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now]97 [인류의 마음 박물관] 라디오에서 들려온 ‘세상:소음’, 어른이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인걸 “밥은 챙겨 먹을 수 있겠어?”“나 열여덟이야. 어른 면허증 취득해야지.”정부는 ‘어른 면허증’을 도입했다. 사람마다 어른이 되는 속도는 다른데 모두 20살에 어른의 책임감을 갖는 건 불합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를 기점으로 사춘기 소녀가 어른이 되는 경우도 생겼고, 반대로 50살이 넘어서도 아이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권력자들의 상당수는 아이가 되었다. 이제 이들은 권력은커녕 어른 면허증을 따기 급급한 처지가 되었다. 면허증의 요건이 수록된 어른 사전이 나오기에 이르렀으니 말 다 한 셈이다.나는 여름비를 배경 삼아 어른 사전의 책장을 넘겼다. “어른에게 필수적인 자질은…. 하암.” 하루 종일 사전만 괴고 있자니 눈이 절로 감겨왔다. 수면제가 아주 따로 .. 2024. 11. 20. 19:00 [편의점은 요지경①] 어색한 낯, 언짢은 투, 살가운 척… 완전 꼰대 같은 교대 근무자 “‘또 오세요’는 무슨!” 께름칙한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 겉모습은 겉모습일 뿐, 지레 짐작했던 내가 바보였다 “’또 오세요’는 또 오란 소리 같잖아. ‘좋은 하루 되세요.’ 정돈돼야지.” 기분이 팍 상했다. 또 오란 말이나 좋은 하루 되란 말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첫 만남부터 어긋난 것 같았다. 다른 시간대 근무자 말이다. 나의 근무 시간은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다. 사장님이자 점장님은 연습 겸 오후에 나오라고 하셨다. 첫 만남은 순조로웠다. 가벼운 캡 모자를 쓴 중년 아저씨였다. 인상이 좋았다. 아르바이트생이 될 나에게 음료수 한 잔을 건넨 후덕한 인품이 마냥 좋았다. 그 할아버지(진) 근무자가 마음에 걸렸지만 말이다. 사장님은 너그러웠다. 포스기를 다루는 방법부터 냉장 진열대에서 매대 각 분.. 2024. 11. 2. 07:00 [주마등] 너에게만큼은 찐따로 보이지 않길 바랬는데 “진성아, 나 좋아하지 말아줘.”이게 무슨 말이지. 싶어 쭉 읽어 내려간 글은 320자 분량. 꺼림칙한 기분으로 속독했다. 대충 내용은 이랬다. “네가쓰는ㅋㅋㅋㅋㅎㅎㅎㅎ과도한자음들말야날남들보다좋아하는느낌이란생각이들어나는너한테관심없고좋아하는것도아니야난너와친하다고생각했지좋아하는그런사이로생각해본적없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 호감. 호감 정돈 가진 건 맞다. 하지만 좋아했다는 건 억울한 오해다. 고백한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디펜스하는 게 어딨나. 불쾌한 답장에 기분이 꽁했다.의자에 기대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그 애랑 둘이서 채플에 빠지던 날이 떠올랐다.교통사고는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치기에 교통사고겠지우리 학교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점심이면 채플에 참석해야 한다. 채플은 기독교.. 2024. 10. 22. 16:00 상품으로 포장한 가구의 편리함… 그곳에 여성은 없었다:「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展」 파격적이었다. 전시를 보고 나서도 여성에 대한 오명(汚名)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성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굳게 믿어 왔다. 한 뼘도 진일보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들었다.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 6 전시실에서 내년 3월 3일까지 열린다. 신체성의 관점에서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여성 미술의 동시대적 의미를 새롭게 살피고자 아시아 11개 나라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 130여 점을 모았다. 근대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작품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시를 통해 ‘내 밖의 존재와의 접속을 이끄는 예술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고 한다. 관람료는 5000원. 가사노.. 2024. 10. 12. 07:30 [지금,여기] 신나게 노느라 배고프지? 수일통닭으로 놀러와~^^ 말복에 찾아간 광주 양동시장푸짐한 상 넉넉한 인심에 흠뻑 광주에서 쉬는 동안 반년 간 네 번을 찾아갔다. 두 달에 한 번은 꼭 찾게 되는 양동시장에 있는 수일통닭.2만4000원이면 닭 한 마리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하필 말복(末伏)에 찾아가선지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이 나왔다. 이렇게 장사하다간 남는 게 있을지 싶을 지경이다. 늘 찾아가도 집에 갈 때면 배가 불러 남은 치킨은 포장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양념이 듬뿍 묻은 치킨 한 조각에 제로콜라 한 잔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포장도 가능하지만 가서 먹는 것을 권한다. 포장 줄이 꽤 길기 때문이다. 말복이라 평소보다 줄지은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더운 날 포장해 먹는다고?’ 줄 선 사람들 사이로 가게에 들어갈 때의 짜릿함이란. 집까지.. 2024. 8. 24. 