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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12

[건조한 기억모음⑤] [2] 똥 팬티 세탁에 매일 청소까지… 그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방장에게 노예 생활하던 중 나는 강렬한 신앙 체험을 했다. 내 인생의 각도를 튼 놀라운 사건이었다. 대학교에서는 학기 초 대학부흥회를 연다. 포도나무교회 여주봉 목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했다. 주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다.나는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오랜 시간 삶의 변화를 꿈꾸었다. 좀더 성실하게 살기를 바랬다. 정직하고 경건하기를 바랬다. 언제나 여색(女色)은 발목을 붙잡았고 마음을 괴롭게 했다. 그런데 여 목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만큼 그리스도인의 삶이 변한다”고 주장한 것이다.여 목사는 탈출기를 해설하며 하나님조차 자신의 목적과 수단으로 활용하는 자기중심적 인간의 삶을 비판했다. 나는 좌절했다. 이제껏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삶의 액세서리 쯤으로 생각해온 지난 날이 적나라하게 보였.. 2024. 12. 14. 07:10
[건조한 기억모음⑤] [1] “그날의 주먹, 용서할게요”… 다시 만난 형은 무릎을 꿇었다 기숙사 새 방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대충 언제 오느냐는 물음이었다.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 같다. “잘 모르겠다?”되묻는 물음에 느낌이 싸했다. “막내가 벌써부터 빠져가지고….” 방학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구린내가 진동했다. 똥군기의 서막이었다.스무살 학부 때의 일이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에 발디딜 무렵이었다. 3인실 쓰다가 5인실을 경험해보니 놀라웠다. 나무에 그늘진 방이 내 어둔 미래를 암시했다. 막내에게 주어진 의무는 가혹했다. 이틀에 한 번은 세탁을, 방장과 중방의 옷까지 말아야 했다. 먹기 싫은 야식도 내 돈 주고 먹어야 했다. 그 야식, 방까지 배달해야 했다. 꼬박 인사하는 건 기본이고 기분 좋은 선배 대접에 과제물 파일까지 메일로 보내줘야 했다. 다른 막내도 있었지만 나보.. 2024. 12. 14. 07:00
[고마운 이름들⑥] 그 시절 누나에게 교회는 ‘마지막 등불’ 내 기억 속 누나는 언제나 활짝 웃는 사람이었다. 세상이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않을 그런 강직한 사람. 그런 누나가 갑자기 사라졌다. 인사도 없이 교회를 나오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누나의 행방이 궁금했다.머지않은 시기였다. 나도 새능력교회를 탈퇴했다. 목사의 신앙과 나의 신앙은 대립각을 세웠다. 그리고 갈등했다. 교회를 나오면서도 인수인계를 철저히 했다. 방송실 근무자 민찬이에게도 여러 번 강조했다. “교회를 나오는 건 목사님하고 신앙이 달라서야.” 차마 내 입에서 목사의 신앙이 틀렸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예의였다.훗날 새능력교회가 젊은이의 노동력을 갈취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달에 교통비 5만원만 주면서 생색내는 목사가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2024. 12. 4. 07:00
[고마운 이름들⑤] 말없이 도둑놈 놔주며 “됐다, 그만 가 봐라” 버찌씨도 2센트도 아닌 ‘빈손’에 지난 번 초코칩쿠키는 대성공이었다. 허겁지겁 삼키느라 제대로 음미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리라 다짐했다. 점원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슬쩍 왼쪽 다리에다 겹쳐다가 홧김에 나와 버렸다. TV에 정신 팔리느라 못 보는 것 같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때는 초등학교 2학년. 오늘도 챙겨오라던 준비물을 빼놓고 갔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존나 아픈 기억만 남은 걸 보면 손바닥 아작 날 만했다. 불과 20년 전 엄한 회초리와 귀싸대기가 일상이던 시절의 얘기다. 그땐 거짓말이 일상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도둑질도 많이 했다. 친구네 집에서 훔쳐온 장난감만 몇 주먹이나 쥐어야 할 정도였다. 실컷 놀다가 배가 고파졌다. 상가 건물에는 1층에 마트와 맞은편 교회가 .. 2024. 5. 8. 19:33
