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세는 그닥. 타로카드가 더 잘 맞추던데?”
교실은 1교시가 끝나도 짹짹거리는 소음으로 조용할 틈 없었다. 자고 싶어도 귓가에 스며드는 말마디 한 마디가 거슬리기만 했다. 그놈의 운센지 타로카든지 찢어발겨도 모자란 것들. 다시 책상과 하나가 되어 잠들었다.
“이유나, 안녕.”
다시 꿀잠을 깨뜨린 건 차기 학생회장 김도진. 이미 점심 먹으러 간 애들 사이로 조용해진 다음이었다.
“글쓰기 한 번에 3만원. 어때?”
귀하신 곳에 누추한 분이 웬일로.
“몇 번.”
“한 달에 두 번.”
솔깃한 제안. 굳이 날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질 때쯤 김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알바하는 거 힘들어 보여서. 달에 6만원이면 괜찮은 조건 아닌가.”
건네받은 명함을 흘겨보았다.
“좋은 뜻으로 알고 있을 게. 7교시 마치고 학보사에서 보자.”
갑작스런 전개에 잠이 확 깼다. 꼬르륵 배가 울렸다. 명함에는 ‘이른아침매화 학보사 편집국장 문소혜’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더러 운세를 써달라고?”
어이가 없었다. 문소혜가 한 말이 웃겼다.
“봐봐. 북쪽은 가지 마라, 노란색은 조심해라. 그런 건 잘 틀리잖아. 사소한 감정도 조심, 담대한 마음을 갖도록. 이런 건 맞출 가능성이 높아. 왜. 하면 좋고 안하면 아쉬운 것들이니까.”
날 알선해준 김도진은 협상 테이블에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운세는 어디에 실리는데?”
소혜는 말없이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화면에는 다음 주 학보가 펼쳐져 있었다. 아래는 여백으로 비워져 있었는데 운세가 들어갈 자리 같았다. 기사 제목이 보였다.
‘구름도사, 당신의 운세를 써드립니다’
꽤 치네.
“유나야. 이쪽 문화면 하단에 들어갈 거 같아. 내일 모레까진데 가능해?”
말없이 끄덕였다. 글 쓰는 애라 그런지 입에 착 달라붙게 만드는 작명 센스가 맘에 들었다. 어디서 알아낸 건지 체육관 뒤에서 몰래 피우던 전자담배에 빗댄 별명 같았다.
새 별명. 구름도사, 이유나.
“유나야, 따라와 봐.”
소혜는 그동안 모아둔 각 신문의 운세 면을 책상에다 모조리 흩뿌려 놓았다. 보기보다 심오했다. 1927년생부터 1998년생까지 세어보면 70년 인생이 종이 한 귀퉁이에 묶여 있었다. 촘촘하게 짜놓은 각본 같달까. 손바닥만 한 작은 우주. 한 문장도 안 되는 열다섯 자 남짓 글귀에는 하찮은 인간들의 운명이 가둬져 있는 듯했다.
은근슬쩍 담배를 꺼내 물었다. 소혜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막대사탕을 입에 물었다. 학보사는 치외법권이란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다. 담배구름 너머 창밖 도시를 맥없이 바라보다 소혜가 스크랩한 신문을 집었다. 솔직히 신문처럼 년도로만 묶는 건 트렌드에 뒤떨어진다. 맞출 가능성도 낮다. 운세 자체에 관심 없는 애들이라면 더더욱. 한 장만 제대로 휘갈기면 한 달 용돈이 손안에 들어온다.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애들을 상상하며 쓴다지만 어느 정돈 맞춰줘야 보는 맛도 있고 꽁돈도 타먹고.
“근데 우리 운세는 어딨어?”
“우린 미성년자니까. 부모에 의해 주위 환경이 잘 바뀌는 거라 안 보는 거래. 그니까 우리가 써보자는 거지. 운명을 만드는 작업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그 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운명을. 만드는. 작업.
문뜩 MBTI가 떠올랐다. 성향별로 묶어보면 어떨까. 우리 학교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각각 8반씩 있다. I·E, N·S, F·T, J·P. 1반에서 8반까지 짝 지어 연결하는 방식.
