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 Page 4

[팔짱만 껴도 좋은걸②] 펭-귄, 페—-ㅇ귄, 뽀뽀 —- 우

여자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애착인형을 데려왔다. 정확히 몇 월 며칠에 왔는지를 서로가 모르는 걸 보면 처음엔 별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에 저장된 걸 보면 애착인형의 첫 사진은 지난해 9월 20일이다. 9월 전후로 애착인형을 데려온 것이다. 인형을 산 건 10년도 더 됐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동생에게 부탁해 에버랜드에서 사 왔다는 것. 영혼 없는 눈망울, 무표정한 얼굴, 입을 여닫을 수 없는 부리. 여자친구는 애착인형더러 “킹 받는다”고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출근하고 집에 없는 동안, 장난끼가 발동했다. 여자친구가 벗어놓은 잠옷을 내가 애착인형에게 입혀 놓고 나간 것이다. 저녁,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나는 능청맞게 장난을 쳤다. “어? 오늘 출근 안했어요?” 여자친구가 맞장구를 쳤다. “뭐지. 그럼 난 뭐지.” 애착인형은 울 줄도 안다. “펭~귄” 여자친구 특유의 발음에 착안해 나는 “펭~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도 재밌다고 따라한다. “펭~귄” 우리끼리만 맛있는 걸 먹으면 애착인형은 삐진다. “펭~~귄” 우리끼리만 재밌는 데 가도 애착인형은 삐진다. “페~~~~ㅇ귄” 그런 애착인형을 여자친구는 무척 아낀다. 내가 애착인형에게 뽀뽀를 하면 “펭귄OO 괴롭히지 마욧~!”이라며 걱정도 해준다. 그런 애착인형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올해 애착인형 2호를 데려온 것이다. 그것도 판교에서 온 녀석이다. 우리의 애착인형과

[커버스토리] 10년이 지나고 나에게 선물 받은 나의 방

10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자 재채기가 나왔다. 이 정도 먼지면 바깥에서 털었어야 했다. 중학생 시절에 만들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 과제를 꺼내 들자 허술하게 관리한 그간의 세월이 먼지만큼 보였다. 뇌리에 남은 미술 선생님 이미지는 두 가지다. 섬세함과 예민함을 갖춘 바람에 우리들에게까지도 엄격함을 요구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이기적인 인간상, 또 하나는 부처상 앞에서 백발배로 성찰하며 자신의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가다듬던 인간상. 그 짧은 반 오십 살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어간 사람들 셋을 보았는데 그 중 한 분이 미술 선생님이었다.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던 예민함과 섬세함을 극대화해 끝내 자신의 성격조차 조각하듯, 하나하나 새겨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런 어른이 가르쳐주셔서 고마웠다. 선생님은 신문지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라 하셨고, 좋아하는 간판을 그리라고 흰 종이를 내주셨고, 배달 음식으로 남은 나무젓가락으로 탑을 쌓아보라 하셨고. 마지막으론 내 방 만들기라는 거대한 과제를 내주셨다. 즐거웠다. 왜냐하면 나는 늘 내 방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집에서 놀 듯, 학교에서도 놀아보라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선지 학교 가기가 가벼웠고 하나 둘 만들어가는 교실 속 광경을 느끼자 내 세상 같았다. 고입선발고사를 위한 미술 공부는 재미없었다. 지금도 머리에 남는 교과서 속 인물은 독창적인 팝아트 거장 엔디 워홀(Andy Warhol)밖에 없다. 점 하나 찍고 돈 세탁이나 하는 줄만 알았던 작품의 세계를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편견을 집어치우고 말았다. 즐겁게 제작하던 10년 전 작품을 다시 손에 들었다. 내 방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작품들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지면은 여행을 떠나고 채워야 했지만, 코로나 파동으로 인해 방 꾸미기 기사로 갈음한다.

[지금,여기] 입안 가득 ‘사르르’ 상하농원에서 아이스크림 만들기 “도-전 !”

