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 Page 6

[팔짱만 껴도 좋은걸②] 펭-귄, 페—-ㅇ귄, 뽀뽀 —- 우

여자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애착인형을 데려왔다. 정확히 몇 월 며칠에 왔는지를 서로가 모르는 걸 보면 처음엔 별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에 저장된 걸 보면 애착인형의 첫 사진은 지난해 9월 20일이다. 9월 전후로 애착인형을 데려온 것이다. 인형을 산 건 10년도 더 됐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동생에게 부탁해 에버랜드에서 사 왔다는 것. 영혼 없는 눈망울, 무표정한 얼굴, 입을 여닫을 수 없는 부리. 여자친구는 애착인형더러 “킹 받는다”고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출근하고 집에 없는 동안, 장난끼가 발동했다. 여자친구가 벗어놓은 잠옷을 내가 애착인형에게 입혀 놓고 나간 것이다. 저녁,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나는 능청맞게 장난을 쳤다. “어? 오늘 출근 안했어요?” 여자친구가 맞장구를 쳤다. “뭐지. 그럼 난 뭐지.” 애착인형은 울 줄도 안다. “펭~귄” 여자친구 특유의 발음에 착안해 나는 “펭~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도 재밌다고 따라한다. “펭~귄” 우리끼리만 맛있는 걸 먹으면 애착인형은 삐진다. “펭~~귄” 우리끼리만 재밌는 데 가도 애착인형은 삐진다. “페~~~~ㅇ귄” 그런 애착인형을 여자친구는 무척 아낀다. 내가 애착인형에게 뽀뽀를 하면 “펭귄OO 괴롭히지 마욧~!”이라며 걱정도 해준다. 그런 애착인형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올해 애착인형 2호를 데려온 것이다. 그것도 판교에서 온 녀석이다. 우리의 애착인형과

[커버스토리] 10년이 지나고 나에게 선물 받은 나의 방

10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자 재채기가 나왔다. 이 정도 먼지면 바깥에서 털었어야 했다. 중학생 시절에 만들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 과제를 꺼내 들자 허술하게 관리한 그간의 세월이 먼지만큼 보였다. 뇌리에 남은 미술 선생님 이미지는 두 가지다. 섬세함과 예민함을 갖춘 바람에 우리들에게까지도 엄격함을 요구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이기적인 인간상, 또 하나는 부처상 앞에서 백발배로 성찰하며 자신의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가다듬던 인간상. 그 짧은 반 오십 살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어간 사람들 셋을 보았는데 그 중 한 분이 미술 선생님이었다.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던 예민함과 섬세함을 극대화해 끝내 자신의 성격조차 조각하듯, 하나하나 새겨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런 어른이 가르쳐주셔서 고마웠다. 선생님은 신문지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라 하셨고, 좋아하는 간판을 그리라고 흰 종이를 내주셨고, 배달 음식으로 남은 나무젓가락으로 탑을 쌓아보라 하셨고. 마지막으론 내 방 만들기라는 거대한 과제를 내주셨다. 즐거웠다. 왜냐하면 나는 늘 내 방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집에서 놀 듯, 학교에서도 놀아보라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선지 학교 가기가 가벼웠고 하나 둘 만들어가는 교실 속 광경을 느끼자 내 세상 같았다. 고입선발고사를 위한 미술 공부는 재미없었다. 지금도 머리에 남는 교과서 속 인물은 독창적인 팝아트 거장 엔디 워홀(Andy Warhol)밖에 없다. 점 하나 찍고 돈 세탁이나 하는 줄만 알았던 작품의 세계를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편견을 집어치우고 말았다. 즐겁게 제작하던 10년 전 작품을 다시 손에 들었다. 내 방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작품들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지면은 여행을 떠나고 채워야 했지만, 코로나 파동으로 인해 방 꾸미기 기사로 갈음한다.

