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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뜨듯한 온천과 시원한 맥주 “캬, 이 맛이지” 끝없는 ‘오사카의 밤’ 「2박3일, 오사카여행③」

우드톤 단색의 고즈넉한 도시가 교토였다면, 오사카는 그저 화려하고 젊은 분위기의 도시였다. 우리는 나가호리바시를 기반으로 오사카의 도톤보리와 난바, 우메다, 나가자키초를 돌아다녔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큐카츠 토미타(牛かつ 冨田)다. 각자 구워 먹을 수 있는 큐카츠 전문점이다. 다행히 우리는 기다림 없이 바로 입장해서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와,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맛. 달달하고 고소하며 담백한 맛. 입 안에서 녹는 육즙이 끝내줬다. 현금만 받는 가게라 카드로 결제하지 못했다. 곧이어 낮에 예매해 둔 리버 크루즈를 타고 우리는 도톤보리 강을 누볐다. 베테랑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주변 관광객들이 선사하는 손인사에, 우리도 손을 흔들었다. 가까운 타지에서 느끼는 이색 풍경에 하나가 되는 감정을 느낀 것이다. 낮에는 여자친구를 따라 우메다 근처에서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우리는 아식스 오사카 스토어에 방문했다. 스티브 잡스 같은 분위기의 직원이 우리를 맞았다. 여자친구가 둘러보는 동안, 나는 작은 소파에 앉아 쉬었다. 다소간의 긴 시간을 머무르는 바람에 여자친구와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며 나왔다. “失礼しました。(실례했습니다.)” 곧장, 직원이 90도로 숙이며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중한 인사에 깜짝 놀랐다. 작고 진심 어린 순간에서 문화적 감동이 남은 것이다. ❼오사카 아식스·마크 커피 ‘90도 인사’ 진심 어린 문화적 감동 카라멜마끼아또, 바리스타의 손맛

[단편소설] 너에게 맞설 수 있는 치트키

2022년 03월 01일
매화고등학교 학보 이른아침매화는, 정갈한 글꼴에 기승전결 육하원칙 매듭진 분명한 문체 단숨에 읽혀서 좋다 선배에게 배우면서 찢어지게 웃었던 지난날, 기자 생활 어느덧 보이는 좋아하던 그 아이 어젯밤 키스는 예정에 없었다. 홧김도. 밀당도. 큰 그림도. 힘들어서도. 빼앗길 듯해서도. 붙잡으려던 욕심도. 좋아한단 말 한마디 선전포고 꺼낸 것도. 아니었다. 느낌의 흐름 따라 입 맞췄을 뿐이다. 아닌 건 어제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변명의 여지는 충분하다. 이슬톡톡만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날밤으로 새야했다. 내내 간지러웠다. 이부자리 설쳤다. 이상하다. 내가 이상해졌다. 숨어서 좋아하던 두근거림 따위와는 달랐다. 모두가 잠든 밤 달만이 미소 짓는다. 그 캔 레모나 맛은 들었다 놨다 장난질이었다. 달달했는지 새콤했는지 아무 기억도 없다. 자고 깨고를 반복했다. 한 순간 사라진 용기에 남자애들 그것처럼 허무감에 휩싸였다. 떠오른다. 순식간에 달아올라 한 순간에 꺼져버린 그 달. 새벽 기운이 오른다. 지저귀는 새 울음에 달고도 짠맛이 후폭풍처럼 밀려온다. 모든 감정을 앗아갔다. 후회조차 매듭 짓지 못했다. 스마트폰 뒤적였다. 그 애 프로필 들여다봤다. 어땠을까. 좋았을까. 맡았을까. 들렸을까. 불쾌하진 않았을까. 천천히 다가갔다면 받아 줬을까. 아침 해가 떠서야 겨우내 생각했다. 좋아한다 말이라도 해줄 걸. 아니아니. 멀찍이서 지켜보았다는 말이 더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 그러나 모든 질문은 한 가지로 모아졌다. “어젯밤 키스의 맛은 어땠을까.” 정신이 들었다. “우리 뭉뎡이 어젯밤에 키스했구나?” 매듭진 문장들 너머로 ‘어젯밤 키스의 맛은 어땠을까’로 도배된 한글 문서가 눈앞에 선명했다. 황급히 화면을 내렸다. 늦었다. 들켰으니 취조 당할 차례. 귓불이 화끈거렸다. 한 모금 차디찬 커피를 마셨다. 어깨를 감싸 쥔 소혜의 사탕 냄새가 은은했다. “누군데 누군데!” 남자라곤 1도 관심 없는 천하의

