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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시대성의 창

[시대성의 창] 4년 만에 다시 ‘ㅅ’ 교회로 돌아간 이유

안중현 자유기고가 2024. 9. 24. 03:00

 

담임목사가 설교 중 고함을 질렀다. “전도해야 합니다! 대상자의 이름을 적으세요! 만일 이름조차 적어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목사는 과거에도 이런 극단적인 주장을 펴곤 했다. 나는 어이없는 수준의 설교에 분노했고, 6년간 몸담던 ㅅ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4년 만에 돌아갔다. 떠돌던 3곳의 교회는 모두 비슷했지만, 직전의 교회는 더 심각했다. ㅅ교회의 목사가 양반으로 보일 정도였다.


직전의 교회는 1950년 무렵에 개척한 작은 교회였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때였다. 어느 날 담임목사는 설교 중 방역 때문에 시청 직원과 싸운 이야기, 방역 지침의 허점과 본인이 고안한 꼼수를 설파했다. 그러다 이어진 망언.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면 나노 칩이 혈관을 타고 뇌에 도착합니다. 그러다 나쁜 사람이 5G 주파수로 나노 칩을 조종해 백신 맞은 사람을 조종할 겁니다. 그 백신이 바로 666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헛소리였다. 목사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목사의 강요는 나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나는 설교 도중 목사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가족을 데리고 교회를 떠나고 만 것이다.


나는 ‘이게 정말 기독교 신앙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진단한 한국교회는 이랬다. 몇몇 목사들은 자신의 욕망, 다시 말해 교인 수 증가와 권력 확대를 위해 문자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는 성경 구절을 찾아와 교인들을 협박한다. 이때 목사는 ‘자신은 단지 성경을 인용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 협박을 들은 교인들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목사의 지시에 따르게 된다. 안타깝게도 교인들은 이것을 ‘성경이 말하는 순종’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스스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자세였다. 성경을 바로 알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짜고짜 쉬운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출애굽기를 다 읽자 오히려 쉬운 성경은 어려운 성경으로 돌변했다. 어떻게 이걸 쉽다고 할 수 있을는지. 결국 성경 읽기를 욥기에서 멈췄다. 이유는 두 가지다. ❶성경을 읽었으나 읽지 않은 과거와 차이가 없었다. 나는 그저 쉽게 풀어썼다고 하는 성경의 글자만을 읽었을 뿐이다. ❷하나님이 욥과 욥의 친구들을 왜 꾸짖었는지, 하나님이 욥에게 천지창조 이야기를 꺼내는 맥락과 그 맥락을 알아들은 욥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성경의 권위 휘두르며
대언자라 믿는 목사들
당신들은 알기나 할까
요나가 곁에 있다는 걸

 


성경을 혼자 읽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경은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성경을 혼자 읽어 왔다. 성경을 가르쳐 줄 신뢰할 만한 목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튜브 대형 기독교 채널에 올라온 성경 강의를 찾아보았다. 강의들이 말하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성경은 “네 삶을 실현하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당신을 두렵게 만드는 것과 당신을 지배하는 것들에게서 벗어나 “자유하라”고 말이다.


성경의 진실을 깨닫자 과거 한 기억이 떠올랐다. ㅅ교회를 한창 다닐 때였다. 목사가 사모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사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죽을 죄인인데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으니, 이제는 내가 없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평생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사고가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교회 일에 지나치게 몰아넣는 것을 정당하다고 느끼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ㅅ교회 목회자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물론 아직까지도 성경을 채찍처럼 교인들에게 휘두르며 나를 분노하게 한다. 그런데도 ㅅ교회로 돌아왔다. ㅅ교회 목회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요나의 입장으로 말이다.


18세기 위그노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칼뱅의 가르침을 따르는 개신교 신자들이었다.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 영국 등으로 탈출했다. 위그노들은 ‘하나님은 모든 영역을 통치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이민지에서 얻은 직업을 소명으로 여겼다. 직업 생활 중 난관을 만나도 통치자 하나님을 믿으며 포기하지 않고 난관을 극복해 나갔다. 그 결과, 위그노들은 각자 분야에서 탁월한 장인이 되었고, 산업혁명에 공헌하며 막대한 부를 얻었다. 당시 그들은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는 절대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위그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내 목회자 전도 전략이다. 위그노의 삶을 보여줄 때, 목회자들이 스스로 만든 하나님이라는 우상은 부서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