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 Page 7

[팔짱만 껴도 좋은걸②] 펭-귄, 페—-ㅇ귄, 뽀뽀 —- 우

여자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애착인형을 데려왔다. 정확히 몇 월 며칠에 왔는지를 서로가 모르는 걸 보면 처음엔 별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에 저장된 걸 보면 애착인형의 첫 사진은 지난해 9월 20일이다. 9월 전후로 애착인형을 데려온 것이다. 인형을 산 건 10년도 더 됐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동생에게 부탁해 에버랜드에서 사 왔다는 것. 영혼 없는 눈망울, 무표정한 얼굴, 입을 여닫을 수 없는 부리. 여자친구는 애착인형더러 “킹 받는다”고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출근하고 집에 없는 동안, 장난끼가 발동했다. 여자친구가 벗어놓은 잠옷을 내가 애착인형에게 입혀 놓고 나간 것이다. 저녁,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나는 능청맞게 장난을 쳤다. “어? 오늘 출근 안했어요?” 여자친구가 맞장구를 쳤다. “뭐지. 그럼 난 뭐지.” 애착인형은 울 줄도 안다. “펭~귄” 여자친구 특유의 발음에 착안해 나는 “펭~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도 재밌다고 따라한다. “펭~귄” 우리끼리만 맛있는 걸 먹으면 애착인형은 삐진다. “펭~~귄” 우리끼리만 재밌는 데 가도 애착인형은 삐진다. “페~~~~ㅇ귄” 그런 애착인형을 여자친구는 무척 아낀다. 내가 애착인형에게 뽀뽀를 하면 “펭귄OO 괴롭히지 마욧~!”이라며 걱정도 해준다. 그런 애착인형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올해 애착인형 2호를 데려온 것이다. 그것도 판교에서 온 녀석이다. 우리의 애착인형과

[커버스토리] 10년이 지나고 나에게 선물 받은 나의 방

10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자 재채기가 나왔다. 이 정도 먼지면 바깥에서 털었어야 했다. 중학생 시절에 만들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 과제를 꺼내 들자 허술하게 관리한 그간의 세월이 먼지만큼 보였다. 뇌리에 남은 미술 선생님 이미지는 두 가지다. 섬세함과 예민함을 갖춘 바람에 우리들에게까지도 엄격함을 요구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이기적인 인간상, 또 하나는 부처상 앞에서 백발배로 성찰하며 자신의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가다듬던 인간상. 그 짧은 반 오십 살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어간 사람들 셋을 보았는데 그 중 한 분이 미술 선생님이었다.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던 예민함과 섬세함을 극대화해 끝내 자신의 성격조차 조각하듯, 하나하나 새겨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런 어른이 가르쳐주셔서 고마웠다. 선생님은 신문지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라 하셨고, 좋아하는 간판을 그리라고 흰 종이를 내주셨고, 배달 음식으로 남은 나무젓가락으로 탑을 쌓아보라 하셨고. 마지막으론 내 방 만들기라는 거대한 과제를 내주셨다. 즐거웠다. 왜냐하면 나는 늘 내 방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집에서 놀 듯, 학교에서도 놀아보라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선지 학교 가기가 가벼웠고 하나 둘 만들어가는 교실 속 광경을 느끼자 내 세상 같았다. 고입선발고사를 위한 미술 공부는 재미없었다. 지금도 머리에 남는 교과서 속 인물은 독창적인 팝아트 거장 엔디 워홀(Andy Warhol)밖에 없다. 점 하나 찍고 돈 세탁이나 하는 줄만 알았던 작품의 세계를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편견을 집어치우고 말았다. 즐겁게 제작하던 10년 전 작품을 다시 손에 들었다. 내 방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작품들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지면은 여행을 떠나고 채워야 했지만, 코로나 파동으로 인해 방 꾸미기 기사로 갈음한다.

[15일의 기록] 기능소개- 요리하기: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미니파크로 놀러오세요!

2021년 11월 20일
퍼피레드는 소량의 콩을 이용한 요리가 가능하다. 박스 안 순서를 클릭해 완성하는 방식이다. 완성한 요리를 미니파크에 배치하고 ‘판매하기’로 설정하면 먹을 수 있다. 내가 먹으면 원가에서 10% 더한 수익을 얻지만 누군가가 먹어주면 15% 가량 되받는다. 의도적인 버그일까. 삼단 케이크는 원가에서 두 배 이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딴 짓하면 안 된다. 다음 순서로 넘어가려는 15초 이내 다음 순서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당신은 요리에 실패했다.

[15일의 기록] ③결혼, 버뮤다 순복음교회에서 했어요!