[내 맘대로 교회 탐방] 여의도 순복음교회 주보, 현대적 시스템은 예배를 거들 뿐

2022년 03월 01일
주보 1면은 거대한 빨간 벽돌이 돋보인다. 간단히 ‘주보’라 쓰인 용지 상단에는 ‘원로목사 조용기’ ‘담임목사 이영훈’ ‘부목사 이장균’이 있으나 조 목사 사후에는 위임목사 이영훈, 부목사 순으로 바뀌었다. 제일 위에 ‘설립자 조용기 목사’ 문구가 들어간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예배 전 찬양팀이 찬송가를 부른다. 성가대와 다른 개념인 찬양팀은 밴드형으로 구성한다. 영산싱어즈와 팀조슈아(TeamJoshua)가 대표적이다. 예배는 사회자의 시편 낭독인 ‘예배로 부르심’으로 시작해 찬송-신앙고백(사도신경)-장로의 기도-성경봉독-성가대-설교-기도와 결신-헌금기도-광고-주기도문 찬송-축도로 이뤄진다. 결신은 미국 복음주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예수를 주님이라 입으로 고백하고 부활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로마서 10,9을 따라 각 부에서 설교하는 목사가 선창하면 따라 고백하는 방식이다. 전통보다 앞서는 것은 성령이다. 성령충만한 예배를 위해서라면 모든 현대적 시스템은 거들 뿐이다. 금요일이면 홈페이지에 주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조용기 목사 설교 요약도 함께 올라온다. 주보에 결점이 있다. 2016년과 2017년 사이 하늘에서 촬영한 교회 광장에 사람들을 합성한 모양이다.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는 사람들도 있는

