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수련회를 다녀올 때마다, 나는 감정 상하는 일을 경험했다. 목사는 매번 설교 시간에 나를 거론하며 “매번 삐지고 돌아온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스스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다고 믿었던 목사는 이런 현상을 두고 ‘마귀가 역사한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마귀 역사’라는 말만큼 무책임한 단어도 없다. 한창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을 강제로 수련회 합숙소에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계속해서 기독교 사상과 이념을 주입한다면 어느 누가 즐겁게 받아들이겠는가. 설교 메시지도 탁월한 것도 아니다. “너희들은 죄인이야” “게임하지 마” “부모에게 효도해” 같은 직설적인 언사를 누가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는가.
결국은 사람의 불완전성을 결함으로 비치도록 만드는 말들을, 이제 자라 나는 연약한 자아에게 화살처럼 찌르고 있으니, 어떻게 견디겠느냐는 말이다.
한국 개신교회는 유치원생부터 장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메시지를 고수한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주장 말이다.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메시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던져 놓고 “이제 본질” “이게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왜 진리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냥 믿기에 믿는 것이다.

사춘기 소녀 소년 모아
“너는 죄인이야” 윽박만
불완전한 인간의 존재
결함으로 몰아세우고
공포팔이나 던져대니
마지막 수련회에서
유일하게 말벗 되어준
고마운 형마저 떠나고
나 역시 교회를 나선다
이제 자아가 성장하는 초등학생들에게는 효과적일지 모른다. 가장 연약한 자아를 가진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상처라는 사실을 교회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도 모자라 아이들을 죄인 취급이나 하며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길 바라고 있으니. 나의 감정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민감하고 예민한 성정을 가진 나란 사람이 집단 공동체 속에 파묻혀 나의 나 됨을 잊어버려야 했으니, 감정의 진폭이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담임 목사는 일대일도 아니고, 모든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재현이는 이번 수련회에서 삐지지 않았다”며 “성령 충만해선지 이야기까지도 주도한 걸 봤다”는 걸 보면 참, 기가 막힐 따름이다.
2014년,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나는 가능성을 보았다.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유아기 시절의 나는, 어른들에게 재롱 떨 줄 아는 아이였다고. 어렸을 시절 잃어버린 나의 본 모습을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발견한 것이다. 교회의 억압적인 구조와 폐쇄적인 환경, 죄와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가두고 있었다.
나의 마지막 수련회는 2015년이었다. 군 생활을 앞두고 흰돌산 기도원 수양관으로 향한 것이다. 이번만큼은 토라지지 않았다. 나와 함께해 준 형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형님은 유일하게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머지않아 형님은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나는 무척 아쉬웠다. 간만에 좋은 어른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나에게 말벗이 되어준 사람은 없었다. 나는 성경을 말하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데까지 관심을 기울일 또래를, 어른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딱 교회의 수준에 맞는 그런 어른들을 만난 것이다.
그런 어른을 만나러 교회를 다닐 필요는 없다. 교회를 벗어나, 그런 어른을 만나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아니, 그런 어른이 되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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