2021년 11월 20일
봉춘님 앞에선 자존심이건 뭐건 없었다. 일단 알겠다고 했다. 우리 교회에선 단 한 번도 결혼식을 열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다. 자존심이라고 말했다. 자존심 앞에서는 이성친구과 성형, (필)캐시도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성친구 기능을 반대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필요없는 것들이라고 주장한 탓이다. 허나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룰 수 있겠냐던 여성 교인 한 분 앞에선 간단히 무너졌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아. 내가 잘 아는 분이다. 마음이 착잡했다.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자존심을 꺾었다. 두 분 모두 잃고 싶지 않았다. 마음 한 편엔 예배당을 꾸미고픈 욕망이 꿈틀거렸다. 상상력을 발동했다. 180석 대성전이 들썩였던 결혼 예배에서 가장 먼저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고 퇴장할 길을 마련했다. 웬만해선 교인석을 건들지 않았지만 이번 만큼은 예외였다. 레드카펫을 깔았다. 파란 물로 흥건한 예배당 중앙에 정열적인 사랑이 흐르는 것 같았다. 포스터를 제작해 홍보에 나섰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의지한 지금 보면 조악한 수준의 포스터다. 주례를 가장한 설교를 고민했다. 내용은 어땠을까. 아마 짧았을 것 같다. 보통의 설교라면 설교문을 작성한다. 지금까지 남은 결혼식 관련한 설교안이 없는 걸 보면 즉흥 주례를 이어가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함 투성이다. 결혼식이 무색하게 피로연도 없었고, 부모님도 모시지 못했다. 아버지의 손을 잡아야 할 신부는 홀로 예배당을 걸어 들어와야 했다. 하다못해 삼단케이크라도 준비해 놓을 걸. 부족한 것들은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채워졌다. 교인과 일반인 할 것 없이 파티&파티가 열리자 속속들이 거대한 예배당을 채웠다. 결혼식에 앞서 좌석에 앉은 참석자를 촬영했다. 미처 준비 못한 꽃들은 이들을 통해서 신부와 신랑의 손에 들렸다. 강대상 위 의자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티&파티를 열자마자 물밀 듯이 들어온 퍼피레드 회원들이 교인들과 섞여 환호성과 함께 했다. 평소 예배보다 북적였다. 어느 때보다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었다. 긴장됐다. 주일예배 때와는 전혀 다른 긴장감. 말 잘못하거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다면 두 사람의 간절한 바램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 잘해야 한다. 잘 해낼 거라 믿었다. 보통 퍼피레드 교회 예배는 찬송-기도-성경봉독-설교-기도-주기도문 순이다. 결혼식도 다르지 않았다. 개식사를 대체한 사회자의 찬송과 기도, 그리고 신랑과 신부의 입장. 혼인서약과 혼인이 이루어졌음을 선언하는 성혼(成婚)선언문을 낭독하고 이어진 주례사. 참석자 내빈들 앞에서 인사하고 교회 밖으로 행진하는 신랑과 신부. 처음이자 마지막, 퍼피레드 버뮤다 순복음교회에서의 결혼식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주례를 빙자한 설교 내용은 기록으로 남겨놓은 게 없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즉흥적인 설교를 좋아하던 탓이다. 다만 단 한 가지 기억하는 게 있다면 신부와 신랑에게 물은 질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하나님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느냐던 물음만은 생생하다. 결혼식을 마치고 모두가 대성전 앞자리에 모였다.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내빈들은 예배당 이곳저곳에서 포즈를 잡았다. 어느새 내 손에도 꽃이