[내 맘대로 교회 탐방] 여의도, 영산(靈山)의 진해지는 그림자: 여의도 순복음교회②

2022년 03월 01일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돔 예배당만이 전부가 아니다. 매 일요일 국회대로 가득 메운 인파 속을 헤집고 예배당에 도착해 남는 시간 주보를 읽노라면 오늘 설교 할 조용기 목사 설교 제목이 가장 눈에 띈다. 사회자의 시편 낭독. 손을 휘 저으며 찬송가 부르는 지휘자. 10분 남짓한 장로님 기도. 성경봉독, 성가대의 찬송 순서가 지나 예배는 하이라이트에 다다른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의 복을 받으십시오’ 인사해주십시오.” 이제 등단한 조용기 목사가 “제게도 축복해주세요”를 덧붙이면 교인들은 두 손 가리키고서 박수를 친다. 언젠가는 이 부탁을 빠트렸고 교인들이 조 목사를 향해 손짓과 함께 축복하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 잊어버렸는데 여러분이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용기 목사는 중학생이 들어도 이해하기 쉬운 말들로 설교를 이어갔다. 과감한 어투와 가벼운 농담도 섞은 덕분에 딱딱하지 않다. “‘나는 적은 죄 지었고 너는 많은 죄 지었다.’ 죄는 다 똑같은 죄인 것입니다. 작은 돌멩이도 물에 가라앉고 큰 바위도 물에 가라앉는 것입니다. 그저 소리가 다를 따름입니다. 작은 돌맹이는 ‘퐁당’하고 가라앉고 큰 돌맹이는 ‘푸응덩~’하고 가라앉는 것입니다.”(2008. 06.22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며 죽었다가 살아남) 교인들은 조 목사의 ‘퐁당’과 ‘푸응덩~’ 두 단어에 박장대소한다. 죄와 인간 그리고 하나님의 관계를 이처럼 쉽게 설명해주는 설교에 감탄한다. 예수쟁이더러 미쳤다고 말하던 소년 조용기는 오히려 예수를 전하는 목사가 되었다조용기 목사의 설교는 언제 들어도 익숙하다. 크게 소리 지르지 않는다. 쓸데없이 시간만 길지 않는다. 예화와 통계 인용은 우리 사회에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돕는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3요한1,2)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모든 일들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바라는 설교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번영신학’으로 비판하지만 조 목사를 뒷받침하는 생애를 들여다보면 근원을 알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조용기는 폐결핵을 앓으며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하나님도 혼자 바닥에 누워 통곡하던 조용기의 기도를 들었는지 누나의 친구를 통해 예수를 접한다. “예수쟁이들은 다 미쳤다 카드마, 누이도 예수 믿고서 미쳤구마. 당장 이 방에서 나가이소.”(여의도의 목회자,165쪽) 다시 찾아온 누나 친구가 건네준 성경책을 읽으며 조용기는 병을 고쳐달라고 호소한다. “예수 씨여!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나의 폐병을 고칠 수 있는 당신입니더. 의사들은 아무도 내를 고칠 수 없다고 말합니더. 그러나 성경을 보마 예수 씨는 중풍병자도 고치고,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나병환자도 깨끗하게 하고, 죽은 나사로도 살려 주지 않았심니꺼. 만약 예수 씨가 내를 고쳐주신다카마 예수 씨를 위한 사람이 되겠심더. 제발 나를 살려 주이소.”(여의도,169) 가슴이 뛰고 온몸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마음속에서부터 생명의 기운이 넘치자 조용기는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찬송가를 모르던 시절 아는 노래라곤 ‘신라의 달밤’뿐이었다. 마당을 돌면서 노래를 부르니 어머니도 드디어 정신이 나간 줄로 오해했다. 병 고치는 예수의 활동을 통해 조용기는 병 고치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한 절 읽다가 눈물 흘리고 다시 한 절 읽다가 눈물 흘리고 하니까 온종일 성경을 읽어도 다섯 절 이상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성경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기뻤습니다.”(여의도,171) 사흘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하는 동안 예수는 조용기에게 찾아와 “복음을 전하는 데 너의 일생을 바치라”고 말한다.(여의도,194) 예수의 다리를 안으며 정신을 잃은 조용기는 환상을 통해 폐결핵이 나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조용기에게 고치시는 예수, 살리는 복음이 누구보다 살에 와 닿았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목사가 된 조용기는 설교한다. “육군 대위 한 사람이 암에 걸려서 죽어가는데 그 아내가 하도 사정해서 병원에 심방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나는 안 믿습니다!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당당한 군인이오, 군인 정신으로 죽겠습니다.’ 군인 정신이 천당 보내 줍디까? 당신 당당한 군인정신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죽음 앞에는 군인도 장사가 아닙니다. 죽음을 당신 이길 수 있습니까? ‘나는 사관학교 출신으로서 군인으로서 살다가 군인으로서 죽지 시시하게 예수 믿고 죽지 않겠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시시합니까? 용감한 사람만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자기 스스로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를 깨닫는 사람이 용감한 사람인 것입니다.”(2008.06.22) 역설 “예수 씨여! 살려 주이소” 예수쟁이라고 말하던 소년 목사가 되어 예수를 말한다 고난 석유파동으로 찾아온 위기 믿음과 희망 가지고 돌파

[15일의 기록] 주안의 편지②- “어둔 교회서 꾹꾹 눌러 적은 눈물의 고백, 지금도 기억합니다”

