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 Page 5

[팔짱만 껴도 좋은걸②] 펭-귄, 페—-ㅇ귄, 뽀뽀 —- 우

여자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애착인형을 데려왔다. 정확히 몇 월 며칠에 왔는지를 서로가 모르는 걸 보면 처음엔 별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에 저장된 걸 보면 애착인형의 첫 사진은 지난해 9월 20일이다. 9월 전후로 애착인형을 데려온 것이다. 인형을 산 건 10년도 더 됐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동생에게 부탁해 에버랜드에서 사 왔다는 것. 영혼 없는 눈망울, 무표정한 얼굴, 입을 여닫을 수 없는 부리. 여자친구는 애착인형더러 “킹 받는다”고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출근하고 집에 없는 동안, 장난끼가 발동했다. 여자친구가 벗어놓은 잠옷을 내가 애착인형에게 입혀 놓고 나간 것이다. 저녁,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나는 능청맞게 장난을 쳤다. “어? 오늘 출근 안했어요?” 여자친구가 맞장구를 쳤다. “뭐지. 그럼 난 뭐지.” 애착인형은 울 줄도 안다. “펭~귄” 여자친구 특유의 발음에 착안해 나는 “펭~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도 재밌다고 따라한다. “펭~귄” 우리끼리만 맛있는 걸 먹으면 애착인형은 삐진다. “펭~~귄” 우리끼리만 재밌는 데 가도 애착인형은 삐진다. “페~~~~ㅇ귄” 그런 애착인형을 여자친구는 무척 아낀다. 내가 애착인형에게 뽀뽀를 하면 “펭귄OO 괴롭히지 마욧~!”이라며 걱정도 해준다. 그런 애착인형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올해 애착인형 2호를 데려온 것이다. 그것도 판교에서 온 녀석이다. 우리의 애착인형과

[커버스토리] 10년이 지나고 나에게 선물 받은 나의 방

10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자 재채기가 나왔다. 이 정도 먼지면 바깥에서 털었어야 했다. 중학생 시절에 만들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 과제를 꺼내 들자 허술하게 관리한 그간의 세월이 먼지만큼 보였다. 뇌리에 남은 미술 선생님 이미지는 두 가지다. 섬세함과 예민함을 갖춘 바람에 우리들에게까지도 엄격함을 요구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이기적인 인간상, 또 하나는 부처상 앞에서 백발배로 성찰하며 자신의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가다듬던 인간상. 그 짧은 반 오십 살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어간 사람들 셋을 보았는데 그 중 한 분이 미술 선생님이었다.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던 예민함과 섬세함을 극대화해 끝내 자신의 성격조차 조각하듯, 하나하나 새겨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런 어른이 가르쳐주셔서 고마웠다. 선생님은 신문지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라 하셨고, 좋아하는 간판을 그리라고 흰 종이를 내주셨고, 배달 음식으로 남은 나무젓가락으로 탑을 쌓아보라 하셨고. 마지막으론 내 방 만들기라는 거대한 과제를 내주셨다. 즐거웠다. 왜냐하면 나는 늘 내 방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집에서 놀 듯, 학교에서도 놀아보라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선지 학교 가기가 가벼웠고 하나 둘 만들어가는 교실 속 광경을 느끼자 내 세상 같았다. 고입선발고사를 위한 미술 공부는 재미없었다. 지금도 머리에 남는 교과서 속 인물은 독창적인 팝아트 거장 엔디 워홀(Andy Warhol)밖에 없다. 점 하나 찍고 돈 세탁이나 하는 줄만 알았던 작품의 세계를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편견을 집어치우고 말았다. 즐겁게 제작하던 10년 전 작품을 다시 손에 들었다. 내 방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작품들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지면은 여행을 떠나고 채워야 했지만, 코로나 파동으로 인해 방 꾸미기 기사로 갈음한다.

[지금,여기] 여수·순천 발 디딘 곳 어디든 맛집… 오늘은 국밥, 내일은 횟집

2023년 08월 27일
광장국밥중앙로터리에서 횡단보도 건너면구수한 입맛 돋우는 국밥으로 OK 역전횟집순천역에서 역전시장까지 도보 5분혼자 먹기엔 푸짐한 1인분 모둠회 슬슬 배가 고팠다. 든든한 국밥이면 오후에도 쉼 없이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장국을 검색했다. 먼저 눈에 띈 서울해장국이 끌렸다. 가봤지만 사람들로 가득해 들어가지 못했다. 건물 반 바퀴 돌 때쯤이다. 빨간 간판이 눈에 띄었다. 광장국밥: 쫄깃한 비계가 어우른 돼지국밥 무난하게 돼지국밥을 주문했다. 가격은 9000원. 고추를 썰어 파처럼 뿌린 비주얼에 처음엔 매울 거라 생각했다. 고추는 덜어내고 먹어도 맵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여기] 퇴근 후 여수

