프릴 특정 멤버가 아니라 전 멤버가 폭력에 가담했다는 정황을 가리켰습니다. 문제는 그룹 전체의 가담한 사실만이 아닙니다. ‘에이프릴 멤버 전체가 가해자입니다’ 게시물에서 채경·레이첼을 제외한 탈퇴한 멤버 소민과 나은, 진솔, 채원 그리고 매니저를 언급하면서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괴롭힘에 가담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2. DSP미디어는 하루 지난 오늘에서야 입장을 밝혔습니다. 현주의 성실하지 않은 자세와 이로써 유발한 갈등으로 .. 2021. 3. 1. 더보기
[에셀라 시론] 든든함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 입력 : 2021. 02. 28 22:30 | 디지털판 자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이유가 단지 내 생일에 몸살감기 걸려 한 발자국 내딛지 못할 때 집까지 찾아와 부축해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네. 점심시간 방송실에 찾아갈 때마다 멋있게 일하던 성실함도, 그저 같이 있는 게 좋아서 자정까지 컨테이너 자네 방에서 대화한 그 밤도, 고입고사 한 시름 놓았다고 먼저 집에 돌아가 서운했던 이유도, 자고 있는 선욱 깨어나거든 친구들과 박수치며 당황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던 정겨운 풍경도. 느껴지던 든든함이 못내 겨워 잊을 수 없었기 때문만도 아니라네. 과거 모든 기억들이 실오라기 남김없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자네에게 느껴지는 든든함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네. 모든 전통적인 것들이 무너지는 광경을 바라보.. 2021. 2. 28. 더보기
[지애문학] 잊어버려야 할 때 입력 : 2021. 02. 24 21:15 | 디지털판 D+1100. 지울까 말까 고민만 수백 번. 달달해서 짜증났다. 어제의 네 미소가 오늘의 쓰디쓴 망상으로 이어질 줄은 정말로 몰랐다. 가끔은 폭발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연례행사라도 하듯 한 달에 한 번쯤 예민해지는 시기가 미웠다. 그래서 어제는 이해해주는 줄로만 알았다. 착각이었다. 만나자 해도 확인 하나 없었고 연락을 해도 받지를 않는다. 고작 네 글자, 그 한 마디 꺼내려 잘해줬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마지막 한 모금 마시고서 찌그러뜨리고 나서야 일어났다. 추웠다. 지애야, 패대기치고 나오는 순간만큼은 좀 이성적이면 안 될까. 하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목도리 하나 걸치지 않고 니트 한 조각만 입고서 나왔으니. 거지같았다. 떠는 몸 이고서 .. 2021. 2. 24. 더보기
[지애문학] 퇴근 길 입력 : 2021. 02. 24 21:10 | 디지털판 “저도 그 방면인데…. 타세요!” 괜시리 들킬까봐서 말 못하던 차 말할 때까지 기다린 꼴이었다. 바보 등신. 좀체 멀미가 낫지를 않으니 태워주는 아량도 무의미했다. 지금쯤 지하철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단어 외우고 있어야 할 시간. 몸은 편해져도 속 버리느냐 몸은 힘들어도 속 편하느냐. 하지만 이 남자 옆에서는 말짱했다. 이름 모를 적당한 향수. 운전대에 올려둔 손목의 시계. 힐끔 쳐다볼 때마다 반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턱선. 차체의 흔들림 하나 없는 고요한 분위기가 좋았다. 이 남자에게 풍기는 색다른 느낌이 만날 때마다 좋아하게 만들었다. “자유의새노래 제1라디오 7시 뉴습니다. 살인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지수 씨 공판에서 .. 2021. 2. 24.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