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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문화/도서 행운, 조금씩 틈으로 벌려내어 박살내는 것:『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0쪽 | 1만1500원 처음 세 가지에 놀랐다. ①형수라고 부르기에 형의 아내를 일컫는 단어인 줄 알았다. 웬걸 남자애 이름이었다니. ②은재라는 이름으로 PC방을 오가며 ‘다크나이트’로 불리는 모습에 남학생인 줄 알았는데 여학생이었다니. ③이 모든 광경을 CCTV로 지켜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행운이란 실체 없는 존재가 관찰 중이라니. 그렇다. 행운이란 주인공이 불행과 죽음 사이에 선 아이들을 지켜본다. 스포일러 주의 ◇상처가 만들어 낸 냉소적인 은재 여중생 은재는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해왔다. 다크나이트라 불린 이유도 얼룩진 상처를 가리려던 검은색 카디건 때문이다. 은재가 아버지로부터 머리채 잡힌 모습을 지켜본 건 같은 반 우영과 형수였다... 2022. 12. 4. 21:53 더보기
문화/도서 고딩의 탈을 쓴 소설, 차라리 수필이었다면:『서울 사는 외계인』『대한 독립 만세』 서울 사는 외계인들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56쪽 | 1만3000원 고등학생 나이의 남자 아이가 무화과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집 2층으로 이사 왔다. 덥수룩한 머리, 신문지로 창문마저 덮어버린 음침함, 자퇴한 듯 짱 박혀 지내는 어두운 분위기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아, 미친! 개쓰레기! 양아치 새끼! 이거 정신병자 아냐?”(10,4) 딸의 험한 욕설에도 주인집 아주머니는 친히 끓인 팥칼국수를 문 옆에다 두었다. “너 말 조심해.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또라이, 또라이 하니? 내가 보니까 아주 선하게 생겼더구먼.”(28,7) 2층에 세 들어 사는 자퇴 소년 사우에게 집주인 아주머니가 한글을 배우면서 서로 위로를 건네는 내용의 소설이다. ◇2010년대 후반에 나온 소설이라기엔 믿기 힘든.. 2022. 12. 4. 21:53 더보기
문화/도서 무섭지 않은 괴물이라 다정한 화괴:『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 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 명소정 지음 | 이지북 | 308쪽 | 1만4000원 참신한 소재라 하기엔 당장에 떠오른 두 영화가 겹쳐보였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그리고 ‘늑대소년’. 머지않아 여학생이 괴물 남학생을 쥐고서 흔들고 있겠구나 예상마저 들었다. 정해진 각본처럼 눈앞에 펼쳐진 내용이 낯설지 않은 이유였다. 우연한 밤 도서관을 방문한 여자 주인공 세월이 괴물의 형상으로 나타난 남학생 혜성과 마주친다. 정체를 들키고 만 혜성이 세월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굽실댄다. 혜성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기억을 먹어야만 했다고 해명한다. 사람의 기억을 먹으면 단박에 정체가 탄로 날 것을 우려해 기억이 담긴 책을 몰래 먹으면 괜찮을 거라 말했다. 세월은 비밀로 해줄 테니 상담 동아리를 만들면 어떨지 제안한다.. 2022. 12. 4. 21:52 더보기
문화/도서 쾌락으로는 알 수 없는 것:『안녕히 계세요, 아빠』 안녕히 계세요, 아빠 이경화 지음 | 뜨인돌 | 168쪽 | 1만원 꼭 섹스를 해야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유독 몸의 쾌락에 집착하는 이들 일수록, 그 횟수에 소유욕을 투사한 만큼 퇴행적 자의식을 드러낸다. 걸레 딱지 붙이는 것도 우습다. 횟수도, 쾌락도 중요하지 않다. 어른이 되어가는 고통 속에서 꿈처럼 달달한 솜사탕 같을 뿐이다. 많이 넣어도 순식간에 녹아 사라져 버리는 맛. 또 입에 넣고 녹여도 다시 먹고 싶게 만드는 맛. 처음 연주에게 느낀 불편한 감정도 오해에서 비롯한다. 그 마음 깊숙한 곳에 숨은 소유욕을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몸은 어른이 되어가지만 생각은 퇴행하고 만다. 연주가 마마보이는 싫다며 호세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내가 먼저 어른이 되었다는 오만함이 아니다. 어.. 2022. 10. 27. 23:30 더보기
