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은재가 까탈스레 행동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최영희) 말 못 할 사연 말이죠. 자식뻘 사우에게 한글 좀 알려 달라 말하기까지 속으로 끙끙 앓은 찔레꽃 아주머니의 사연도 그렇습니다.(서울 사는 외계인, 이상건)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연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연히 만난 리하가 알고 보니 내 가장 친한 친구의 피해자라는 사실 앞에 누구라도 할 말을 잃고 말 겁니다.(완벽한 사과는 없다, 김혜진) 진실을 마주하고 그저 도망갔더라면, 더는 이야기로, 우리 곁으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진실을 말하지 않은 파렴치한 지민’ ‘그까짓 용서 않는 리하’라고 서로를 오해하고 말았을 겁니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목도해도(창밖의 아이들, 이선주) 견디기 어려운 폭력을 마주해도(싸우는 소년, 오문세) 다리가 벌벌 떨리는 건물 지붕 너머 밤방으로 기어간 호세처럼(안녕히 계세요, 아빠, 이경화) 용기를 내어 누군가의 사연을 물어봐야 할 때입니다. “이순정, 요즘 넌 어떠니…….”(열여덟 너의 존재감, 박수현)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마음 알기는 나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언제나 나 자신은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진실과 사실을 들이대기 전 누군가의 사연을 통해 조금씩 이해의 빗장이 열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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