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계세요, 아빠
이경화 지음 | 뜨인돌 | 168쪽 | 1만원
꼭 섹스를 해야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유독 몸의 쾌락에 집착하는 이들 일수록, 그 횟수에 소유욕을 투사한 만큼 퇴행적 자의식을 드러낸다. 걸레 딱지 붙이는 것도 우습다. 횟수도, 쾌락도 중요하지 않다. 어른이 되어가는 고통 속에서 꿈처럼 달달한 솜사탕 같을 뿐이다. 많이 넣어도 순식간에 녹아 사라져 버리는 맛. 또 입에 넣고 녹여도 다시 먹고 싶게 만드는 맛.
처음 연주에게 느낀 불편한 감정도 오해에서 비롯한다. 그 마음 깊숙한 곳에 숨은 소유욕을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몸은 어른이 되어가지만 생각은 퇴행하고 만다. 연주가 마마보이는 싫다며 호세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내가 먼저 어른이 되었다는 오만함이 아니다. 어른의 쓰디쓴 맛을 느끼기엔 아이의 달달한 맛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주인공 진호세는 같은 반 연주와 지내며 마음 속 소유욕을 발견한다. 그 소유욕은 엄마가 자신을 집착하는 욕구와 다르지 않은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엄마는 남편과 이혼하고 호세와 둘이서 산다. 호세의 아버지가 너무도 쉽게 아내를 놔준 덕분인지 그로 인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충격은 호세에 대한 집착으로 드러났다. 언제나 말 잘 듣는 진호세를 그리워하는데. 살아있는 호세가 아닌 엄마의 마음 속 착한 아들 진호세를 바란다는 점에서 호세를 옭아맨다.
사랑에도 적당한 애정이 있어야 하는 법. 착한 아들 호세를 기다리는 엄마에게 진절머리 난다. 여자애도 만나고 엄마의 품에서도 벗어나야 할 나이. 반항하듯 수업을 마치고 보고 전화도 없이 연주를 따라간다. 하릴없이 쫓아가는 동안 복잡한 골목을 지나 도착한 건물. 지난 번 둘만의 공간은 빨간머리 노랑머리 율희라는 이름의 선생이 방을 메우고 있었다.
호세의 생각을 스치는 이미지는 자극적이었다. ‘연주는 노랑머리와 무슨 사이일까? 둘은 어제 밤방에 같이 있었던 걸까? 노랑머리는 연주에게 팔베개를 해 주고 연주는 노랑머리의 허리를 끌어안고 둘이 간지럼이라도 태우며 키득거렸을까? 그러다가 키스라도 했을까? 혀도 집어넣었을까? 노랑머리는 연주의 겉옷 단추를 풀러 가슴을 열었을까?’(53,8)
그러나 연주에게 몰입하는 동안(이라 쓰고 회피라 읽는다) 연주는 계속해서 호세를 가차 없이 밀어낸다. 더는 마마보이가 아님을 증명하겠다고 다짐하는데. 밤방으로 향하듯 용기를 내어 아빠를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호세는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지겨운 세상과 ‘밤을 여는 방’ 사이는 한 끗 차이다. 떨어질까 무서운 기분을 이겨내야 도착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의 짜릿함은 어른만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무서운 기분을 회피하는 대신 짜릿함을 몸의 쾌락으로 대체할 뿐이다. 따라서 섹스를 해야만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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