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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잘 지내, 퍼피레드

자유의새노래 2023. 12. 7. 21:31

 
내가 본 이용수 대표는 넉살스러운 아저씨였다. 운영진들 사이에서 조용히 있다가 말없이 등장해 자기 할 말 풀어내던 지긋한 나이의 포스. 적절히 가벼운 캡 모자 하나가 어울릴 듯한 익살맞은 제스처. 한눈에 봐도 평범한 아저씨로 보였다. “20대를 다 바친 게임” 긍정의 에너지를 바라던 절실한 호소를 폄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퍼피레드M 1차 테스트 때 일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대표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게임 문 닫기 두 달 전 서버가 닫혀 있더라고요. 서버 운영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그렇죠. 그땐 가끔 들어와서 웹사이트 관리하다 메일 확인하고 그랬죠.”

퍼피레드 개발에 앞서 이 대표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논리는 자칭 원작자의 지지층에게서 출발했다. 그가 퍼피레드를 개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상조차 공개되지 않은 불명의 사람이었다. 회사를 운영할 만한 자질도 공개된 바 없었다. 지적재산권(IP)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건지, 게임을 무료로 풀겠다는 건지, 서버를 운영해 관리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었다. 컬러버스 전신 소울핑거가 퍼피레드를 개발하겠다고 나서자 ‘퍼피레드 같은 게임’이라는 괴이한 이름의 지난한 과정을 돌연 중단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무렵 원작자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나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나는 영문도 몰랐지만 떠나는 이들을 붙잡지 않았다. 이 신문은 당시 어느 쪽도 두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훗날 이 신문이 이 대표를 밀어준 이유는 단순했다. 적어도 퍼피레드가 문 닫기 직전 서버를 운영한 사람이고 마지막까지 서버 종료 소식을 건넨 운영자였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자라는 점에서도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퍼피레드는 문을 닫았지만 말이다. 얼마나 부활을 바랬으면 불명의 사람 바짓단이라도 붙잡는 걸까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너무도 가혹했다. 앱 분석 회사 모바일인덱스의 ‘실시간 마켓별 순위’를 보면 퍼피레드가 들어갈 구석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온갖 MMORPG가 판을 치는 마당에 퍼피레드 류의 하우징 게임은 언제나 순위 밖 이야기다. 문 닫는 게임이 부지기수인 마당에 퍼피레드는 언제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 대표가 붙잡은 동아줄이 네이버였으면 어땠을까. 판교 데이터센터가 불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메타버스라는 신기루가 카카오호(號) 컬러버스 출현과 함께 조금만 더 잔상으로 남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지 않았을까.
 
 
가면 쓰고 인신공격과
결과로 조롱하는 이들
현실은 가혹하다지만
누구에겐 인생 게임
소중한 추억의 게임
청춘을 다 바친 게임
이젠 새로운 삶 향해
힘찬 날갯짓 펼칠 때
 

모든 것을 결과로만 단죄를 내린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 이용수가 어떤 존재였든지 간에 잘하든 못했든 결과적으로 따져도 지지해 볼 만했다. 그러나 끝까지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라도 갖추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공격. 자격과 평가를 뒤로하고 신상을 효수마냥 내건 채 인신공격과 막말, 온갖 혐오발언으로 저주 품듯 악담을 일삼은 이들을 보며 퍼피레드가 작은 한국 사회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명으로 숨어 게릴라 전(戰)을 하는 것도 모자라 잘 되면 내 탓, 망하면 남 탓일 뿐인 허접한 논법에 퍼피레드는 가면 쓴 유저 손에 또 죽어갈 뿐이다.

퍼피레드 서버 종료일은 17년 전 코믹 메이플스토리rpg 카페를 탈퇴한 날이기도 하다. 당시 필명 대한제국으로 활약하며 카페 스텝으로 일하다가 중학생 누나들과 날카로운 관계를 이어가던 시기였다. 대한제국 안티 카페로 알려진 ‘녹림청월’을 보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저들은 무엇 때문에 이토록 사람을 혐오한단 말인가’ 100명의 회원들과 싸우다 지쳐 카페 탈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곧이어 퍼피레드에 온몸을 던져 피신했다. 고요한 퍼피레드는 안식과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서버 종료는 내게 또 다른 세계가 사라진 사건인 이유다. 문득 퍼피레드가 과거 카페와 다르지 않은 공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버 종료가 아니었다면 더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일부 가면 쓴 회원들의 패악질에 넌더리가 난 이들이 셀 수 없을 지경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게임을 할 나이는 아닐 테니까. 퍼피레드보다 더 재미있는 건 널려 있으니까.
 

그날 문정동 자택은 비 내리던 하늘에 어둠이 가득했다.


처음 본가를 떠나 서울로 이사 온 여름이었다. 회사는 2주 다니다 때려 치고 말았다. 퇴사하고 돌아온 집에서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려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첫 커피포트에 첫 커피 마시려던 참이었다. 비 내리던 방은 컴컴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북향이라서가 아니었다. 푹 잠을 잤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새로운 회사에 이직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가 떠올랐다. ‘정말 힘든 때였지’ ‘괴로운 날 지나더니 살만한 때 오는 구나’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직하며 조금씩 삶의 방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힘든 일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문정동 시절을 생각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문을 외우듯 무던히 넘어간다.

퍼피레드의 두 번째 죽음이 누군가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쉬움일지 모른다. 이 모든 아쉬움 또한 지나갈 것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지금의 실패를 조롱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생동감 넘치는 삶을 생각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향해 날갯짓 펼칠 시점이다. 퍼피레드 너머, 행복한 세상 신나는 상상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