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자유의새노래 칼럼32 교회 방송실의 추억 10년 전 이맘때는 밤을 새는 일이 잦았습니다. 교회 일 때문이었는데요. 11월 마지막 주 추수감사 절기를 보내고 곧바로 대림 절기를 맞아 업무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방송실 근무가 만만치 않더군요. 예배 때 사용할 PPTX 자막을 만드는 일부터 동영상 제작까지, 교회학교와 학생부, 청년부에서 떠넘긴 자료가 한 아름이었습니다. 저를 바쁘게 만든 부서들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교회학교 교사직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열 몸이라도 모자란 상황은 중학생 때부터 매년 반복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방송 일을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2학년과 일병 달 때까지 일하다가 교회 다니기를 관뒀으니, 7년쯤이겠네요. 10년 전 이맘때는 군 입대를 앞두고 슬슬 교회 일을 인수인계해야 할 상.. 2024. 11. 27. 18:18 모든 기록이 멈춘 순간 초등학생 2학년, 선생님이 쓰라던 날에만 꾸준히 쓰던 일기를 8년 전부터는 매일 컴퓨터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기를 달리 부르고 있습니다. 바로 ‘감회록’으로요. 일기의 확장판인데 감회가 새롭다는 의미에서의 그 감회가 맞습니다. 감회록은 사실을 나열하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감정과 사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감회록을 읽다 보면, 단순하고 건조한 기억의 모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몸으로, 손가락을 통해 기록을 담는 이 일을 매일 해왔습니다. 물론 쓰지 않는 ‘기록 없음’의 날도 있습니다. 밀릴 때도 많았고요.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멈춘 건 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감회록 집필도 잠시 멈추었는데요. 여자친구와 사는 동안에는 잠시 감회록 쓰기를 멈추자고 다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2024. 11. 26. 15:16 운전면허와 선생님 수능을 마치면 하나둘 자동차 면허를 딴다고 하죠. 게을렀던 저는 반값으로 면허를 따게 해준다는 유혹에도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4년 전 여름, 삼촌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면허를 땄습니다. 10년 전 면허를 땄다면 오래도록 장롱면허였을 테고 운전 감각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그해 여름, 학원에 첫발 디딘 때가 떠오르네요. 필기시험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원장님의 탁월한 강의 덕분이었습니다. 12년 공교육보다 뛰어난 원장님의 강의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나중에는요 적중 문제를 예언하셨는데요. 그 문제들이 시험에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밤새 예상 문제를 푼 것보다 강의 한 번 들었던 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장내기능 시험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처음 트럭을 몰았던 날, 투박하게 생긴 선생님이 .. 2024. 11. 25. 11:47 조선닷컴 할아버지를 고소하기로 작정한 날 고소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소장을 적어야 하고,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참으로 번거로운 일입니다. 경찰을 만난다는 게 뭐 쉬운 일이겠습니까. 웬만하면 “허허” 웃고 넘어갔습니다. 그냥 기분 나쁜 정도면 참고 넘어가겠는데요. 이 날 만큼은 아니 꼬운 거였어요. 곧장 아래아 한글을 열어 고소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고소장을 우편으로 접수했고, 며칠 후 형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피고소인은 조선닷컴에 한 할아버지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정말 무례한 사람입니다. 무례한 도를 넘어서 한대 쥐어박아주고 싶은 그런 사람입니다. 하는 말이 얼마나 예의가 없는지, 무지함이 철철 흐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동성애는 감염병도, 정신병도 아니”라는 저의 댓글에 굳이 “너희 어머니가 동성애.. 2024. 11. 24. 09:02 너와의 300일 저는 한번 붙들리면 강렬하게 사랑하는 스타일입니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죠. 신문이 그렇습니다. 이 신문 자유의새노래 말입니다. 신문을 만들 때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밤이 되든 낮이 되든, 새벽에도 깨어 신문을 만들고 싶은 열의에 불타 오를 때 살아있다는 걸 느낍니다. 오후에는 신문사를 다니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도 신문을 만드는 제 모습을 보며 혼자 낄낄 거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신문을 사랑합니다. 지금도 다음 호를 어떻게 만들지, 1면 배치와 레이아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랬습니다. 신을 향한 경외심은 저를 밤낮 신앙인으로 만들었고, 교회 생활에 충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몸을 갈아 바치며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하지 않은 일이 없을 지경입니다. 청소부터 예배 인도, 학생회장, .. 2024. 11. 23. 08:45 아득한 난고의 저 끝 밤 지금도 심장은 뛰기에… 9월 어느 날. 