그러니까
I N F J
E S T P
1 2 3 4
5 6 7 8
이렇게 배치해 신문에서 아무 문장이나 채워다가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쳐봤다. 내 MBTI는 ISTP에다가 5반이니까…. I 마음의 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S 할 일 많겠지만 차근히 해보면 T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 P 귀인에게서 에너지를 얻게 되니 5 버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문소혜, MBTI.”
“나? ENFJ.”
“문소혜, ENFJ에다가 5반이면…. 서러운 일 이것뿐이랴/네가 걸어가는 길이 곧 길/기분이 곧 태도가 되는 아침이어도/모든 계획 틀어져도 마법 같은 하루에 생글/고통 줄이려면 남에게 털어놔라.”
“올, 신박한데?”
뭔가 그럴싸하지만 좀 더 꼼꼼하고 치밀한 글이어야 했다. 무턱대고 읽은 종이신문에서 여우같은 문장들을 발견했다.
‘비오고 땅이 굳는 것처럼 순리대로’
‘공돈인 줄 알았더니 푼돈이로구나’
마음의 굳은 결심대로 풀린다거나, 바라지 않았던 일들이 척척 해결될 수도 있다. 어쩌면 소혜의 5만원이 나를 옥죄는 푼돈 일수 있고, 좋게 해석해서 남의 돈 쉽게 버는 거 아니라는 정도의 작은 교훈일 수도 있다.
막연히 알던 운세와는 차원이 달랐다. 신문이 가리킨 것은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심리였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욕망하는지 해석하는 독자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문장들이었다. 사람들이 운세를 읽는다는 건 보고 싶은 걸 보기 위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쁜 일을 미리 알려는 두려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맞히려는 정복감,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이 세계의 질문에 답해보려는 욕망 때문 아닐까.
“MBTI에다가 운세를 엮다니. 4만원이 아깝지 않겠는데? 한 달에 두 번, 2만원씩 맞지?”
뒤에서 정치하는 년 답게 간도 예쁘게 본다. 오른다리 꼬아 어슷하게 팔짱끼고 되물었다.
“꽁으로?”
“내 용돈까지 부울 순 없잖아. 3.”
소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만원 찔끔 올렸다.
“돈 없으면 학보사 문 닫으셔야지.”
“알았어. 5만원. 됐지?”
“콜.”
계약이 성사됐다. 나머진 뭐라고 써볼까. 한 대 더 피우긴 뭐하고. 걍 집에서 쓰자. 오늘은 여기까지.
“나 간다. 빠이.”
“구름도사님, 마감 늦지 마.”
돌아오는 길 세상이 조금은 달리 보였다. 보고 듣는 모든 게 다 운세 거리였다. 10만원 받을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났다. 집으로 뛰어가는 아이를 보며 ‘돌 뿌리에 넘어질라’ 팔짱끼고 걷던 연인에겐 ‘욱하다 한 번에 훅 갈지도’ 이어폰의 페퍼톤스에게선 ‘시작하는 여행자여 안녕’ 버스 라디오에서도 힌트를 얻었다. “오늘의 명언은 윌리엄 포크너의 말입니다. ‘내일이란 오늘의 다른 이름일 뿐.’”
매일 낮에는 학교에서 문장을 짓고 밤에는 침대에 엎드려 퍼즐마냥 끼워 맞췄다. 문장은 총 열여섯 개다. 서로 매끄럽게 이어지게 하려고 마감 전날까지도 머리를 싸매야 했다.
16년 이유나 인생, 이런 몰입은 처음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읽어줄까. 내일 아침이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모두의 운명이. 믿거나 말거나.
는 무슨.
아침 등교 때부터 복도에서 비치는 강렬한 햇살을 넋 놓고 바라만 보았다. 그것도 주저앉은 채로. 신문을 뭉치 째 배달하다가 모르는 애랑 부딪치면서 더미 째 터진 것이다. 놈은 “미안” 이 한 마디만 남겨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교실로 들어가느라 외면하는 사람들, 구겨진 신문은 내 얼굴마냥 추하게 보일 뿐이고. 축 늘어진 몸뚱이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뿐이고. 아씨, 괜히 교문 앞에서 인사하는 게 아니었어. 담임이 학보 주간이란 걸 잊은 내가 바보다. 그 새낀 내가 넘어졌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겠지. 이 각박한 세상아!
“유나야, 괜찮아?”