2021년 11월 20일
힘겹게 하루를 고백했던 그분에게 2015년 10월 자정 넘긴 시간이었습니다. 당신께서 들어오셨을 땐, 퍼피레드 종료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제 말 들어주실 수 있겠냐던 부탁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상담이란 말도 거창하게 들릴 뿐입니다. 지면에 공개하기 힘겨운 나날들이 선명하게 드리울 만큼 당신의 고백이 무거운 짐으로 보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주님께서도 “감당할 수 있는 시련”(1고린 10,13)을 허락하셨다지만 성경의 이 구절은 틀린 것 같습니다. 지금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갈피를 잡질 못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도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과 내가 짊어지기엔 한국의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저는 지금도 퍼피레드 버뮤다 순복음교회의 저녁이 그립습니다. 그저 그 공간에 있음으로 해서 위로를 받았던 어둠 속 은은한 조명이 생각납니다. 그때의 저도 글을 쓰는 것 밖에는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이 글을 남길 뿐입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견뎌내는 것뿐.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견디기 어려운 짐을 짊어진

[15일의 기록] 기능소개- 요리하기: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미니파크로 놀러오세요!

2021년 11월 20일
퍼피레드는 소량의 콩을 이용한 요리가 가능하다. 박스 안 순서를 클릭해 완성하는 방식이다. 완성한 요리를 미니파크에 배치하고 ‘판매하기’로 설정하면 먹을 수 있다. 내가 먹으면 원가에서 10% 더한 수익을 얻지만 누군가가 먹어주면 15% 가량 되받는다. 의도적인 버그일까. 삼단 케이크는 원가에서 두 배 이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딴 짓하면 안 된다. 다음 순서로 넘어가려는 15초 이내 다음 순서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당신은 요리에 실패했다.

[15일의 기록] ③결혼, 버뮤다 순복음교회에서 했어요!

2021년 11월 20일
봉춘님 앞에선 자존심이건 뭐건 없었다. 일단 알겠다고 했다. 우리 교회에선 단 한 번도 결혼식을 열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다. 자존심이라고 말했다. 자존심 앞에서는 이성친구과 성형, (필)캐시도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성친구 기능을 반대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필요없는 것들이라고 주장한 탓이다. 허나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룰 수 있겠냐던 여성 교인 한 분 앞에선 간단히 무너졌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아. 내가 잘 아는 분이다. 마음이 착잡했다.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자존심을 꺾었다. 두 분 모두 잃고 싶지 않았다. 마음 한 편엔 예배당을 꾸미고픈 욕망이 꿈틀거렸다. 상상력을 발동했다. 180석 대성전이 들썩였던 결혼 예배에서 가장 먼저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고 퇴장할 길을 마련했다. 웬만해선 교인석을 건들지 않았지만 이번 만큼은 예외였다. 레드카펫을 깔았다. 파란 물로 흥건한 예배당 중앙에 정열적인 사랑이 흐르는 것 같았다. 포스터를 제작해 홍보에 나섰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의지한 지금 보면 조악한 수준의 포스터다. 주례를 가장한 설교를 고민했다. 내용은 어땠을까. 아마 짧았을 것 같다. 보통의 설교라면 설교문을 작성한다. 지금까지 남은 결혼식 관련한 설교안이 없는 걸 보면 즉흥 주례를 이어가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함 투성이다. 결혼식이 무색하게 피로연도 없었고, 부모님도 모시지 못했다. 아버지의 손을 잡아야 할 신부는 홀로 예배당을 걸어 들어와야 했다. 하다못해 삼단케이크라도 준비해 놓을 걸. 부족한 것들은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채워졌다. 교인과 일반인 할 것 없이 파티&파티가 열리자 속속들이 거대한 예배당을 채웠다. 결혼식에 앞서 좌석에 앉은 참석자를 촬영했다. 미처 준비 못한 꽃들은 이들을 통해서 신부와 신랑의 손에 들렸다. 강대상 위 의자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티&파티를 열자마자 물밀 듯이 들어온 퍼피레드 회원들이 교인들과 섞여 환호성과 함께 했다. 평소 예배보다 북적였다. 어느 때보다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었다. 긴장됐다. 주일예배 때와는 전혀 다른 긴장감. 말 잘못하거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다면 두 사람의 간절한 바램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 잘해야 한다. 잘 해낼 거라 믿었다. 보통 퍼피레드 교회 예배는 찬송-기도-성경봉독-설교-기도-주기도문 순이다. 결혼식도 다르지 않았다. 개식사를 대체한 사회자의 찬송과 기도, 그리고 신랑과 신부의 입장. 혼인서약과 혼인이 이루어졌음을 선언하는 성혼(成婚)선언문을 낭독하고 이어진 주례사. 참석자 내빈들 앞에서 인사하고 교회 밖으로 행진하는 신랑과 신부. 처음이자 마지막, 퍼피레드 버뮤다 순복음교회에서의 결혼식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주례를 빙자한 설교 내용은 기록으로 남겨놓은 게 없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즉흥적인 설교를 좋아하던 탓이다. 다만 단 한 가지 기억하는 게 있다면 신부와 신랑에게 물은 질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하나님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느냐던 물음만은 생생하다. 결혼식을 마치고 모두가 대성전 앞자리에 모였다.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내빈들은 예배당 이곳저곳에서 포즈를 잡았다. 어느새 내 손에도 꽃이