[주마등] 달달한 편의점 모찌롤 케 ― 잌

2022년 06월 13일
편의점 구석 한 편. 의자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잠은 푹 자둔 상태다. 사장님은 이것저것 지시사항 가리키고서는 퇴근했다. 그렇듯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로 응축된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신문이나 책 읽다가 심심하면 글 좀 쓰면 된다. 자정까진 손님만 스무 명 남짓. 피곤함만 빼면 꽤 괜찮다. 벽면 화이트보드엔 ‘해야 할 일’이 빼곡했다. 그닥 복잡하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청소, 선입선출. 물류도 없어서 청소 때만 바짝 일하면 된다. 종이컵에 믹스 커피 따르고 자리에 앉았다. 편의점 조끼에 배인 내 체취가 비 냄새에 가려졌다. 비 냄새라. 다소간에 불편해질 것 같다. 박스는 사장님이 준비해두셨을 테고. 발자국이 묻기 전에 깔아두면 될 텐데. 움직이기는 귀찮고. 어제는 몇 명쯤 왔을까. 뇌가 피곤한 모양이다. 멍 때렸다. 머 ― 엉.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시 소속 청소차. 집에서 밤새 유튜브 보다가 듣던 낯익은 소리다. 갓길에 멈춘 차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한 분은 20대 초반 다른 분은 50대 중년. 시원한 음료를 사다가 바깥 원목 테이블에서 마시던 광경을 CCTV로 지켜보았다. 아버지와 사춘기 아들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투입된 지 얼마 안 된 어색한 사이로도 보였다. 무엇을 생각했을까. 조용히 담배를 비우다 유유히 사라졌다. 그 짧은 시간의 빗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침묵은 오래지 않았다. 투덜투덜 바닥에다 박스를 깔아두고 테이핑했다. 잠깐 내리고 그칠 비 같아 하나만 깔아뒀다. 오늘도 손놈을 피할 수 없었다. 다짜고짜 화장실 쓸 수 있냐, 핸드폰 충전은 안 되냐, 담배 찾아 헤맬 때마다 신경질 부리는 인간들을 마주하려니 빗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앞으로 모찌롤이라 부를 이상한 손님을 만났다. 2019년 5월 2일 목요일 택시에서 내리는 듯 둔탁한 소리가 스쳤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왔다. 육감에 집중했다. 곧 출몰하겠구나. 곧 들어오겠지, 들어오겠지. 귀는 출입문 앞에 서 있었고 눈은 책의 마지막 문단에 머무르고. 격정적 목소리가 연이었다. 귀찮아지겠네. 들어오지 마라. 들어오지 마라. 제발. 마음으로 기도했다. 잠잠해지자 근처 주민이겠거니 의자에 앉으려던 순간. 출입문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찹쌀떡과 마주친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깜짝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째려만 보았다. 통화 중이었다. “아, 씨발, 지금 편의점. 응, 응…….” 하나의 손놈이 편의점을 배회하고 있다. 누가 봐도 술 취한 20대 여성이. 그대로 서서 남은 단락을 마저 읽었다. 한 바퀴를 돌았어도 사려던 물품이 안 보였는지 다시 한 바퀴 도는 듯했다. 돌다보면 심심해지니까 브로드웨이 삼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책을 덮고 감시체제에 돌입했다. 권태기 남자친구 얘기인 모양이다. 짜증인지 분노인지 하여튼 남친하고 싸운 모양이다. 사려는 것도 아니고, 안 사려는 것도 아니고. 애매한 빗줄기 같은 것. 저절로 회개 기도가 나왔다. 지난 날 선배와 통화하며 매대 곳곳을 배회한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다음부터 그러지 않을 테니 이 귀찮은 손놈이 빨리 나가게 해주세요. 손놈은 통화를 마치자 물건을 포스기 앞에 쏟아냈다. 젤리 사탕, 숙취 음료, 그리고 모찌롤. 자정만 지나면 내 건데. 입꾹닫 바코드를 찍어댔다. “담아주세요.” 단골은 눈 감아 달라고? 어림도 없다. 단골도 아닐 텐데. 봉투 버튼을 누르자 손놈이 말했다. “어, 곧 폐기였네요?” 그걸 이제 알았냐. “어느 학교 다니세요?” “좋은 학교 다니는데요.” “전공은요?” “소비자심리학과요.” 대충 둘러댄 말을 믿는 둥 마는 둥. “계속 물어보면 귀찮아할 거죠?” “네.” “그냥 가는 게 더 낫죠?” “네.”

