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now]117 [지금,여기] 어스름한 저녁, 사람 사는 냄새… 고즈넉한 신사의 뒷골목 풍경 「3박4일, 도쿄여행③」 우리의 여정을 잠시 중단해야 했다. 무척 따가운 햇볕에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신주쿠에서 아카사카미쓰케역(赤坂見附駅)까지 이동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다시 숙소로 돌아간 것이다.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나는 잠시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10분이었을까. 내가 코를 골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그 짧은 시간의 수면이 내게 개운함을 안겼다. 여자친구는 릴스를 보면서 쉬고 있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시간이 4시 반쯤이었다. 이대로 저녁까지 아무 것도 안하며 쉬기만 하기엔 무척 아쉬웠다. 여자친구가 아사쿠사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③ 아사쿠사오코노미야키와 말차라테·붕어빵 든든한 저녁 밥상 뽑아본 한해 운세 “대길, 최고의 길운” 우리는 긴자라인(G) 다메이케산노역(溜池山王駅)에서.. 2025. 9. 13. 16:24 [지금,여기] 풋풋한 연인의 사랑, 달달한 덮밥의 진미 ‘도쿄의 일상’ 「3박4일, 도쿄여행②」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우리의 하루는 오전 7시부터 시작됐다. 어제 새벽 4시 반에 기상해 종일 걷고, 서두르거나 깨어 있었으니 피곤이 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밤 11시에 잠들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노곤해지는 게 여자친구의 뱃살을 만질 겨를이 없었다. 여자친구는 내가 엄청나게 코를 골았다고 한다. 느릿느릿 빨래를 하고, 편의점에서 산 과일음료를 마셨다. 냉장고에 넣었음에도 미지근한 온도였지만 맛은 최상이었다. 나와 여자친구는 그러려니 했다. 첫 일정은 시부야로 정했다. 사실 나와 여자친구는 여행 계획을 대강 잡아 두었다. 하루는 어디를 가고, 또 하루는 어디로 가는 식으로 말이다. 중간중간 괜찮은 데가 있으면 둘러보면서 즐기기로 한 것이다. 오후에는 오모테산도(表参道)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 2025. 9. 13. 16:22 [지금,여기] 머지않아 비가 쏟아졌다… 긴자의 한 텐동집에서 「3박4일, 도쿄여행①」 긴자, 도시 내음이 진했다. 이토야 문구점을 나온 순간이었다. 특유의 냄새에 사로잡혔다. 여자친구 손을 잡고, 긴자 1초메(銀座一丁目)를 거닐었다. 바삐 걷는 사람들, 여유로운 우리의 발걸음, 그 사이 저물어가는 노을을 온몸으로 지각했다. 어디서 저녁을 먹으면 좋을지 우리는 고민했다. 지겨울 정도로 본 편의점 로손(Lawson)을 지나쳐 꽤 그럴듯한 식당을 발견했다. ‘텐동텐야 긴자점(天丼てんや 銀座店)’ ① 긴자이토야 문구점까지 종일 걷고 또 걷고 주린 배 쓰다듬다 발견한 한 텐동집 맛으로 대접하는 존귀한 서비스에 “고치소사마데시타” 상당히 목이 말랐다.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 나이든 점원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곧 시원한 물을 내오며 정중히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일본 .. 2025. 9. 13. 16:20 [인류의 마음 박물관④] “너에겐 상처밖에 줄 수 없는데… 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까” 눈을 뜬다. 새벽 중 유일하게 보이는 건, 창문 너머 달의 뒷면. 다른 빛에 의지해 간신히 보이던 뒷모습은 어쩐지 하릴없이 처량해 보인다. 누가 달에게 돌을 던졌을까. 그의 등엔 온통 파란 멍들 뿐이다. 상처에 연고조차 발라본 적 없는 것처럼 우주의 침묵을 닮은 흉터들. 난 그 흉터에서 태어났다. 우주의 침묵을 먹고 피어난 아이. 누군가는 나를 눈물이라 부른다. 어떤 이는 내게 우울이란 병명을 붙이곤, 역겨운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그래도 난 그 시선조차 고마웠다. 드디어 내게도 이름이 생긴 걸까. “끔찍해. 다시는 ‘우울’에 발붙이고 싶지 않아.” 나를 향한 온갖 말들은 보이지 않아도 귀를 관통해 들어왔다. 처음엔 사람들이 주는 관심이 마냥 좋았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 난 모두가 외면한 존재였기에 무시.. 2025. 5. 20. 19:00 [인류의 마음 박물관③] 별스럽고, 색다른 낯선 얼굴의 너… 다르니까 스며들 수 있는 거지 그곳엔 끝없는 자연 티 없는 풀, 꽃, 잎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나타난 무리 생소한 낯, 눈, 결이 내 가슴을 두드렸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알프스의 능선 위로 하얗게 쌓인 구름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도시는 진작 점이 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따분한 회색빛 도시들은 어느새 흙 내음을 머금은 산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동화 속에서 미끄러져 나온 것만 같아….” 한때 이곳의 기억은 할머니가 타계하신 후로, 마음속 무덤에 영원히 묻어두기로 다짐했었다. 그리움과 맞이하는 아침이 아파서.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이 산장의 냄새는 변치 않나 보다. “주디야, 다 왔다. 어서 내려서 짐 챙기고 올라가 있어.” 산장은 사람의 손길이 한동안 닿지 않았음에도, 내가 마지막으로 집에 작별을 고했을 때의 모습 그대.. 2025. 3. 20. 19:00 [인류의 마음 박물관②] 감정필름관, 추억을 인화해드립니다 “공간은 시간을 간직한다던 네 말, 진짜더라. 네가 없는 집에 앉아 있으면 늘 하던 대로 소파 한쪽에 기대곤 해. 