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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문화/도서 죽음이란 무거운 짐을 진 여고생 이야기:『내가 만드는 엔딩』 내가 만드는 엔딩 서화교 지음 | 낮은산 | 192쪽 | 1만2000원 여고생 재윤이가 감당하기엔 무거운 짐이었다. 얼떨결에 마주한 아버지 영정 앞에 넋을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충격적이었다.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 “왜 죽었을까.” 이유를 알고 싶었다.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 없었다. 스스로 세상과 등진 아버지를 생각하며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되짚는 열여섯 소녀 이야기다. 만일 소설에서 죽음을 다룬다면 두 가지 방향 중 하나일 것이다. ➀죽은 이가 남긴 기록이나 기억을 곱씹는 일 ➁죽은 이와 함께한 이들 기억을 되짚는 일. 둘 중 하나를 고르기도 하지만 모두를 다루기도 한다. 죽음은 신중해야 할 소재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남발하면 작품이 말하려던.. 2023. 1. 21. 더보기
문화/도서 서울대 미술대학 정보디자인 10년 기록:『비주얼 스토리텔링』 비주얼 스토리텔링 윤주현 지음 | 홍디자인 | 352쪽 | 2만5000원 7년 전 책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정보디자인 수업 10년 기록을 담아선지 풍부하다. 정보를 어떻게 담을지를 고민했다. 예쁘기만 하면 된다는 디자인 편견을 부순다. 나 자신의 족적을 다루는 일부터 도시, 환경, 공동체, 데이터, 문제 해결 등 비주얼그래픽 완성본을 선보인다. 정보와 디자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보를 배치하기 위해서는 원래의 자료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디자인이 예쁜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세심히 다루어야 한다. 정보는 까다롭다. 입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배치에 따라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다. 다채로운 그래픽 완성본을 보면서 ‘이렇게도 만들었구나’ ‘저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생각이 든.. 2023. 1. 21. 더보기
문화/도서 [마음 속 그 사람] 강이지, 너라면 언제든!:『열여덟 너의 존재감』 세상은 네게 가혹할 테지만 원망스러울 거야. 네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집에만 들어오면 부모는 싸우고 있고. 아이들은 고성(高聲)에 울기만 할 뿐이고. 태어난 것 자체로도 억울한 감정이 앞서지만 견뎌야 할 네 마음,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한국은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나라 같아. 이지, 너의 배려는 섬세해. 너의 그 배려를 모든 사람이 알아주지는 않을 거야. 그럼에도 네 몸에 각인 된 감각을 잃지 않고 다채로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네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멋져. 오랜 시간 흘러야 ‘그 애가 나를 생각해주었구나’ 깨닫게 만드는 배려도 있겠지만. 어쩌면 죽은 후에도 모를 배려도 있을 거야. 순정이가 너의 마음을 알아준 것처럼, 앞으로도 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어갈 거야. 지금은 경찰관.. 2023. 1. 21. 더보기
문화/도서 “이, 이년아!” 이런 존재감 처음이야:『열여덟 너의 존재감』 열여덟 너의 존재감 박수현 지음 | 르네상스 | 214쪽 | 1만1000원 시커먼 교복은 어색하지 않았다. 갓 입학한 지 머지않아 야간자율학습 공지를 들었다. 중학교 시절과 분명히 다른 무거운 감정을 느꼈다. 자율적이지 않은 자율학습이 가져다 준 암묵적 권위에 순응하는 이 분위기가 낯설게만 느껴진 탓이다. 담임은 20대 후반에 키 160㎜ 조금 미치는 가냘픈 여자였지만 서른여섯 학생들을 단번에 제압하는 카리스마 때문인지 현장을 더욱 권위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연애나 가벼운 오락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워낙 무거웠으므로. 저서는 2010년대 고등학교 분위기를 정확히 묘사한다. 나만 느낀 무거운 감정이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무거운 분위기는 사람 통제하기 가장 쉬운 방식이란 걸 깨달았다. 미.. 2023. 1. 21. 더보기
문화/도서 행운, 조금씩 틈으로 벌려내어 박살내는 것:『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0쪽 | 1만1500원 처음 세 가지에 놀랐다. ①형수라고 부르기에 형의 아내를 일컫는 단어인 줄 알았다. 웬걸 남자애 이름이었다니. ②은재라는 이름으로 PC방을 오가며 ‘다크나이트’로 불리는 모습에 남학생인 줄 알았는데 여학생이었다니. ③이 모든 광경을 CCTV로 지켜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행운이란 실체 없는 존재가 관찰 중이라니. 그렇다. 행운이란 주인공이 불행과 죽음 사이에 선 아이들을 지켜본다. 스포일러 주의 ◇상처가 만들어 낸 냉소적인 은재 여중생 은재는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해왔다. 다크나이트라 불린 이유도 얼룩진 상처를 가리려던 검은색 카디건 때문이다. 은재가 아버지로부터 머리채 잡힌 모습을 지켜본 건 같은 반 우영과 형수였다... 2022. 12. 4. 더보기