[ㄹㅇ루다가] ‘공공재’가 되어버린 개인정보 ‘두낫콜’로 스팸차단… 단, 불법스팸문자는 제외

2022년 06월 02일
이번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무분별한 전화·문자 유세를 통한 불투명한 개인정보 수집 경위가 부각되자 개인정보보호 여론이 가열 양상을 보인다. 수신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유권자나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개인정보 활용 수신 거부의사를 표명해야 한다는 문제 때문이다.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는 각각 두낫콜(Do Not Call)을 운영한다. 서비스 등록 시 전화권유판매 사업자가 제공 받은 수신거부 등록자 목록을 토대로 전화 권유 판매 행위를 하지

[ㄹㅇ루다가] 전화·문자 대신, ‘쓰레기 줍기’로 친환경 유세

2022년 06월 02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간 무분별한 전화·문자 선거 유세로 공해를 일으키는 한편 쓰레기를 줍는 활동으로 유세에 나선 후보자들이 눈길을 끌었다. 광주광역시에서 생태주의를 표방한 당의 한 후보자는 현수막과 공보물을 재활용천과 재생용지로 제작했으며 전기 자전거로 돌아다니면서 유세하기도 했다. 선거운동원과 함께 공원 등 일대에서 쓰레기를 주우면서 유세에 나섰다. 해당 후보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핵심 공약을 밝혔는데 자원순환 정책을 거론하며 환경 정책을 손꼽았다. 경남 사천시 한 무소속 후보자도 플로깅으로 유세에 나섰다. 플로깅(plogging)은 스웨덴어 이삭줍기의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우리말로 ‘줍깅’으로 부르기도 한다. 제주에서 도의원 후보로 나온 한 후보자는 선거운동원과 함께 첨단과학단지 유세 일정을 마치고 주변을 돌면서 쓰레기를 주우며 정화 작업에 나섰다. ◇플로깅 유세도 좋지만 해결은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일 플로깅은 선거 운동뿐만 아니라 기업 마케팅으로도 활용되어 왔다. 전화나 문자 메시지가 공해에 가까운 수준으로 쏟아지면서 플로깅 유세가 친환경적인 일석이조 효과를 낳는다는 긍정적 여론이 존재했다. 그러나 쓰레기를 줍는 수준으로는 환경이나 기후를 바꿀 구조적 해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는 비판과 일회성 뿐이라는 문제도 제기 됐다.

[ㄹㅇ루다가] 지방선거 투표문자·전화 홍보… 하루에도 수십 통 “해도 해도 너무하네”

2022년 06월 02일
대선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선거운동정보’ 이름의 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린시절 아버지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군인이셨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묻지도 않았고 하나도 궁금하지 않는 내용이 줄이었다. 문제는 ❶현재 해당 지역에 살지 않는 상태이며 ❷하루에도 수십 통 이상 전화와 문자 폭탄이 이어지는 점이다. 스팸(spam)으로 전락한 지방선거 문자·통화 차단 방법을 종합했다. ◇여론조사 전화 차단 방법 여론조사 선거 통화를 차단하기 위해 다음 번호로 전화 걸면 된다. ▲1547(SKT) ▲080-999-1390(KT) ▲080-855-0016(LG U+) SKT는 전화를 걸고 통화 안내음 대로 따르면 차단 가능하며 KT는 “전화번호 000-0000-0000번의 수신거부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내음이 나오면서 거부 처리된다. LG U+는 안내음 이후 ‘1’을 누르면 차단 완료된다. ◇선거사무소 발(發) 문자·전화 차단 방법 그러나 위 방법만으로는 여론조사 선거 통화만 차단 가능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선거사무소에서 제공하는 선거 문자·통화 발송까지 막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❶일일이 차단: 070 뿐만 아니라 ‘010’ 외 지역 번호로도 선거 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방법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선거사무소에 직접 연락해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다고 해도 유권자가 후보에게 일일이 전화해야 하므로 번거로운 단점이 있다. ❷스팸 차단 앱: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T전화’ ‘후스콜’ ‘후후’ ‘더콜’ 등 앱을 이용해 차단 가능하다. 그러나 앱에 따라 광고를 삽입하는 경우도 있어 단점도 존재한다. ❸‘차단문구’ 사용: 선거사무소 발 문자에서 ‘무료거부’ ‘무료수신거부’를 하단에 배치하는 경우가 있다. 해당 단어를 차단해 수신 거부하는 방법도 있지만 모든 문자에 ‘무료거부’ 등의 문구를 넣지 않아 완벽하지 않은 방법이다. 예비후보자 또는 후보자가 아닌 사람이 문자 메시지를 발송할 경우 ‘선거운동정보’와 ‘수신거부’ 표시 의무가 없다. 또한 전화는 번호로만 차단할 수 있으므로 사실상 차단할 방법이 없다. 유권자가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여론조사 차단 통신사 마다 고유 전화번호로 연락할 것 개별 선거사무소 차단 불가 일일이 차단하는 방법 꼽혀 개인정보 관련 불법은 신고 공해 수준의 무분별한 유세 문자·전화는 합법이라 골치 수집 방법 미고지·미파기시 신고로 과태료 부과는 가능

