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220 진주 목걸이를 맨 그대의 고운 목 너무 예쁘면 할 말을 잃기 마련입니다. ‘너무’라는 단어도 ‘정말’이란 말도 필요 없습니다. 말 그대로 “예쁘다” 이 한 마디면 됩니다. 또 너무도 거룩하면 할 말을 잃게 마련이죠.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 그 감정을 뭐라 말해야 할까요. 신 앞에 선 모세도 야훼 하느님의 영광 앞에 신발을 벗고 말았습니다.(탈출3,5) 선지자 이사야도 야훼의 거룩함 앞에 벌벌 떨었습니다.(이사6,5) 그렇습니다. 정직한 것 앞에서 인간은 할 말을 잃습니다. 정직하게. 말 그대로 예쁘고 거룩함 앞에 우리는 넋을 놓습니다. 따라서 그 예쁘고 거룩한 존재 앞에 ‘너무’ ‘정말’ ‘아주’ ‘상당히’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냥 예쁘다고, 그저 거룩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가끔, 아름다운 것을 보면 넋을 놓고 그대로 바라.. 2024. 11. 11. 11:01 땋은 머리채 귀여운 두 볼 격하게 싸우는 사람들을 향해 저는 웃으면서 이런 상상을 합니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사귀지 그래?’ 세상만사가 이런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작동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이란 감정도 그런 것 같습니다.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 숨겨야 할 때가 있습니다. 괜히 들켰다간 쉬운 남자, 쉬운 여자로 보ㄹ 게 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국 사회는 초반의 기선 제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참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학교 시절 구약성서 아가서도 논란이 많은 문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절기에 아가서를 읽는다고 하는군요. 본문은 얼굴이 화끈해지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여자와 남자의 사랑을 그린 문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부 시절 아가서를 그리 중.. 2024. 11. 10. 16:00 아름다움의 여신이여, 이제는 편히 쉬소서 8년 전 이 신문은 PC버전의 퍼피레드가 서버를 종료하기 직전 걸출한 회원 한 분을 인터뷰 했습니다. 두 시간 이어진 대화는 화기애애했습니다. 대화의 요지는 간단했습니다. “퍼피레드만한 게임은 없구나” 이 진부한 교훈 하나. 그분은 말미에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서버 종료 공지 보고 사비와 재능기부로 유지됐다는 말에 찡했고….” 그랬던 그가 시간이 흘러 돌연 운영진을 비난하는 위치에 서 있더군요. 그분의 시간은 2019년 12월 1일에 멈춰선 듯 했습니다. ‘퍼피레드 같은 게임’의 개발이 중단된 날입니다. 퍼피레드 운영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신물이 난다는 듯 행동하는 점을 미뤄보면 트라우마로 남은 건 아닌지 싶을 지경이더군요. 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퍼피레드에 자산을 투자한 투자자도 아닐 테고, 그렇.. 2024. 11. 9. 10:50 당신에게 구할 한 가지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이 야훼 하느님을 원망하던 때였습니다. 야훼는 모세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죠. “장로 일흔 명을 세우고 고기를 먹일 것이다. 하루만 먹는 게 아니라 스무 날도 아니라 한 달 내내 냄새만 맡아도 먹기 싫을 때까지 먹게 될 것”이라고요.(민수11,16-19) 모세는 가능하냐고 묻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기에는 불가능하다고 답합니다. 그런 모세에게 야훼는 “나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하였느냐”고 묻습니다. 구약에서 야훼의 손은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권능을 선보였음에도 이스라엘은 40년을 광야 생활하며 야훼 하느님을 믿지 않습니다. 다시 과거를 그리워하며 이집트 노예 생활이 더 낫다고 불평하죠. 그런 인간들을 바라보며 모세는 야훼 하느님에게 당신의 존재를 요구합니다.(탈출32.. 2024. 11. 8. 17:45 누군가의 죽음이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음’에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완벽히 비어‘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슬픔으로 다가오듯 “왜?”라는 질문으로도 풀리지 않는 질문 앞에 섰을 때 무기력을 느낀다. 지금은 고인인 정신과 전문의 임세원 교수는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왜(Why?) 대신 어떻게(How)로 물을 것을 제안한다. ‘어떻게’는 ‘왜’와 달리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돕기 때문이다. 청소년 문학소설 ‘열여덟 너의 존재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오랜 밤, 부모의 격한 싸움에 지쳐버린 여고생 이지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스스로에게 다정한 말을 건넨다. ‘지금 당장, 교복부터 갈아입자. 옷 갈아입고 일단 자자’(161쪽 3줄) 피할 수 있었고 막을 수 있는 인재에 화가 난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계속 ‘왜’를 물으며 책임 소재를 묻기 급급하다. 