직장 생활에 치여 몹시 피곤한 저녁이었습니다. 마음은 재가 되어버려 도무지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고맙게도 친구는 회사까지 와주겠다고 해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선배와 동료, 대표까지도 퇴근한 오후 6시. 적막감만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친구와 회사 건물에서 나오자 그날 저는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볍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노을, 보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겠네.” 정동길은 퇴근 시간을 좀 넘겨야 숨통이 트입니다. 맛집으로 유명한 허수아비돈까스는 한산했습니다. 덕분에 친구에게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사실 제일 힘든 사람은 제 친구 놈이었는데 말이죠. 선교단체에서 열심히 일하던 놈인데요. 하루 수면 4시간. 저라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2024. 11. 22. 08:50 찔리고 베이고 아파도 멀어지지 않음은 지난 겨울 점심이면 회사 근처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습니다. 예쁜 길과 달리 속설은 지독합니다. 연인이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소문 때문입니다. 2018년 영국대사관으로 연결된 100m와 70m 거리가 모두 개방되면서 그저 옛말에 불과하게 됐습니다. 또 지독한 점이 있습니다. 평일 낮, 하도 사람이 많아 걷기 거북할 지경이라는 점입니다. 정말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향신문사 앞부터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 서울시청에 이르기까지 왕복 3㎞를 걷습니다.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돌담길과 시청 앞 광장은 언제나 다채로운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룹니다. 버스 운행과 관련해 시위를 벌이는 민주노총과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자고 외치는 태극기든 시민까지…. 그러다 연령과 지역별로 다 모인 듯 길목에서 애국심 가득한 노인을.. 2024. 11. 21. 12:36 천 년 화괴 앞 세월에게 이별을 맞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나 이별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아무도 없는 머나먼 별나라로 떠나는 기분 같습니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가장 먼 곳으로,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서글픕니다. 죽음도 그렇습니다. 다시는 이 지구에서 만나지 못한다는 절망감이 마음을 공허하게 만듭니다. 이별은 성숙한 사람이라도 견디기 어려운 마지막 인사일 겁니다. 그 인사마저 하지 못하고 떠나는 인연이 얼마나 많습니까. 청소년 문학소설 ‘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에서는 독특한 괴물이 나옵니다. 남자 고등학생으로 변신해 사람인 척 인간들의 기억을 훔쳐 먹는 이 화괴는 제가 본 괴물 중에서 가장 다정합니다. 괴물은 무서워야 정상이죠. 정체를 알 수 없는, 종잡을 수 없어 두려운.. 2024. 11. 20. 08:25 네가 카톡을 차단하든 말든 카톡 읽씹만큼이나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태도란 아마 퉁명스러운 대답일 겁니다. 말붙이려 선톡을 날려도 돌아오는 건 차가운 대답뿐이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말 한 마디 못 붙이게 냉대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건 분명 읽씹만큼이나 불쾌한 태도입니다. 저는 웬만해선 퉁명스레 대답하진 않습니다. 그런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퉁명스레 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걔를 속으로 ‘녀석’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겉으론 “~씨”라고 불렀지만요. 새벽까지도 카톡을 주고받고, 회사 가서도 일하기 싫다며 찡찡대기도 했으며, 출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심심할 때마다 점심도 같이 먹을 만큼의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처음 아이폰을 구매하러 애플 명동점에 갔을 때도 함께 했을 정도니, 뭐 .. 2024. 11. 19. 14:05 병든 자를 바라본 당신의 시선 복음서에서 예수는 제자들을 부르고 온 갈릴리를 다닙니다. 가르치고 전파하며 사람들의 병과 약한 것을 고칩니다. 이 소문이 시리아에 퍼졌고 모든 앓는 이들이 예수에게 모여 고침을 받습니다. 따라서 갈릴리와 데가볼리, 예루살렘과 유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이들이 예수를 따릅니다. 예수는 이들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앞서면 조건을 걸지 않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면 “그냥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이유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아껴줄 뿐입니다. 예수도 그 어디를 걸어가든 조건을 내걸지는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향한 당신의 따뜻한 마음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조건적인 희생을 할 수는 없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2024. 11. 18. 14:29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