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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시대성의 창

[시대성의 창] 노동력 쥐어짜는 나라라면

 
병사 월급 200만원에 장교·부사관 사기가 저하된다는 1등 신문 사설 댓글 창을 읽어보니 가관이었다. “이 나라는 휴전 중인데 의무사병보다 직업 군인 급료가 더 적다는 건 기강과 사기에도 걸림돌이 될 것” “당연히 사병들의 처우는 개선해야 하지만 지나친 혜택은 장교와 갈등만 생기게 한다” “형평성에 안 맞는다. 군대가 놀다 나오는 곳이 아니잖은가” 지난 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도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 만 19세~34세 월 평균 임금은 252만원이었다. 병신 같은 댓글 말마따나 한국 안보 가치는 월 평균 임금만도 못한 수준인가보다 생각했다. “방산비리는 생계형 비리”라던 생계형 국방장관도 있는 마당에 말해 뭐하나.

언제나 늙은이는 고상한 가치를 들먹이며 자기 이익 챙기기 바쁘다. 다른 말로는 명분인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숱하게 보았다. 자기 이익이 걸린 사안에 대고 명분을 끌어와 잉여 노동 착취하는 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10년 몸담은 교회가 그랬다. 허울 좋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에 수많은 청년 노동이 착취됐다. 아무런 보상도 급여도 없었다. 번아웃에 교회를 탈출했고 목사는 탈퇴 청년들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교회뿐만 인가. 광의적 의미인 국방의 의무를 20대 남성에게 한정 지어 군복무로 해석하던 한국 사회는 대선에서마저 젊은이를 자극했다.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을 ‘군사 표퓰리즘’으로 정의한 그 신문은 말한다. “월급 200만원 공약을 철회하면 찬성하는 국민이 훨씬 많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직장갑질119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천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유로운 법정유급휴가(연차) 사용이 어렵다는 응답이 30.1%에 달했다고 밝혔다. 같은 조사에서 직장인 중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경우가 43%에 달했고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경우가 36%였다. 여성은 각각 50%, 45%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사측의 거짓말은 노동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①국민연금·건강보험은 순차적으로 납부할 예정이다 ②연차 사용하기 쉽게 조치를 취하겠다 ③무분별한 업무 분장 바로 잡겠다는 세 가지 약속은 세 달 지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바뀌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에게 불합리한 환경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다수 사용자의 인식 때문이다.
 
 
주 69시간 근무 제시
병사 월급 공약 절충
값싼 자유·애국 앞에
여론 들끓자 尹 깨갱
 
 
지난해 8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연도별 건강보험 체납현황’을 공개했다. 1개월 이상 건보료 누적 체납 현황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2021년 건보료 누적 체납은 395만 4000건에 체납액만 4조 7057억원이다. 그마저도 2018년 5조 109억원에서 감소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바쁠 때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도록 노동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2023.03.06) 1주 단위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 또는 연 단위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정부가 휴가를 모아 ‘제주 한 달 살이’ 가라고 말하지만 한 달 휴가 가려면 최소 11시간 연장 근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루 12시간씩 30일을 일해야 가능하다.

그리고 한국은 합계출산율 0.78명 시대에 도달했다. 세계에 유례없는 수치다. 이제 더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다. 저출생과 혼인 감소는 노동 시장과 무관하지 않다. 취업해야 결혼을 계획할 수 있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돈 앞에서 각자도생이 되어버린 이 나라에서 누가 애국으로 헌신하고 애사심 가지고 노동한단 말인가. 대통령에게 이 나라 애국은 당연한 가치인가. 자유가 당연한 가치가 아니듯, 노동의 가치도 당연하지 않다. 한국은 저성장 국면에 돌입한지 오래다. 인구경제학자 전영수 교수는 인구 감소가 국내총생산 하락으로 이어진 점을 지적했다. 위기의 순간에도 노동자를 쥐어 짜 성장의 막차를 늘리기 위해 아등바등 한다. 대통령부터 200만원 비용을 치루고서라도 지켜야 할 애국이라는 가치를 보였다면 공약 철회 같은 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대표 본인부터 야근수당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신뢰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 또 한 사람 동료가 신문사를 떠난다. 중간 관리직이 없어 고생만 하고 이곳을 나선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대표에게 내민 시정 사항이 많았다고 한다. 돌아보아도 단 하나 바뀐 게 없다면서 웃을 뿐이다. 무책임한 낙하산 인사는 동료 앞에서 일부였다. 누군가의 노동을 물 쓰듯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비용은 치루지 않으려 한다.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노동 시간은 1915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5위다. 그마저도 더 늘리자고 말한다. 과격한 커뮤니티 언저리에서는 이런 말이 나돈다. “이 정도로 착취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그럼 쳐 망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