[ㄹㅇ루다가] 모더나 백신 2차 접종, 근육이 아프고 열이 발생하고 몸살이 났다

2021년 10월 05일
첫 코로나 백신을 모더나로 맞았다.(2021.09.30) 시월이 다가오기 전 맞을 수 있었던 건 잔여백신 덕분이다. 원래는 10월 1일로 예약했다. 사전 예약 대신 잔여백신으로 당일 신청한 이유는 하루라도 더 빨리 맞고 싶었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병원에선 볼펜을 건네며 몇 가지 문항에 체크하라고 종이 한 장을 전했다. 백신 맞기 전에도 코로나19에 감염 됐는지, 해외는 다녀왔는지, 복용하던 약은 있는지 등 빼곡한 문항 하나하나 정독하며 예, 아니오로 답했다. 내 앞 환자들이 많은 탓에 30분가량 책 읽으며 대기했다. 내 차례다. 들어가서 팔을 걷었다. 리뷰에서 본 것처럼 선생님은 친절했다. 몇 가지 사항을 들었으나 나가는 순간 잊어버렸다. 아픈 증상이 며칠 이어지면 병원에 오라는 말 한 마디만 기억에 남았다. 아플 수 있다는 말에 잔뜩 긴장하고 타이레놀도 사놨지만 반응이 없었다. 3일이 지나 문자가 왔다. ‘[질병관리청]1차 이상반응 신고 안내’ 설문에 응답했다. 모더나 1차는 아무 증상도 없이 일상생활 속에서 잊혔다. 미리 준비한 해열진통제 모더나 2차 맞을 시기가 다가왔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같은 병원을 방문해 맞았다. 다른 게 있다면 대기 시간이 전보다 짧다는 점 하나. 선생님은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아픈 증상이 며칠 이어지면 병원에 오라는 말씀과 열이 발생하면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해열진통제를 복용하라고 설명했다. 간호사가 준 백신 안내문을 읽었다. ‘예방접종 후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의사의 진료를 받으세요’를 주의 깊게 읽었다. ▲접종부위 부기, 통증, 발적이 48시간 이후에도 악화되는 경우 ▲4주 이내에 호흡곤란, 흉통, 지속적인 복부 통증, 다리의 부기와 같은 증상이 나타난 경우 ▲심한 또는 2일 이상의 지속적인 두통이 발생하며, 진통제에 반응하지 않거나 조절되지 않는 경우, 또는 시야가 흐려지는 경우 ▲갑자기 기운이 떨어지거나 평소와 다른 이상증상이 나타난 경우 ▲접종부위가 아닌 곳에서 멍이나, 출혈이 생기는 경우. 간호사는 종이 위 여백에다 ‘3:43’을 써놨다. 오후 3시43분. 15분이 지나 병원을 나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판대에 실린 중앙일보엔 ?VS이재명이 배치됐고, 마음으로 ‘윤석열이네’ 읊조렸다. 이번엔 진짜 아플 수 있다는 생각에 침대 옆에다 약을 두었다. 지난 1차 때 사둔 멀쩡한 그 타이레놀이다. 모더나 2차에서야 온 반응 ①3시간 15분 경과: 접종 부위 근육이 살짝 아팠다. 얼마나 아팠느냐 하면. 건드리면 ‘흠, 조금은 아프군’ 싶을 정도로 통증이 느껴졌다. 1차 때도 마찬가지였다. 열도 없었고 별달리 아픈 데도 없었다. 단지 접종한 부위, 왼쪽 팔뚝을 건드리면 아픈 티가 날 뿐이다. 지면신문 기사를 마감하려 책상에 앉았으나 글이 쓰이지 않았다. 백신 때문이라기 보단 평소의 습관적 방전 탓 같다. ②4시간 40분: 일찍 침대에 누웠다. 