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Daddy, Fly
가네시로 가즈키 지음 |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59쪽
이름 모를 남학생에게 얻어맞은 건 딸 하루카뿐만이 아니었다. 위로금 몇 푼, 누군가에게 지시 받은 대사 같은 사과, 별 일 아니라는 당당함 앞에 아버지란 당신의 존재도 같이 무너져 내렸다. 딸은 한 마디 항의조차 않은 무능한 아버지를 외면하고 만다. 그날 무능한 아버지 스즈키 하지메는 모든 것을 잃었다. 남은 것은 체념뿐이다.
스즈키는 폭행범 남학생 이시하라를 찔러 죽이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찾아간 교정. 눈에 보이는 아무 학생이나 붙잡고 부엌칼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제압된 스즈키는 또 한 번 황당함에 쓰러졌다. 학교를 잘못 찾아간 것이었다. 깨어난 스즈키에게 손을 내민 건 고등학교 2학년 미나가타. “우리가 이시하라에게 복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 테니까, 아저씨는 죽을 각오로 노력하는 겁니다.”(67쪽1문단)
미나가타, 이다라시키, 가야노. 특별등교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재일한국인 박순신에게 이시하라를 복수할 특별 교육을 받기로 한다.
순신은 엄하게 가르친다. “몸에 한 번 익힌 것을 쉽게 잊지는 않아 (……) 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벌벌 떨어! 공포는 기쁨이나 슬픔과 똑같아서 그냥 감각일 뿐이야! 나약한 감각에 사로잡히지 마!”(152,11) 마흔일곱, 굳을 대로 굳어버린 스즈키의 근육에도 조금씩 생기가 돋는다. 끝내 스즈키는 버스를 쫓아가는 훈련에 성공한다.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대기선수들이 차 안에 서서 나를 향해 박수를 치는 모습이 창 너머로 보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몰라 승차 도어 앞에 섰다. 운전사의 모습이 보였다. 운전사는 모자 대신에 수건을 머리에 묶고,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왼손 엄지손가락을 세워 내게 보였다.”(214,3)
끝내 이시하라에게 내리 꽂는 주먹에서 통쾌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쾌함에 이르기까지 견뎌야 했던 고통과 아픔, 공포가 주마등 스쳐갈 때 비로소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게 된다. 왜 이시하라에게 복수하려고 했던가. 왜 고통과 아픔, 고통을 견뎌가며 단련해왔던가. 박순신이 보내는 무음의 메시지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소중한 걸 지키고 싶지 않아? 아저씨.”(2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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