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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에셀라 시론34

[에셀라 시론] 51% 가영이 누나에게 탈출을 권했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1층 작은 예배실은 토요일 저녁이면 컴컴했다. 한편에 들어찬 사무실 미닫이 문 열고서 바라본 누나의 뒷모습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웃음이 많았고 미소가 은은했다. 한 숨을 쉬어가며 마치지 못한 그 일을 끝내 내 앞에 가져온 저녁이 떠오른 건. 그 일을 한 집사와 학생, 셋이서 만들어갈 무렵이다. 교회를 나오지 않으며 저절로 승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기억을 더듬었다. 자격증 시험을 위해서 주일 예배를 빠져도 되겠냐던 물음에 하나님 일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던 대답과, 그 자리 떠난 누나의 온기도 사라지기 전 목사의 지껄이던 “쟤는 돈을 너무 좋아해” 한 마디는 지금도 황당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게 만들었다.그 한심한 교회는 지금에서야 리빌드.. 2021. 9. 1. 23:24
[에셀라 시론] 보이지 않는 나라를 꿈꾼다 박원순과 나경원이 맞붙던 시절의 이야기다. 종북(從北) 단체와 친밀하게 지낸다는 박원순 후보의 일설을 믿고 순진한 마음으로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의 답변은 간단했다. 정치는 단순한 이념으로 보는 게 아니라고. 이념으로 사람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답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새로운 눈이 뜨이자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왜곡된 정치의 시각으로도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앙의 끝으로 달려가던 와중에 붙잡은 정치 이념이 보수적 깨시민으로 만든 후였다. 대학을 입학했다.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 나라’는 많았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가 대표적이다.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하느님 나라를 꿈꾼다. 보수적 성향의 시민도 보이지 .. 2021. 8. 7. 23:43
[에셀라 시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A를 물었으면 A에 대해 말하는 게 정상이다. 대학 이름을 묻지 않는 건 하등 필요없는 논점으로 이어지거나 대화의 핑퐁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대학 이름 대신 전공을 묻는 건 소통에서 실리적이다. 어떤 일을 하는지, 무슨 일이 가능한지 묻는 게 상대방의 관심사를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을 준다. 나아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살아온 배경을 묻게 되고 자연스레 대학 이름이 나오며 환경을 가늠한다. 하등 쓸데없는 소득 수준, 자가용은 가지고 있는지, 원룸에서 사는지 투룸에서 사는지를 묻지 않는다. 필요 없으므로 묻지 않을 뿐이다. 여럿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아도 단시간 안에 상대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편리한 방법이 시간의 검증뿐이지 않을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시간의 검증만이 가.. 2021. 7. 12. 21:49
[에셀라 시론] 두 번의 실패와 좌절 앞에서 두 차례 실패를 경험하고 두 번의 좌절을 맞이해서야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변화라는 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 엄청난 용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누군가로부터 얻는 선물도, 마음만 먹는다고 주어질 일시적 단호함도 아니다. 그저 순간의 선택으로 보이지만 인생 항로의 몇 도를 틀만한 강력하고 영향력을 가지는 엄청난 용기를 두 번의 좌절을 맞아서도 발휘하지 못했다. 바로 ‘나는 낡았구나’라고 생각한 끝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진 이유다. 전통적이고 당연했던 공간에서 벗어나는 순간 경험한 감정인 해방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현실이란 공간에 이르러서야, 해방 너머 풍경을 직시했다. ‘나는 낡았구나’ 좌절 앞에 변화의 필요를 깨달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코로나를 겪.. 2021. 5. 15. 23:19
[에셀라 시론] 슬픔을 거슬러 네 얼굴 쓰다듬고서 이제 곧 청력을 잃는다던 상황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나무 바닥에 엎드린다. 열 두 살에 청력을 잃은 에버린 글레니(Evelyn Glennie)처럼 듣겠노라 다시금 들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루미는 건우의 솔직한 말을 듣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던 루미의 미소에는 슬픔도 있었고 희미한 즐거움과 애틋한 감정이 있었다. 진짜 얘기 좀 해보라는 말에 그 때 미워서 내친 게 아닌 것을 알지 않느냐던 건우의 음성 언어를 듣지 못해도 그 마음을 알고 있었다. 사랑은 음성 언어라는 한계를 뚫고 상대의 마음에 가닿는다. 늦가을임에도 냉기를 만져가며 오감을 느끼려던 루미의 슬픔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도처에 기온이 싸늘한 시대에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전시되고 소.. 2021. 5. 5. 22:36