넘어진 걸 본 지수와 혜인이가 달려왔다. ‘역시 믿을 건 친구들뿐이야’ 생각하다가 뺨 옆으로 내민 손을 뒤늦게 발견했다. 잘 생긴 남자애였다. 믿기지 않아 눈을 비볐다. 일어나려다 또 한 차례 발목을 접질렀다.
“업혀.”
“그래! 유나 공주님은 남자애한테 업히시고, 여긴 우리가 대충 정리하고 들어갈 게.”
엑. 유나 공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수는 ‘모솔 탈출하면 아웃백’이라고 귀띔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담임과 마주쳤다. 시선을 피해 고개를 푹 숙였다.
“유나 공주님, 키 많이 크셨네요. 신문 배달비는 챙기셔야지.”
웃으며 손에다 학보를 꼭 쥐어주는 담임이 존나게 미웠다. 낑낑 대다 발목까지 접지른 노동의 대가가 고작 신문 한 부라니. 대놓고 버릴까 말까 하다가 어떤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끝까지 넣을까 말까 고민하던 그 문장이었다.
‘그래도 괜찮은 순간들 함께 걷다 보이는 길.’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침을 몰래 삼켰다. 내 키보다 높은 상공에서 들이마신 공기는 신선했다. 괜히 심장소리 들려주기 싫었다. 가슴이 닿지 않게 어떻게든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애를 쓰면 쓸수록 자세가 흐트러졌고 남자애는 기침하듯 다시 나를 끌어 올렸다. 교실에 들어서자 애들은 우리 둘을 보고 환호했다. 쪽팔리기도 하고 좋기도 하면서 시간이 멈추었으면 싶었다.
“고마워. 기프티콘이라도 보낼 게.”
빠르게 신문에다 번호를 적어주려다 또 한 차례 문장에서 멈칫했다.
‘눈 비비다 어느새 다가온 새로운 계절.’
더욱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신문을 받아든 남자애가 말없이 교실로 돌아갔다.
학보사 소파에 누워 담배를 피우며 구름도사의 기운을 받는 동안 내 운세를 질릴 때까지 읽었다.
‘시작하는 여행자여/눈 비비다 어느새 다가온 새로운 계절/지는 청춘, 목련만 하겠나/우정이란 단단한 받침대/그래도 괜찮은 순간들 함께 걷다 보이는 길.’
내가 썼지만 무척 잘 들어맞는 것 같았다. 구름도사로서의 새로운 나날, 지수와 혜인이란 든든한 받침대, 발목 좀 삐어도 낭만적인 등굣길, 그 남자애를 만난 건 어쩌면 새로운 계절의 예고편일지도!
“와, 진짜 대박. 운세 한 번 실었다고 100부가 더 팔려? 이유나 개쩌는데?”
“문소혜, ENFJ에 5반. 누굴 보러 가시는고/아직도 마음만은 꿈꾸는 새벽녘인데/어른은 하늘을 보지 않는 법/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그래도 괜찮은 순간들 함께 걷다 보이는 길.”
읽어준 운세에 소혜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 그래도 취재 하느라 사람들 줄줄이 만나야 했는데 운세 덕분에 걱정 같은 거 안 한다고 호들갑 떨었다. 소혜는 애들 사이에서 운세를 조합하느라 희귀해진 신문의 인기를 자랑했다. 선생들끼리도 운세가 거론될 정도였다고 한다. 다음 호부터 200부 더 발행하기로 결정한 걸 보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개쩌는 일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언제 한 번은 학교 옆 탕후루집 아주머니가 화들짝 들어온 적이 있었다.
“학생들, 이거 먹고 일해!”
그저 운세에 ‘탕후루 먹기 좋은 날’이라고 썼을 뿐인데 매출이 올랐다면서 탕후루 한 박스를 주신 거다. 나가는 순간까지도 좋은 운세 써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운세 상담 요청도 들어왔다. 건당 3만원에 10분. 처음엔 거절했다. 사람 만나야 한다는 게 귀찮았다. 소혜가 아이디어를 냈다. 내 정체가 들통나면 안 되니까 비밀 채팅으로 익명성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상담은 어렵지 않았다. 김도진과 문소혜 지인을 활용해 각 반 애들 성향 정도는 미리 파악해뒀다. 모르는 애들이라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입시 문제로 불안해하는 경우엔 ‘잘 될 테니 걱정 말고 공부하면 된다’고 덕담했고 연애로 골머리 앓는 경우엔 ‘서로의 마음을 툭 터놓고 나눠보면 좋을 거 같다’고 위로하면서 그럴싸한 문장을 선물했다
“솔직히 나도 불안해. 그럴 땐 이 문장을 기억해. ‘지금은 비록 시궁창에서 별을 바라볼지라도.’ 언젠가 너도 그 별이 될 테니까.”