[ㄹㅇ루다가] 모더나 백신 2차 접종, 근육이 아프고 열이 발생하고 몸살이 났다

2021년 10월 05일
첫 코로나 백신을 모더나로 맞았다.(2021.09.30) 시월이 다가오기 전 맞을 수 있었던 건 잔여백신 덕분이다. 원래는 10월 1일로 예약했다. 사전 예약 대신 잔여백신으로 당일 신청한 이유는 하루라도 더 빨리 맞고 싶었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병원에선 볼펜을 건네며 몇 가지 문항에 체크하라고 종이 한 장을 전했다. 백신 맞기 전에도 코로나19에 감염 됐는지, 해외는 다녀왔는지, 복용하던 약은 있는지 등 빼곡한 문항 하나하나 정독하며 예, 아니오로 답했다. 내 앞 환자들이 많은 탓에 30분가량 책 읽으며 대기했다. 내 차례다. 들어가서 팔을 걷었다. 리뷰에서 본 것처럼 선생님은 친절했다. 몇 가지 사항을 들었으나 나가는 순간 잊어버렸다. 아픈 증상이 며칠 이어지면 병원에 오라는 말 한 마디만 기억에 남았다. 아플 수 있다는 말에 잔뜩 긴장하고 타이레놀도 사놨지만 반응이 없었다. 3일이 지나 문자가 왔다. ‘[질병관리청]1차 이상반응 신고 안내’ 설문에 응답했다. 모더나 1차는 아무 증상도 없이 일상생활 속에서 잊혔다. 미리 준비한 해열진통제 모더나 2차 맞을 시기가 다가왔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같은 병원을 방문해 맞았다. 다른 게 있다면 대기 시간이 전보다 짧다는 점 하나. 선생님은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아픈 증상이 며칠 이어지면 병원에 오라는 말씀과 열이 발생하면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해열진통제를 복용하라고 설명했다. 간호사가 준 백신 안내문을 읽었다. ‘예방접종 후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의사의 진료를 받으세요’를 주의 깊게 읽었다. ▲접종부위 부기, 통증, 발적이 48시간 이후에도 악화되는 경우 ▲4주 이내에 호흡곤란, 흉통, 지속적인 복부 통증, 다리의 부기와 같은 증상이 나타난 경우 ▲심한 또는 2일 이상의 지속적인 두통이 발생하며, 진통제에 반응하지 않거나 조절되지 않는 경우, 또는 시야가 흐려지는 경우 ▲갑자기 기운이 떨어지거나 평소와 다른 이상증상이 나타난 경우 ▲접종부위가 아닌 곳에서 멍이나, 출혈이 생기는 경우. 간호사는 종이 위 여백에다 ‘3:43’을 써놨다. 오후 3시43분. 15분이 지나 병원을 나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판대에 실린 중앙일보엔 ?VS이재명이 배치됐고, 마음으로 ‘윤석열이네’ 읊조렸다. 이번엔 진짜 아플 수 있다는 생각에 침대 옆에다 약을 두었다. 지난 1차 때 사둔 멀쩡한 그 타이레놀이다. 모더나 2차에서야 온 반응 ①3시간 15분 경과: 접종 부위 근육이 살짝 아팠다. 얼마나 아팠느냐 하면. 건드리면 ‘흠, 조금은 아프군’ 싶을 정도로 통증이 느껴졌다. 1차 때도 마찬가지였다. 열도 없었고 별달리 아픈 데도 없었다. 단지 접종한 부위, 왼쪽 팔뚝을 건드리면 아픈 티가 날 뿐이다. 지면신문 기사를 마감하려 책상에 앉았으나 글이 쓰이지 않았다. 백신 때문이라기 보단 평소의 습관적 방전 탓 같다. ②4시간 40분: 일찍 침대에 누웠다. 오후 8시23분. 미열 같은 증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뒤척일 틈도 없었다. 졸음이 온 몸을 감싸 안았다. ③8시간 21분: 자정이 넘어서야 깼다.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접종 부위인 왼쪽 팔은 힘을 주면 웃음이 나오면서 힘이 풀렸다. 적당히 아프다는 뜻이다. 욱신거리는 게 신경이 쓰였다. 활동엔 무리 없는 수준이다. 엎드려서 2시까지 카톡이나 해댔다. ③16시간 53분: 오전 8시36분. 드디어 열이 발생했다. 몸이 아팠다. 얼마나 아팠느냐 하면. 감기처럼 열이 발생한 정도였다. 접종 부위뿐만 아니라 전신에 열이 발생했다. 토요일 하루 침대에 누워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타이레놀 한 정 복용했다. 일일 최대 복용량이 4000㎎이다. 8시간에 한 정씩 500㎎ 먹기로 했다. 미열이라서 신문 한 면이라도 편집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지만 바람에 불과했다. 하루 앞 당겨 당일 접종 잔여백신 모더나로 확정 모더나 2차 접종 후 이상반응 8시간 넘어 잠에서 깨 미열 발생한 사실 확인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약 8시간 텀, 두 차례 복용 접종 40시간 후 나아져 신음이 절로 나오는 시간 ④21시간 8분: 오후 12시51분. 열이 많이 떨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스벅 한 자리 잡아 화이트 초콜릿 모카를 마시며 글이라도 쓰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오늘 하루 완전히 침대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고달픈 운명을 깨달았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열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다. 100% 정도의 열이 있다면 20%만 남은 느낌이다. 두 정을 먹었다면 다 사라졌을까. ⑤24시간 53분: 오후 4시36분. 존나 아팠다. 존나 아파서 신음이 나왔다. 약이 필요했다. 미리 약을 뜯어놨어야 했다. 손가락에 힘이 다 빠져서 뜯을 수 없었다. 짜증이 몰려왔다. 식칼을 꺼냈다. 약을 찔러다가 후벼 팔 정도로 포장지를 아작 내서야 복용할 수 있었다. 열이 다 떨어지기는커녕 전신 고열로 신음이 Zㅏ동으로 나왔다. 끙끙 앓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꿈을 얼마나 많이 꾸었는지 셀 수 없을 지경이다. 깊은 잠자지 못했다는 의미다. ⑥25시간 44분: 오후 5시27분. 확실히 열이 떨어졌다. 살 것 같지만 계속 누워 있어야 했다. 유튜브 정도는 시청할 여력이 남았다. 오은영 박사님 영상을 시청했다. 밥 해 먹을 힘조차 없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ㄹㅇ루다가] 백신 맞고서 이상반응 클수록 항체 형성이 더 잘 생기는 걸까?… “의학적 근거 없다”

2021년 10월 05일
백신을 모더나로 접종한 배우 소진(35)이 이상반응을 호소했다.(2021. 10.04) 심장이 뛰고 몸살 기운과 두통이 생겼다는 후기였다. 배우 설현(26)은 화이자 2차 접종을 마치고 갈비뼈까지 접종 부위 통증이 이어진 후기를 유튜브로 밝혔다. 이어 가수 홍자, 이종 격투기 선수 추성훈 등도 이상반응 사실을 밝혔다.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주간 분석 결과’를 통해 이상반응 의심사례 신고현황을 발표한다. 40주차인 12월5일 0시 기준으로 백신 접종 10만 건 당 이상반응 의심 신고는 451.4건으로 1차 접종 534.8건, 2차 접종 394.6건으로 집계됐다. 신고 당시 환자 상태 기준으로 중대하지 않은 이상반응(접종부위 발적, 통증, 부기 등 흔하게 발생하는 증상)인 ‘일반’과 사망이나 아나필락시스 의심, 주요 이상반응인 ‘중대한 이상반응’으로 구분한 결과 일반 이상반응은 의심 신고 중 96.4%를 차지했고 중대한 이상반응은 3.6%로 드러났다. 아플 수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중대한 정도로 이상반응 현상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아낙필락시스(Anaphylactic shock)특정 물질에 대해 몸에서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특정 물질을 극소량 접촉해도 전신에 증상이 나타나는 알레르기 반응이다. 백신 접종 후 ▲전신이 붉어지거나 두드러기가 생기거나 ▲숨이 차 쌕쌕거림 ▲어지럽거나 의식이 없음 ▲창백하거나 늘어지면 아나필락시스 일 수 있다. 접종 후 접종기관에 15분 머무르며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지 관찰한다. 그렇다면 많이 아플수록 젊고 건강한 걸까? SNU팩트체크에 답변한 한림대병원 이재갑 감염내과 교수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개인이 증상을 느끼는 정도가 각자 달라 통증을 건강과 연관시키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같은 질문에서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정기석 교수는 “자신이 아는 의학적 상식으로는 그런 상관관계를 낸 자료는 없다”고 답했다. 정 교수는 “통증과 건강 상태는 상관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이 크면 면역력이 좋은지에 대한 질문도 같았다. 이 교수는 “젊은 사람일수록 이상반응 빈도가 올라가는 건

