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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뜨듯한 온천과 시원한 맥주 “캬, 이 맛이지” 끝없는 ‘오사카의 밤’ 「2박3일, 오사카여행③」

우드톤 단색의 고즈넉한 도시가 교토였다면, 오사카는 그저 화려하고 젊은 분위기의 도시였다. 우리는 나가호리바시를 기반으로 오사카의 도톤보리와 난바, 우메다, 나가자키초를 돌아다녔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큐카츠 토미타(牛かつ 冨田)다. 각자 구워 먹을 수 있는 큐카츠 전문점이다. 다행히 우리는 기다림 없이 바로 입장해서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와,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맛. 달달하고 고소하며 담백한 맛. 입 안에서 녹는 육즙이 끝내줬다. 현금만 받는 가게라 카드로 결제하지 못했다. 곧이어 낮에 예매해 둔 리버 크루즈를 타고 우리는 도톤보리 강을 누볐다. 베테랑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주변 관광객들이 선사하는 손인사에, 우리도 손을 흔들었다. 가까운 타지에서 느끼는 이색 풍경에 하나가 되는 감정을 느낀 것이다. 낮에는 여자친구를 따라 우메다 근처에서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우리는 아식스 오사카 스토어에 방문했다. 스티브 잡스 같은 분위기의 직원이 우리를 맞았다. 여자친구가 둘러보는 동안, 나는 작은 소파에 앉아 쉬었다. 다소간의 긴 시간을 머무르는 바람에 여자친구와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며 나왔다. “失礼しました。(실례했습니다.)” 곧장, 직원이 90도로 숙이며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중한 인사에 깜짝 놀랐다. 작고 진심 어린 순간에서 문화적 감동이 남은 것이다. ❼오사카 아식스·마크 커피 ‘90도 인사’ 진심 어린 문화적 감동 카라멜마끼아또, 바리스타의 손맛

[편의점은 요지경①] 어색한 낯, 언짢은 투, 살가운 척… 완전 꼰대 같은 교대 근무자

2024년 11월 01일
“’또 오세요’는 또 오란 소리 같잖아. ‘좋은 하루 되세요.’ 정돈돼야지.” 기분이 팍 상했다. 또 오란 말이나 좋은 하루 되란 말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첫 만남부터 어긋난 것 같았다. 다른 시간대 근무자 말이다. 나의 근무 시간은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다. 사장님이자 점장님은 연습 겸 오후에 나오라고 하셨다. 첫 만남은 순조로웠다. 가벼운 캡 모자를 쓴 중년 아저씨였다. 인상이 좋았다. 아르바이트생이 될 나에게 음료수 한 잔을 건넨 후덕한 인품이 마냥 좋았다. 그 할아버지(진) 근무자가 마음에 걸렸지만 말이다. 사장님은 너그러웠다. 포스기를 다루는 방법부터 냉장 진열대에서 매대 각 분야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가르쳤다. 어려울 건 없었다. 갑자기 손님이 밀려왔다. 계산과 거스름돈 돌려드리기를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실수 남발이었다. “천천히. 천처~니. 거봐. 서두르니까 실수하잖아. 잘못 알아듣고.” 아직 멀티태스킹은 어려웠나 보다. 머쓱했다. 3박 4일 훈련은 끝이 났다. 할아버지 근무자를 만난 것도 훈련 기간 중에서였다. 본격 투입에 나섰다. 밤 10시 45분. 첫날은 사장님과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아들에게 집을 맡기고 떠나는 사람들 같았다. 둘째 날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아까 말한 그 할아버지 근무자 말이다. 되게 꼰대 느낌이 낭낭했다. 좀 긴장이 됐다. 괜히 첫 단추 잘못 끼우면 서로 곤란해지니까. “안~녕.” 앞으로 매일 볼 얼굴일 줄은 몰랐다. 15분. 인수인계가 이뤄졌다. 결과를 말하자면 군기를 잡는 것도 아니었고, 꼰대도 아니었다. 뭐랄까. 같이 있다 보니 불편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일하는 동안 참 많이 웃었다. 장난도 곧잘 치는 할아버지였다. 어느 날은 “매일 쓸고 닦기 전 먼지부터 털고 청소한다”고 자랑했다. 그랬더니 그가 퇴근 직전에 먼지 하나 있나 검지로 슥 닦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뱉은 한 마디. “흠. 인정.” 말없이 따봉만을 날리는 뒷모습에 넙죽 절했다. 편의점 야간 업무는 힘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자도 자도 피곤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근무자를 생각해서 한 번도 지각한 일이 없었다. 그만큼 넉살 좋은 사람이었다. 편의점에서 일할 때마다 느낀 게 있다. 사람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존재였다. 할아버지 근무자도 그랬다. 그는 심심하면 내 이름을 불렀다. 하나하나 하고 싶은 말들을 챙겨주었다. 회사 나가는 아들 옷깃 여미는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런 아버지 같은 분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별다른 호칭도 없었다. 그냥 이름도 별명도 직함도 없이 주어를 생략하고 그분을 부른 것 같다. 아, 그분의 이름. 한 번이라도 여쭈어볼걸.