[작품 해설] 너에게 맞설 수 있는 치트키: “문소혜, 너와 연결된 이 신문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2022년 03월 01일
이야기는 매화고등학교 학보사 이른아침매화 사회부 기자 최문정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신문은 문정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 메신저가 아니라 신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제된 단어와 깔끔한 문체, 함축하여 전달하는 정보력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과거라는 방식의 학보사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문정의 삶 저변에는 신문이 자리한다. 문정의 확고부동한 성향이 사실 관계를 집요하게 파헤쳐야 할 기자 체질에는 맞았다.(4단43줄) 때로는 신문의 존립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고개도 숙일 줄 알았던 편집국장 문소혜와 달랐다. 조판 과정에서 친해진 선배는 진정 기자라는 타이틀을 몸소 가르쳐주었다.(3,36) 소혜는 선배처럼 심지 굳은 최문정 캐릭터를 말랑말랑한 이미지로 풀어내려 했다. 문정은 그 사이를 ‘동반자 같은 우리 사이’로 느낀다.(6,3) 신문은 문정과 소혜를 하나로 연결해주었고 서로가 서로의 업무에 충실할수록 매듭지어져갔다. 어디까지나 신문이라는 공동체가 존재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학교 본부는 의도적으로 문정을 배제했다. 학교 이익과 배치되는 기사들을 신문에 싣지 못하도록 가로 막은 것이다.(5,32)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소혜도 알고 있었다. 학보가 학교에게 흠집 내는 기사를 가만 놔둘 리 없으리라 판단했다. 소혜는 학보 주간 교사 마음대로 데려온 새 기자를 지켜만 보아야 했다. 문정도 반발하지 못했다. 신문은 더 이상 교내에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매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학내 신문 열독률은 영향력이 전무한 수준이다.(3,7) 도리어 자칭 독자로 등장한 사람들은 신문을 자신의 커리어에 이용할 뿐이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문정은 난관을 돌파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학보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숨죽이고 쓰라는 글만 쓰며 졸업을 맞이할지. 불안하고 외롭지만 어른들에게 맞서야 할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문정에게 가장 쉬운 길은 원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 될 뿐이다. 맞서는 순간 맞서야 할 방법과 전략까지 문정 스스로가 세워야 했다. 여기서 어른들의 문법을 발견한다. 권력을 쥔 누구라도 적으로 등장한 이라면 숨통을 완전히 쥐어야 한다는 것.(5,48; 9,22) 앞에서는 문정을 몰아붙이면서도 뒤에서는 나긋하게 말하는 주간도 그 중 하나다. 기자 최문정을 완전히 죽여 버리면 새 인력을 보강해야 하니 적절히 타협하는 차원에서 내 편으로 만드는 전형적인 어른들의 문법을 발견한 것이다. 먹고 사는 일이 누군가의 피눈물보다 중요하다는 게 문정에게 무슨 소용일까. 어쩌면 소혜도 그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문정이 소혜의 편에 서 있으니 편집국장으로서 방패도 되어주고 뒷바라지도 해주지만 그 그늘에서 벗어난다면 돌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두려운 마음은 이 시점에서 곰팡이처럼 퍼져간다. 학보사를 벗어나면 문정은 누구 하나 지켜줄 수 없는 낙오자의 세계로 발 딛는 꼴이다. 홀로 남은 상황으로 압박하는 어른들의 계략을 문정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신문과 연결된 사람들은 학보사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밤, 기숙사 한편에서 남자애와 키스하던 순간. 문정은 잠 못 이루는 감정을 느꼈다. 말했어야 했던. 가슴앓이로 눈물로써 지새우던 지난날의 셀 수 없는 밤이 지나고 용기를 내어 입술을 마주쳤다. 존재하지 않는 줄로 알았던 또 하나의 독자, 그 남자애와 다시금 연결될 때 설레는 감정이 추동력이 되어 문정을 알지 못하는 세계로 데리고 간다. 신문은 학생 독자에게 완벽하게 버림받은 매체다. 더는 신문으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에스크가 일상의 질문으로 정보를 주고받고, 인스타그램 중심의 인플루언서 여론은 밈이 되어 젊은이들을 감싸 안는다. 굳이 정보로 정리되지 않아도 될,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정보들이 사회를 움직인다. 신문이란 구시대 문법이 파고들 여력이 없다. 문정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문의 문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신자유주의 흐름을 누구라도 포착하지만, 누구라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7,65) 은연중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만, 어느 누구하나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정제된 단어와 깔끔한 문체는 영상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간결하게 내보일 수 있기에 신문의 문법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문정은 결심한다. 소혜가 쓴 사설을 뒤엎고, 자신이 써내려간 글로 몰래 바꿔다 끼워 넣는다. 신문의 문법은 오늘의 정보가 내일에서야 독자에게 가 닿는 방식으로 구성한다.(7,34) 내일이면 소혜가 마주할 문정의 글에는 무엇이 적혔을까.