문화/도서 [이야기 꿰매며] 퇴행적 자의식 속 어른에게 하는 말 여럿 읽어본 청소년 문학 소설에서 직접 키워드를 뽑아봤습니다. ‘가부장제’와 ‘재개발’. 빙판길 흔전동 골목 내달리는 학교 밖 달이(구달, 최영희)와 구지구(舊地區)에서 수지를 찾아 헤매는 이름 없는 소년.(편의점 가는 기분, 박영란) 아빠를 피해 편의점으로 가출한 이루다,(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범유진) 그리고 2010년대 폭력적 학교 구조를 살아가던 여고생 이순정(열여덟 너의 존재감, 박수현)에 이르기까지. 읽어본 청소년 문학 소설이 가리킨 지점은 아이들에게 폭력적 구조를 강제하는 사회 풍토였습니다. 그건 무책임하고 미성숙한, 그래서 퇴행된 자의식 속에서 거리낌 없이 민낯을 드러낸 어른들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런 어른에게 “어른이 되거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바뀌지 않으니까요. 지나가는 사.. 2022. 7. 13. 18:40 더보기
[밑줄 긋고]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 外 비공개 기사입니다. 2022. 7. 13. 18:40 더보기
문화/도서 활자에 담긴 모든 이야기:『타이포그래피 천일야화』 타이포그래피 천일야화 원유홍, 서승연, 송명민 지음 | 안그라픽스 | 368쪽 | 2만9000원 활자는 들여다볼수록 모르는 정보를 가르친다. ‘도진희’라는 세 음절(音節)에서 ❶이름 ❷성별 ❸국적 ❹종(種) ❺소설 속 주인공 등 많은 정보를 유추하게 만드는 것처럼. 이미지와 다른 속성을 보인다. 그런 도진희라는 세 음절 사이에 여백이 얼만큼 벌어져 있는지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커닝(kerning)의 개념은 활자를 정보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한글 창제 기원부터 오늘날 사용하는 글꼴에 이르기까지 알파벳의 영역도 포함해 디자인을 위한 정초(定礎)에 충실한다. 기원을 모르면 현대에 이르는 흐름도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학문적 지식은 매우 중요하다. 단지 알파.. 2022. 6. 2. 19:00 더보기
문화/도서 삼풍이 무너지고 아파트가 지어져도 세상은 여전하다:『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56쪽 | 1만6000원 삼풍백화점 붕괴만 다루지 않았다. 사고 이후 기억에 초점을 맞춘다. 어째서 붕괴했는지, 보상 받기까지 과정, 새 아파트 지어지고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일목요연하지 않다. 흩어진 기억을 한데 모았다. 따라서 사회의 시선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이라는 삶의 정황을 비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이미 여럿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삼풍 참사의 진실’(2007)처럼 생존자를 중심으로 건축학적 원인을 다루거나 사체와 함께 잔해물을 매립지로 버린 사실을 드러낸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2015)도 있다. ‘KBS다큐 인사이트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시대유감, 삼풍’(2020)은 지대(地代)가 상승할 무렵의 강남 .. 2022. 5. 26. 19:00 더보기