07:02 [지금,여기] 입안 가득 ‘사르르’ 상하농원에서 아이스크림 만들기 “도-전 !” 커다란 볼에는 소금이 담겨 있었다. 얼음을 붓고 살짝 으깨어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웅덩이에다 휘핑크림과 우유가 담긴 작은 볼을 장착해 왼쪽으로 열 번, 오른쪽으로 열 번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우유가 담긴 볼에 작은 막이 형성 되었다. 플라스틱 주걱으로 떼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곧 아이스크림이 되었다.상하농원 체험교실 A반에서 ‘과일공방잼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체험했다. 15일 오후 1시 30분, 시간에 맞추어 입실하자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이미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선생님의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체험시간은 총 40분이었다. 친절한 설명 덕분에 체험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가격은 2인용 1좌석 3만5000원.블루베리, 초코시럽, 과자 등을 완성한 아이스크림에 뿌렸다. 여자친구와 한.. 2024. 8. 24. 07:01 [지금,여기] 상하농원에 가면 🐷아기 돼지도 있고 🐑양 친구도 있고 입구에서 바라본 농원의 풍경은 아늑했다. 무척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매미 우는소리만 가득했다. 광복절 연휴 상하농원에는 가족 방문객만 눈에 띄었다. 사람들로 붐빌 줄 알았지만 꽤 적막했다. 무척 신이 났다. 하루 반나절을 이곳에서 뒹굴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당장 눈앞 텃밭정원에는 땅콩 잎이 파릇하게 웃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상하키친과 햄공방이 서 있었다. 검은색 벽돌과 빨간색 벽돌이 촌스럽지 않았다. 나무들 사이에 숨은 공방 건물들은 땡볕에 서서 사진 찍게 만들 만큼 멋들어졌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점심이었다. 배가 고팠다. 상하키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주 운암동에서 두 시간… 말없이 뚜벅뚜벅 ‘고불길 탐방’원래 계획은 오전 중에 여자친구와 이곳 상하농원에 도착하는 일이었다. 하필 시내버스에서.. 2024. 8. 24. 07:00 [마감하면서] 볕, 방 안 가득 행운에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사람 평가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기가 센 사람들.” 이삿짐센터 직원의 평가입니다. 누구를 가리켜 한 말일까요.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다며 한 걸음에 충남 보은에서 서울까지 운전한 시규가 찾아온 날이었습니다.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는 도중 경계심을 풀지 않고 “누구시냐”라고 물은 건 503호 오모 씨였습니다. “202호 방문 차량입니다.” 고개를 흔들며 피곤한 일에 엮이고 싶지 않다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2년이란 시간 문정동에서 살며 느낀 인간상은 ‘돈에 미친 인간들’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전전(前前)직장으로부터 상사를 상대로 ‘해고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회사에 이르기까지 돈을 우선시하지 않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루 최선을 .. 2024. 5. 14. 02:10 [작품 해설] 뒤틀린 욕망과 불안… “운세 한 문장에 세상이 바뀌면 얼마나 좋아” 연결 기사[단편소설] 당신의 운세를 써드립니다 반세기 운명이 지면 귀퉁이에 인간의 생사고락 담은 운세면 여고생, 구름도사 변신해 집필 우연히 벌어진 기적 같은 나날 허나 나아진 것 하나 없는 삶신문 운세 코너는 언제나 오락적 요소를 가진다. 독자들은 운세가 미래를 예견할지 기대하기도 하고 지나간 일을 맞췄는지 따져 묻기도 한다. 운세는 한 문장도 되지 않는 토막 수준의 글이 담겨 있다. 1927년생부터 1998년생까지 약 70년 인생이 년(年) 단위로 묶여 가장 넓은 대상의 독자를 갖췄다. 하지만 미성년자는 사주의 대상이 아니므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학보 이른아침매화가 운세 코너를 신설하려는 것도 같은 학교 고등학생의 독자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좀 더 신문을 오락적 요소로 보이기 위한 방법으로 운세 .. 2024. 5. 14. 02:01 [단편소설] 당신의 운세를 써드립니다 “운세는 그닥. 타로카드가 더 잘 맞추던데?” 교실은 1교시가 끝나도 짹짹거리는 소음으로 조용할 틈 없었다. 자고 싶어도 귓가에 스며드는 말마디 한 마디가 거슬리기만 했다. 그놈의 운센지 타로카든지 찢어발겨도 모자란 것들. 다시 책상과 하나가 되어 잠들었다. “이유나, 안녕.” 다시 꿀잠을 깨뜨린 건 차기 학생회장 김도진. 이미 점심 먹으러 간 애들 사이로 조용해진 다음이었다. “글쓰기 한 번에 3만원. 어때?” 귀하신 곳에 누추한 분이 웬일로. “몇 번.” “한 달에 두 번.” 솔깃한 제안. 굳이 날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질 때쯤 김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알바하는 거 힘들어 보여서. 달에 6만원이면 괜찮은 조건 아닌가.” 건네받은 명함을 흘겨보았다. “좋은 뜻으로 알고 있을 게. 7교시 마치고 학보.. 2024. 5. 14. 02:00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