[단편소설] 너에게 맞설 수 있는 치트키

2022년 03월 01일
매화고등학교 학보 이른아침매화는, 정갈한 글꼴에 기승전결 육하원칙 매듭진 분명한 문체 단숨에 읽혀서 좋다 선배에게 배우면서 찢어지게 웃었던 지난날, 기자 생활 어느덧 보이는 좋아하던 그 아이 어젯밤 키스는 예정에 없었다. 홧김도. 밀당도. 큰 그림도. 힘들어서도. 빼앗길 듯해서도. 붙잡으려던 욕심도. 좋아한단 말 한마디 선전포고 꺼낸 것도. 아니었다. 느낌의 흐름 따라 입 맞췄을 뿐이다. 아닌 건 어제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변명의 여지는 충분하다. 이슬톡톡만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날밤으로 새야했다. 내내 간지러웠다. 이부자리 설쳤다. 이상하다. 내가 이상해졌다. 숨어서 좋아하던 두근거림 따위와는 달랐다. 모두가 잠든 밤 달만이 미소 짓는다. 그 캔 레모나 맛은 들었다 놨다 장난질이었다. 달달했는지 새콤했는지 아무 기억도 없다. 자고 깨고를 반복했다. 한 순간 사라진 용기에 남자애들 그것처럼 허무감에 휩싸였다. 떠오른다. 순식간에 달아올라 한 순간에 꺼져버린 그 달. 새벽 기운이 오른다. 지저귀는 새 울음에 달고도 짠맛이 후폭풍처럼 밀려온다. 모든 감정을 앗아갔다. 후회조차 매듭 짓지 못했다. 스마트폰 뒤적였다. 그 애 프로필 들여다봤다. 어땠을까. 좋았을까. 맡았을까. 들렸을까. 불쾌하진 않았을까. 천천히 다가갔다면 받아 줬을까. 아침 해가 떠서야 겨우내 생각했다. 좋아한다 말이라도 해줄 걸. 아니아니. 멀찍이서 지켜보았다는 말이 더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 그러나 모든 질문은 한 가지로 모아졌다. “어젯밤 키스의 맛은 어땠을까.” 정신이 들었다. “우리 뭉뎡이 어젯밤에 키스했구나?” 매듭진 문장들 너머로 ‘어젯밤 키스의 맛은 어땠을까’로 도배된 한글 문서가 눈앞에 선명했다. 황급히 화면을 내렸다. 늦었다. 들켰으니 취조 당할 차례. 귓불이 화끈거렸다. 한 모금 차디찬 커피를 마셨다. 어깨를 감싸 쥔 소혜의 사탕 냄새가 은은했다. “누군데 누군데!” 남자라곤 1도 관심 없는 천하의