[지금,여기] 와, 바다에게도 노래 불러 줄 수 있구나

2021년 05월 01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노동자 노래단’과 ‘삶의 노래 예울림’이라는 노래패가 합쳐져 지금의 꽃다지가 등장한다. 꽃다지는 편견을 버리게 도왔다. 삶. 민중가요는 증오와 투쟁만을 담지 않았다. 2011년에 발매한 정규 4집 「노래의 꿈」(2011.12.09)이 그렇다. 꼭 외길 투쟁만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두 눈을 똑바로’가 내가 믿는 정의와 멀지 않음을 말한다. ‘내가 왜?’ ‘당부’처럼 슬픈 염원을 담기도 하지만 ‘친구에게’ ‘한결이’처럼 일상의 메시지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코로나를 맞아 꽃다지도 유튜브에서 활동한다. 콘서트 실황과 클립 영상이 올라왔다. 정윤경 보컬이 잠잠하게 바다의 시각으로 인간 향해 노래 부른다. 시화호를 생각하며 부른 곡이다. 자연을 몰아내고 개발에 몰두하다 코로나를 맞은 지금의 상황과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찢어질 듯 갈라지는 보컬의 목소리에 바다는 운다. “방조제 너머의 너는 진정 나인지/이 안에 갇혀버린 나는 진정 바다인지.”(난 바다야, 2011)

[지금,여기] 전두환 따까리를 전구처럼:「시대유감展」②

2021년 05월 01일
임옥상 작가의 「발 닦아주기」에 다다르자 빵 터졌다. 전두환 발 닦아주는 노태우 바깥 경계에 정치인들이 노랗고 붉은 색깔로 칠해져 전구처럼 전시 돼 있었다. 기발했다. 대통령 풍자가 가능해진 이후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지금 시대야 문재인과 지지자를 “문재앙” “대깨문으로 부르는 시대지만. 서슬 퍼런 5공 시절 겪고서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가능해진 시대의 풍자라면 느낌이 어땠을까. 아쉽게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촬영 불가였다. 민중미술이 닿은 시선 민중미술은 독재라 이름 짓는 권위주의 정부만 타도하지 않았다. 80년대 한국 사회는 급변했다. 경제성장과 함께 올림픽으로 세계화를 맞이했다. 전두환이 부추긴 측면도 강하다. 컬러 방송 시대를 열면서(1980) ‘국풍81’ 대규모 문화 행사를 개최(1981)했고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1982)했다. 프로야구와 축구, 씨름이 출범(1982-83)하자 여적(餘滴)은 이렇게 말한다. “흔히 스크린 스포츠 섹스 두 문자를 따라서 현대를 3S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말한다.”(경향신문, 1983) 불과 전두환 시절 7년 간 대가족 중심에서 4인 가족으로 구성원 숫자가 변했고 민주화 운동이 가라앉던 냉전체제가 끝나간 90년대 중반 텔레비전 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어섰다. 대중적 환경이 변하며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난 개인은 유흥과 성에 빠지기 쉬웠다. 관계가 아닌 소비라는 측면에서 여성과 돈, 음식은 단지 소비할 대상에 불과했다. 신학철은 몽타주 방식으로 대중 우민화 정책을 비판했다. 단일한 여성은 그저 아름다운 존재일 뿐이고 값비싼 보석은 가지고픈 물건일 테지만. 현실 세계에서 마주하는 이들을 덧대고 오리면서 합쳐보니 끔찍한 이면이 드러난다. 소비로써 즐기는 사회 이면에는 소외되고 외로워하는 개인이 숨어 있다. 국가는 인간의 말초적 감성을 이용해 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다. 단지 대통령이던 보이는 적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세대를 갈라치우며 이득을 얻고 있다. 전두환 따까리로 표현했던 전구만큼 기발했다. 실제 부대 자루와 종이 포장지로 표현한 극사실적 작품 ‘국토-고추 모종’은 다급하게 만든다. 개발이란 담론에 밀리어 일상을 살아가던 이들의 터전이 사라진다. 이쯤에서 농촌을 회복하고 복구하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농촌은 상직적인 의미라고 생각했다. 대중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구사하다 소수자로 전락한 개인은 언제나 터전을 빼앗긴다. 모두가 존중 받으며 다양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회란 존재하기나 할까. 민중미술은 탄광촌, 길, 사람들, 민족처럼 한국만의 상황을 담는다. 새로운 언어로 말하는 방법 어렵지 않아서 좋았다. 텍스트로만 접했던 민중미술, 직접 작품으로 대해보니 그 시절 어른이자 청년들은 쉬운 언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했다. 미술을 전공했으니 미술인이 할 수 있는 말은 작품뿐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참여할 만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이런 고민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언어는 늘 생각하게 한다. 그 생각은 사랑에 닿는다. 사랑하지 않으면 새로운 언어를 고민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시회 중간에 쌍벽으로 자리한 미술인 단체 인포그래픽이 아쉬웠다. 멀리서 볼 수 있었으면 한 눈에 담겼을 텐데, 워낙 커서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독재자의 장기 집권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 갈피 잃은 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오버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 무렵 죽을