네가 평소에 앉던 자리를 바라보면, 괜히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자주 가던 카페에서는 우리가 늘 앉던 창가 자리가 눈에 들어오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 공간들에 우리 흔적을 조금이라도 더 남겨둘 걸 그랬나 봐. 갈 때마다 네 흔적이 희미해질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단 말이야.” 창문에 내려앉은 입김이 사라지기 전, 서둘러 너의 이름을 새긴다. 하지만 석 자를 다 쓰기도 전에, 넌 허공으로 증발해버렸다. 지워진 이름을 손으로 문지르는 것만큼이나 덧없이, 주머니 속에서 너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냈다. 사진 한 장. 그것이 모든 걸 시작했다.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들은 사실, 마르지 않는 바다였.. 2025. 1. 20. 19:00 [작품 해설] 연애 계약서와 감정의 충돌… 학보사에서 벌어지는 달콤 로맨스:『문소혜에 관하여』 연결 기사[단편소설] 문소혜에 관하여 이 작품은 학보사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두 인물의 감정적·심리적 성장과 관계의 변화를 밀도 있게 그려낸 성장 로맨스다. 작품은 두 주인공, 우다원과 문소혜의 얽히고설킨 감정선을 중심으로 일과 사랑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이야기를 전개한다. 학보사를 둘러싼 다양한 사건과 갈등은 단순히 플롯을 구성하는 요소를 넘어, 인물의 내면과 성장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작품은 독자에게 삶과 관계의 복잡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학보사와 두 사람의 첫 만남작품의 도입부에서 소혜가 다원에게 접근하는 장면은 단순한 제안에서 시작된다. “소원 하나만,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라는 대사는 소혜의 성격과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하는 중요한 장치다. 다원은 이 제.. 2024. 12. 31. 18:45 [단편소설] 문소혜에 관하여 “소원 하나만. 해달라는 거 다해줄 게.” 누가 봐도 혹 했을 거다. 동그래진 눈동자. 달아오른 얼굴.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빤히 쳐다보는 얼굴을 피해 눈을 내리깔았다. 마주칠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무척 어색했다. 가슴에서 허벅지, 허벅지에서 벽시계로. 시선 처리가 다급해졌다. 도대체 뭐길래 해달라는 걸 다 해준다는 걸까. 넌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겠지. 그렇지만 난 그 한마디에 밤잠까지 설쳐야 했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도 같고. 어제였다. 내 마음을 들었다 놓은 같은 반 문소혜 말이다.“재수 없어.” 집에 돌아가려던 저녁 어느 날이었다. 문 꽝 닫고 들어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내 앞자리 문소혜였다. 째려보는 내 눈빛에 무안했는지 교실을 한번 훑는 것이었다. 나밖에 없다는 걸 확인했는.. 2024. 12. 31. 18:40 [팔짱만 껴도 좋은걸①] 너와의 300일… 고마워, 사랑해 끝없이 이어진 걱정과 불안 그럼에도 “팔짱만 껴도 좋아” 여자친구가 아니었더라면…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푹푹 찌는 여름이었어도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을지로에 있는 커피한약방에 다다랐다. 급하게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했다. 쏟아지는 빗방울을 겨우내 피하고 당근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었다.그래도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이번엔 꽤 좋은 직장을 구했다. 하지만 언제나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이직에 성공하면, 사라질 걱정쯤으로 생각했지만 달랐다.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에 대한 걱정, 1년 후에도, 2년 후에도 나는 이 자리에 여전히 굳건히 서 있을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우리는 장거리 커플이다. 일을 하는 중에는 주말에만 만날 수 있다. 예상하지 않은 고용 한파에 나는 오랜 시간 백수 생활.. 2024. 12. 30. 22:45 [마감하면서] 소담한 저녁의 부활 회사를 다녀오고 도착한 집은 언제나 어둠뿐이었습니다. 짙푸르고도 고요합니다. 주말이 되면 소리 없는 풍경에 어디든지 나가게 만들었습니다. 문정동 시절 저의 삶은 어둠 속 별을 바라는 소담한 꿈을 품게 했습니다. 이번 겨울,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회사를 관두었습니다. 전례 없는 이직 한파에 저는 오래도록 쉬었습니다. 혼자 쉴 때와는 달랐습니다. 늦게 일어날 일도 없었고 배를 굶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규칙적인 삶을 살면서 에세이를 써 내려갔고 이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지친 몸, 더욱 축 늘어져 아무 일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매일 밤이 두려웠을 겁니다. 매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막연한 공포감이 압도했을 겁니다.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는 스타벅스에서 짧든 길.. 2024. 12. 30. 19:14 이전 1 2 3 4 5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