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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A를 물었으면 A에 대해 말하는 게 정상이다. 대학 이름을 묻지 않는 건 하등 필요없는 논점으로 이어지거나 대화의 핑퐁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대학 이름 대신 전공을 묻는 건 소통에서 실리적이다. 어떤 일을 하는지, 무슨 일이 가능한지 묻는 게 상대방의 관심사를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을 준다. 나아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살아온 배경을 묻게 되고 자연스레 대학 이름이 나오며 환경을 가늠한다. 하등 쓸데없는 소득 수준, 자가용은 가지고 있는지, 원룸에서 사는지 투룸에서 사는지를 묻지 않는다. 필요 없으므로 묻지 않을 뿐이다. 여럿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아도 단시간 안에 상대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편리한 방법이 시간의 검증뿐이지 않을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시간의 검증만이 가.. 2021. 7. 12.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두 번의 실패와 좌절 앞에서 두 차례 실패를 경험하고 두 번의 좌절을 맞이해서야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변화라는 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 엄청난 용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누군가로부터 얻는 선물도, 마음만 먹는다고 주어질 일시적 단호함도 아니다. 그저 순간의 선택으로 보이지만 인생 항로의 몇 도를 틀만한 강력하고 영향력을 가지는 엄청난 용기를 두 번의 좌절을 맞아서도 발휘하지 못했다. 바로 ‘나는 낡았구나’라고 생각한 끝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진 이유다. 전통적이고 당연했던 공간에서 벗어나는 순간 경험한 감정인 해방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현실이란 공간에 이르러서야, 해방 너머 풍경을 직시했다. ‘나는 낡았구나’ 좌절 앞에 변화의 필요를 깨달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코로나를 겪.. 2021. 5. 15.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슬픔을 거슬러 네 얼굴 쓰다듬고서 이제 곧 청력을 잃는다던 상황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나무 바닥에 엎드린다. 열 두 살에 청력을 잃은 에버린 글레니(Evelyn Glennie)처럼 듣겠노라 다시금 들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루미는 건우의 솔직한 말을 듣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던 루미의 미소에는 슬픔도 있었고 희미한 즐거움과 애틋한 감정이 있었다. 진짜 얘기 좀 해보라는 말에 그 때 미워서 내친 게 아닌 것을 알지 않느냐던 건우의 음성 언어를 듣지 못해도 그 마음을 알고 있었다. 사랑은 음성 언어라는 한계를 뚫고 상대의 마음에 가닿는다. 늦가을임에도 냉기를 만져가며 오감을 느끼려던 루미의 슬픔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도처에 기온이 싸늘한 시대에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전시되고 소.. 2021. 5. 5.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2016년 3월 19일, 난파선을 벗어날 때 스친 파수꾼 앞에서 무슨 말을 더할까 입력 : 2021. 03. 19 23:30 | A30 난파선 바깥에서 헤매는 사람을 누구든지 유랑하는 자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괴로운 광경을 경험해 본다면 누구든지 유랑이란 단어를 말하지 않는다. 고고하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파도를 생각할 여력 하나 없이 그저 살기 위해 난파되어 흩어진 나뭇조각 보노라면 그 단어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구조적 문제도 개인적 내부의 문제도 관찰할 시간도 없다. 처량하게 움직이는 몸동작도 비웃지를 못한다. 유동하는 파도 속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하나의 생각만이 들어찬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면 유랑 같은 단어를 떠올리지 않는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느껴지는 복합적 감정도 그렇다. 남자라면 겪어야 했을 구조적 문제들 앞에서, 한낱 힘없이 스러.. 2021. 3. 19.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든든함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 입력 : 2021. 02. 28 22:30 | 디지털판 자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이유가 단지 내 생일에 몸살감기 걸려 한 발자국 내딛지 못할 때 집까지 찾아와 부축해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네. 점심시간 방송실에 찾아갈 때마다 멋있게 일하던 성실함도, 그저 같이 있는 게 좋아서 자정까지 컨테이너 자네 방에서 대화한 그 밤도, 고입고사 한 시름 놓았다고 먼저 집에 돌아가 서운했던 이유도, 자고 있는 선욱 깨어나거든 친구들과 박수치며 당황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던 정겨운 풍경도. 느껴지던 든든함이 못내 겨워 잊을 수 없었기 때문만도 아니라네. 과거 모든 기억들이 실오라기 남김없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자네에게 느껴지는 든든함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네. 모든 전통적인 것들이 무너지는 광경을 바라보.. 2021. 2. 28.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너라는 관성에서 벗어난다 입력 : 2021. 02. 12 21:00 | 수정 : 2021. 02. 13 23:15 | A30 켜켜이 쌓인 십여 년 전 써 놓은 글을 읽다 보면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자신만의 언어로 작성한 딱딱한 문체에 주목하곤 한다. 학창시절, 사람들과 일상을 주제로 한 대화보다 꽃과 나뭇잎, 하늘 구름 바라보며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일들이 더 익숙했다. 일상 언어를 습득하지 못할 만큼 집단과 공동체, 학교라는 공간과 교회의 장소에서 벗어나 고독함을 즐겼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가 목격한 아이히만의 상투적 언어처럼 일상 언어와 자신의 언어로 나누어 사용하던 시대였다. 