[지금,여기] 여자애 앞에 서서 조용히 생각했다:「시대유감展」①

2021년 05월 01일
‘나는 낡았구나.’ 더는 낡지 않게 바꾸고 싶었지만 뭘,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를 몰랐다. 후배와 지하상가를 방문했다. 차 밀리던 저녁 늦게 도착해 새로 입은 파란 니트 입은 내 모습을 살폈다. 그간 나를 꾸밀 줄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없이 옷가지를 골라주던 후배 얼굴을 떠올렸다. 옷만 바꿔 입는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 밤 어수룩한 맵시를 깨달아 낡았다고 생각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음을 알아차렸다. 여자애 앞에서 수줍게만 서 있던 내게 수식어는 뻔했다. 착하다는 말과 성실하다는 말이 더는 기분 좋은 말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거무튀튀한 무채색의 조선일보와 성경책은 나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노래도 조악한 10년 전 곡들뿐이니 화사한 파스텔 풍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교회를 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싹튼다. 생각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욕망을 낳은 것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오래되고도 새로운 민중가요에서 탈출의 욕망을 느꼈다. 시대유감展 항목 내용 전시명 시대유감(時代遺憾)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방문일 2019.10.24 작품 수 32점 구분 상설 요금 무료 참여작가 김봉준, 김용태, 김정헌,