[주마등] 너에게만큼은 찐따로 보이지 않길 바랬는데

2024년 10월 22일
“진성아, 나 좋아하지 말아줘.” 이게 무슨 말이지. 싶어 쭉 읽어 내려간 글은 320자 분량. 꺼림칙한 기분으로 속독했다. 대충 내용은 이랬다. “네가쓰는ㅋㅋㅋㅋㅎㅎㅎㅎ과도한자음들말야날남들보다좋아하는느낌이란생각이들어나는너한테관심없고좋아하는것도아니야난너와친하다고생각했지좋아하는그런사이로생각해본적없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 호감. 호감 정돈 가진 건 맞다. 하지만 좋아했다는 건 억울한 오해다. 고백한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디펜스하는 게 어딨나. 불쾌한 답장에 기분이 꽁했다. 의자에 기대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그 애랑 둘이서 채플에 빠지던 날이 떠올랐다. 교통사고는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치기에 교통사고겠지 우리 학교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점심이면 채플에 참석해야 한다. 채플은 기독교 학교라는 구색에 맞춘 과목에 불과하다. 한

[지금,여기] 입안 가득 ‘사르르’ 상하농원에서 아이스크림 만들기 “도-전 !”

2024년 08월 23일
커다란 볼에는 소금이 담겨 있었다. 얼음을 붓고 살짝 으깨어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웅덩이에다 휘핑크림과 우유가 담긴 작은 볼을 장착해 왼쪽으로 열 번, 오른쪽으로 열 번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우유가 담긴 볼에 작은 막이 형성 되었다. 플라스틱 주걱으로 떼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곧 아이스크림이 되었다. 상하농원 체험교실 A반에서 ‘과일공방잼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체험했다. 15일 오후 1시 30분, 시간에 맞추어 입실하자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이미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선생님의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체험시간은 총 40분이었다. 친절한 설명 덕분에 체험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가격은 2인용 1좌석 3만5000원. 블루베리, 초코시럽, 과자 등을 완성한 아이스크림에 뿌렸다. 여자친구와 한 입 베어 물었다. 매일유업이 만든 상하목장 유기농우유 맛이 났다. 좋은 맛이다.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이 한몫 했다. 그저 가르친 대로 만들었을 뿐이다. 아이스크림을 다 만들고 나서 나와 여자친구의 기념 사진도 찍어 주셨다. 상하농원은 다양한 만들기 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만들기 체험은 크게 ‘소시지’ ‘잼’ ‘아이스크림’ 만들기로 나눠진다. 비엔나 소시지, 치즈 소시지, 과일공방잼 아이스크림, 보코치니치즈, 카스텔라 토핑 아이스크림, 롤 비엔나 소시지, 블루베리잼 만들기를 선택할 수 있다. 체험은 아침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각 프로그램이 짜여 있어 시간표를 참고해 예약하면 된다. 웹사이트에서 미리 예약할 수 있다. 참여 가격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어는 점 낮춰주는 고마운 소금 왜 얼음에 소금을 넣었을까. 얼음은 녹을 때 열을 흡수하고 소금은 녹는 점을 낮춘다고 한다. 얼음이 녹아서 생긴 물에 소금이 또 녹으며 열을 흡수하다 보니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보다 어는 온도가 낮아야 한다. 따라서 소금이 필요하다. 아이스크림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만드는 재료 온도를 낮추는 방법인 것이다. 따라서 얼음에 소금을 3:1 비율로 섞어서 넣으면 영하 20도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소금은 겨울철 도로의 눈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환경교육재단 한국사무소는 ‘겨울철 도로에 뿌려진 소금이 위험한 10가지 이유’에서 “영하 10도 이하에서는 소금이 얼음이 녹이는 능력이 크게 감소한다”며 “해당 지역에서는 효과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금,여기] 상하농원에 가면 ?아기 돼지도 있고 ?양 친구도 있고

