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 03. 05 | 수정 : 2020. 03. 12 | A7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디지털로 남겨 놓은 조선일보.
매년 조선일보가 창간 기념일을 맞이할 때면 100면을 발행한다. 신문의 절반이 ‘Advertorial section’이란 점은 흠이지만 대한민국 이 땅에서 신문 100주년은 희귀한, 문재인 대통령 표현으론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어제는 공교롭게도 “왜 조선일보를 보느냐”고 질문을 받았다. 이유는 많다. ①신문 디자인 ②기초 독해 ③지면 신문의 강점 ④신문이 가져다주는 재미 ⑤추억으로 남은 기억.
①본지도 조선일보 지면신문 디자인을 카피한 요소가 많다. 활자부터가 조선일보명조체란 사실에서 알 듯이, 조선일보 신문 디자인은 일관성을 갖췄다. ②“독자는 중학교 1학년이다” 조선일보사에 입사한 기자들이 배우는 첫 원칙이라 알려진 이 말이 무색하지 않게 지면 신문 텍스트는 읽기 편하다. 조금이라도 뇌가 굳지 않게 글을 읽기로 마음먹은 것도 조선일보 덕분이다. ③그럼에도 읽고 싶지 않은 기사를 접하게 도와준다. 신문 자체도 확증편향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오류와 오보를 고칠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④지면에 실린 글은 스트레이트(Straight)뿐 아니라 피처(Feature)에서도 빛을 발한다. 신문이 딱딱하지만은 않은 이유다. ⑤그 신문을 여전히 커피를 마시며 읽는다. 하루에 한 시간 반이면 정독할 수 있는 일간지로 하루를 시작한다.
말은 이렇게 해도, 며칠 전 진지하게 절독(絕讀)도 고민해봤다. 활자 디자인이라면 경향신문이 더 예쁘고, 인포그래픽과 기획 기사는 한국일보에 눈이 가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현 정부 때리기와 메르스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지면신문 편집 방식은 이념과 미신에서 멀어진 내게 오히려 짐을 안겨준다. 더는 신문에 미래는 없다는 사실이 더욱 절독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흔한 청년에게 오피니언 자리를 남겨주는 일도 하지 않고 ‘말모이’ 기획 외엔 신문의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새로운 프레임은 정치에 국한할 뿐이지, 신문의 존립과는 무관하게 움직인다. “쳐도 우리가 친다” 그 전략이 언제까지 먹힐지 궁금하다.
여전히 조선일보에는 흥미로운 지면이 많다. 중앙일보 ‘열려라 공부’ 동아일보 ‘신문과 놀자!’보다 퀄리티 높은 ‘신문은 선생님’. 주말마다 어떤 기사가 실릴지 설레게 만드는 ‘Why?’ ‘friday’ ‘아무튼, 주말’. 토요일 생각이 깊어지게 만드는 ‘Books’가 다시 A면으로 돌아와도 즐거웠다. 어쩌면 남자라서 관심두지 않았을 여성 운동에 스크랩하게 만들고, 나이 차이 70년이나 벌어지는 할아버지 글을 읽으며 공감할 줄 누가 알았을까.
조선일보 100년 포럼에서 임종섭 서강대 교수는 젊은 구독자를 확보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10년… 아니 50년 후를 내다봤다. 지면신문 PDF는 독자만이 100년 치 자료를 볼 수 있다. 구독자가 아니라면 접근하기 어려운 지면신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당신들의 방법이 필요하다. 젊은이에게 지면을 할애하는 방법이 아니어도 미래 담론을 제시할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2020년 1월 1일 조선일보는 ‘진실의 수호자들’을 1면에 내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상인회장이 한 말, “계란은 던지지 말자”에 초점을 맞춰 진의를 왜곡한지 고작 보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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