[교회는 요지경] 발레하던 누나들의 편지 받은 사건

2021년 02월 28일
담임목사가 중요하다며 신신당부한다. 결혼식. 외삼촌 이후로 처음이다. 고등학교 1학년, 혼자 방송실에서 바쁘게 일하던 차에 “우리 교회에서 결혼할 테니 잘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하달 받았다. 전체실황 녹화해서 신랑·신부에게 전달해야 하나 싶었다. 방송 자막을 띄울 뿐만 아니라 사진에 동영상 촬영까지 해야 할 참이다. 누구에겐 하나 밖에 없을 결혼식일 테니까. 카메라는 두 대였다. 지금이야 스마트폰 들고서 촬영하면 그만이지만 피처폰 사용하던 시절이라 80만 원 캠코더와 일본서 수입한 소니 카메라가 전부였다. 천장에 매달린 소니 카메라로 결혼 예배 전체를 녹화·녹음하되 화면전환용으로 80만 원 캠코더로 부분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촬영한 영상물을 합쳐 전체실황 영상으로 제작하려고 했다. 시디에 구워 가져다 드리면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 만해도 설렜다. 토요일 학생회 예배를 마치고 카메라 들고서 앵글 연습에 돌입했다. 확대하면서 뒤로 몸을 이동하는 기법, 성경책을 보고 있다는 콘셉으로 축소하여 상반신이 나오도록 하는 기법, 예배당 끝에서 앞까지 천천히 삼각대로 이동하는 기법. 여의도 순복음교회 방송국으로 보았던 역량을 발휘해 서당 개 삼 년 카메라 잡을 줄 아는 폼 익히느라 고생했다. 열심히 일하는 게 좋았다. 몰입할 때만큼 즐거움이 없었다. 완성한 작품이 새 부부가 될 교인 분에게 닿을 생각만 하면 즐거워 미칠 것 같았다. 결혼식 전 날인 토요일부터 교회는 꽃과 풍선으로 가득했다. 분명 신부와 신랑은 따로 있었고, 누구보다 긴장했을 텐데. 왜 내 가슴이 뛰던지. 2010년 5월 16일 주일 아침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대망의 결혼 예배 당일이 찾아왔다. 평소처럼 주일학교 예배를 드렸고, 주일학교 학생들과 공과를 마치고서 방송실로 돌아왔다. 아침 10시. 예배까지 1시간 남았다. 예배 안내문을 띄웠고 결혼 예배 순서지 받들어 찬찬히 읽으며 동선 체크에 나섰다. 전속 기사가 촬영한다지만 영상물로 남기는 건 오로지 방송실의 나뿐이다. 한 앵글 한 앵글 소중히 담았다. 신부의 눈물 한 방울도 놓치지 않았다. 목사의 주례와 집사님의 축가, 신랑의 큰 절에서 마지막 행진까지. 세세하게 담았다. 50개 클립, 19분 59초 분량. 긴 영상이 2분 54초, 짧은 영상은 4초. 어김없이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에서 직수입한 소니 카메라에 연결한 캡처보드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녹화 불능. 기가 막혔다. 힘이 빠졌다. 아오. 화가 난 나머지 피처폰을 던지고 말았다. 슬퍼서 눈물 날 뻔했다. 이 서러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교회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50개 영상 클립만 남은 상태다. 전체실황으로 제작했더라면 유튜브에 공개했을 텐데. 꽉 차봐야 200-300명 앉을 수 있었던 참여교회에는 방송실에 근무할 만한 인력이 전무했다. 교회 창립과 건물 이전 예배를 평일에 진행하자 하루 결석할 수 없어서 나보다 열 살 많은 아저씨뻘 남성 교인에게 방송일 맡겼다. 3㎡도 채 되지 않은 작은 공간에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풍경도 우스꽝스러운데, 나보다 열 살 많은 형에게 일 가르쳐주는 일도 쑥스러웠다. 아무 생각 없이 자동 재생한 PPTX 예배 전 알림 화면 개수를 계산해 “아, 이쯤 ‘알립니다’가 끝나고 예배 시작하는 거죠?”라고 말해 당황했다. 그걸 그새 계산하다니. “아니요, 그냥 대충 만들어 놓은 겁니다”하고 겸연쩍게 웃었다. 누워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닿을 만한 공간에서만 6년을 보냈다. 혼자 있을 땐 200원어치 믹스 커마시며 여의도 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예배 실황이나 TV조선 생방송을 틀어놓고 찬송가 가사를 제작했다. 행사가 있을 무렵이면 순서와 동선을 체크해 실시간 예배 자막을 띄울 궁리에 나섰다. 몸은 하나라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내가 촬영 중이라면 누군가는 방송실 지키며 자막이나 음원을 재생해야 한다. 따라서 그 누군가를 찾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학생회나 청년회 일원 중 한 사람을 무작위로, 마치 “○○○ 예비군 아저씨! 병원에 신고해주시고! ○○○ 아저씨! AED 가져와 주십시오!” 외치던 짜증나고 불쾌한 기분이다. 녹화는 고질적 문제였다. 교회 창립 맞은 주일예배에서도 사건은 어김없이 터졌다. 발레단 누나들이 와서 공연하고 갈 예정이니 녹화 잘 하라는 당부에도 확인해 보니, 녹화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때의 분노는 방송실이 아니라 교회가 터질 뻔한 울분이다. 얼마나 화를 냈는지 모르겠다. 질풍노도 시기라지 않은가. 그러려니 생각하던 어른들이 많았지만 담임목사는 철야예배에서 어둠의 딥다크한 설교를 왕왕 쏟아내며 “아이들이 무슨 사춘기느냐!”라고 지껄이던 시대였다. “나는 사춘기 모르고 살았어요. 성교육도 필요 없어요!” 외치는 양반이 울분과 슬픔에 찬 소년을 얼마나 이해해 주었으려나. 발레단 누나들의 공연엔 동영상도 포함됐다. 세상에 빠져 살던 청년 남성이 방황하다가 어렸을 적 힘들 때마다 찾아간 교회에서 생활하던 과거를 기억하는 내용의 영상이다. 밤하늘, 생각에 잠긴 아이 곁엔 부모도 어른도 없었다. 어른도, 목사도, 친구도 없었던 방송실에서 소년은 혼자 울분을 삭히며 고등학교 1학년이 풀 수 없는 문제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몇 달 지나 한 집사님이 두꺼운 편지 하나를 건넸다. 내 이름으로 온 편지였다. 그 안엔 하사딤선교발레단 이름으로 쓰인 누나들의 예쁜 손글씨가 담겨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주마등]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2021년 02월 15일