2024년 08월 23일
커다란 볼에는 소금이 담겨 있었다. 얼음을 붓고 살짝 으깨어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웅덩이에다 휘핑크림과 우유가 담긴 작은 볼을 장착해 왼쪽으로 열 번, 오른쪽으로 열 번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우유가 담긴 볼에 작은 막이 형성 되었다. 플라스틱 주걱으로 떼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곧 아이스크림이 되었다. 상하농원 체험교실 A반에서 ‘과일공방잼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체험했다. 15일 오후 1시 30분, 시간에 맞추어 입실하자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이미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선생님의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체험시간은 총 40분이었다. 친절한 설명 덕분에 체험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가격은 2인용 1좌석 3만5000원. 블루베리, 초코시럽, 과자 등을 완성한 아이스크림에 뿌렸다. 여자친구와 한 입 베어 물었다. 매일유업이 만든 상하목장 유기농우유 맛이 났다. 좋은 맛이다.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이 한몫 했다. 그저 가르친 대로 만들었을 뿐이다. 아이스크림을 다 만들고 나서 나와 여자친구의 기념 사진도 찍어 주셨다. 상하농원은 다양한 만들기 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만들기 체험은 크게 ‘소시지’ ‘잼’ ‘아이스크림’ 만들기로 나눠진다. 비엔나 소시지, 치즈 소시지, 과일공방잼 아이스크림, 보코치니치즈, 카스텔라 토핑 아이스크림, 롤 비엔나 소시지, 블루베리잼 만들기를 선택할 수 있다. 체험은 아침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각 프로그램이 짜여 있어 시간표를 참고해 예약하면 된다. 웹사이트에서 미리 예약할 수 있다. 참여 가격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어는 점 낮춰주는 고마운 소금 왜 얼음에 소금을 넣었을까. 얼음은 녹을 때 열을 흡수하고 소금은 녹는 점을 낮춘다고 한다. 얼음이 녹아서 생긴 물에 소금이 또 녹으며 열을 흡수하다 보니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보다 어는 온도가 낮아야 한다. 따라서 소금이 필요하다. 아이스크림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만드는 재료 온도를 낮추는 방법인 것이다. 따라서 얼음에 소금을 3:1 비율로 섞어서 넣으면 영하 20도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소금은 겨울철 도로의 눈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환경교육재단 한국사무소는 ‘겨울철 도로에 뿌려진 소금이 위험한 10가지 이유’에서 “영하 10도 이하에서는 소금이 얼음이 녹이는 능력이 크게 감소한다”며 “해당 지역에서는 효과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금,여기] 상하농원에 가면 ?아기 돼지도 있고 ?양 친구도 있고

2024년 08월 23일
입구에서 바라본 농원의 풍경은 아늑했다. 무척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매미 우는소리만 가득했다. 광복절 연휴 상하농원에는 가족 방문객만 눈에 띄었다. 사람들로 붐빌 줄 알았지만 꽤 적막했다. 무척 신이 났다. 하루 반나절을 이곳에서 뒹굴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당장 눈앞 텃밭정원에는 땅콩 잎이 파릇하게 웃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상하키친과 햄공방이 서 있었다. 검은색 벽돌과 빨간색 벽돌이 촌스럽지 않았다. 나무들 사이에 숨은 공방 건물들은 땡볕에 서서 사진 찍게 만들 만큼 멋들어졌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점심이었다. 배가 고팠다. 상하키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주 운암동에서 두 시간… 말없이 뚜벅뚜벅 ‘고불길 탐방’ 원래 계획은 오전 중에 여자친구와 이곳 상하농원에 도착하는 일이었다. 하필 시내버스에서 삼각대를 두고 온 걸 깨달은 바람에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출발해야 했다. 만일 광주 운암동에서 8시에 출발해 9시 20분 고창에서 구시포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탔다면 10시 20분쯤 상하농원에 도착했을 것이다. 상하농원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한 번 가는 데만 2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자차로 ‘상하농원 주차장’이라고 검색하면 손쉽게 갈 수 있지만 문제는 걸어서 가는 경우다. 기차로 가려면 정읍역을 거쳐서 가야 하고 고속버스를 탄다면 고창터미널이나 정읍터미널에서 구시포를 거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주 운암동에서 출발했다. 고창까지 가는데 고속버스를 탔고 구시포에 갈 때는 시내버스를 탔다. 중간에 버스 배차가 맞질 않아 고창에서 한 시간 기다려야 했다. 종합하자면 한 번 가는 데만 3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수월했다. 배차 간격이 딱딱 맞은 덕분에 저녁 5시 20분 상하공원에서 출발한 발걸음은 2시간이 채 되지 않은 7시 15분 광주 운암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상하농원 앞 정류장은 102번 버스가 지나가는 곳이지만 정차 가능한 정류장이 아니었다. 농원에서 멋으로 만든 정류장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집으로 돌아갈 땐 상하농원 앞 정류장에서 타지 말고 15분 걸어 구시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돌아가면 된다. 보도가 없으니 교통사고에 주의하며 걸을 것! 상하농원에 문의해 보니 웹사이트에 있는 정읍역 셔틀버스는 주말에만 운영한다고 한다. 이 버스는 하루 전 예약해야 한다고 하니