[내 맘대로 교회 탐방] 여의도 순복음교회 주보, 현대적 시스템은 예배를 거들 뿐

2022년 03월 01일
주보 1면은 거대한 빨간 벽돌이 돋보인다. 간단히 ‘주보’라 쓰인 용지 상단에는 ‘원로목사 조용기’ ‘담임목사 이영훈’ ‘부목사 이장균’이 있으나 조 목사 사후에는 위임목사 이영훈, 부목사 순으로 바뀌었다. 제일 위에 ‘설립자 조용기 목사’ 문구가 들어간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예배 전 찬양팀이 찬송가를 부른다. 성가대와 다른 개념인 찬양팀은 밴드형으로 구성한다. 영산싱어즈와 팀조슈아(TeamJoshua)가 대표적이다. 예배는 사회자의 시편 낭독인 ‘예배로 부르심’으로 시작해 찬송-신앙고백(사도신경)-장로의 기도-성경봉독-성가대-설교-기도와 결신-헌금기도-광고-주기도문 찬송-축도로 이뤄진다. 결신은 미국 복음주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예수를 주님이라 입으로 고백하고 부활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로마서 10,9을 따라 각 부에서 설교하는 목사가 선창하면 따라 고백하는 방식이다. 전통보다 앞서는 것은 성령이다. 성령충만한 예배를 위해서라면 모든 현대적 시스템은 거들 뿐이다. 금요일이면 홈페이지에 주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조용기 목사 설교 요약도 함께 올라온다. 주보에 결점이 있다. 2016년과 2017년 사이 하늘에서 촬영한 교회 광장에 사람들을 합성한 모양이다.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는 사람들도 있는