엄마와 싸우고 나서도 냉기가 여전했다. 손바닥에 호호 불자 드라이아이스 연기처럼 퍼져갔다. 신호 바뀌었다고 생각할 찰나에 뛰어든 횡단보도 앞, 따가운 경적을 째려보자 기사 놈의 호통이 이어졌다. 싸가지? 싸가지 없는 건 너였다. 어른들의 모든 말들이 싫었다.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씨발. 어른들 관심은 오로지 몸뿐이다. 고차원적 언어에서 말초적 신경에 이르기까지. 다 너 잘 되라는 말 사이에 숨은 웃기지 않을 문란한 문법이 미풍양속 네 글자로 집약된다. 교복 배지 아래 아크릴 명찰 뜯어 버렸다. 이것도 만들어진 이름이다. ‘해를품은달보호소’ 질풍노도 딱지도 모자라 모든 걸 품어준다던 구라 섞인 역겨움이 어딜 가도 같았다. 어른들 언어의 이중성 말이다. 청소년은 미래가 아니다. 너 대신 일해 줄 노예다. 찾고픈 꿈 따위? 정해진 직업이 자유는 아니잖아. 하고 싶은 거? 집 나와 학교 담장 해머로 깨부수고 싶다. 어차피 책임과 자유란 틀 안에서 마음대로 하라고 지껄일 거면서. 정해진 자유가 무슨 자유야.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학교도 그래. 콘크리트 안에다가 처박아 둘 수많은 단어. 가좆 같은 분위기로 학생들을 줄사탕처럼 묶어놓아 하나로 던져놓곤. 알록달록 엮이다 못 견뎌서 삐져나온 학교 밖 밑도는 애들 이름 한 번이라도 기억하고 불러준 적 있어? 좋은 대학 좋은 회사 보내서 노예처럼 이 나라 발전소나 돌려놓고 연금으로 착취하려는 쓰레기들. 이런저런 중2병 따위로 조련하듯 미소 짓는 어른들 개지랄이 개빡돌게 만든다고. 냉기가 흐르는 밤중에 한숨조련하기 바쁜 어른들 세계하루하루 버텼어야 하거늘복합적 감정이 아른거린다 하루만 버티는 이유오늘 밤만 버틸 공간이 필요했다. 이번엔 하루라지만 다음은 일주일이다. 어쩌면 장기를 선택해 졸업하는 순간까지 미운 얼굴 안 보게 될지도 모른다. 엄마 말고, 달라붙은 껌딱지. 악마 같은 미소가 언제 바뀔지 모른다. 갇힌 틀, 학교란 틀, 새 아빠란 틀. 틀에서 벗어나 학교 바깥에서 살고 싶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땡깡 부린들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처럼 엄마한테 되도 않는 밀당으로 얻어낼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내 맘대로 담배필 수 있는 그날까지 버텨야 했다. 적당히 찡그리면서도 선을 지켜야 했던 이유. 엄마에겐 미안했다. 악마의 그림자가 내 안 가슴까지 슬며시 잠식하던 역겨움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다. 문법을 모르던 내 탓이다. 피곤에 절어 새까매진 얼굴의 선생과 싸우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모든 게 보여주기 식이니까. 적당히 싸우다 나왔고 적당한 시기에 돌아갈 채비일 연극만 보여주면 되었다. 그렇게 적당히, 영원히 지워진 단어 아빠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루하루 견뎌내고 싶었다. 그게 내 전략이다.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누웠다. 그려둔 마음 속 칠판을 꺼냈다. 담탱이와 엄마, 악마라는 삼각 구도 안에서 전략적으로 살아남을 방법 중 벼랑 끝 전술 카드는 이미 사용했다. 악마에게 없을 무기, 그걸 꺼낼 차례였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여중생 감성으로 담탱이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 담탱이를 내세워 엄마와 악마를 갈라서게 만들 무언가를 찾아내려 했다. 악마가 더러운 손길을 펼치는 그날까지 잠잠히 페르소나 가면 쓴 채로 기다리면 됐다 이 말이다. 궁금했다. 어디서부터 계획에 균열이 났는지. 누가 비밀을 유출한 건지. 한 페이지 빼곡 적힌 내 이름과 행동거지들이 원인과 분석으로 나눠져 앞으론 담탱이가 어떻게 나서야 한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담탱이 시선은 교내가 아니라 우리 집, 아니 악마의 공간에 머물러야 했는데. 고작 한 페이지가 각론부터 뒤틀어버렸다. 밤새 전략을 고쳐야했다. 다소 적당하게 분란을 일으켜 적당하게 사춘기로 버무린 용어 ‘질풍노도 여중생’쯤으로 보여야 했는데. 영어와의 싸움에 밀려서 이쪽으로 눈 돌리게 만든 새끼가 누구일지 궁금했다. 폰에 담은 필체를 외우고 외웠다. 반에서도 자기 입말 표출하지 않았던 낯선 말투. 누구일까. 신속히 전략을 변경해 실행에 옮긴다바깥에선 시끄럽고 안으로는 잠잠하던 전략 폐기하고 안과 밖 숨 죽여 지내기로 했다. 일찍 도착해 자리에서 폰 보는 척 등교하는 년놈들 이름을 적었다. 1번부터 끝번까지 나만의 언어로 한 놈씩 지우는 방식의 소거법으로 이름을 줄여간다. 첫째 보이는 글에서 느껴진 것처럼 반 분위기 파벌 단위로 파악하는 새끼. 둘째 영어뿐만 아니라 국어 한문이랑 소통이 원활해 일러바친 글에다가 쉴드 칠 만큼 선생과 친한 새끼. 셋째 감정보다 발생한 사건과 분위기를 담담히 써 내려갈 새끼. 넷째 담탱이 책상에 상소할 정도로 친한 새끼. 원점으로 돌아가 가장 강력한 증거일 한 페이지 촘촘하게 적어 내린 필체를 일일이 대조하는 방법.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비교해서 지워나가 찾아낸다. 소거해서 줄여놓은 용의자와 필적감정으로 크로스 체크하면 가능하다. 하루 이틀 찾아낼 순 없었다. 일주일이 될지 모르는 바람 부는 갈대밭 서 있는 나 하나 뿐인 막막함.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공부 꽤나 하는 애들부터 하나 둘 빗금을 그었다. 걔네들은 선생과 적당히 거리 두며 상소할 시간에 공부한다. 경계선으로 부르는 먼 바깥에서 잠잠히 이 교실을 지켜보는 그 한 놈 찾아 헤맸다. 혹여나 영어가 괴롭힘 당하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안 웃지는 않을까. 필적감정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모든 애들 자리 비운 순간에 교과서를 열어젖혀 촬영했다. 저녁이라고 완벽하지 않았다. 비워진 서랍 잠긴 사물함, 그러다 떠오른 변수. 이 새끼가 남자일 가능성. 담탱이와 친하면서도 영어의 따돌림에도 한 번 웃지 않으며 졸기는 졸아도 시간과 사건들 드라이한 문체로 써 내려가 마치 교탁에서 갈대밭을 바라보는 듯한 자세로 이 반 분위기를 써내려갈 수 있는 외부인의 시선. 사회 구조와 개인 관계 차이를 분명히 구분해 철저히 개인에게 윤리적 책임을 물으며 사회 구조에 이바지하는 도덕관. 그러기 위해 교실 바깥 갈대들 사이에 몰래 숨어서 관찰하는 불쾌한 외부인의 시선. 