[마감하면서] 볕, 방 안 가득 행운에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2024년 05월 13일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사람 평가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기가 센 사람들.” 이삿짐센터 직원의 평가입니다. 누구를 가리켜 한 말일까요.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다며 한 걸음에 충남 보은에서 서울까지 운전한 시규가 찾아온 날이었습니다.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는 도중 경계심을 풀지 않고 “누구시냐”라고 물은 건 503호 오모 씨였습니다. “202호 방문 차량입니다.” 고개를 흔들며 피곤한 일에 엮이고 싶지 않다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2년이란 시간 문정동에서 살며 느낀 인간상은 ‘돈에 미친 인간들’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전전(前前)직장으로부터 상사를 상대로 ‘해고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회사에 이르기까지

[작품 해설] 당신의 운세를 써드립니다: 뒤틀린 욕망과 불안… “운세 한 문장에 세상이 바뀌면 얼마나 좋아”

2024년 05월 13일
연결 기사[단편소설] 당신의 운세를 써드립니다 신문 운세 코너는 언제나 오락적 요소를 가진다. 독자들은 운세가 미래를 예견할지 기대하기도 하고 지나간 일을 맞췄는지 따져 묻기도 한다. 운세는 한 문장도 되지 않는 토막 수준의 글이 담겨 있다. 1927년생부터 1998년생까지 약 70년 인생이 년(年) 단위로 묶여 가장 넓은 대상의 독자를 갖췄다. 하지만 미성년자는 사주의 대상이 아니므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학보 이른아침매화가 운세 코너를 신설하려는 것도 같은 학교 고등학생의 독자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좀 더 신문을 오락적 요소로 보이기 위한 방법으로 운세 코너 신설을 꼽은 것이다. 말없이 찾아온 차기 학생회장 김도진은 학보사 편집국장 문소혜와 친분이 있는 사이다. 소혜가 도진이에게 부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나에게 찾아가 운세 집필을 요청한다.(1단13줄) 찾아간 학보사에는 소혜만 있었고 신문에는 고등학생 운세가 없으므로 직접 써보자고 제안한다.(1,30) 유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막연히 알던 운세와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운세는 단지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정도의 글이 아니었다. 사람의 심리를 읽는 문장의 모음이란 실체를 알아차린다.(2,49) 단지 북쪽으로 가라, 노란색을 조심하라는 샤머니즘 요소에서부터 평소 걱정하던 작은 일들까지 결국 운세가 가리킨 것은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심리였다.(2,56) 운세를 집필하기로 한 유나는 소혜와 임금협상에 성공한다. 소혜가 순순히 임금을 올려준 데에는 집필자 모집이 매우 어려운 학보사 특성 때문이다. 유나의 하굣길이 가벼워졌다. 알바 대신 학보사에서 글 두 편에 한 달 꼴로 1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3,3) 유나는 웃는다. 지나가는 모든 것이 운세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뛰어가는 아이, 팔짱 낀 연인, 페퍼톤스의 노래에서까지 싱싱한 문장을 발견한다. 구르는 낙엽에도 웃는 청춘. 학교에서는 문장을 짓고 집에서는 그 문장들을 매끄럽게 연결해 하나의 운세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몰입은 처음이란다.(3,1) 사람들에게 공개적인 글을 쓰는 것도 유나에겐 처음이었을 것이다. 운세 몇 문장에 세상이 바뀔 거라면 오산이었다. 세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유나는 운세 첫 날부터 고생길이 열렸다. 담임을 만나 억울하게 심부름꾼 노릇을 한 것이다. 모르는 애랑 부딪치며 신문 더미가 터지는 사고까지 벌어진다. 