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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now]

[편의점은 요지경②] 밤 11시, 새벽까지 이어지는 철학 공부 ‘완벽한 주경야독’

자유의새노래 2025. 11. 20. 20:12

출근과 함께 뉴스·신문, 독서… 온전한 내 시간
‘동터오는 하늘 바라보며 성실한 삶 다짐했었지’

 

밤 11시. 오늘 근무의 문을 연다. 첫째, 전 근무자에게 인사를 한다. 둘째, 편의점 조끼를 입은 후 계산대에 간다. 셋째, 전 근무자에게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인계받는다. 마지막, 시시콜콜 노가리를 까다가 전 근무자의 퇴근에 맞춰 인사드린다. 그렇게 시작되는 온전한 나의 시간.

자정까지는 고객 수가 꽤 있는 편이다. 5분에 한 명, 아니 1분에 한 명을 마주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뉴스를 청취한다. 종편에서 지상파까지, 듣고 싶은 기사들을 훑다 보면 방문하는 고객은 뜸해진다. 자정을 넘기면 혼자만의 시간이 열린다.

나는 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는다. 문자 그대로 본격적으로 읽는다. 오늘 자 신문 톱기사를 중심으로 사회의 다양한 사건 사고들과 정치권 현안, 경제계 상황을 살핀다. 오피니언이라 해서 대충 읽는 법이 없다. 꼼꼼히 읽으며 사설의 방향을 가늠한다.

신문을 읽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가져온 책을 읽기 시작한다. 특히 서양철학사는 내게 고대 철학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다. 다 읽은 건 아니다. 중세쯤에 덮어뒀으니 말이다.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도 인상 깊게 읽었다. 때로는 편의점 곳곳을 돌아다니며 흥분한 채 낭독하기도 했다.

 

새벽 여명/동터오는 하늘은 편의점의 일상에 단비 같은 선물이었다. 이날도 성실을 다짐했다.



시간을 어림잡아보면 대충 새벽 3시쯤 된다. 피곤할 틈이 없다. 청소 시간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을 틀어 놓고 먼지를 털어낸다. 빗자루로 먼지를 쓸고 막대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섬세하고 꼼꼼하게 청소한다. 그러면 땀이 흐른다. 더운 여름, 에어컨? 단 한 시간만 틀었다.

일주일 다섯 번, 계속되는 반복 업무에 지겨워질 때면 나는 마음으로 다짐했다. 이 순간, 이 근무. 머지않아 끝나리라고. 1년만 단 1년만 버텼다가 퇴직금을 받으면 여행을 떠나자고 마음에 새긴 것이다. 두 달만 쉬면 어떨지 상상했다. 떠난다면 어디를 가볼까.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다시 힘을 주어 바닥 박박 문질렀다.

청소를 마치면 새벽 4시부터 다시 공부에 돌입한다. 말이 공부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시간이다. 덮어뒀던 책을 읽기도 했고, 노트북을 가져와 편집을 하기도 했다. 이 신문, 자유의새노래를 조판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다시 손님들이 이곳 편의점의 문을 열었다.

어느 날 나는, 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본 일이 있었다. 붉게 물든 작열의 수채화 풍경 앞에 넋을 잃었다. ‘퇴근이 머지않았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언제까지 출근해야 할지 모르는 아르바이트의 삶, 편돌이의 시간. 나는 후회 없이 하루를 상실하게 살았다. 하루하루 탑을 쌓아가는 삶 말이다. 지금의 내가 일을 할 때면 버틸 수 있는 노동 근력도 이 시절 다져 놓은 바탕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에게 소중했던 단 하나뿐인 청년의 시간, 완벽한 주경야독의 시간들. 퇴근 시간은 아침 7시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편의점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