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일과속기록

[일과속기록] “하늘도 끝 갈 날이 있다”

입력 : 2020. 10. 22 | A35

 

운세 같은 걸 미신으로 생각했다. “귀인이 와서 도우리라”면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다던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고”라며 싸우기는커녕 “남모른 선행”조차 큰 보답으로 받아본 적 없다보니 그러려니 했다. 신학 때려 치기 마음먹은 순간을 기념처럼 남겨 놓은 사진으로 명확히 남겨 놨다. “걱정하지 말고 대범하게 처신하라” 만일 곧바로 그만뒀다면 인생 항로의 몇 도는 더 틀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운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읽었던 신문은 간혹 저녁에 읽기도 한다. 아침에 읽을 땐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대비하게 되고 저녁 무렵이면 오늘 일을 떠올리며 예언 성취를 확인한다. 어느 날 섬찟한 문구가 나를 기다렸다. “하늘도 끝 갈 날이 있다” 운세에도 많은 의미를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북문, 남인, 황색만 취하거나 피해야 한다고만 읽어왔던 운세가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성을 부여하면 곧 하늘이란 존재도 끝에 다다랐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파란 하늘 오후가 지나 저녁노을 보랏빛 가을 하늘처럼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고. 하늘이란 존재가 칼을 갈아 복수를 의미할 수도 있었다.

 

 

신문을 읽던 아침까지는 시간성 하나로만 해석했다. 존재가 하늘로 비유되어 시간이 지나면 파란 하늘이 사라지는 것처럼 존재도 시간이 지나면 성장하며 옛 존재가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저녁이 되어 새로운 해석이 떠올랐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하늘은 존재하나 색깔만 변하는 그런 변화만을 의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점쳐뒀다. 이 무렵은 죽은 신의 사체를 끌어 앉다 엉엉 울다가 그 사체를 두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할 즈음이다. 그래서 하늘을 존재로 생각했고 그 존재를 하느님으로 떠올렸다. 동시에 같은 신을 믿었던 지인 한 사람과 관계를 정리할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하늘도 끝 갈 날이 있다’는 한 가지 문장에 다양한 해석 사이에서 절연히 고민까지 털어낼 수 있었다.


비 많이 내리던 날 브런치 작가 여섯 번째 탈락에 절망하던 날 운세는 내 마음을 적셨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 그런 신문이 운세로 웃으라고 말했다. “어떤 값진 것보다 웃음이 소중” 용기를 가지고 끝까지 해보라고 조언도 던졌다. “한번 맡은 일 끝까지 책임을” 건강도 챙겨줬고. “충분한 쉼과 심신의 안정 중요” 때론 넓은 포부를 갖추라고도 말한다. “사소한 일에 만족하면 큰일 못해” 아직은 존재도 모를 배우자 걱정도 해주면서. “배우자에게도 할 말 안 할 말 있다” 답 없는 것들에도. “해답은 사건 속에 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인생에 몇 차례 어두웠을 한 번의 밤. 신 죽음의 시대에서 ‘하늘도 끝 갈 날’이 오던 날 동이 터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 신문이 운세를 통해 경고한다. “이미 던져진 주사위라면 말을 잘 써야 한다. 과거는 과거일 뿐 지난 일은 잊고 내일을 준비하라.” 그렇다. 신 죽음의 시대는 하늘이 끝 갈 날에 이미 끝나버렸다. 새로운 시대. 신 죽음의 시대 이후를 보았다. 운세도 미신이란 편견에서 벗어나 오늘을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오락이란 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