나는 너와 다르다는 자존감일지, 괜한 오지랖 정의라고 착각하는 좆같음. 그렇다면 용의자는 단 한 사람, 한 새끼로 수렴한다.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이 기분. 필적감정만 남았다. 여성스러운 글씨체를 쓰면서도 건조한 문체. 그걸 찾아내야 했다. 대충 질풍노도 여중생으로보였어야 했지만 틀어졌다새로운 계획, 용의자 찾는다한 새끼씩 소거하며 쫓는다 풀리지 않는 질문들모르겠다. 왜 내 인생에 끼어든 건지. 잠자코 지켜만 보다가 졸업하면 그만일 이 시점에. 방학 한 주 남겨두고 용의자 선상에 남은 그 새끼 이름을 바라만 보았다.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아니 내가 직접 캐보자. 나야 말로 얼마나 알아낼 수 있을까. 갈대밭 사이에 숨어서 외부인처럼 관찰이나 하는 거 말야, 그거 너만 할 줄 아는 거 아니라고. 그 새끼는 쉬는 시간 스킨십 하느라 쉬지를 않는다. 사람을 좋아하나보다. 호불호가 강한 새끼였다. 친한 애들은 되게 친한데 미워하는 애들은 되게 미워하는 강렬한 색채 같았다. 유독 무시당하는 영어 앞에서는 살갑게 웃는 미소가 아부가 아니라도 좆같았다. 저 새끼만 유일하게 웃지 않는 걸 보면 누구 무시하고 사는 성격도 아니겠고. 하기야 입바른 글 따위나 쓸 생각이라면 사회 구조니 정의구현이니 역겨운 단어로 범벅이지 않았을까. 누구 좋으라고. 점심에는 방송실 박준형 만나러 들렀다가 같이 밥 먹고 헤어져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그늘진 곳에서 책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는 걸까. 하지만 한 책을 오래 보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금세 바뀐 책들이 오늘 하루만 네 다섯 권. 찾는 걸까, 헤매는 걸까. 어쩌면 책 겉모습만 좋아하는 건 아닐지. 첫 만남부터 싸가지 없다고 생각했다. 방학 전 이 교실 의자 대충 옮겨 놨다고. 스스로 서 있다가 죄송한 표정 짓고서 홀로 가져다 놓는 걸 보면. 담탱이 아부 떠는 줄 알았다. 알고 보면 그냥 멍청한 애 아니었을까. 나름 정의라고 생각해서 신경 써 줬는데 남들은 오지랖으로 생각하는 껌딱지악마처럼. 그러기엔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글로 적었을 관찰력이라면 두런두런 친하게 지내도 좋았을 텐데. 어떤 생각하는지, 무슨 의도로 그 한 페이지 바쳤는지 알고 싶었다. 하나 남은 검증, 필적감정만 남겨 둔 상태였다. 하교 후에 쫓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뭐, 도서관이나 학원이라도 가지 않으면 허탕치는 거겠지만 말이다.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담탱이가 요청한 면담 때문이다. 끝까지 캐보고 싶었는데. 그 새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는데……. 경계선에서 우릴 쳐다보듯갈대밭 펼쳐지던 지평에서이 한 페이지 네 글씨체로외부인, 널 찾는다 찾았다 갈대밭 지평, 이 한 페이지 들고서저녁에 가까운 시간까지 남아야 했다. 지금 상황은 그 악마가 내 이름 부르는 게 싫어서 심통 부리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단지 인생에 끼어든 게 싫어서 땡깡 부리는 구도처럼 보였다. 말 한 마디 않으려 입 꾹 닫은 채 불쾌하지 않은 척했다. 교무실을 나서자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습하고 불쾌함으로 덮었던 시간들. 팔 걷어붙인 외부인이 세제 물을 들이 붓고 있었다. 책상 밀어두고 홀로 남아 수세미로 바닥을 닦을 요량이다. 이 반에는 혼자 남아 청소하던 그런 벌 따위는 없었다. 멍청하게 홀로 남아 수세미에 걸레질까지 하고 있던 것이다. 두 개의 명찰, 박음질한 저 이름은 어른들이 그리 살라고 새겨준 자아일 테고, 아크릴 명찰은 담탱의 개가 되겠다는 또 하나의 자아로 보였다. 지금처럼 아이들 바깥에서 관찰하며 누군가의 명단을 만들어 상급자에게 보고하겠지. “거기 왁스 발랐어. 조심해.” “야, 적당히 하고 가.” 이제 와서 찾는다고 달라질 리 없는 외부인 앞에서 한숨만 지었다. 저녁 되어가는 와중에 박박 긁는 바닥에 짜증만 났다. 교탁에 기대어 구경했다. 쟨 무슨 생각으로 이 시간까지 아무도 모르게 수세미질일까. 졸업식 직전까지 협상은 진전되지 못하는 듯했지만 막판에서야 타결됐다. 기숙사로 들어가되 자퇴는 하지 않는 걸로. 지금은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척하지만 그 끝에는 몸을 원한다는 걸 잘 알았다. 대학 입시로 연결된 고등학교, 곧이어 직장으로 날줄처럼 연결된 인생 구슬. 죽지 않을 정도로만 던져준 월급으로 간신히 숨 붙여 살아가는 인생. 당신이 끼적이는 한 페이지에 내 목숨이 걸려 있기에 더 잘 고개 숙이라는 무언의 언어. 전화로 일거수일투족을 주고받으며 손 안에 있다는 자만심. 매화고등학교 박제된 한 페이지들도 그 연장선에 불과할 거라는 예감. 조련하려는 손길들. 미소 하나만으로 이해했다는 그들만의 문법. 어른들의 문법. 졸업장도 어른들의 문법으로 현란하게 구사된 한 페이지에 불과했다. 내가 알아서 하고 싶었고 내 맘대로 살고 싶었는데. 악마의 공간을 벗어나도 앞조차 보이지 않는 갈대밭 홀로 서 있는 외로움. 모두가 서로를 찾느라 헤매는 엇갈림. 많은 눈이 내린다. 졸업식이 끝나자 어른들이 갈대밭 헤매며 자기 아이 찾아 눈알을 굴린다. 지루했다. 한 페이지 돌려가며 완성한 롤링페이퍼 꺼내 읽었다. 이제 시작일 여정 속에서 헤매는 분위기를 읽는다. 비로소 벗어났지만 이제야 시작일 갈대밭 펼쳐진 지평. 외부인의 시선으로 어른들을 바라봐도 좆같음은 여전했다. 어른들의 문체를 흉내 내던 어리디 어린 문체 읽다가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볼펜으로 휘갈겨 쓴 글자가 졸업장 경계 바깥까지 뚫을 기세였다.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도 지루했다. 뒤에 앉은 용의자 문체에 다다를 무렵 먼저 인사를 꺼냈다. “너도 졸업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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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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