각박한 세상임을 절실하게 느끼는 와중에 급하게 달려와 도와주는 친구 지수와 혜인이, 그리고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를 잘 생긴 남자애를 만나며 그날 적중한 운세를 깨닫는다.(4,38) 기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저 ‘탕후루 먹기 좋은 날’이라고 썼을 뿐인데 학교 근처 탕후루집 매출이 크게 올라 사장 아주머니가 찾아와 선물 공세를 보냈고, 운세 상담이 쇄도하기까지 했다. 감사의 인사로 보낸 캘리그래피일 뿐인데 소혜는 이를 기회로 굿즈(goods)까지 만들자고 제안하며 유나는 순식간에 돈방석에 오른다.(5,49) 부푼 기적은 악재와 함께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너무 잘 맞춰서 문제였다. 좋은 일만 맞추면 좋았을 텐데 나쁜 일도 덩달아 벌어지면서 유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중에 담임은 훈수를 둔다. “겹겹이 악재가 쌓일 때가 있으면 슬슬 풀릴 때도 있는 거야.”(7,32) 소혜까지 거들었다. 운세를 검토하는 마지막 과정에서 나쁘게 해석될 문장을 좋은 쪽으로 고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유나는 다 부질 없는 짓이라고 체념한다. 어차피 좋은 문장의 운세도 나쁜 쪽으로 해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8,26) 운세는 뜻밖의 문제에서 막을 내린다. 유나 자신의 심리 때문이었다. 유나의 문제는 운세 그 자체에 있었다. 달달한 수익과 하늘을 찌르는 인기가 한 날 한 순간의 전성기는 아닐지 걱정이 밀려든 것이다. 돈을 벌어도 불안은 여전했다. 미래를 다루는 일을 해도 다르지 않았다. 유나 자신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전히 잘하는 일이 뭔지도 모른 채 헤매는 듯한 기분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유나는 주말여행으로 분위기를 뒤틀어버린다.(12,30) 비록 운세의 문장이 유나의 삶을 바꾸거나 최문혁을 지켜내지 못했어도 평범한

[단편소설] 당신의 운세를 써드립니다

2024년 05월 13일
“운세는 그닥. 타로카드가 더 잘 맞추던데?” 교실은 1교시가 끝나도 짹짹거리는 소음으로 조용할 틈 없었다. 자고 싶어도 귓가에 스며드는 말마디 한 마디가 거슬리기만 했다. 그놈의 운센지 타로카든지 찢어발겨도 모자란 것들. 다시 책상과 하나가 되어 잠들었다. “이유나, 안녕.” 다시 꿀잠을 깨뜨린 건 차기 학생회장 김도진. 이미 점심 먹으러 간 애들 사이로 조용해진 다음이었다. “글쓰기 한 번에 3만원. 어때?” 귀하신 곳에 누추한 분이 웬일로. “몇 번.” “한 달에 두 번.” 솔깃한 제안. 굳이 날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질 때쯤 김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알바하는 거 힘들어 보여서. 달에 6만원이면 괜찮은 조건 아닌가.” 건네받은 명함을 흘겨보았다. “좋은 뜻으로 알고 있을 게. 7교시 마치고 학보사에서 보자.” 갑작스런 전개에 잠이 확 깼다. 꼬르륵 배가 울렸다. 명함에는 ‘이른아침매화 학보사 편집국장 문소혜’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더러 운세를 써달라고?” 어이가 없었다. 문소혜가 한 말이 웃겼다. “봐봐. 북쪽은 가지 마라, 노란색은 조심해라. 그런 건 잘 틀리잖아. 사소한 감정도 조심, 담대한 마음을 갖도록. 이런 건 맞출 가능성이 높아. 왜. 하면 좋고 안하면 아쉬운 것들이니까.” 날 알선해준 김도진은 협상 테이블에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운세는 어디에 실리는데?” 소혜는 말없이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화면에는 다음 주 학보가 펼쳐져 있었다. 아래는 여백으로 비워져 있었는데 운세가 들어갈 자리 같았다. 기사 제목이 보였다. ‘구름도사, 당신의 운세를 써드립니다’ 꽤 치네. “유나야. 이쪽 문화면 하단에 들어갈 거 같아. 내일 모레까진데 가능해?” 말없이 끄덕였다. 글 쓰는 애라 그런지 입에 착 달라붙게 만드는 작명 센스가 맘에 들었다. 어디서 알아낸 건지 체육관 뒤에서 몰래 피우던 전자담배에 빗댄 별명 같았다. 새 별명. 구름도사, 이유나.

