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마치면 하나둘 자동차 면허를 딴다고 하죠. 게을렀던 저는 반값으로 면허를 따게 해준다는 유혹에도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4년 전 여름, 삼촌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면허를 땄습니다. 10년 전 면허를 땄다면 오래도록 장롱면허였을 테고 운전 감각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그해 여름, 학원에 첫발 디딘 때가 떠오르네요. 필기시험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원장님의 탁월한 강의 덕분이었습니다. 12년 공교육보다 뛰어난 원장님의 강의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나중에는요 적중 문제를 예언하셨는데요. 그 문제들이 시험에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밤새 예상 문제를 푼 것보다 강의 한 번 들었던 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장내기능 시험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처음 트럭을 몰았던 날, 투박하게 생긴 선생님이 옆에서 너털웃음을 지으며 돌멩이와 하얀 선을 가리켜 힌트를 주었습니다. 한여름 뜨거운 볕이 내리쬐는 날에는 선생님이 옆자리에서 졸기도 했지만 연습하는 저로선 편했습니다. 어느 날은 억수같이 비가 내렸습니다. “오늘은 쉬겠지” 싶었는데도 수업을 진행하더군요. 빗방울이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시험 당일, 저는 혼자 트럭을 몰았고 선생님은 밖에서 결과에 집중했습니다. 합격 소식을 듣자 선생님은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문제는 도로주행이었습니다. RPM이 오르면 기어를 변속해야 하는데, 그 감각을 전혀 몰랐던 겁니다. 허둥대다 시동이 꺼지기 일쑤였고, 선생님은 답답함에 분통을 터뜨리셨습니다. “이게 안 돼서 운전을 하겠어?”라는 면박에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놈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 열 번도 넘게 실패해야 했습니다.
결국 하루 종일 실패하다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RPM이 오르고 차가 ‘웅’하고 울릴 때 변속해야 한다는 것을요. 선생님도 “바로 그거야!”라며 화색을 띠었습니다. 이후로는 실력이 급격히 늘어 선생님과 함께 시내를 누비며 작은 여행을 떠나듯 운전을 배웠습니다. 중간에 쉬면서 나눴던 인생 이야기도 인상 깊었죠. 도로주행 시험은 다른 시험관이 맡았지만, 아슬아슬하게 합격해 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선생님께 저는 공손히 인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운전면허학원은 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곳의 모든 추억이 멈춰버린 순간이었습니다.
'오피니언 > 자유의새노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 방송실의 추억 (2) | 2024.11.27 |
---|---|
모든 기록이 멈춘 순간 (1) | 2024.11.26 |
조선닷컴 할아버지를 고소하기로 작정한 날 (0) | 2024.11.24 |
너와의 300일 (0) | 2024.11.23 |
아득한 난고의 저 끝 밤 지금도 심장은 뛰기에… (13) | 2024.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