“너에게 줄 문장은 이 거야! ‘지갑에 돈 없으면 어때? 팔짱만 껴도 좋은 걸.’ 하고 싶은 거 많은 청춘인데 뭐라도 좋으니 해봐.”
캘리그래피가 학보사에 도착한 날에도 별 대수롭지 않게 담배나 피우고 있었다. 어떤 여자애가 고맙다고 그려준 것이다. 소혜는 운세에 실은 문장들을 캘리그래피로 만들어 굿즈처럼 팔아 보자고 제안했다. 사진 찍고 인스타에 해시태그 붙여서 인증하면 상담 비용을 절반으로 깎아주자는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아이디어. 와, 문소혜 대박…. 글 한 번 휘갈길 때마다 창조되는 돈 버는 기적.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은 사소한 문장일 뿐인데 누군가에겐 힘이 되었나 보다. 다시 봐도 허술하고 도움 될 문장이 아닌데도 언제나 인기 폭발이었다!
이 운의 흐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솔직히 두려웠다. 상승 곡선만 그리던 구름도사의 몸값 말이다. 다음 운세를 쓰려다가 아직 유통기한이 내일까지인 내 운세를 보았다. 아직 이뤄지지 않은 문장 하나였다. 이렇게 잘 맞는 줄 알았으면 쓰지도 않았을 문장이다.
‘지는 청춘, 목련만 하겠나.’
당신의 예언자
구름도사 이유나
700자 원고의
손바닥만한 우주
불안하십니까
무서우십니까
알고 싶으십니까
맘에 안 드십니까
오기만 하세요
바꿔 드립니다
당신의 미래를
스탠드에 누워 문장을 지을 때였다. 산책하다 왔는지 소혜가 옆에 앉아 팔을 괴고 나직이 말했다.
“최문혁, INFJ, 1학년 6반. ‘시작하는 여행자여/아직도 마음만은 꿈꾸는 새벽녘인데/붙잡힌 발목과 어설프게 꼬여버린 백스텝/어른은 하늘을 보지 않는 법/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어쩜 남의 비극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쓰셨는지.”
정보 좀 알아오라 했더니 반나절도 안 돼 물어 왔다. 학보사에서 일하면 이런 정보쯤은 껌인 걸까.
“어떻게든 알아 왔네. 걘 연상 좋아한대?”
“몰라, 여자한텐 관심 없나봐. 할아버지랑 둘이서 사는데 형편이 어렵대. 새벽엔 할아버지가 주울 상자 더미를 찾고 저녁엔 편의점 알바 뛴대. 그러니 연애할 시간도 없는 거지. 촬영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는데 솔직히 부양가족이 할아버지뿐인데 무슨 공부가 되겠어. 방송국 동아리는 인원 풀로 차서 고민이 많나봐.”
“학보사는 영상 쪽 안 구해?”
“글게. 우리도 맨날 운세 같은 걸로 어그로나 끌 순 없는데 말야. 고민은 해봐야지.”
플레이리스트를 헤집다 꽤 괜찮은 가사의 노래를 발견했다. 문장을 지어봤다.
‘I 행운은 네 곁에 N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 F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J 끝이라 생각했던 마지막 순간 비치는 그 빛 6 의지는 나의 몫.’
행운은 언제나 네 곁에 있어.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일지라도 넌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우겠지. 끝이라 생각했던 마지막 순간까지 그 빛을 기다려줘. 의지를 가지고. 이 문장들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기어이 터졌다. 중간고사 두 번째 날 도진이네 반이 시험지를 늦게 받은 것이다. 그것도 백지로. 역시나 신문의 운세가 적중했다. ‘한 장의 종이라 해도 베이면 아픈 것처럼’이었다. 도진이까지 학보사에 찾아와 한 마디 했을 정도다. 짜식, 살짝 미안했다.