지금도 커뮤니티 댓글 자체를 보지 않는다... 2024. 11. 7. 23:09 [돌아보는 사건] 겨울의 언어와 한강의 위로 1>신문 1면을 도배한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영예는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많은 신문들은 키워드를 ‘한국 첫’ ‘최초’ 그리고 ‘한강의 기적’으로 잡았더군요. 윤 대통령과 이시바 일본 총리가 만난 사건, 김건희 여사의 기소는 둘째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제목은 매일경제 1면이었습니다. ‘심장 속, 불꽃이 타는 곳 그게 내 소설이다’ 하필 매일경제는 한 작가와 여러 차례 인터뷰를 주고받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단독 인터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한 작가는 ‘채식주의자’로 2016년 맨부커상을 받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 제주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썼습니다.2>애석하게도 국가 권력은 한 작가를 블랙리스트로 포함한 전례가 있습니다. .. 2024. 10. 12. 09:14 [사진으로 보는 내일] 노을이 스미는 여자친구의 집에서 기나긴 여름이 지나갔다. 금세 추워진 아침 공기에 낯선 감정을 느낀다. 가을 공기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한 해가 지나 다시 경험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견딜 수 있게 도와준 여자친구 덕분이었다. 다시 낯선 감정을 느낀다 해도 괴롭지 않은 이유다. 올해 여름은 역동적이었고 진취적이었다. 수십 만보를 걸으며 여자친구와 닿은 여행지만 수십 곳에 달한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지나치지 않았을, 오히려 당신이어서 당신 덕분에 닿을 수 있었던 공간들. 이곳 여자친구가 사는 곳도 여자친구가 아니었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동네다. 여자친구 네에서 해 먹은 요리만 수십 가지. 집에서는 도무지 해 먹을 수 없는 기똥찬 메뉴들은 맛집을 넘나드는 그런 맛을 내었다. 부추전을 해 먹는 어느 날이었다. 노을이 져가는 여자친구.. 2024. 10. 11. 18:00 [일과속기록] 작은 거인과 ‘문장의 힘’ 선배의 다급한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학부 3학년임에도 수습기자부터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페이스북 메시지에는 절절한 사정이 담겨 있었다.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까지도 필요하단 말인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보사는 학생실천처장과 정치적 싸움에서 밀리던 상황이었다. 지원이 끊겼고 인쇄비마저 없어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대학원 진학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2010년 침신대학보는 이사회와 싸움을 벌여야 했다. 한 구약학 교수를 지키려고 학보사가 나선 것이다. 이사회는 자유주의 신학과 학력위조라는 핑계로 재임용에 반대했다. 이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기자들은 붓을 들었다.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려 했다. 그러나 편집의 손길은 끝내.. 2024. 10. 1. 22:00 [시대성의 창] 4년 만에 다시 ‘ㅅ’ 교회로 돌아간 이유 담임목사가 설교 중 고함을 질렀다. “전도해야 합니다! 대상자의 이름을 적으세요! 만일 이름조차 적어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목사는 과거에도 이런 극단적인 주장을 펴곤 했다. 나는 어이없는 수준의 설교에 분노했고, 6년간 몸담던 ㅅ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4년 만에 돌아갔다. 떠돌던 3곳의 교회는 모두 비슷했지만, 직전의 교회는 더 심각했다. ㅅ교회의 목사가 양반으로 보일 정도였다.직전의 교회는 1950년 무렵에 개척한 작은 교회였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때였다. 어느 날 담임목사는 설교 중 방역 때문에 시청 직원과 싸운 이야기, 방역 지침의 허점과 본인이 고안한 꼼수를 설파했다. 그러다 이어진 망언.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면 나노 칩이 혈관을 타고 뇌에 도착합니다. 그러다 나.. 2024. 9. 24. 03:00 [현실논단] “변화를 기다리던 때는 이제 지나갔기에” 심심하면 문학광장 글틴에서 청소년 작가들이 쓴 수필을 읽곤 한다. 청소년 작가의 글에서도 완성도 좋은 글을 발견할 때면 즐거움이 배가된다. 글틴에는 재미난 글들이 많다. 오탈자 많거나 줄바꿈 하나 없이 아웃사이더 같은 글에서부터 ‘와 이건 진짜다’ 싶은 정도로 폼 들인 글에 이르기까지. 자의식을 강하게 느낀 나머지 소설 같은 수필을 써도 사랑스럽다. 웹사이트가 괜찮은 디자인으로 구성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야들야들 밥 한 톨 같은 음절의 모음이 귀엽기도 하고 꽤 젊은 작가의 포스가 느껴지기도 했다.한때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문정동 스타벅스에서 청소년 작가들의 글을 정독했다. 한 단어, 한 문장도 놓치지 않았다. 때로는 밑줄 긋기도 했고 내 생각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잘 쓰고, 못 쓰고를 평가하지는 않.. 2024. 9. 7. 20:00 이전 1 2 3 4 5 ···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