2023년 08월 27일
카톡이 왔다. ‘기자님 혹시 화나시는 일 있으세요?’ ‘오늘 때려칠겁니다 진짜’ ‘ㅠㅠ 무슨일입니까ㅠ’ 오늘은 정치부다. 사진도 없이 달랑 원고만 들어온 것이다. 슬슬 화가 치밀었다. “사진은 박 뭐시기 부장한테 있다고 하던데요?” “아 박OO 기자요? 알겠습니다.” 한숨과 함께 돌아오는 길 일일지면발행계획을 찢어버렸다. 후. 욕이 절로 나왔다. 가판마감까지 30분도 채 안 남았는데 뭐 어쩌고 어째? 오늘만 버티면 휴간데 어림도 없었다. 마음대로 이뤄지는 것 하나 없었다. 부랴부랴 사진부에 요청해 파일을 넘겨받았다. 일단 마감이란 큰 불을 껐다. 어떡해서든 만들어낸 지면신문, 매번 이런 식이다. 당직자와 퇴근하려던 참, 열차 시간은 1시간 남짓. 어제 서울로 이사 온 10년 지기 시규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 어때?” “일단 용산으로 와라.” 끊자마자 대표가 부른다. 대표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10%’ 오랜만에 웃는 대표 얼굴을 보았다. 대표실을 나오기 직전 오른손을 맞잡았다. “분발하겠습니다.” 갑작스레 터진 가판마감과 연봉협상, 동지까지 거북이 등딱지 같은 짐을 거머쥐고 회사를 훌훌 떠날 수 있었다. 내일이면 휴가 첫날. 가벼운 발걸음에 괜시리 미소가 터졌다. 오늘 밤 여수로 떠난다. 자정 넘은 시간 바다 내음이 코를 자극했다. KTX역에서 바다까지 가까운 탓이다. 여수엑스포역은 숙소로 이동하려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긴 밤 새벽비가 내렸다.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아침 10시였다. 날짜를 잘못 정했나 싶었다. 광활한 하늘을 담기엔 흐릿했다. 무채색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숙소를 나섰다. 첫 행선지는 돌산공원이다. 여수 봉산동에서 돌산공원까지는 걸어서 40분 걸린다.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걸을만했다. #2박3일 #나홀로 #도보여행전망대 오르며 나부끼는 옷자락거친 숨소리에 여수시내가 활짝 돌산공원: 여수시내 내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

[ㄹㅇ루다가] 첫 날만 ‘330명’… 버뮤다순복음교회 기억해 준 고마운 이들

2022년 09월 11일
“퍼피레드 PC 버전을 위해 기도합시다” “주님, 300억을 헛 되지 않게 쓰게 해 주시옵소서” “퍼피레드 운영진 정신 차리게 구원해주시옵소서” 농담 반 진담 반. 기도 한 스푼에 웃음이 터졌다. 교회는 ‘파티파티’를 열 때마다 최대 접속자 수를 채울 만큼 사람으로 채워졌다. 실없는 장난부터 진지한 기도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다. 파티파티(게임 기능·party&party)미니파크의 연결성을 보완하기 위해 활용한 초대 기능이다. “강대상에는 올라가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강대상은 예배를 집도하기 위한 책상이다. 퍼피레드 교회에는 예나 지금이나 강대상 부근에 올라와 괴상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럼에도 조용히 기도하는 신앙인을 위해 제지한다. 본지는 계정을 만들었다. 단편소설 ‘너에게 맞설 수 있는 치트키’에서 문소혜를 이름으로 한 캐릭터로 교회의 일주일을 살폈다. ◇가장 많은 질문 “실제 목사예요?” 교회에 머물면서 가장 많이 본 질문은 교회 운영진이 실제 목사인지 여부였다. “목사는 아니에요. 학사 전공이 신학일 뿐이고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교회 운영이 콘셉트인지 묻는 질문도 많았다. “버뮤다순복음교회는 해체했지만 교회 터만 남겨둔 상태에서 결혼식이나 학술대회 같은 대중 활동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성경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사이비 종교 같은 사회현안이 중심이었다. “교회는 젊은이들 노동 착취로 운영된 측면이 큽니다. 교회에서 일하지 마세요. 교회는 여러분의 삶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정통과 사이비를 관통하는 대답. 신에 대한 애증과 믿음도 교회라는 공동체에 잘못 몰입한 대가로 발현된다. “어릴 때 여기 들어와서 힐링 많이 했었던… 다시 이렇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네요.” 교회를 방문한 ‘자연인튼튼이’씨가 과거를 회상했다. “처음에는 콘셉트인 줄 알았는데 진짜 교회 온 거 같이 기분 좋아져요 ㅋㅋㅠㅠ” 옆에서 ‘수키’씨가 거들었다. ◇교회에 바라는 건 다름 아닌 ‘예배’ 교회에 잠잠히 앉았을 뿐이다. 사람들이 오가며 “예배 있어요?”라고 물었다. 목사냐고 묻는 질문 다음으로 많았다. “이곳 버뮤다순복음교회는 2016년 8월 해체한 이후 교회 터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배는 드리지 않으며 앞으로 결혼식 같은 대중 활동 위주로 활약할 예정입니다.” 설명을 듣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 미니파크를 나가는 이들이 다수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일뿐이기 때문이다. 예배나 강의 같은 활동이 아닌 이상 교회를 둘러보고 나가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이들은 신앙 활동까지 진행하려는 모습 때문에 교회를 방문한 듯했다. 그럼에도 교회에 남은 이들이 교회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수 이야기에서 종교, 정치, 사회현안이 연이었다. 이야기는 하나로 엮였다. “우리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다보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겠더라고요.” 퍼피레드라는 사회 안 교회에서 나눈 활발한 대화에 웃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며 때론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살아보자, 힘내자는 응원으로 매듭지었다. 대화는 밤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이어졌다. 버뮤다순복음교회에 방문한 이들이 기도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기도하는 이들이 눈에 밟혔다. 이사야 57,6에는 이스라엘 성전을 가리켜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으로 묘사한다. 예수도 복음서에서 성전을 가리켜 “만민이 기도하는 집”(마가11,17)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누군가가 독점하는 공간도 아니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큰 공간도 아니었다. 다양한 이들이 스치는 가운데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는 우물 같았다.

