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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도서 활자에 담긴 모든 이야기:『타이포그래피 천일야화』 타이포그래피 천일야화 원유홍, 서승연, 송명민 지음 | 안그라픽스 | 368쪽 | 2만9천원 활자는 들여다볼수록 모르는 정보를 가르친다. ‘도진희’라는 세 음절(音節)에서 ❶이름 ❷성별 ❸국적 ❹종(種) ❺소설 속 주인공 등 많은 정보를 유추하게 만드는 것처럼. 이미지와 다른 속성을 보인다. 그런 도진희라는 세 음절 사이에 여백이 얼만큼 벌어져 있는지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커닝(kerning)의 개념은 활자를 정보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한글 창제 기원부터 오늘날 사용하는 글꼴에 이르기까지 알파벳의 영역도 포함해 디자인을 위한 정초(定礎)에 충실한다. 기원을 모르면 현대에 이르는 흐름도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학문적 지식은 매우 중요하다. 단지 알파벳에.. 2022. 6. 2. 더보기
문화/도서 삼풍이 무너지고 아파트가 지어져도 세상은 여전하다:『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56쪽 | 1만6천원 삼풍백화점 붕괴만 다루지 않았다. 사고 이후 기억에 초점을 맞춘다. 어째서 붕괴했는지, 보상 받기까지 과정, 새 아파트 지어지고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일목요연하지 않다. 흩어진 기억을 한데 모았다. 따라서 사회의 시선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이라는 삶의 정황을 비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이미 여럿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삼풍 참사의 진실’(2007)처럼 생존자를 중심으로 건축학적 원인을 다루거나 사체와 함께 잔해물을 매립지로 버린 사실을 드러낸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2015)도 있다. ‘KBS다큐 인사이트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시대유감, 삼풍’(2020)은 지대(地代)가 상승할 무렵의 강남 일대.. 2022. 5. 26. 더보기
문화/도서 어쨌거나 “‘학교폭력/디지털 성폭력/무관심’은 나쁘다”:『학교 안에서』 학교 안에서 김혜정 지음 | 사계절 | 200쪽 | 1만1천원 소설을 좋아하면서 바뀐 시선이 있다. 글줄이 길면 이걸 어떻게 상상하며 읽어야 할까 부담감이 앞선 나머지. 인물 묘사, 심리, 상황과 배경을 녹여낸 글줄이 싫었다. 잘 썼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예의 갖춘 독백을 접하며 부담감은 기대로 바뀌었다. 구매할 책을 고를 때, 대화보다 글줄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얼마나 글줄이 아름다운지를 먼저 살핀다. 도입은 좋았다. 학교를 폭파하려는 테러범에 맞선 힘없는 경찰과 영문도 모른 채 학교에 갇히고 만 학생들과 교사라는 설정 속에 앞으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여기까지 좋다. 부실한 대화, 어설픈 설정. 메시지는 명확하다. ‘학교 폭력은 나쁘다.’ 학교폭력 피해자 진술을 적절히 가공해 .. 2022. 5. 19. 더보기
문화/도서 병신 같은 노동 착취… “한국 사회 문해력을 묻는다”:『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60쪽 | 1만5천원 어쩌면 이 손님과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생각 없이 바코드를 찍어댔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는 말해둔 상태다. 다음 근무자를 구하기 전까지만 일하기로 돼 있었다. 정확히 일주일. 일주일 만에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이어진 사장의 말은 지금도 뇌리에 박혀 있다. “그건 네 사정이고!” 반년에 가까운 시간, 편의점에서 보내온 야간 근무는 즐거울 때도 많았지만 힘겨울 때도 많았다. 밤을 새야 하기에 피로가 누적되어 자도자도 피곤함 연속이다.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다가왔다. 처음 일 시작할 무렵 입었던 옷을 꺼내 입었다. 맞은편 초등학교엔 가을 운동회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출근 후 정겹게 웃으.. 2022. 5. 12. 더보기
문화/도서 흔전동 재개발 구역에서 들려오는 네 울음 소리:『구달』 구달 최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64쪽 | 1만1500원 달빛이 비치는 재개발 구역으로 묘사하기 위해 이름을 구달로 정한 게 아니었을까.(246,1) 노란색 구달의 달빛으로 물드는 표지를 쓸어내렸다. 듣고 싶지만 들을 수 없는, 그러면서도 듣고 싶어 귀 기울이는 달이를 상상하며 한 페이지 넘겼다. 언제부턴가 달이는 알 수 없는 소릴 듣게 됐다. 365마트 할머니 손자 강문이의 흔들리는 치아 소리(39,2)에서 걸어가던 여자 구두 굽 또각 소리(42,2)까지. 재개발 앞둔 골목이라 들릴 만한 소리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방에서 훌쩍이는 재현이의 울음소리를 달이의 방안, 눕다 보면 견디지 못할 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자고 일어난 아침은 모든 감정이 민낯 그대로다. 무방비 상태로 솟아오른 욕망과 생각.. 2022. 5. 5. 더보기
문화/도서 겨울의서원 지키려 숨 죽여 기다려 온 산바:『멧돼지가 살던 별』 멧돼지가 살던 별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184쪽 | 1만1500원 한순간 져버린 열여덟 生 국가적 폭력이 빚어 만든 비참히 남은 마음의 상흔 그리고 말없이 떠난 악인 폭력성 주의 잔인한 아버지의 폭력에 눈을 감고 싶었다. 도무지 읽기 어려웠다. 이빨이 딱딱 거리는(33,5) 소녀 유림에게 가감 없이 주먹질 해대는 인간에게 그보다 더한 멍자국을 내주고 싶었다. 힘을 가진 아버지는 힘없는 딸을 내치고 이용해 먹으며 내쳐버린다. 용서하기 힘들었다. 죽이고 싶었다. 불편한 감정은 충동에서 그쳐야 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기에 몸은 상흔 자체를 외면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같은 방식으로 오래도록 외면했던 10년 전 열여덟 살 소년이 떠올랐다. 스포일러 주의 이 소설은 아버지에게 정신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 2022. 4. 28. 더보기
