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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자유의새노래 칼럼

아득한 난고의 저 끝 밤 지금도 심장은 뛰기에…

자유의새노래 2024. 11. 22. 08:50

 

9월 어느 날. 직장 생활에 치여 몹시 피곤한 저녁이었습니다. 마음은 재가 되어버려 도무지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고맙게도 친구는 회사까지 와주겠다고 해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선배와 동료, 대표까지도 퇴근한 오후 6시. 적막감만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친구와 회사 건물에서 나오자 그날 저는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볍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노을, 보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겠네.”

 

정동길은 퇴근 시간을 좀 넘겨야 숨통이 트입니다. 맛집으로 유명한 허수아비돈까스는 한산했습니다. 덕분에 친구에게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사실 제일 힘든 사람은 제 친구 놈이었는데 말이죠. 선교단체에서 열심히 일하던 놈인데요. 하루 수면 4시간. 저라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빡빡한 스케줄로 하느님 나라에 몸 바쳐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놈을 두 달 지나 다시 만났습니다. 요즘 녀석의 취미는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일입니다. 어르신들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다더군요.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나라면 재미없어서 안 들었을 텐데 뭐가 그리 재밌대?”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습니다. “나이 60 먹어서도 죽음을 선택하는, 살아 있기도 힘든 시대인데 그 연세 되도록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하잖아.”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를 느끼는 녀석 앞에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삶’과 ‘살아 있는 삶’은 뉘앙스가 달리 느껴지는 말입니다. 뭐라 해야 할까요. 살아남은 삶은 도끼 눈 뜬 채로 악착같이 버텨온 차악(次惡)이 삶인 느낌. 그러나 살아 있는 삶은 순연하고도 그저 덤덤한 마음으로 모든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려는 삶처럼 느껴졌습니다.

 

퍼피레드 서버 종료를 예견이라도 한 듯 회원들의 활동 시간은 갈수록 줄었습니다. 심리는 단순했습니다. ‘어차피 없어질 게임 시간 낭비 하지 말자.’ 그리고 퍼피레드 서버 종료가 확정되자 한 분이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배신감을 토로하는 분노 앞에 저는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PC퍼피레드를 복원한다더니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한 데에서 분노를, 모바일퍼피레드를 복원하고 다시 서버를 닫는 데에서 완전한 공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의 분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운영진에게 속아 넘어간 6년.’ 러시아 작가 푸시킨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서러운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왜 슬퍼하는가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여겨지리라]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통곡할 때가 있으면 기뻐 춤출 때가 있다(전도3,4)던 코헬렛(전도자)의 조언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바로 이 구절 때문입니다.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여겨지리라’

 

힘든 일이 있는 것처럼 즐거운 일도 오리라던 일종의 법칙 같은 말들은 좀처럼 잘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언젠가 또다시 힘든 일들에 짓눌릴 테니까요. 인정사정없이 짓눌리기만 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셰익스피어 5대 희극 ‘당신 좋으실 대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보다시피 우리만 불행한 것은 아니다. 이 넓디넓은 세계라는 무대에선 우리가 연기하는 장면보다 훨씬 더 비참한 연극이 벌어지고 있지.”(셰익스피어 5대 희극, 아름다운날, 406쪽 6문단)

 

이 세계는 애초에 고통의 연속인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인공 로잘린드와 실리아는 삼촌이자 아버지인 프레드릭이 집 바깥으로 나가라는 말에 가출하기 직전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제 우린 기쁘게 가는 거야, 추방이 아니라, 자유를 향해.”(386,10)

 

정말 많은 분들이 배신감과 공허감, 분노, 슬픔을 넘어 우울과 무력감을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푸시킨은 선언합니다. ‘지나간 것, 소중하게 여겨지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용수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퍼피레드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현실을 긍정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 지금 여기를 받아들이며 사는 삶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때로는 슬픈 일이 있고 견디기 어려운 일도 있으며, 그러다 또 나아지는 게 우리네 삶이라고. 버려진 시간 같으나, 쓸모없는 줄 알았던 과거의 귀퉁이마저 나를 유지하고 나를 만들어 온 소중한 어제라고. 그 과거를 살아 있는 이야기로 재해석해 삶을 받아들이자고.

 

언젠가 정동길 노을을 떠올리며 새로운 단편소설을 쓰고 있을 저를 상상하니 또다시 심장이 뛰는 걸 느꼈습니다. 다시 저무는 하루,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