저주는 한층 더 깊어졌다. 갑자기 내린 비에 체육대회가 취소된 것이다. 운세는 의미심장한 운세였다. ‘우산에 숨어 비웃는 미소 숨길지라도.’ 어차피 싫고 귀찮았는데 다행이라고 치부하기엔 절묘했다. 애들은 구름도사가 체육대회를 싫어한다고 울상이었다.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 의도한 게 되어 버렸다. 운세의 저주가 통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나도 저주를 피해갈 순 없었다. ‘널 기다리는 동안 심장이 쿵쿵.’
“어이, 유나 공주 어서 오고.”
점심시간 빈자리뿐인 교무실엔 선생이라곤 담임밖에 없었다.
“뭘 얼마나 대단한 걸 하시길래 걸리셨습니까. 담임 시간에. 핸드폰을.”
“요즘 바빠요.”
대충 죄송한 척 고개를 떨궜다.
“중간고사 많이 떨어졌더라. 6월 모평까지 얼마 안 남은 건 알지? 킬러문항 없어졌어도 여전히 졸라 어려운 게 이 바닥이야. 공부 못하는 건 뭐라 안 해. 딴 짓은 좀 말자. 솔직히 나 정돈 터치 잘 안하는 편이잖냐.”
담임은 핸드폰을 돌려주는 순간까지도 잔소리를 쏟아 부었다. 운세 쓰다 걸린 것도 짜증인데 모평 얘길 왜 꺼낸데.
“겹겹이 악재가 쌓일 때가 있으면 술술 풀릴 때도 있는 거야.”
기다림의 끝이 최문혁이 아니라 고작 핸드폰이었다는 게 좆같았다.
학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밤이었다. 버스 안에서 소혜랑 카톡을 주고받고 있었다.
‘유나야, 잘 맞추는 건 좋은데 이상한 쪽으로는 좀 틀려주면 안 돼?’
‘몰라 존나 억울해.’
걱정 끝에 소혜는 운세를 검열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나쁜 내용이 들어간 문장이 있으면 막판에 바꾸기로 한 것이다. 솔직히 소용없는 짓이다. 운세는 사람 해석하기 나름인데 말이다. 최대한 좋은 쪽으로 써도 나쁜 게 흘러갔고, 나쁘게 쓰더라도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나친 장난도 농담도 적절한 휴식이 필요. 여기서 지나친 장난 대신 가벼운 장난은 어때?’
‘ㅇㅇ 바꾸든지.’
‘내일 자 신문이야. 잘못된 거 없는지 확인하고 톡 해.’
확인한 척 말풍선에 체크 버튼을 눌렀다. 만사가 귀찮았다. 한 건물 외벽 캘리그래피에서 좀 그럴싸한 문장을 보았다. ‘봄은 쉽게 오지 않는 법이래, 널 만나기까지도 그랬는 걸.’ 최문혁 그 자식이 생각났다. 지금쯤 편의점에서 알바하고 있겠지.
운세 코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벌어들이는 수익도 달달해 당뇨 걸릴 지경이다. 운세 맞추는 기적을 경험할 때마다 나쁜 일 정돈 극복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불안했다. 나쁜 일조차 못 맞출까 봐 두려워진 것이다. 언젠가 사람들의 관심이 끊어질 것 같아 씁쓸했다. 구름도사란 이름으로 관심받는 지금이 내 인생 최대 전성기는 아니겠지.
아직도 내가 잘 하는 게 뭔지를 모르겠다. 그냥 하루하루 돈이나 벌면서 살 생각에 숨이 막힌다. 악재가 쌓일 때가 있으면 풀릴 때도 있다던 담임의 말은 사실 좀 웃기다. 반대로 일이 술술 풀릴 때가 있으면 다시 악재가 벌어질 때도 있다는 거잖아.
예언 한 번에
쏟아지는 행운들
‘그저 운세일 뿐인데’
고작 몇 문장에
뒤바뀐 운명과
사람들의 인기
풀릴 때가 있으면
막힐 때도 있는 법
생각 없이 내뱉은
무책임한 문장이
악재로 돌아오다니
아침 일찍 학보사에서 혼자 담배나 피우던 중이었다. 내리는 비 때문에 신문 더미들도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운세 면을 들춰봤다. 꽤 그럴싸한 문장들이 잘 나열돼 있었다. 이상한 걸 느꼈다. 너무 잘 나열돼 있어서 모르고 지나칠 뻔 한 것이다.