[주마등] ‘새로운 천사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2024년 05월 08일
예정된 반항이 아니었듯 박살난 시계의 죽음도 예정에 없었다. 초침은 멈추었고 나의 시간도 밤 10시 22분을 넘어서지 못했다. 갈아입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아침을 맞이해도 불편한 마음은 여전했다. 서너 번 깨어서도 기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쯤이면 풀릴 듯한 감정에서 격한 분노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파도를 겪어야 했다. 이를 악 물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돌아올 뿐이다. 게으름을 피웠으니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으니까. 못난 인성을 가졌으므로. 노력하지 않은 죄로. 절망의 숲 사이로 간간히 비치는 햇살에 짜증이 났다. 청명한 하늘은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내 마음을 조금도 알아봐주지 않았다. 계획은 완벽히 틀어졌다. 도대체 왜.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걸까. 고갤 돌려 박살난 자명종만 쳐다봤다. 흐를 눈물도 이제는 없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카톡이 물었다. “모해 모해.” 누워 있잖아. ‘새로운 천사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눈이 동그래졌다. 배꼽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누구지. 누굴까. 모르는 사람. 뭐지. 뭘까.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은 법이다. 생크림 케이크가 아른거렸다. 한 입 가득 묻어도 무죄일 텐데. ‘누구세요’ ‘안녕 보라 씨’ 농담 같은 가벼움. 왜 이런 장난을. ‘어제 큰일 났었다면서요.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잠잠해지는 법. 받아요. 대가는 없으니.’ 이상한 사람.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받지 말랬는데. ‘절 아세요?’ ‘네’ 불명의 사람은 내 모든 사소한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처음 귀 뚫은 날, 나만의 그림체, 가장 좋아하는 노래부터 인스타 비공개 계정까지. 가본지 얼마 안 된 데이트 코스, 하다못해 나도 모르는 자명종 가격까지 디테일한 대답에 조금씩 무서워졌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발등에 그림 맞춰봐요’ ‘용?’ ‘차단’ ‘별 두 개. 우주를 좋아해서 신성과 항성을 담은 건데 타투이스트가 별을 잘 몰라서 그냥저냥 별이 됐다는 학계의 정설이….’

[ㄹㅇ루다가] “말로 표현 못할… 먹먹하고도 부푼 이 마음 아세요?”

2023년 12월 09일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섭섭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이제 더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서글프면서도 해방감이 들기도 하는 인간 본연의 역설적 감정이라 해야 할까요……. 그래선지 내내 먹먹한 마음에, 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즐거운 상상 속에서 3시간만 자고도 지금까지 깨어 있었습니다. 딱 자려고 하는 순간에 므꼬님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특히 므꼬님께는 더욱 애틋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수많은 말들이 오가며 느낀 소중한 마음들이 지금도 제 가슴 한편에 남아 있습니다. 퍼피레드 다음 카페를 둘러보면서 므꼬님을 비롯해 다채로운 파크들을 사진으로 보았습니다. 저는 뭐, 늘 내세울 게 제 과거밖에 없어 늘 구닥다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그런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미래의 므꼬님은 늘 그랬듯, 원하는 모든 꿈을 이루실 것 같습니다. 어제의 므꼬님이 오늘의 므꼬님에게, 또 오늘의 므꼬님이 내일의 므꼬님에게 므꼬님이 가진 소중한 가치를 건네시리라 믿습니다. 지금 제 마음은 퍼피레드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상실감에 슬픔이라 해야 할지, 멜랑꼴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 상실감에서 찾아오는 희망, 내일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오르고 있습니다. 내일은 또 무엇을 만들어 갈지, 설령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만들 수 없는 상황이 올지라도, 퍼피레드의 슬로건처럼 즐거운 상상만으로도 그저 살아갈 힘이 샘솟는 지금. 므꼬님의 편지를 읽고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교회 너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또 펼치겠습니다. 므꼬님께서도 언제나처럼 그저 살아 있음(시편118,17)으로 해서 누군가의 힘이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므꼬님이 저에게 그런