문화/도서 고딩의 탈을 쓴 소설, 차라리 수필이었다면:『서울 사는 외계인』『대한 독립 만세』 서울 사는 외계인들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56쪽 | 1만3000원 고등학생 나이의 남자 아이가 무화과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집 2층으로 이사 왔다. 덥수룩한 머리, 신문지로 창문마저 덮어버린 음침함, 자퇴한 듯 짱 박혀 지내는 어두운 분위기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아, 미친! 개쓰레기! 양아치 새끼! 이거 정신병자 아냐?”(10,4) 딸의 험한 욕설에도 주인집 아주머니는 친히 끓인 팥칼국수를 문 옆에다 두었다. “너 말 조심해.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또라이, 또라이 하니? 내가 보니까 아주 선하게 생겼더구먼.”(28,7) 2층에 세 들어 사는 자퇴 소년 사우에게 집주인 아주머니가 한글을 배우면서 서로 위로를 건네는 내용의 소설이다. ◇2010년대 후반에 나온 소설이라기엔 믿기 힘든.. 2022. 12. 4. 더보기
문화/도서 무섭지 않은 괴물이라 다정한 화괴:『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 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 명소정 지음 | 이지북 | 308쪽 | 1만4000원 참신한 소재라 하기엔 당장에 떠오른 두 영화가 겹쳐보였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그리고 ‘늑대소년’. 머지않아 여학생이 괴물 남학생을 쥐고서 흔들고 있겠구나 예상마저 들었다. 정해진 각본처럼 눈앞에 펼쳐진 내용이 낯설지 않은 이유였다. 우연한 밤 도서관을 방문한 여자 주인공 세월이 괴물의 형상으로 나타난 남학생 혜성과 마주친다. 정체를 들키고 만 혜성이 세월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굽실댄다. 혜성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기억을 먹어야만 했다고 해명한다. 사람의 기억을 먹으면 단박에 정체가 탄로 날 것을 우려해 기억이 담긴 책을 몰래 먹으면 괜찮을 거라 말했다. 세월은 비밀로 해줄 테니 상담 동아리를 만들면 어떨지 제안한다.. 2022. 12. 4. 더보기
문화/도서 쾌락으로는 알 수 없는 것:『안녕히 계세요, 아빠』 안녕히 계세요, 아빠 이경화 지음 | 뜨인돌 | 168쪽 | 1만원 꼭 섹스를 해야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유독 몸의 쾌락에 집착하는 이들 일수록, 그 횟수에 소유욕을 투사한 만큼 퇴행적 자의식을 드러낸다. 걸레 딱지 붙이는 것도 우습다. 횟수도, 쾌락도 중요하지 않다. 어른이 되어가는 고통 속에서 꿈처럼 달달한 솜사탕 같을 뿐이다. 많이 넣어도 순식간에 녹아 사라져 버리는 맛. 또 입에 넣고 녹여도 다시 먹고 싶게 만드는 맛. 처음 연주에게 느낀 불편한 감정도 오해에서 비롯한다. 그 마음 깊숙한 곳에 숨은 소유욕을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몸은 어른이 되어가지만 생각은 퇴행하고 만다. 연주가 마마보이는 싫다며 호세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내가 먼저 어른이 되었다는 오만함이 아니다. 어.. 2022. 10. 27. 더보기
문화/도서 [이야기 꿰매며] 퇴행적 자의식 속 어른에게 하는 말 여럿 읽어본 청소년 문학 소설에서 직접 키워드를 뽑아봤습니다. ‘가부장제’와 ‘재개발’. 빙판길 흔전동 골목 내달리는 학교 밖 달이(구달, 최영희)와 구지구(舊地區)에서 수지를 찾아 헤매는 이름 없는 소년.(편의점 가는 기분, 박영란) 아빠를 피해 편의점으로 가출한 이루다,(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범유진) 그리고 2010년대 폭력적 학교 구조를 살아가던 여고생 이순정(열여덟 너의 존재감, 박수현)에 이르기까지. 읽어본 청소년 문학 소설이 가리킨 지점은 아이들에게 폭력적 구조를 강제하는 사회 풍토였습니다. 그건 무책임하고 미성숙한, 그래서 퇴행된 자의식 속에서 거리낌 없이 민낯을 드러낸 어른들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런 어른에게 “어른이 되거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바뀌지 않으니까요. 지나가는 사.. 2022. 7. 13. 더보기
[밑줄 긋고]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 外 비공개 기사입니다. 더보기
문화/도서 활자에 담긴 모든 이야기:『타이포그래피 천일야화』 타이포그래피 천일야화 원유홍, 서승연, 송명민 지음 | 안그라픽스 | 368쪽 | 2만9천원 활자는 들여다볼수록 모르는 정보를 가르친다. ‘도진희’라는 세 음절(音節)에서 ❶이름 ❷성별 ❸국적 ❹종(種) ❺소설 속 주인공 등 많은 정보를 유추하게 만드는 것처럼. 이미지와 다른 속성을 보인다. 그런 도진희라는 세 음절 사이에 여백이 얼만큼 벌어져 있는지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커닝(kerning)의 개념은 활자를 정보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한글 창제 기원부터 오늘날 사용하는 글꼴에 이르기까지 알파벳의 영역도 포함해 디자인을 위한 정초(定礎)에 충실한다. 기원을 모르면 현대에 이르는 흐름도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학문적 지식은 매우 중요하다. 단지 알파벳에.. 2022. 6. 2. 더보기
문화/도서 삼풍이 무너지고 아파트가 지어져도 세상은 여전하다:『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56쪽 | 1만6천원 삼풍백화점 붕괴만 다루지 않았다. 사고 이후 기억에 초점을 맞춘다. 어째서 붕괴했는지, 보상 받기까지 과정, 새 아파트 지어지고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일목요연하지 않다. 흩어진 기억을 한데 모았다. 따라서 사회의 시선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이라는 삶의 정황을 비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이미 여럿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삼풍 참사의 진실’(2007)처럼 생존자를 중심으로 건축학적 원인을 다루거나 사체와 함께 잔해물을 매립지로 버린 사실을 드러낸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2015)도 있다. ‘KBS다큐 인사이트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시대유감, 삼풍’(2020)은 지대(地代)가 상승할 무렵의 강남 일대.. 2022. 5. 26.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