오후 8시23분. 미열 같은 증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뒤척일 틈도 없었다. 졸음이 온 몸을 감싸 안았다. ③8시간 21분: 자정이 넘어서야 깼다.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접종 부위인 왼쪽 팔은 힘을 주면 웃음이 나오면서 힘이 풀렸다. 적당히 아프다는 뜻이다. 욱신거리는 게 신경이 쓰였다. 활동엔 무리 없는 수준이다. 엎드려서 2시까지 카톡이나 해댔다. ③16시간 53분: 오전 8시36분. 드디어 열이 발생했다. 몸이 아팠다. 얼마나 아팠느냐 하면. 감기처럼 열이 발생한 정도였다. 접종 부위뿐만 아니라 전신에 열이 발생했다. 토요일 하루 침대에 누워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타이레놀 한 정 복용했다. 일일 최대 복용량이 4000㎎이다. 8시간에 한 정씩 500㎎ 먹기로 했다. 미열이라서 신문 한 면이라도 편집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지만 바람에 불과했다. 하루 앞 당겨 당일 접종 잔여백신 모더나로 확정 모더나 2차 접종 후 이상반응 8시간 넘어 잠에서 깨 미열 발생한 사실 확인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약 8시간 텀, 두 차례 복용 접종 40시간 후 나아져 신음이 절로 나오는 시간 ④21시간 8분: 오후 12시51분. 열이 많이 떨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스벅 한 자리 잡아 화이트 초콜릿 모카를 마시며 글이라도 쓰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오늘 하루 완전히 침대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고달픈 운명을 깨달았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열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다. 100% 정도의 열이 있다면 20%만 남은 느낌이다. 두 정을 먹었다면 다 사라졌을까. ⑤24시간 53분: 오후 4시36분. 존나 아팠다. 존나 아파서 신음이 나왔다. 약이 필요했다. 미리 약을 뜯어놨어야 했다. 손가락에 힘이 다 빠져서 뜯을 수 없었다. 짜증이 몰려왔다. 식칼을 꺼냈다. 약을 찔러다가 후벼 팔 정도로 포장지를 아작 내서야 복용할 수 있었다. 열이 다 떨어지기는커녕 전신 고열로 신음이 Zㅏ동으로 나왔다. 끙끙 앓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꿈을 얼마나 많이 꾸었는지 셀 수 없을 지경이다. 깊은 잠자지 못했다는 의미다. ⑥25시간 44분: 오후 5시27분. 확실히 열이 떨어졌다. 살 것 같지만 계속 누워 있어야 했다. 유튜브 정도는 시청할 여력이 남았다. 오은영 박사님 영상을 시청했다. 밥 해 먹을 힘조차 없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ㄹㅇ루다가] 백신 맞고서 이상반응 클수록 항체 형성이 더 잘 생기는 걸까?… “의학적 근거 없다”