유행어와 여자 아이돌에 관심조차 없어서 성경과 기도가 익숙해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고등학교 1학년. 0교시 수업 전부터 정독한 성경.. 2021. 2. 12.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은진이를 바라보는 마음에서 슬픔을 느꼈을 때 입력 : 2021. 01. 17 22:53 | A30 눈망울을 마주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네” 한 마디가 전부였다. 말조차 잘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본지 러블리즈덕질일기에 실을 요량으로 참석한 러블리즈 오프라인 모임에서 본 생일 카페 기획자의 첫 인상이다. 눈동자를 마주치고 바라보며 대화하길 좋아하던 나조차 옷깃을 저미었다. 다소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사람 대할 줄 모르는 분위기를 느꼈다. 그는 홀로 배지를 팔다가 사라졌고, 집필하던 기사를 삭제해 싣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이돌 세계에 발 딛고서 경험한 이상한 분위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금도 장충체육관 나서면서 약 먹었냐 물어보던 두 남성을 애틋하게 보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는 척할지언정 적어도 약한 부분 건드리.. 2021. 1. 17.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내러티브의 종말 입력 : 2020. 12. 19 07:03 | A30 닫힌 사회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으로 주목했던 내러티브의 역설적인 오류를 발견하자 먼저 든 생각은 인간의 추악함이었다. 나의 세계가 존재하듯, 너의 세계도 존재한다는 그럴싸한 명제가 우리 사는 이 세계에 먹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쉽게 말해 착한 마음만을 가지고 살면 왜 이 세상 아름답지 않겠냐는 농담 같은 질문과 다르지 않는다. 그런 쉬운 방법이 가장 어려운 법이고 불가능에 가까워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하듯.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지도 않을뿐더러, 모든 사람이 감성주의자는 아니므로 더욱이 내러티브의 역설적 오류를 발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 속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캐릭터는 투사의 도구로 전락한다. .. 2020. 12. 19.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썩은 동아줄 입력 : 2020. 11. 22 | 디지털판 자기객관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발언과 행동은 무엇이든 부끄럽다. 술에 취한 채 기숙사로 걸어와 질질 끈 몸을 침대에 뉜 채 세상만사 자기편이 아니라고 떠들던 분위기를 아는가. 죽음과 고난을 거느리며 출신성분으론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비운의 주인공은 실력은 출중하나 치고 올라갈 한 방이 없다며 한숨을 이어간다. 토닥이며 날이 지났으니 방으로 돌아가시오 위로에도 상황이 종료되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늠하며 교수들을 만나고 왔느냐고 물으면 물어봐주길 바랬다는 듯 실토하는 한 문장들에선 최소 두 명의 교수 이름이 연달아 나온다. 때마침 TV조선 뉴스9에서 흐르는 대통령과 조선일보의 줄다리기가 세상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얽혀서 풀리.. 2020. 11. 22.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미안해, 최진리 입력 : 2020. 10. 23 | A34 기일을 맞이해 작성한 시론의 분량은 이천사백자다. 마음 모아 작성하고 두 문단, 세 문단 쯤 남겨 놓고 천오백자 모두 지우고 말았는데. 첫째는 진리의 죽음을 다루지 못하겠다는 한 숨, 둘째는 진리의 떠남에 어떠한 인용도 할 수 없다는 슬픔이 한 문단씩 지우게 만들었다. 내가 무엇이관대 살아있음을 논한단 말인가라는 부끄러움을 잇는 질문: 내가 무엇이관대 진리의 죽음, 진리에 대한 것, 진리가 가지던 것을 다룬다는 말이냐 이것 때문이었다. 늘 지면신문 이 자리에 떨었던 고상한 글을 미뤄두고 진리에게 설리에게 미안한 몇 가지를 늘여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파동을 겪으며 진하게 남았던 질문 하나,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와줄 거냐”는 물음에 대답을 유보했던 기.. 2020. 10. 23.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다 부질없는 일이었는데” 입력 : 2020. 07. 04 | 수정 : 2020. 07. 04 | A34 10년 전 일이다. 강경한 근본주의 신앙을 견지하던 내 입에서 울려 퍼진 세대주의 종말론 신앙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메시지 그 자체로 요약할 수 있다. 내용인 즉은 곧 전쟁이 임할 테니 모두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예언이다. 알다시피 2010년 3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 사건과 나라 잃은 슬픔을 기억하려 시청 앞 광장에 10만 명이 넘는 교인들이 강사로 세운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아멘하던 시절이다. 때 마침 미디어의 실체라는 동영상에 심취하며 유럽연합이 정치적으로 통합하면 적그리스도가 출현함으로써 지구상 완전한 종말이 다가오니 휴거를 대비하라를 진지하게 믿었던 때였다.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무.. 2020. 7. 4.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부끄러움의 해방적 역할 입력 : 2020. 05. 10 | 디지털판 보면대를 내리치는 강마에 모습에서 10년 전과 다른, 역설(逆說)적 부끄러움을 느꼈다. 정확한 대사는 이렇다.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내가 여러분들을 실력 외적인 걸로 부당하게 야단친 적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준비를 잘 못해 와서 여러분을 헤매게 만들었나요? 없지요? 도대체 뭐가 문젭니까!” 사과 받으려던 악장의 표정은 굳었고, 주인공과 다름없던 연구단원들 표정은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었다. “사과 못하겠습니다!”로 운을 띄운 강마에가 일갈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단원들을 불리하게 대하거나 불공평한 지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과를 주도한 악장도 더는 할 말을 잇지 못했고 자리에 앉아 덤덤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게 여우비 내리던 어제.. 2020. 5. 1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