2024년 08월 23일
입구에서 바라본 농원의 풍경은 아늑했다. 무척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매미 우는소리만 가득했다. 광복절 연휴 상하농원에는 가족 방문객만 눈에 띄었다. 사람들로 붐빌 줄 알았지만 꽤 적막했다. 무척 신이 났다. 하루 반나절을 이곳에서 뒹굴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당장 눈앞 텃밭정원에는 땅콩 잎이 파릇하게 웃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상하키친과 햄공방이 서 있었다. 검은색 벽돌과 빨간색 벽돌이 촌스럽지 않았다. 나무들 사이에 숨은 공방 건물들은 땡볕에 서서 사진 찍게 만들 만큼 멋들어졌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점심이었다. 배가 고팠다. 상하키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주 운암동에서 두 시간… 말없이 뚜벅뚜벅 ‘고불길 탐방’ 원래 계획은 오전 중에 여자친구와 이곳 상하농원에 도착하는 일이었다. 하필 시내버스에서 삼각대를 두고 온 걸 깨달은 바람에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출발해야 했다. 만일 광주 운암동에서 8시에 출발해 9시 20분 고창에서 구시포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탔다면 10시 20분쯤 상하농원에 도착했을 것이다. 상하농원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한 번 가는 데만 2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자차로 ‘상하농원 주차장’이라고 검색하면 손쉽게 갈 수 있지만 문제는 걸어서 가는 경우다. 기차로 가려면 정읍역을 거쳐서 가야 하고 고속버스를 탄다면 고창터미널이나 정읍터미널에서 구시포를 거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주 운암동에서 출발했다. 고창까지 가는데 고속버스를 탔고 구시포에 갈 때는 시내버스를 탔다. 중간에 버스 배차가 맞질 않아 고창에서 한 시간 기다려야 했다. 종합하자면 한 번 가는 데만 3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수월했다. 배차 간격이 딱딱 맞은 덕분에 저녁 5시 20분 상하공원에서 출발한 발걸음은 2시간이 채 되지 않은 7시 15분 광주 운암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상하농원 앞 정류장은 102번 버스가 지나가는 곳이지만 정차 가능한 정류장이 아니었다. 농원에서 멋으로 만든 정류장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집으로 돌아갈 땐 상하농원 앞 정류장에서 타지 말고 15분 걸어 구시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돌아가면 된다. 보도가 없으니 교통사고에 주의하며 걸을 것! 상하농원에 문의해 보니 웹사이트에 있는 정읍역 셔틀버스는 주말에만 운영한다고 한다. 이 버스는 하루 전 예약해야 한다고 하니

[마감하면서] 볕, 방 안 가득 행운에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2024년 05월 13일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사람 평가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기가 센 사람들.” 이삿짐센터 직원의 평가입니다. 누구를 가리켜 한 말일까요.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다며 한 걸음에 충남 보은에서 서울까지 운전한 시규가 찾아온 날이었습니다.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는 도중 경계심을 풀지 않고 “누구시냐”라고 물은 건 503호 오모 씨였습니다. “202호 방문 차량입니다.” 고개를 흔들며 피곤한 일에 엮이고 싶지 않다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2년이란 시간 문정동에서 살며 느낀 인간상은 ‘돈에 미친 인간들’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전전(前前)직장으로부터 상사를 상대로 ‘해고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회사에 이르기까지

[작품 해설] 당신의 운세를 써드립니다: 뒤틀린 욕망과 불안… “운세 한 문장에 세상이 바뀌면 얼마나 좋아”

