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맞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나 이별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아무도 없는 머나먼 별나라로 떠나는 기분 같습니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가장 먼 곳으로,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서글픕니다. 죽음도 그렇습니다. 다시는 이 지구에서 만나지 못한다는 절망감이 마음을 공허하게 만듭니다. 이별은 성숙한 사람이라도 견디기 어려운 마지막 인사일 겁니다. 그 인사마저 하지 못하고 떠나는 인연이 얼마나 많습니까.
청소년 문학소설 ‘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에서는 독특한 괴물이 나옵니다. 남자 고등학생으로 변신해 사람인 척 인간들의 기억을 훔쳐 먹는 이 화괴는 제가 본 괴물 중에서 가장 다정합니다. 괴물은 무서워야 정상이죠. 정체를 알 수 없는, 종잡을 수 없어 두려운 존재가 괴물이기 때문입니다. 괴물 앞에 선다는 건 그 자체로 살 떨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화괴를 인간적으로 묘사하려다 보니 죽음을 대하는 무감각한 자세마저 거세해 버렸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괴물이라니요.
생각해보면 화괴는 수백 년을 살아남은 괴물입니다. 살기 위해 사람들의 기억을 빼앗아 먹으며 말이죠. 기억을 먹는다는 말에는 수많은 상처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존재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자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고 감정을 공유할 친구조차 없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화괴는 부모도, 친구도, 동지도, 연인도 없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그런 화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작별을 고했을까요. 화괴에겐 죽음이 일상이었습니다. 죽음에 거리낌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화괴는 수많은 이별, 아니 상처와 마주해야 했을 겁니다.
그러다 문뜩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괴는 마지막으로 여고생 세월에게 만큼은 다정해지기로 작정한 게 아닐까 말이죠. 세월에게 주어진 시간은 천 년 화괴에겐 찰나의 순간일 겁니다. 찰나의 순간이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돌아간 시간은 되살릴 수 없겠지만 이 남은 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각자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도 이별은 싫습니다. 이별은 어색해서, 이별을 원하지 않으므로, 이별은 아픈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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