[내 맘대로 교회 탐방] 여의도, 영산(靈山)의 진해지는 그림자: 여의도 순복음교회②

2022년 03월 01일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돔 예배당만이 전부가 아니다. 매 일요일 국회대로 가득 메운 인파 속을 헤집고 예배당에 도착해 남는 시간 주보를 읽노라면 오늘 설교 할 조용기 목사 설교 제목이 가장 눈에 띈다. 사회자의 시편 낭독. 손을 휘 저으며 찬송가 부르는 지휘자. 10분 남짓한 장로님 기도. 성경봉독, 성가대의 찬송 순서가 지나 예배는 하이라이트에 다다른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의 복을 받으십시오’ 인사해주십시오.” 이제 등단한 조용기 목사가 “제게도 축복해주세요”를 덧붙이면 교인들은 두 손 가리키고서 박수를 친다. 언젠가는 이 부탁을 빠트렸고 교인들이 조 목사를 향해 손짓과 함께 축복하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 잊어버렸는데 여러분이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용기 목사는 중학생이 들어도 이해하기 쉬운 말들로 설교를 이어갔다. 과감한 어투와 가벼운 농담도 섞은 덕분에 딱딱하지 않다. “‘나는 적은 죄 지었고 너는 많은 죄 지었다.’ 죄는 다 똑같은 죄인 것입니다. 작은 돌멩이도 물에 가라앉고 큰 바위도 물에 가라앉는 것입니다. 그저 소리가 다를 따름입니다. 작은 돌맹이는 ‘퐁당’하고 가라앉고 큰 돌맹이는 ‘푸응덩~’하고 가라앉는 것입니다.”(2008. 06.22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며 죽었다가 살아남) 교인들은 조 목사의 ‘퐁당’과 ‘푸응덩~’ 두 단어에 박장대소한다. 죄와 인간 그리고 하나님의 관계를 이처럼 쉽게 설명해주는 설교에 감탄한다. 예수쟁이더러 미쳤다고 말하던 소년 조용기는 오히려 예수를 전하는 목사가 되었다조용기 목사의 설교는 언제 들어도 익숙하다. 크게 소리 지르지 않는다. 쓸데없이 시간만 길지 않는다. 예화와 통계 인용은 우리 사회에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돕는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3요한1,2)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모든 일들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바라는 설교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번영신학’으로 비판하지만 조 목사를 뒷받침하는 생애를 들여다보면 근원을 알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조용기는 폐결핵을 앓으며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하나님도 혼자 바닥에 누워 통곡하던 조용기의 기도를 들었는지 누나의 친구를 통해 예수를 접한다. “예수쟁이들은 다 미쳤다 카드마, 누이도 예수 믿고서 미쳤구마. 당장 이 방에서 나가이소.”(여의도의 목회자,165쪽) 다시 찾아온 누나 친구가 건네준 성경책을 읽으며 조용기는 병을 고쳐달라고 호소한다. “예수 씨여!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나의 폐병을 고칠 수 있는 당신입니더. 의사들은 아무도 내를 고칠 수 없다고 말합니더. 그러나 성경을 보마 예수 씨는 중풍병자도 고치고,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나병환자도 깨끗하게 하고, 죽은 나사로도 살려 주지 않았심니꺼. 만약 예수 씨가 내를 고쳐주신다카마 예수 씨를 위한 사람이 되겠심더. 제발 나를 살려 주이소.”(여의도,169) 가슴이 뛰고 온몸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마음속에서부터 생명의 기운이 넘치자 조용기는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찬송가를 모르던 시절 아는 노래라곤 ‘신라의 달밤’뿐이었다. 마당을 돌면서 노래를 부르니 어머니도 드디어 정신이 나간 줄로 오해했다. 병 고치는 예수의 활동을 통해 조용기는 병 고치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한 절 읽다가 눈물 흘리고 다시 한 절 읽다가 눈물 흘리고 하니까 온종일 성경을 읽어도 다섯 절 이상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성경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기뻤습니다.”(여의도,171) 사흘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하는 동안 예수는 조용기에게 찾아와 “복음을 전하는 데 너의 일생을 바치라”고 말한다.(여의도,194) 예수의 다리를 안으며 정신을 잃은 조용기는 환상을 통해 폐결핵이 나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조용기에게 고치시는 예수, 살리는 복음이 누구보다 살에 와 닿았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목사가 된 조용기는 설교한다. “육군 대위 한 사람이 암에 걸려서 죽어가는데 그 아내가 하도 사정해서 병원에 심방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나는 안 믿습니다!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당당한 군인이오, 군인 정신으로 죽겠습니다.’ 군인 정신이 천당 보내 줍디까? 당신 당당한 군인정신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죽음 앞에는 군인도 장사가 아닙니다. 죽음을 당신 이길 수 있습니까? ‘나는 사관학교 출신으로서 군인으로서 살다가 군인으로서 죽지 시시하게 예수 믿고 죽지 않겠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시시합니까? 용감한 사람만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자기 스스로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를 깨닫는 사람이 용감한 사람인 것입니다.”(2008.06.22) 역설 “예수 씨여! 살려 주이소” 예수쟁이라고 말하던 소년 목사가 되어 예수를 말한다 고난 석유파동으로 찾아온 위기 믿음과 희망 가지고 돌파

[15일의 기록] 주안의 편지②- “어둔 교회서 꾹꾹 눌러 적은 눈물의 고백, 지금도 기억합니다”

2021년 11월 20일
힘겹게 하루를 고백했던 그분에게 2015년 10월 자정 넘긴 시간이었습니다. 당신께서 들어오셨을 땐, 퍼피레드 종료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제 말 들어주실 수 있겠냐던 부탁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상담이란 말도 거창하게 들릴 뿐입니다. 지면에 공개하기 힘겨운 나날들이 선명하게 드리울 만큼 당신의 고백이 무거운 짐으로 보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주님께서도 “감당할 수 있는 시련”(1고린 10,13)을 허락하셨다지만 성경의 이 구절은 틀린 것 같습니다. 지금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갈피를 잡질 못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도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과 내가 짊어지기엔 한국의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저는 지금도 퍼피레드 버뮤다 순복음교회의 저녁이 그립습니다. 그저 그 공간에 있음으로 해서 위로를 받았던 어둠 속 은은한 조명이 생각납니다. 그때의 저도 글을 쓰는 것 밖에는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이 글을 남길 뿐입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견뎌내는 것뿐.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견디기 어려운 짐을 짊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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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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