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8쪽 | 1만3500원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제목에는 하나의 단어가 빠져 있다.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사랑해.
어느 날부터 해록이가 해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해주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날 좋아하나 싶었다. 남자애 해록이는 입학하면서부터 여자애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잘 나가는 애였다.(14쪽1문단) 머리 스타일, 옷차림 뭐든 잘 어울린 녀석이다.(14,2)
그런 해록이가 해주를 바라봐주는 게 설레기도 했고, 떨리기도 했다. 불안하기도 했다. 해주보다 더 예쁜 온주에게 그 시선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김온주에게로.(26,2)
“나도 알아. 온주가 눈에 띌 만큼 예쁘다는 거, 키가 크고 늘씬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먼저 닿는다는 거, 공부도 잘해서 애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에게까지 인기가 많다는 거.”(26,3)
해주는 해록이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관심 없는 척 해록이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던 해주가 해록이의 이 말 한마디에 단발머리로 변신했다.
“난 별로. 여자애들 머리 치렁치렁 긴 거 싫어. 난 단발머리가 좋더라.”(32,2)
해주를 바라보는 해록이의 시선이 오래 이어지자, 반 아이들도 눈치 채기 시작했다. 혹시 해록이가 해주를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해주 좋아하냐는 물음에 해록이도 과감히 좋아한다고 내지르고 말았다. 둘은 하루아침에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해록이의 심리 조종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너랑 사귀는 일에 내 의자가 필요 없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42,3-43,1).” “다음엔 치마 입고 와.”(43,7)
소셜미디어 관리부터 새벽 메신저까지, 해록이가 해주를 가스라이팅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관계는 이게 아니었다.
스포일러 주의 이 소설은 저수지에서 실종된 남자애 해록이를 수사하기 위해 경찰이 해주의 집에 찾아오는 내용이다. 해주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찰은 사실 모든 수사를 끝내고 온 상황이었다.
해주가 당하고 있다던 가스라이팅은 모두 거짓이었다. 오히려 해주가 해록이를 길들이고 있었고, 심리적으로 조작을 가하고 있었다. 저수지에 간 날도 그랬다. 저수지까지 가주면 원하는 걸 해주겠다고 꼬드긴 것이었다. 지칠 때로 지친 해록이는 해주를 따라갔지만, 설마 물에 빠지려고 간 걸까 의아했을 것이다.
상대를 망가뜨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상대를 점령하는 것 또한 사랑이라 말할 수 없다. 핍진해지는 그런 관계가 어떻게 사랑일 수 있을까. 그걸 어떻게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작가 이꽃님의 유려한 문체가 글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다음의 이야기로 이끌어준다. 마지막까지 해록이의 연락을 기다리는 해주의 장면은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많은 상상력과 ‘상대가 되기’를 통해 만든 문장들일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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