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서59 [이야기 꿰매며] 누구에게나 못다 할 무언의 사연이 있어 여중생 은재가 까탈스레 행동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최영희) 말 못 할 사연 말이죠. 자식뻘 사우에게 한글 좀 알려 달라 말하기까지 속으로 끙끙 앓은 찔레꽃 아주머니의 사연도 그렇습니다.(서울 사는 외계인, 이상건)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연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연히 만난 리하가 알고 보니 내 가장 친한 친구의 피해자라는 사실 앞에 누구라도 할 말을 잃고 말 겁니다.(완벽한 사과는 없다, 김혜진) 진실을 마주하고 그저 도망갔더라면, 더는 이야기로, 우리 곁으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진실을 말하지 않은 파렴치한 지민’ ‘그까짓 용서 않는 리하’라고 서로를 오해하고 말았을 겁니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목도해도(창밖의 아이들, 이선주) 견디기.. 2024. 5. 10. 11:12 [문정동 서재] 괴물 한쪽 눈을 뜨다 外 ▲열여덟 너의 존재감 아무도 없는 야심한 시간, 학교의 유리창이 모조리 와장창 깨진다. 범인은 누구일까. 세 명의 여고생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 가지 사건에는 다양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아이들에게 무심한 척하는 담임의 존재도 베일에 가려져 있어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 과연 범인은 밝혀질 것인가.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천안함과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천안함과 세월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피격과 함께 선체 두 동강 나고 침몰해 버린 천안함, 연속변침에 못 이겨 바다에 고꾸라진 세월호. 두 사건 모두 살아남은 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보건학자 김승섭 교수는 천안함과 세월호 이후 살아남은 자에게 주목해 마음을 묻는다. 대중서에 남겨 놓은 연구를 따라가다 보면 .. 2024. 5. 8. 19:36 25시, 26시... 시간마저도 사들여 망가지는 사람들:『숲의 시간』 숲의 시간 김진나 지음 | 문학동네 | 192쪽 | 1만1000원 누군가의 아름다움을 흠모할 수는 있으나 그 아름다움을 훔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아름다움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다. 욕망은 할 수 있으나 훔칠 수 없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가질 만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태계는 돈이면 모든 아름다움을 살 수 있다고 속삭인다. 자유와 사랑, 우정과 시간까지 모조리…. 그래, 모든 걸 돈으로 사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또 얼마나 편리하게 썩어 버릴까. 모든 존재에는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삶에도 정해진 시간이 있다. 정해진 시간을 무제한으로 만들려는 무모함이 돈의 존재와 인간의 욕구에서 출발한다. 이 책 ‘숲의 시간’에서 묘사된 도시 크룽을 보면.. 2024. 5. 8. 19:34 ‘꼭 복싱이어야만 했나’ 복수라는 지루한 여정:『싸우는 소년』 싸우는 소년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55쪽 | 1만1500원 솔직한 마음으론 읽는 내내 지루했다. 소재는 복싱인데 복싱과 상관없는 내용이 소설 전체를 감싼다. 군더더기가 많은 문장력은 이해한다. 그럼 소재를 잘 활용해야 했다. 복싱 말고 검도가 됐든 태권도가 됐든 운동 종목 아무거나 바꿔놔도 전개에는 아무 상관없을 지경이다. 주인공이 왜 복싱을 배우려 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질질 끌다보니 훈련 과정이 빈약했다. 그냥 싸움 잘하는 동네 형한테 찾아가서 한 달 수련하는 게 나을 정도다. 아니면 “난 복수하는 녀석한텐 복싱 안 가르친다”는 도도한 주찬영 관장 보란 듯이 스스로 단련하며 마음을 돌이키는 설정도 괜찮았을 텐데. 그런 거 없다.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욕설도 촌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 맥.. 2024. 5. 8. 19:34 첫 생리, 소녀는 시술을 결심했다:『창밖의 아이들』 창밖의 아이들 이선주 지음 | 문학동네 | 196쪽 | 1만2000원 주인공 유란을 보면서 이제 곧 여고생이 될 열여섯 소녀가 아니라 서른 살도 훌쩍 넘은 작가 이선주가 보였다. 나쁘게 말해서 서른 넘은 여성이 교복을 입고 ‘인생은 이렇다’더라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본 그것들을 정직하게 쓰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래서 소개글에 나온 것처럼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경험을 청소년 주인공 소설보다 지금 자신의 에세이나 소설로 써봤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땐 ‘와! 훌륭한 문장력, 대단한데?’하고 놀랐지만 두 번째 읽었을 땐 ‘처음 읽었을 때보단 별로네’ 생각했고 세 번째 땐 문장력은 훌륭한데 왜 감동이 식어 버렸는지를 깨달았다. 문장력.. 2024. 5. 8. 