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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돌아보는 사건

[돌아보는 사건] 겨울의 언어와 한강의 위로

자유의새노래 2024. 10. 1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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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1면을 도배한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영예는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많은 신문들은 키워드를 ‘한국 첫’ ‘최초’ 그리고 ‘한강의 기적’으로 잡았더군요. 윤 대통령과 이시바 일본 총리가 만난 사건, 김건희 여사의 기소는 둘째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제목은 매일경제 1면이었습니다. ‘심장 속, 불꽃이 타는 곳 그게 내 소설이다’ 하필 매일경제는 한 작가와 여러 차례 인터뷰를 주고받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단독 인터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한 작가는 ‘채식주의자’로 2016년 맨부커상을 받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 제주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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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게도 국가 권력은 한 작가를 블랙리스트로 포함한 전례가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말이죠.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용호성 문체부 1차관은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에 파견돼 행정관으로 일하며 배제 인사 명단을 문체부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는 세종도서 문학 나눔 3차 심사에서 탈락했습니다. 사상적 편향성을 이유로 배제된 것입니다. 한 작가는 2016년 12월 한 인문학 강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5·18이 청산되지 않았다는 게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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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것이 원래 연결의 힘을 가지고 있지요. 언어는 우리를 잇는 실이기도 하고요.” 매경 인터뷰에서 한 작가 말마디의 핵심은 ‘연결의 힘’이었습니다. 한국어로 쓰여 다양한 언어로 번역이 되고, 한국인이 보던 소설에서 세계인이 읽는 소설로 이어지는 과정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는 무척 인상적입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 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그의 작품이 저항소설이기보다 함께 아파하는 소설이란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함께 아파하는 것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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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은 한 작가의 문학적 발원을 좇다 보면 ‘겨울의 언어’를 발견하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지독한 겨울의 언어’ 말이죠.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답하는 게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아니라 질문을 이어가는 것이요. 2016년 KBS 인터뷰에서 한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식물이 되어야 한다는 대답도 아니고 우리가 뭔가를 영혜의 언니처럼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런 어떤 사람이 있다, 이렇게 인간이기를 싫어한 사람도 있다. 이것 자체가 질문이 아닐까. 불편한 이 질문 속에 견디며 머물러 보는 건 어떨까.” 지금도 겨울의 서원(멧돼지가 살던 별)에서 시린 추위를 견디고 있을 모든 나약한 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