[ㄹㅇ루다가] 퍼피레드 서버 닫히는 순간에도… “곤듀야 사랑해” “욍이야 사랑해”

2023년 12월 09일
담원 2023년 12월 1일 오전 11시. 정확한 시간에 퍼피레드 서버가 완전히 문을 닫았다. 퍼피레드의 시간이 영원히 막을 내린 것이다. “5! 4! 3! 2! 1!” 교회에는 어떠한 불필요한 말도 남지 않았다. 오직 사랑한다는 고백이 맴돌았다. “곤듀야 사랑해!” “욍이야 사랑해!” 누군가를 애절하게 부른다는 건 가슴 미어지는 일이다. 이 고백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버뮤다순복음교회에 모인 30명 정원의 26명 회원들이 퍼피레드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세션 인증에 실패했습니다’ 11시 정각에 뜬 문구에 사람들은 확인 버튼을 눌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퍼피레드 세계와 영원히 작별했다. 나는 확인을 오래도록 누를 수 없었다. 서버 종료를 확인하고 신문의 사설을 읽으며 마지막 방송 순서를 이어갔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작별 앞에 방송 장비를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방송을 마쳐서도 김은희 씨가 부른 ‘머나먼 이 거리에서’ 노래가 흐르며 갈대밭 사이에 서 있던 문소혜 캐릭터가 아른 거렸다. 덤덤한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점차 먹먹한 감정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피곤할 틈이 없었다. 오후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잠시 침대에 누워 있다가 다시 기상했다. 일상을 살아내야 했기에.

[ㄹㅇ루다가] “퍼피레드 안녕, 너와 나의 이 세계”

2023년 12월 09일
언제나 이별은 아무 생각 없던 차에 다가오는 것 같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밤, 침대에 누워 퍼피레드에 접속하는 순간 공지사항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2016년 퍼피레드 서버 종료 때도 그랬다. 두 달 만에 서버가 열리고 온몸이 지각한 새 공지사항. ‘퍼피레드 서버 종료’ 퍼피레드 두 번째 서버 종료라니. 곧장 마음은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해졌다. 하우징 게임으로 알려진 퍼피레드는 2003년 문을 열어 2016년까지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다 2019년 12월 본격적으로 모바일 게임 개발에 착수해 2022년 8월 말 다시 문 열었다. 1년 4개월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다시 서버를 닫으며 완전히 서비스를 종료한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생각에 잠겼다. 다짐하듯 한 마디 내 뱉었다. ‘방송을 준비해보자’ 마음먹었다. 7년 전 여름 첫 서버 종료 때는 녹화 방송만 진행했다. 때문에 개인적인 자료로 남았을 뿐 공개하지 못했다. 이번에야 말로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이 들었다. 생방송을 마련해 퍼피레드의 풍경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부풀었다. 무언가 해보자는 상상에 이상한 마음이 스며든 것이다. 퍼피레드의 마지막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부푼 마음은 터질 것만 같았다. 서버 종료까지 한 달, 12월 1일을 향해 달려가기 바빴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방송 장비부터 프로그램 큐시트까지, 준비해야 할 것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본가도 다녀와야 했다. 퍼피레드 개발사 컬러버스로부터 받은 등기 자료를 직접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서버 종료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회사에 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방송 준비에 나섰다. OBS를 켜는 순간 퍼피레드의 마지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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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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