2021년 10월 05일
백신을 모더나로 접종한 배우 소진(35)이 이상반응을 호소했다.(2021. 10.04) 심장이 뛰고 몸살 기운과 두통이 생겼다는 후기였다. 배우 설현(26)은 화이자 2차 접종을 마치고 갈비뼈까지 접종 부위 통증이 이어진 후기를 유튜브로 밝혔다. 이어 가수 홍자, 이종 격투기 선수 추성훈 등도 이상반응 사실을 밝혔다.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주간 분석 결과’를 통해 이상반응 의심사례 신고현황을 발표한다. 40주차인 12월5일 0시 기준으로 백신 접종 10만 건 당 이상반응 의심 신고는 451.4건으로 1차 접종 534.8건, 2차 접종 394.6건으로 집계됐다. 신고 당시 환자 상태 기준으로 중대하지 않은 이상반응(접종부위 발적, 통증, 부기 등 흔하게 발생하는 증상)인 ‘일반’과 사망이나 아나필락시스 의심, 주요 이상반응인 ‘중대한 이상반응’으로 구분한 결과 일반 이상반응은 의심 신고 중 96.4%를 차지했고 중대한 이상반응은 3.6%로 드러났다. 아플 수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중대한 정도로 이상반응 현상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아낙필락시스(Anaphylactic shock)특정 물질에 대해 몸에서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특정 물질을 극소량 접촉해도 전신에 증상이 나타나는 알레르기 반응이다. 백신 접종 후 ▲전신이 붉어지거나 두드러기가 생기거나 ▲숨이 차 쌕쌕거림 ▲어지럽거나 의식이 없음 ▲창백하거나 늘어지면 아나필락시스 일 수 있다. 접종 후 접종기관에 15분 머무르며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지 관찰한다. 그렇다면 많이 아플수록 젊고 건강한 걸까? SNU팩트체크에 답변한 한림대병원 이재갑 감염내과 교수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개인이 증상을 느끼는 정도가 각자 달라 통증을 건강과 연관시키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같은 질문에서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정기석 교수는 “자신이 아는 의학적 상식으로는 그런 상관관계를 낸 자료는 없다”고 답했다. 정 교수는 “통증과 건강 상태는 상관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이 크면 면역력이 좋은지에 대한 질문도 같았다. 이 교수는 “젊은 사람일수록 이상반응 빈도가 올라가는 건

[지금,여기] 와, 바다에게도 노래 불러 줄 수 있구나

2021년 05월 01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노동자 노래단’과 ‘삶의 노래 예울림’이라는 노래패가 합쳐져 지금의 꽃다지가 등장한다. 꽃다지는 편견을 버리게 도왔다. 삶. 민중가요는 증오와 투쟁만을 담지 않았다. 2011년에 발매한 정규 4집 「노래의 꿈」(2011.12.09)이 그렇다. 꼭 외길 투쟁만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두 눈을 똑바로’가 내가 믿는 정의와 멀지 않음을 말한다. ‘내가 왜?’ ‘당부’처럼 슬픈 염원을 담기도 하지만 ‘친구에게’ ‘한결이’처럼 일상의 메시지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코로나를 맞아 꽃다지도 유튜브에서 활동한다. 콘서트 실황과 클립 영상이 올라왔다. 정윤경 보컬이 잠잠하게 바다의 시각으로 인간 향해 노래 부른다. 시화호를 생각하며 부른 곡이다. 자연을 몰아내고 개발에 몰두하다 코로나를 맞은 지금의 상황과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찢어질 듯 갈라지는 보컬의 목소리에 바다는 운다. “방조제 너머의 너는 진정 나인지/이 안에 갇혀버린 나는 진정 바다인지.”(난 바다야, 2011)