문화/도서 몸만 어른인 사춘기 소년들 입에다가 토마토 된장찌게나 물리자고:『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범유진 지음 | 탐 | 192쪽 | 1만1천원 존댓말하는 어른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반말이 아니라 존댓말로 어린 사람 대한다는 건 한 가지 전제를 담는다.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인간으로서 바라본다는 점. 그런 어른에게는 상하 관계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월하고 열등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모자란 부분을 알기에 가르치지 않는다. 어른들은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행사한다. 꼭 주먹을 사용하지 않아도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폭력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권위에 호소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움직인다. 나약한 이들은 겁 먹고 주먹쥔 호통에 쉽게 따른다. 일일이 고민하지 않아서 편하다. 문제에는 해답이 있고 해답을 찾아가는 지루하고 어색한 갈림길의 연속이지만 쉬운 길을 찾다.. 2022. 4. 21. 더보기
[문정동 서재]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 外 비공개 기사입니다. 더보기
문화/도서 빈 공간 되어버린 동네에서 사라진 수지를 찾는 소년:『편의점 가는 기분』 편의점 가는 기분 박영란 지음 | 창비 | 236쪽 | 1만2천원 사람이 몇 없는 동네란 낯설다. 귀신이 살 것 같거나 나쁜 사람들이 숨었다는 낯섦보다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던 이곳이 한 순간 싸늘한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감정이 두렵게 만든다. 항동 철길 거닐기 위해 천왕역에서 나오자 머잖아 낯선 풍경과 마주했다. 접근금지 팻말 좌우로 빨갛고 하얀 무늬 띠들로 가득했다. 흰 종이에 쓰인 문장에는 재개발로 시작하는 내용이 보였다. 철제문이 사라진 빈 출입구엔 거미줄까지 가로 막았다. 며칠 전만해도 어린이가 등교할 것만 같은 풍경에서 낯선 감정을 느꼈다. 한 두 건물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집근처 슈퍼마켓, 상가 건물, 원룸도 같았다.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주인공 소년의 시야에 담긴 구지구(舊地區)는 어땠을까. .. 2022. 4. 14. 더보기
문화/도서 직관적으로 슬픔을 말하는, 그래서 벗어나고픈:『다정한 마음으로』 다정한 마음으로 박영란 지음 | 서유재 | 220쪽 | 1만1천원 슬픔을 말하지 않고도 슬픔을 묘사할 수 있을까. 읽는 동안 두 번이나 그만 읽고 싶었다. 재미가 없는 건 그렇다 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능 볼 나이의 여고생이 산에 올라간다는 소재만으로도 신박했지만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산에 힘겹게 오르기까지의 과정도 아니다. 금세 산에 오르고 내려가는 내용이 전부다. 하나도 궁금하지 않고 재미도 없는 대화와 독백이 이어지다 끝자락에선 졸음마저 몰려왔다. 그 무렵 주인공 다정이가 왜 산에 오르는지 드러난다. 드러나는 방식이 명백해서 어색함마저 느껴진다.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말하려는 건 알겠다. 그러나 소설로 말할 수 있는 문법인지 의문이 들었다. 가공한 결과가 지루함과 무의미한 반복으로 보일 .. 2022. 4. 7. 더보기
문화/도서 [마음 속 그 사람] 도진희, 너는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다:『첫사랑 라이브』 첫사랑 라이브 조규미 지음 | 창비 | 188쪽 | 1만2천원 다섯 주인공보다 혹독했을 어른으로 자라가던 도진희 견뎌내는 진희 네가 좋아 진희라면 어떻게, 진희라면 무엇으로, 진희라면 누구와. 이 난국을 타파할지 궁금했다. 기대와 달리 일들이 술술 풀려서 아쉬웠지만. 이제 1학년일 여고생에게 많은 걸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애 모르게 마음 한 자리 차지한 지평이를 대하던 서툰 감정에 머물렀다. 언제부터 그 애가 내 마음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그 애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애한테 다가온 여자애는 어떤 사이일까. 그 애 마음에 내가 없으면 나라도 멀어져야 하는 걸까. 다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문제 앞에서 쩔쩔매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손에 쥔 것 같아도 펼쳐 보면 아무 것 가지잖은 초라함도.. 2022. 4. 3. 더보기
문화/리뷰 [영화 리뷰] 교생과 키스하던 모습을 보면서 계획된 사랑이란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악당」 명분으로 숨겨둔 네 질투심 넌, 날 좋아하기라도 했니? 혜진이는 민지를 사랑했을까. 혜진이 행동을 따라가다 결말에 이르렀을 때, 민지가 혜진이와 교생을 경멸하듯 쳐다보는 표정처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랑? …… 이 선생님 미친 거 아니야?” 폴라로이드 필름에 담긴, 자고 있던 교생과 그 옆에서 웃고 있는 여자애. 애석하게도 혜진이는 ‘사진 속 여자애가 왜 내가 아닌 거야’ 질투하는 어투로 들렸다. 미성년자와 성인의 연애를 비정상으로 보는 시각은 교생을 끌어내리려는 명분일 뿐이고. 사실은 그 여자애가 내가 되었어야 한다는 질투심이 혜진이 마음에 도사리고 있었다. 민지는 혜진이의 행보를 읽었어야 했다. 다른 여자애와 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명백한 증거를 제외한 이유를 물었어야 했다. 애매한.. 2022. 4. 3.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