‘뭉, 운세 옛날에 쓰던 게 들어갔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싶어 대화창을 올려다 봤다. 원고는 정상적으로 보냈다. 근데 인쇄된 내용은 내가 저번에 쓴 글이 들어갔다.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최문혁의 운세부터 동그라미 쳐 봤다.
“I 하고픈 일 있다더니 N 도시의 해가 져도 숲의 시간은 유유히 F 아파도 아픈 줄 모르면 J 엇갈린 인연으로만 보이고 2 하루 정도는 어깨에 기대어도 괜찮아.”
소혜의 답장 한 마디에 병원으로 튀어갔다.
“최문혁 병원에 있대”
내 인생 내 맘대로 풀리는 게 없구나.
막힘 없이 달리던 택시는 병원에 다다를 즈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한 문장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려 들 수도 있는 걸까. 신중하게 썼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조심히 썼으면 이런 재앙이 일어났을까.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 없이 끼적인 문장으로 돈 번다는 발상 자체가 욕심이었다. 이제껏 종이들을 적어 놓은 뭉치를 흘겨 보았다. 거센 빗방울에 종이도, 나도 흠뻑 젖어들어갔다. 숨이 차 달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짜증이 밀려 왔다. 마침내 폭발하고야 말았다.
종이는 하늘 높이 흩날렸고 문장들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도착한 병실 의자엔 소혜와 문혁, 그리고 못 보던 여자애가 앉아 있었다.
“유나야.”
소혜가 나를 보자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이해 못할 장면에 벙쪄 버렸다.
“최문혁 병원에 있다매.”
“어…. 어. 할아버지가 어젯밤에 갑자기 쓰려지셔서 밤 샜다고 그거 말해준 거 였어. 근데 운세, 뒤바뀐 거였어?”
소혜가 오늘 자 신문을 펼쳐 보였다. 내 눈으로 확인한 내 운세를 읽고 현타가 몰려왔다.
‘I 하고픈 일 있다더니 S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T 물에 젖은 고양이마냥 P 사랑이라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증명 6 엇갈린 사건 비로소 되찾은 시간.’
오늘은 문장 짓기를 쉬었다. 체육복 차림으로 책상에 내내 엎드려 잠만 퍼질러 잤다. 중간에 깨질 않은 걸 보면 그 새끼도 날 건드리지 않았나 보다. 지수는 담임이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를 읽으며 교실 한 바퀴를 돌다 내 자리에 멈춰 섰다고 한다. 한숨을 푹 내쉬며 나 들으라는 듯 읽어댔다고.
“하, 씨발 인생은 존나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소혜에게 사직서를 보냈다.
‘구름도사, 오늘부로 퇴사.’
아무 생각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벤치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를 시전했다. 한강철교를 건너는 지하철의 반복되는 스크래치에 나른해졌다. 매일 일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처음에야 문장을 짓고 조합하는 일들이 즐거웠지만 금세 지쳐버린 나였다. 무언가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일까. 권태로움을 견딘다는 건 뭘까. 무엇이 견디게 만드는 힘일까. 구름 사이에서 비치는 노을이 꽤 그럴 싸하게 보였다. 비 온다더니 오후 내내 쨍쨍이다. 일기 예보도 내가 쓰던 운세 같았으면 기상청 사람들이 좀 덜 힘들었을까. 인생의 정답이야말로 비 오거나 비 오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으면 머리 좀 덜 아팠을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주말, 주말여행. 오, 그거 괜찮은데? 남는 게 시간이고 운세 덕분에 벌어들인 돈도 많겠다……. 새로 몰입할 무언가를 발견했다. 미소를 가볍게 머금었다. 나중에 알바나 직장 생활이 지루해도 새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낼 것 같았다. 그때 일은 그때 걱정하면 된다. 미리 짐작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내일이면 나는 평범한 인간 이유나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카톡을 열었다.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쓴 운세를 훑어보았다. 내 운세가 좀 마음에 들었다.
‘엇갈린 사건 비로소 되찾은 시간들.’
드디어 해방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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