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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일과속기록

정지사본궁목

입력 : 2020. 12. 10 | A31

 

 

우리 뇌는 이미지로 기억하면 더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시험이 다가오면 앞 글자만 따서 외운다고들 하는데 중학교 3학년 도덕 시간도 그랬다. 하나도 외워지질 않으니 운율로 따서 외우기로 했다. “정지사본궁목” “정지사본궁목” “정지사본궁목” 짝꿍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정서적, 지향적, 사회성, 본래성, 궁극성, 목적성.” 하루 동안 한 문제에 적을 단어 “정지사본궁목” “정지사본궁목” “정지사본궁목”을 주문처럼 외웠다.


듣기 싫다며 귀 막았던 친구들도 나의 “정지사본궁목” 세례에 질색했고 손사래 쳤지만 종국엔 고맙다는 말로 돌아왔다. 내 정신없는 ‘정지사본궁목’ 덕분에 다 적었다나. 어처구니없어 친구들과 피식거렸고 도덕의 무엇이라 기억했던 정지사본궁목은 외운다 싶을 때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랐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보라색, 주황색, 연두색 한 줄 자막이 기발하다 생각했던 시절에 교회 방송국 자막도 그렇다. 흰 글자에 그림자만 넣어도 대단하다 칭찬하던 시절이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사이에 남은 여백과 굵게 칠해진 ‘158’은 복음성가 158장임을 드러냈고, 찬양 인도자와 합쳐져 이미지 자체로 박제되어 누구보다 찬송가와 복음성가 장수를 외우기 쉬웠다.


튀어 오른 이미지의 저장된 데이터는 정지사본궁목과 교회 방송국 자막뿐이 아니다. 분명히 읽었던 지면신문 그 기사만을 인용해야 했던 학부 과제에서도 이미지 조각이 발휘됐다. 경제가 어떻고 사회가 어떤지 저장해둔 머리의 기억을 꺼내어 과제로 적어낼 때면 늘어나는 각주에 마음도 흐뭇해지듯. 지금도 뇌리서 잊히지 않던 탈북 주민 오청성 씨 탈북 사건은 정확히 몇 월 며칠 보도되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히 조선일보 A3면에 실린 이미지가 인포그래픽과 함께 머리에 저장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기억하면 좋을 기사들 일일이 찢어 보관하기 힘드니 스마트폰 촬영으로 담고 있는 지금, 촬영만이 전부가 아님을 말해준다. 지면신문의 상단 기사와 하단 기사로 나눠지는 레이아웃이 단행본보다 강점이라 생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 글자만 따서 외우던 답처럼
신문의 구획이 기억을 남기듯
팩트만을 반복하다 손사래 칠
또 하나의 구호는 그만두어야

 

 


정파적이고 자기 할 말에만 충실하는 언론이란 비난이 줄 잇는 오늘, 단(段)이라고도 부르는 칼럼(column) 여섯 개 내지 일곱 개에 세 칼럼 할애해 호흡이 긴 지면 기사를 싣기도 하고, 단 한 칼럼에 세로로 긴 단신들을 엮기도 한다. 네 칼럼, 다섯 칼럼 실은 거대한 기사들은 소위 ‘대문짝만하다’는 말처럼 사진 배치와 함께 뇌리에 강하게 남을 테지만 오히려 작아서 생각 없이 넘겨짚을 부고의 이름들로 기억에서 금세 사라진다. 다양한 기록들을 한데 아우른 신문이 사이버 렉카에 밀려 사라질 일은 없을 테지만. 오늘도 영향력을 잃어가는 언론의 현실은 언제까지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싸워야 하는지를 묻게 만든다.


케이블 방송국 검색하다 보았던 대구의 한 문화복지센터 건강 체조 영상은 지역 케이블이라지만 무미건조한 편집이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조회 수 10도 되지 않는 영상물을 보다가 어느 고등학교 축제 전체 영상에서 기록의 존재 의미를 발견했다. 누구에겐 학교 축제조차 관심 없을 테지만, 무대에 오른 학생이면 무미건조하던 영상조차 소중한 기록물이 되지 않겠냐고. 하고픈 말 레이아웃 구획으로 나누어 정치적 목적으로 촘촘하게 배치한 신문과 다르게 직캠이라 이름 짓는 날 것의 영상물에 조회 수 폭발을 보면. “팩트” “팩트” “팩트” 팩트가 있는 곳에 신문도 있다는 말이 “정지사본궁목” “정지사본궁목” “정지사본궁목”처럼 손사래만 치는 구호로 전락하지 않겠나. 적어도 정지사본궁목은 수행평가 한 문제라도 맞출 팩트였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