문화/도서 어쨌거나 “‘학교폭력/디지털 성폭력/무관심’은 나쁘다”:『학교 안에서』 학교 안에서 김혜정 지음 | 사계절 | 200쪽 | 1만1000원 소설을 좋아하면서 바뀐 시선이 있다. 글줄이 길면 이걸 어떻게 상상하며 읽어야 할까 부담감이 앞선 나머지. 인물 묘사, 심리, 상황과 배경을 녹여낸 글줄이 싫었다. 잘 썼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예의 갖춘 독백을 접하며 부담감은 기대로 바뀌었다. 구매할 책을 고를 때, 대화보다 글줄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얼마나 글줄이 아름다운지를 먼저 살핀다. 도입은 좋았다. 학교를 폭파하려는 테러범에 맞선 힘없는 경찰과 영문도 모른 채 학교에 갇히고 만 학생들과 교사라는 설정 속에 앞으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여기까지 좋다. 부실한 대화, 어설픈 설정. 메시지는 명확하다. ‘학교 폭력은 나쁘다.’ 학교폭력 피해자 진술을 적절히 가공.. 2022. 5. 19. 19:00 더보기
문화/도서 병신 같은 노동 착취… “한국 사회 문해력을 묻는다”:『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60쪽 | 1만5000원 어쩌면 이 손님과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생각 없이 바코드를 찍어댔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는 말해둔 상태다. 다음 근무자를 구하기 전까지만 일하기로 돼 있었다. 정확히 일주일. 일주일 만에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이어진 사장의 말은 지금도 뇌리에 박혀 있다. “그건 네 사정이고!” 반년에 가까운 시간, 편의점에서 보내온 야간 근무는 즐거울 때도 많았지만 힘겨울 때도 많았다. 밤을 새야 하기에 피로가 누적되어 자도자도 피곤함 연속이다.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다가왔다. 처음 일 시작할 무렵 입었던 옷을 꺼내 입었다. 맞은편 초등학교엔 가을 운동회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출근 후 정겹게 .. 2022. 5. 12. 19:00 더보기
문화/도서 흔전동 재개발 구역에서 들려오는 네 울음 소리:『구달』 구달 최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64쪽 | 1만1500원 달빛이 비치는 재개발 구역으로 묘사하기 위해 이름을 구달로 정한 게 아니었을까.(246,1) 노란색 구달의 달빛으로 물드는 표지를 쓸어내렸다. 듣고 싶지만 들을 수 없는, 그러면서도 듣고 싶어 귀 기울이는 달이를 상상하며 한 페이지 넘겼다. 언제부턴가 달이는 알 수 없는 소릴 듣게 됐다. 365마트 할머니 손자 강문이의 흔들리는 치아 소리(39,2)에서 걸어가던 여자 구두 굽 또각 소리(42,2)까지. 재개발 앞둔 골목이라 들릴 만한 소리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방에서 훌쩍이는 재현이의 울음소리를 달이의 방안, 눕다 보면 견디지 못할 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자고 일어난 아침은 모든 감정이 민낯 그대로다. 무방비 상태로 솟아오른 욕망과 생각.. 2022. 5. 5. 19:00 더보기
문화/도서 겨울의서원 지키려 숨 죽여 기다려 온 산바:『멧돼지가 살던 별』 멧돼지가 살던 별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184쪽 | 1만1500원 한순간 져버린 열여덟 生 국가적 폭력이 빚어 만든 비참히 남은 마음의 상흔 그리고 말없이 떠난 악인 폭력성 주의 잔인한 아버지의 폭력에 눈을 감고 싶었다. 도무지 읽기 어려웠다. 이빨이 딱딱 거리는(33,5) 소녀 유림에게 가감 없이 주먹질 해대는 인간에게 그보다 더한 멍자국을 내주고 싶었다. 힘을 가진 아버지는 힘없는 딸을 내치고 이용해 먹으며 내쳐버린다. 용서하기 힘들었다. 죽이고 싶었다. 불편한 감정은 충동에서 그쳐야 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기에 몸은 상흔 자체를 외면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같은 방식으로 오래도록 외면했던 10년 전 열여덟 살 소년이 떠올랐다. 스포일러 주의 이 소설은 아버지에게 정신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 2022. 4. 28. 19:0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