[지금,여기] 전두환 따까리를 전구처럼:「시대유감展」②

2021년 05월 01일
임옥상 작가의 「발 닦아주기」에 다다르자 빵 터졌다. 전두환 발 닦아주는 노태우 바깥 경계에 정치인들이 노랗고 붉은 색깔로 칠해져 전구처럼 전시 돼 있었다. 기발했다. 대통령 풍자가 가능해진 이후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지금 시대야 문재인과 지지자를 “문재앙” “대깨문으로 부르는 시대지만. 서슬 퍼런 5공 시절 겪고서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가능해진 시대의 풍자라면 느낌이 어땠을까. 아쉽게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촬영 불가였다. 민중미술이 닿은 시선 민중미술은 독재라 이름 짓는 권위주의 정부만 타도하지 않았다. 80년대 한국 사회는 급변했다. 경제성장과 함께 올림픽으로 세계화를 맞이했다. 전두환이 부추긴 측면도 강하다. 컬러 방송 시대를 열면서(1980) ‘국풍81’ 대규모 문화 행사를 개최(1981)했고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1982)했다. 프로야구와 축구, 씨름이 출범(1982-83)하자 여적(餘滴)은 이렇게 말한다. “흔히 스크린 스포츠 섹스 두 문자를 따라서 현대를 3S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말한다.”(경향신문, 1983) 불과 전두환 시절 7년 간 대가족 중심에서 4인 가족으로 구성원 숫자가 변했고 민주화 운동이 가라앉던 냉전체제가 끝나간 90년대 중반 텔레비전 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어섰다. 대중적 환경이 변하며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난 개인은 유흥과 성에 빠지기 쉬웠다. 관계가 아닌 소비라는 측면에서 여성과 돈, 음식은 단지 소비할 대상에 불과했다. 신학철은 몽타주 방식으로 대중 우민화 정책을 비판했다. 단일한 여성은 그저 아름다운 존재일 뿐이고 값비싼 보석은 가지고픈 물건일 테지만. 현실 세계에서 마주하는 이들을 덧대고 오리면서 합쳐보니 끔찍한 이면이 드러난다. 소비로써 즐기는 사회 이면에는 소외되고 외로워하는 개인이 숨어 있다. 국가는 인간의 말초적 감성을 이용해 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다. 단지 대통령이던 보이는 적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세대를 갈라치우며 이득을 얻고 있다. 전두환 따까리로 표현했던 전구만큼 기발했다. 실제 부대 자루와 종이 포장지로 표현한 극사실적 작품 ‘국토-고추 모종’은 다급하게 만든다. 개발이란 담론에 밀리어 일상을 살아가던 이들의 터전이 사라진다. 이쯤에서 농촌을 회복하고 복구하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농촌은 상직적인 의미라고 생각했다. 대중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구사하다 소수자로 전락한 개인은 언제나 터전을 빼앗긴다. 모두가 존중 받으며 다양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회란 존재하기나 할까. 민중미술은 탄광촌, 길, 사람들, 민족처럼 한국만의 상황을 담는다. 새로운 언어로 말하는 방법 어렵지 않아서 좋았다. 텍스트로만 접했던 민중미술, 직접 작품으로 대해보니 그 시절 어른이자 청년들은 쉬운 언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했다. 미술을 전공했으니 미술인이 할 수 있는 말은 작품뿐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참여할 만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이런 고민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언어는 늘 생각하게 한다. 그 생각은 사랑에 닿는다. 사랑하지 않으면 새로운 언어를 고민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시회 중간에 쌍벽으로 자리한 미술인 단체 인포그래픽이 아쉬웠다. 멀리서 볼 수 있었으면 한 눈에 담겼을 텐데, 워낙 커서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독재자의 장기 집권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 갈피 잃은 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오버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 무렵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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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6월 2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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