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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일과속기록

[일과속기록] 4박 5일,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밤

자유의새노래 2025. 9. 30. 21:24

간사이(関西) 지역은 도쿄와 달리 압도적이었다. 교토와 오사카. 평범한 도시라기엔 각자의 색채가 진했다. 가을 웜톤으로 물든 교토의 각진 건물들, 화려한 간판으로 물든 오사카의 다채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연인은 4박 5일을 이곳에 머물며 일본의 진한 내음을 즐길 수 있었다. 도쿄의 여행이 아카사카를 기반으로 둘러보는 도시 관광이었다면 간사이 여행은 결이 달랐다.

교토, 오사카의 숙소를 기반으로 은각사와 청수사, 도톤보리와 우메다 등을 돌아다니며 각 도시에 맞는 색깔을 경험했다. 감격은 호텔 앞 택시에서 내렸을 때부터 시작됐다. 노란 모자를 쓰고 하교하는 초등생들, 가모강(鴨川) 부근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고생의 가벼운 미소, 정류장을 지나갈 때마다 안전 운행하는 영혼 없는 버스 기사의 목소리까지. 오래된 신사 후시미 이나리에서 본 일본 고유의 건축물, 이치조지(一乗寺)에서 체감한 일상의 상가 건물들은 가슴을 푸근하게 했다. 어딜 가나 갓길 주차 하나 없는 깔끔한 골목, 오래된 역사(驛舍)임에도 깔끔한 마감의 타일, 제각기 독특한 형체를 갖춘 주거지와 상점가. 고유한 개성 속에서 느껴지는 일본의 질서를 온몸으로 체득하자 감동을 느낀 것이다.

 

 

깍듯한 예의와 정중한 태도
고유한 개성과 일본의 질서
교토·오사카에서 느낀 감동
한국에서 살아갈 동력으로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일본인의 깍듯한 예의와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숙소까지의 교토역 길목에서 대접 받은 택시 기사의 정중함. 프론트에서부터 우리를 기다리던 직원의 단정함. 우리가 사온 사발면을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식당의 자리를 내어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다정함. 나는 문득 무엇이 이들을 일하게 만드는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같은 관광객을 한두 명 대한 게 아닐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일본여행과는 달리, 두 번째 여행에서는 일본에 대한 환상에 금이 갔다. 모든 일본인이라고 친절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딱딱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삶에 치여 고단하게 사는 현대인의 모습은 세계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존재했다. 불친절한 태도에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곧바로 당신들의 치열한 일상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 입술에선 “고멘나사이(ごめんなさい)”가 때로는 “아리가토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가 흘러 나왔다. 굳어 있는 표정 속에서도 굳이 나의 인사를 받아는 주었다.

30년을 한국에서만 살았으니, 이곳 일본에서의 경험은 즉각 한국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본 일본의 기억 조각들을 모으고 모아 봐도 우리를 대해준 모든 일본인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각자가 고유한 색채를 지켜나가는 삶의 강인한 체력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야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먹고사니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힘을 일본인을 보면서 느꼈다. 치열하지만 강인하게 살도록 만드는 힘 말이다. 친절하든, 친절하지 않든 말이다. 여자친구와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우리의 결론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아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돌아다녔고, 후회하지 않을 날들을 일본에서 경험했다. 일본은 일본만의 삶의 결이 있고, 한국은 한국만의 독특함이 있다는 감동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나에게 4박 5일, 짧지 않은 일본 여행이 한국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선물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일본인의 따뜻하면서도 각진 대접을 받으며 교훈을 깨달은 것이다. 한국에서의 삶이 고단하고 버거울지라도 정직하게 삶을 마주하며 회피하지 않는 태도 말이다. 한국과 다른 지점에서 느낀 일상의 결에서 삶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었다. 다채로운 저마다의 풍광 속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선지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밤이 슬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