[건조한 기억모음④] [2] 무신론 선배에 민주당 지지자, 술 처먹고 드르렁… 그런 긱사 또 없습니다 “야 재현아, 야식 먹으러 와라!” 맞은편 박 선배네 방에는 여러 선배들이 야식 먹을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둘러보았다. 내가 껴들어도 되나 싶었다. 헬스에 미친 장 선배, 민주당 지지자 박 선배, 기도원에서 살다시피 하던 대풍이까지. 박 선배네 방은 박근혜 지지자에 보수적 신앙인이던 나를 품어주는 곳이었다. 2013년 대학교에 입학한 첫 학기 새내기에게 군기 대신 야식 챙겨주는 고마운 선배를 만났다. 이듬해 2학년 근대교회사 시간, 교수의 그 말 한 마디에 박 선배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세월호도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건 자제해야 하죠.“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발끈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교수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인 건 .. 2024. 5. 8. 19:33
[건조한 기억모음④] [1] 가나안이라 믿었던 신학교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유아교육과 여자애들이 내 번호를 물어봤다는 선배의 말이 농담인 줄 알았다. 지금이라면 모든 번호 다 캐내었을 테지만 그땐 그럴 마음이 없었다. 신문과 성경을 든 블랙 톤 뿜뿜인 내게서 어떤 매력을 느꼈을진 모르겠다. 신비주의 끝판 왕과도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 아니었을까. 뒤늦게 깨닫는 일들이 있다. 소중한 줄 알지 못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이키지 못할 시점 언제나 과거와 만날 때면 아쉬움만 뒤따른다.의외였다. 후회의 낯빛이 머문 자리는 여자애가 아니라 남자애였다. 같은 날 신학교에 입학한 영어과 동기에게 측은지심 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신학과를 같은 믿음, 같은 신앙 가진 이들이 비슷한 소명을 가지고 오는 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학부 4년 동안 눈으로 본 믿음의 개수만 가지.. 2024. 5. 8. 19:31
[고마운 이름들④] “원주의 어느 골목이었습니다. 감자탕집 아저씨는 길 잃은 절 아들처럼 저녁 차려 베푸셨죠.” 그 여름도 상당히 더웠다. 푹푹 찌는 살갗에서 감도는 짠맛과 흙냄새로 뒤덮으며 나는 냄새. 가만히 있어도 땀 한 방울 흐르는 등줄기를 느끼며 동네 골목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걷는다. 원주의 어느 집골목 사거리만 건너면 곧바로 바둑판 골목이다. 지금의 내 걸음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만 5살 꼬마가 걷는다면 얼마 만에 도착할까. 해도 뜨지 않는 새벽, 어린이집 봉고차 탈 생각에 저절로 눈이 뜨였다. 분명히 한 시간 전이라면 더 자고도 남을 시간일 텐데. 일찍부터 씻고 옷을 갈아입을 채비에 나섰다. 장롱을 열어 흰 옷을 꺼내고 엄마가 깨지 않게 조용히 갈아입는다. 대문을 열어 한적한 이차선 도로, 콘크리트 벽에 바짝 붙어서 지평선이 보일만치 직선 도보 걷는다.  집 앞까지 와주는 운전 선생님 힘들지 않게.. 2022. 7. 20. 07:00
옥한흠은 인간관계 주목했고 조용기는 교회성장 바라보다 비공개 기사입니다. 2022. 7. 10. 13:13
“교회 건물이나 키우는 신앙이 소년을 망가뜨려” 비공개 기사입니다. 2022. 7. 10. 13:12
[고마운 이름들③] 보고싶습니다 유 사범님 “태권! 사범님 안녕하십니까! ○○○입니다!”‘택권!’ ‘사범님’까지는 정확한 발음으로 말문을 열다가 이름이 나오는 순간에 흐려진다. 어색한 웃음과 인사에 유 사범이 진지하게 받는다. ○○태권도 사범으로 알려진 유 씨의 기억이 흐려졌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성씨가 ‘유’인 점만 기억한다.◇남자다운 면모 드러내었지만 남자다움 강요 않던 유 사범은 남자였다. 평범한 남자가 아니라 상남자다. 민재(가명), 다이어트 시켜준다고 1박 2일 분교를 빌려 다녀온 수련회에서 조 이름을 ‘다이어트’로 결정했을 정도다. 내가 무슨 조였는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민재가 속했던 유 사범 조 이름은 또렷하다. 궁서와 바탕의 중간체를 펜으로 써 내려간 ‘다이어트’ 네 글자가 인쇄 글꼴보다 선명하다.한국 사회에서 남.. 2021. 10. 3. 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