[에셀라 시론] 2016년 3월 19일, 난파선을 벗어날 때 스친 파수꾼 앞에서 무슨 말을 더할까 입력 : 2021. 03. 19  23:30 | A30  난파선 바깥에서 헤매는 사람을 누구든지 유랑하는 자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괴로운 광경을 경험해 본다면 누구든지 유랑이란 단어를 말하지 않는다. 고고하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파도를 생각할 여력 하나 없이 그저 살기 위해 난파되어 흩어진 나뭇조각 보노라면 그 단어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구조적 문제도 개인적 내부의 문제도 관찰할 시간도 없다. 처량하게 움직이는 몸동작도 비웃지를 못한다. 유동하는 파도 속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하나의 생각만이 들어찬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면 유랑 같은 단어를 떠올리지 않는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느껴지는 복합적 감정도 그렇다. 남자라면 겪어야 했을 구조적 문제들 앞에서, 한낱 힘없이 .. 2021. 3. 19. 23:30
[에셀라 시론] 든든함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 입력 : 2021. 02. 28  22:30 | 디지털판 자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이유가 단지 내 생일에 몸살감기 걸려 한 발자국 내딛지 못할 때 집까지 찾아와 부축해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네. 점심시간 방송실에 찾아갈 때마다 멋있게 일하던 성실함도, 그저 같이 있는 게 좋아서 자정까지 컨테이너 자네 방에서 대화한 그 밤도, 고입고사 한 시름 놓았다고 먼저 집에 돌아가 서운했던 이유도, 자고 있는 선욱 깨어나거든 친구들과 박수치며 당황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던 정겨운 풍경도. 느껴지던 든든함이 못내 겨워 잊을 수 없었기 때문만도 아니라네. 과거 모든 기억들이 실오라기 남김없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자네에게 느껴지는 든든함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네. 모든 전통적인 것들이 무너지는 광경을 바라.. 2021. 2. 28. 22:30
[에셀라 시론] 너라는 관성에서 벗어난다 입력 : 2021. 02. 12  21:00 | 수정 : 2021. 02. 13  23:15 | A30 켜켜이 쌓인 십여 년 전 써 놓은 글을 읽다 보면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자신만의 언어로 작성한 딱딱한 문체에 주목하곤 한다. 학창시절, 사람들과 일상을 주제로 한 대화보다 꽃과 나뭇잎, 하늘 구름 바라보며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일들이 더 익숙했다. 일상 언어를 습득하지 못할 만큼 집단과 공동체, 학교라는 공간과 교회의 장소에서 벗어나 고독함을 즐겼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가 목격한  아이히만의 상투적 언어처럼 일상 언어와 자신의 언어로 나누어 사용하던 시대였다.유행어와 여자 아이돌에 관심조차 없어서 성경과 기도가 익숙해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고등학교 1학년. 0교시 수업 전부터 정독한 .. 2021. 2. 12. 21:00
[에셀라 시론] 은진이를 바라보는 마음에서 슬픔을 느꼈을 때 입력 : 2021. 01. 17  22:53 | A30 눈망울을 마주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네” 한 마디가 전부였다. 말조차 잘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본지 러블리즈덕질일기에 실을 요량으로 참석한 러블리즈 오프라인 모임에서 본 생일 카페 기획자의 첫 인상이다. 눈동자를 마주치고 바라보며 대화하길 좋아하던 나조차 옷깃을 저미었다. 다소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사람 대할 줄 모르는 분위기를 느꼈다. 그는 홀로 배지를 팔다가 사라졌고, 집필하던 기사를 삭제해 싣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이돌 세계에 발 딛고서 경험한 이상한 분위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금도 장충체육관 나서면서 약 먹었냐 물어보던 두 남성을 애틋하게 보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는 척할지언정 적어도 약한 부분 건드.. 2021. 1. 17. 22:53
[에셀라 시론] 내러티브의 종말 입력 : 2020. 12. 19  07:03 | A30 닫힌 사회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으로 주목했던 내러티브의 역설적인 오류를 발견하자 먼저 든 생각은 인간의 추악함이었다. 나의 세계가 존재하듯, 너의 세계도 존재한다는 그럴싸한 명제가 우리 사는 이 세계에 먹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쉽게 말해 착한 마음만을 가지고 살면 왜 이 세상 아름답지 않겠냐는 농담 같은 질문과 다르지 않는다. 그런 쉬운 방법이 가장 어려운 법이고 불가능에 가까워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하듯.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지도 않을뿐더러, 모든 사람이 감성주의자는 아니므로 더욱이 내러티브의 역설적 오류를 발견한 것도 이 때문이다.자신의 세계 속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캐릭터는 투사의 도구로 전락한다. .. 2020. 12. 19. 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