2024년 05월 13일
연결 기사[단편소설] 당신의 운세를 써드립니다 신문 운세 코너는 언제나 오락적 요소를 가진다. 독자들은 운세가 미래를 예견할지 기대하기도 하고 지나간 일을 맞췄는지 따져 묻기도 한다. 운세는 한 문장도 되지 않는 토막 수준의 글이 담겨 있다. 1927년생부터 1998년생까지 약 70년 인생이 년(年) 단위로 묶여 가장 넓은 대상의 독자를 갖췄다. 하지만 미성년자는 사주의 대상이 아니므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학보 이른아침매화가 운세 코너를 신설하려는 것도 같은 학교 고등학생의 독자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좀 더 신문을 오락적 요소로 보이기 위한 방법으로 운세 코너 신설을 꼽은 것이다. 말없이 찾아온 차기 학생회장 김도진은 학보사 편집국장 문소혜와 친분이 있는 사이다. 소혜가 도진이에게 부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나에게 찾아가 운세 집필을 요청한다.(1단13줄) 찾아간 학보사에는 소혜만 있었고 신문에는 고등학생 운세가 없으므로 직접 써보자고 제안한다.(1,30) 유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막연히 알던 운세와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운세는 단지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정도의 글이 아니었다. 사람의 심리를 읽는 문장의 모음이란 실체를 알아차린다.(2,49) 단지 북쪽으로 가라, 노란색을 조심하라는 샤머니즘 요소에서부터 평소 걱정하던 작은 일들까지 결국 운세가 가리킨 것은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심리였다.(2,56) 운세를 집필하기로 한 유나는 소혜와 임금협상에 성공한다. 소혜가 순순히 임금을 올려준 데에는 집필자 모집이 매우 어려운 학보사 특성 때문이다. 유나의 하굣길이 가벼워졌다. 알바 대신 학보사에서 글 두 편에 한 달 꼴로 1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3,3) 유나는 웃는다. 지나가는 모든 것이 운세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뛰어가는 아이, 팔짱 낀 연인, 페퍼톤스의 노래에서까지 싱싱한 문장을 발견한다. 구르는 낙엽에도 웃는 청춘. 학교에서는 문장을 짓고 집에서는 그 문장들을 매끄럽게 연결해 하나의 운세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몰입은 처음이란다.(3,1) 사람들에게 공개적인 글을 쓰는 것도 유나에겐 처음이었을 것이다. 운세 몇 문장에 세상이 바뀔 거라면 오산이었다. 세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유나는 운세 첫 날부터 고생길이 열렸다. 담임을 만나 억울하게 심부름꾼 노릇을 한 것이다. 모르는 애랑 부딪치며 신문 더미가 터지는 사고까지 벌어진다. 각박한 세상임을 절실하게 느끼는 와중에 급하게 달려와 도와주는 친구 지수와 혜인이, 그리고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를 잘 생긴 남자애를 만나며 그날 적중한 운세를 깨닫는다.(4,38) 기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저 ‘탕후루 먹기 좋은 날’이라고 썼을 뿐인데 학교 근처 탕후루집 매출이 크게 올라 사장 아주머니가 찾아와 선물 공세를 보냈고, 운세 상담이 쇄도하기까지 했다. 감사의 인사로 보낸 캘리그래피일 뿐인데 소혜는 이를 기회로 굿즈(goods)까지 만들자고 제안하며 유나는 순식간에 돈방석에 오른다.(5,49) 부푼 기적은 악재와 함께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너무 잘 맞춰서 문제였다. 좋은 일만 맞추면 좋았을 텐데 나쁜 일도 덩달아 벌어지면서 유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중에 담임은 훈수를 둔다. “겹겹이 악재가 쌓일 때가 있으면 슬슬 풀릴 때도 있는 거야.”(7,32) 소혜까지 거들었다. 운세를 검토하는 마지막 과정에서 나쁘게 해석될 문장을 좋은 쪽으로 고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유나는 다 부질 없는 짓이라고 체념한다. 어차피 좋은 문장의 운세도 나쁜 쪽으로 해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8,26) 운세는 뜻밖의 문제에서 막을 내린다. 유나 자신의 심리 때문이었다. 유나의 문제는 운세 그 자체에 있었다. 달달한 수익과 하늘을 찌르는 인기가 한 날 한 순간의 전성기는 아닐지 걱정이 밀려든 것이다. 돈을 벌어도 불안은 여전했다. 미래를 다루는 일을 해도 다르지 않았다. 유나 자신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전히 잘하는 일이 뭔지도 모른 채 헤매는 듯한 기분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유나는 주말여행으로 분위기를 뒤틀어버린다.(12,30) 비록 운세의 문장이 유나의 삶을 바꾸거나 최문혁을 지켜내지 못했어도 평범한

