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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자유의새노래 칼럼

교회 방송실의 추억

자유의새노래 2024. 11. 27. 18:18

 

10년 전 이맘때는 밤을 새는 일이 잦았습니다. 교회 일 때문이었는데요. 11월 마지막 주 추수감사 절기를 보내고 곧바로 대림 절기를 맞아 업무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방송실 근무가 만만치 않더군요. 예배 때 사용할 PPTX 자막을 만드는 일부터 동영상 제작까지, 교회학교와 학생부, 청년부에서 떠넘긴 자료가 한 아름이었습니다. 저를 바쁘게 만든 부서들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교회학교 교사직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열 몸이라도 모자란 상황은 중학생 때부터 매년 반복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방송 일을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2학년과 일병  달 때까지 일하다가 교회 다니기를 관뒀으니, 7년쯤이겠네요. 10년 전 이맘때는 군 입대를 앞두고 슬슬 교회 일을 인수인계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언제나 일들로 가득한 방송실에 발 디디겠다던 학생과 청년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물려줄 수 없는 위기의 상황에서 당당히 두 손 들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재현쌤이 불쌍해 보여서 방송실에 들어왔다”던 저의 동지 안중현 형제였습니다. 그때의 고마움과 설렘은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방송실 근무에 신바람이 났습니다. 오랜 시간 혼자 근무하던 방송실에 생기가 불기 시작한 것이죠. 방송 일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요. 오히려 피드백을 받기도 하면서 변화를 느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구나’를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문학의 밤을 준비한다며 중현 형제가 대본을 가져온 일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처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런 걸 연극이라고 하기에 스토리도 없었고 교훈도 없었습니다. 재미도 없었고요. 편집으로 커버 쳐야 할 생각에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연극에 필요한 배경을 손으로 만들기엔 인력이 들 테니 빔 프로젝터로 우리가 그래픽을 활용해 배경을 만들자고 말입니다.

마이크를 들고 일일이 대사를 읊기엔 학생들도 힘을 테니 저는 아예 미리 녹음하자고 조언했습니다. OST와 효과음도 마련했습니다. 영상으로 만들어 연극할 땐 재생만 하면 된다는 신박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중현 형제는 옆에서 영상 편집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곁에 누군가 있어준다는 사실 자체에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람에 대한 한줄기 빛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제가 교회를 탈퇴해도, 유일하게 연락하고 안부 인사를 건네주는 유일한 사람이 중현 형제입니다. 그 고마운 인연,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게 왠지 모르게 고맙네요. 티스토리 오블완 챌린지도 오늘로 끝입니다. 그러나 이 지면의 칼럼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입니다. 이 마지막 칼럼을 고마운 중현 형제의 이야기로 끝맺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