19:34 정의할 수 없는 사과… “미안해” 외마디에 담긴 의미:『완벽한 사과는 없다』 완벽한 사과는 없다 김혜진 지음 | 뜨인돌출판사 | 168쪽 | 1만1100원 리하에게 진실을 말하기엔 늦어버렸다. 리하의 인생을 박살낸 신지호가 내 친구라는 사실을 말하기엔 너무도 늦어버린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지호가 사라졌다. 이름 모를 고등학생이 죽었다고 한다. 지호의 이유 모를 강제 전학이 연이어 벌어졌다. 주인공 지민은 지호와 어려서부터 친했다.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를 보면서 마치 지민은 지미니 크리켓, 지호는 피노키오가 된 것처럼 굴었다. 지미니 크리켓이 피노키오의 양심인 것처럼 지민이도 지호에게 그런 존재였다. “네가 내 양심이야.” 도대체 지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이스크림 하나, 맥스봉 만치 친절한 정다온 같은 학원을 다니는 다온이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다. 아이스크림.. 2024. 3. 25. 11:52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 밥 길 지음 | 민구홍 번역 | 워크룸프레스 | 176쪽 | 2만2000원 예쁘다고 다 잘한 디자인일 순 없다. 눈길 이끄는 디자인이 상품성도 강한 것처럼 예쁜 디자인은 필요하다. 허나 정지 표시의 표지판에 꽃 그림이 화려하게 들어갈 필요는 없다. 빨간색 배경에 테두리 흰 선, 딱딱한 고딕 글자로 구성한 ‘정지’와 ‘STOP’은 밋밋해 보여도 멈추라는 정보를 그대로 전달한다.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은 알고 있었다. 디자인은 화려하고 예쁜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기만 한 게 아니라는 점. 정보 전달에 충실할수록 디자인의 역할은 막중하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마찬가지로 예쁜 것과 유행에만 매달렸다. 의사소.. 2023. 5. 21. 01:53 죽음이란 무거운 짐을 진 여고생 이야기:『내가 만드는 엔딩』 내가 만드는 엔딩 서화교 지음 | 낮은산 | 192쪽 | 1만2000원 여고생 재윤이가 감당하기엔 무거운 짐이었다. 얼떨결에 마주한 아버지 영정 앞에 넋을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충격적이었다.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 “왜 죽었을까.” 이유를 알고 싶었다.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 없었다. 스스로 세상과 등진 아버지를 생각하며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되짚는 열여섯 소녀 이야기다. 만일 소설에서 죽음을 다룬다면 두 가지 방향 중 하나일 것이다. ➀죽은 이가 남긴 기록이나 기억을 곱씹는 일 ➁죽은 이와 함께한 이들 기억을 되짚는 일. 둘 중 하나를 고르기도 하지만 모두를 다루기도 한다. 죽음은 신중해야 할 소재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남발하면 작품이 말하려던.. 2023. 1. 21. 09:07 디자인, 예뻐야 한다는 편견은 버려라:『비주얼 스토리텔링』 비주얼 스토리텔링 윤주현 지음 | 홍디자인 | 352쪽 | 2만5000원 7년 전 책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정보디자인 수업 10년 기록을 담아선지 풍부하다. 정보를 어떻게 담을지를 고민했다. 예쁘기만 하면 된다는 디자인 편견을 부순다. 나 자신의 족적을 다루는 일부터 도시, 환경, 공동체, 데이터, 문제 해결 등 비주얼그래픽 완성본을 선보인다. 정보와 디자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보를 배치하기 위해서는 원래의 자료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디자인이 예쁜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세심히 다루어야 한다. 정보는 까다롭다. 입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배치에 따라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다. 다채로운 그래픽 완성본을 보면서 ‘이렇게도 만들었구나’ ‘저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생각이 .. 2023. 1. 21. 09:07 [마음 속 그 사람] 강이지, 너라면 언제든!:『열여덟 너의 존재감』 세상은 네게 가혹할 테지만 원망스러울 거야. 네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집에만 들어오면 부모는 싸우고 있고. 아이들은 고성(高聲)에 울기만 할 뿐이고. 태어난 것 자체로도 억울한 감정이 앞서지만 견뎌야 할 네 마음,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한국은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나라 같아. 이지, 너의 배려는 섬세해. 너의 그 배려를 모든 사람이 알아주지는 않을 거야. 그럼에도 네 몸에 각인 된 감각을 잃지 않고 다채로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네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멋져. 오랜 시간 흘러야 ‘그 애가 나를 생각해주었구나’ 깨닫게 만드는 배려도 있겠지만. 어쩌면 죽은 후에도 모를 배려도 있을 거야. 순정이가 너의 마음을 알아준 것처럼, 앞으로도 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어갈 거야. 지금은 경찰관.. 2023. 1. 21. 09:05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