[단편소설] 당신의 운세를 써드립니다

2024년 05월 13일
“운세는 그닥. 타로카드가 더 잘 맞추던데?” 교실은 1교시가 끝나도 짹짹거리는 소음으로 조용할 틈 없었다. 자고 싶어도 귓가에 스며드는 말마디 한 마디가 거슬리기만 했다. 그놈의 운센지 타로카든지 찢어발겨도 모자란 것들. 다시 책상과 하나가 되어 잠들었다. “이유나, 안녕.” 다시 꿀잠을 깨뜨린 건 차기 학생회장 김도진. 이미 점심 먹으러 간 애들 사이로 조용해진 다음이었다. “글쓰기 한 번에 3만원. 어때?” 귀하신 곳에 누추한 분이 웬일로. “몇 번.” “한 달에 두 번.” 솔깃한 제안. 굳이 날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질 때쯤 김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알바하는 거 힘들어 보여서. 달에 6만원이면 괜찮은 조건 아닌가.” 건네받은 명함을 흘겨보았다. “좋은 뜻으로 알고 있을 게. 7교시 마치고 학보사에서 보자.” 갑작스런 전개에 잠이 확 깼다. 꼬르륵 배가 울렸다. 명함에는 ‘이른아침매화 학보사 편집국장 문소혜’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더러 운세를 써달라고?” 어이가 없었다. 문소혜가 한 말이 웃겼다. “봐봐. 북쪽은 가지 마라, 노란색은 조심해라. 그런 건 잘 틀리잖아. 사소한 감정도 조심, 담대한 마음을 갖도록. 이런 건 맞출 가능성이 높아. 왜. 하면 좋고 안하면 아쉬운 것들이니까.” 날 알선해준 김도진은 협상 테이블에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운세는 어디에 실리는데?” 소혜는 말없이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화면에는 다음 주 학보가 펼쳐져 있었다. 아래는 여백으로 비워져 있었는데 운세가 들어갈 자리 같았다. 기사 제목이 보였다. ‘구름도사, 당신의 운세를 써드립니다’ 꽤 치네. “유나야. 이쪽 문화면 하단에 들어갈 거 같아. 내일 모레까진데 가능해?” 말없이 끄덕였다. 글 쓰는 애라 그런지 입에 착 달라붙게 만드는 작명 센스가 맘에 들었다. 어디서 알아낸 건지 체육관 뒤에서 몰래 피우던 전자담배에 빗댄 별명 같았다. 새 별명. 구름도사, 이유나.

[주마등] ‘새로운 천사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2024년 05월 08일
예정된 반항이 아니었듯 박살난 시계의 죽음도 예정에 없었다. 초침은 멈추었고 나의 시간도 밤 10시 22분을 넘어서지 못했다. 갈아입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아침을 맞이해도 불편한 마음은 여전했다. 서너 번 깨어서도 기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쯤이면 풀릴 듯한 감정에서 격한 분노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파도를 겪어야 했다. 이를 악 물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돌아올 뿐이다. 게으름을 피웠으니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으니까. 못난 인성을 가졌으므로. 노력하지 않은 죄로. 절망의 숲 사이로 간간히 비치는 햇살에 짜증이 났다. 청명한 하늘은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내 마음을 조금도 알아봐주지 않았다. 계획은 완벽히 틀어졌다. 도대체 왜.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걸까. 고갤 돌려 박살난 자명종만 쳐다봤다. 흐를 눈물도 이제는 없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카톡이 물었다. “모해 모해.” 누워 있잖아. ‘새로운 천사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눈이 동그래졌다. 배꼽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누구지. 누굴까. 모르는 사람. 뭐지. 뭘까.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은 법이다. 생크림 케이크가 아른거렸다. 한 입 가득 묻어도 무죄일 텐데. ‘누구세요’ ‘안녕 보라 씨’ 농담 같은 가벼움. 왜 이런 장난을. ‘어제 큰일 났었다면서요.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잠잠해지는 법. 받아요. 대가는 없으니.’ 이상한 사람.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받지 말랬는데. ‘절 아세요?’ ‘네’ 불명의 사람은 내 모든 사소한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처음 귀 뚫은 날, 나만의 그림체, 가장 좋아하는 노래부터 인스타 비공개 계정까지. 가본지 얼마 안 된 데이트 코스, 하다못해 나도 모르는 자명종 가격까지 디테일한 대답에 조금씩 무서워졌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발등에 그림 맞춰봐요’ ‘용?’ ‘차단’ ‘별 두 개. 우주를 좋아해서 신성과 항성을 담은 건데 타투이스트가 별을 잘 몰라서 그냥저냥 별이 됐다는 학계의 정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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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6월 2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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