[마감하면서] 실은 돈이 없어서 사라진 것들 앞에

2022년 07월 26일
마법소녀 시리즈 ‘마법의 스테이지 팬시 라라’가 종영한 이유는 주인공 라라가 변신 아이템을 잃어버려서가 아닙니다. 하필이면 카드캡터 체리가 동시대에 방영하는 바람에 낮은 시청률로 조기종영하고 만 겁니다. 체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명랑한 아이돌 체험기면 모를까, 단독 콘서트 개최까지 20화에 가까운 길고도 긴 여정을 일상물로 묘사한 내용이 제가 보아도 지루했습니다.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형편없는 실력을 덮기 위해 명분을 내세운다’는 비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실력으로 완성되는 무엇이든 그만큼의 시간과 돈, 노력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귀왕이면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하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이런 맥락이겠죠. 그렇습니다. 저는 이 신문이 좋아서 만들 뿐입니다. 게으름과 퇴보, 시대 변화와 잃어버리는 감각, 그리고 이 신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라는 한 사람의 기억과 생각을 담았다고는 하지만 누군가에겐 재미없는 글로만 비쳐질지 모르겠습니다.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한껏 자존심 부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느낀 감격과 슬픔,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다채로움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 지면 안에 담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꿈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 듯합니다. 사이버 가수 아담이 그렇습니다. 당시 CG 제작 값만 해도 천문학적 액수가 들었다고 하니까요. 오죽했으면

[작품 해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입으로 굴리고 굴려낸 이름으로 네 감촉, 의미, 마음을 상상한다

2022년 07월 26일
연결 기사[단편소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최문혁. 이름을 입으로 말하고 또 말하는 게 습관인 나율이의 잠꼬대에 선배 문소혜와 최문정이 놀려댄다.(1단10줄) 언니들의 농담이 들리지 않는 데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무 상관없는 남자애, 최문혁을 만난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싸움에 휘말릴 뻔한 나율을 구한 남자애 이름은 최문혁. 남은 것은 문혁에 대한 기억, 그리고 명찰 뿐이었다. 나율의 습관은 옆자리 친구의 이름에서 자신을 구해준 문혁으로 바뀐다. 문혁의 이름을 부른다. 문혁의 이름을 자음 모음으로 해체해 되뇐다. 문혁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나율이 마주친 동네는 진성동 재개발 3구역이었다. 취재를 위해 새벽부터 신문을 배달하면서 마주친 우연은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펼쳐진다.(3,58) 문혁에 대해 알고 있는 할아버지를 알게 되면서 어떻게든 정보를 캐내려 하지만 할아버지는 곧잘 설명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나율은 할아버지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을 건넨다. “할아버지는 이름이 뭐예요?”(4,51) 호(號)가 익숙하지 않은 나율에게 할아버지의 호 ‘정연’은 수수께끼일 뿐이다. 어른들이 지어준 이름이 아닌, 자기 자신이 허울 없이 부르라고 만든 그 뜻을 고민한다. 나율에게 이름은 누군가의 존재를 상징한다. 비록 자기 자신이 지은 이름은 아니지만 자음과 모음을 분해해 분위기와 느낌, 혀의 움직임을 관찰해 본 모습과 비교해본다. 거친 이름이라 해서 거친 사람으로 본다기 보다 거친 모습도 있다는 방식으로 다층적 인간상(像)을 구축해 나간다. 따라서 할아버지에게 문혁은 그저 어른들에게도 인사 잘 하는 착한 학생을 의미하지만 나율에게 문혁은 겉은 거칠면서도 속은 따뜻해 보이는 저녁녘, 최무녁으로 재해석된다. 나율은 이름으로 성향과 느낌, 배경을 유추하는 습관처럼 전혀 접점을 가지지 않은 할아버지에게도 관심을 연결한다. 리어카는 할아버지의 배경이다. 시급 1000원도 되지 않은 고된 노동을 이어가지만 할아버지는 스스로를 고된 인생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정연’이 그렇다.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이며 그 이름을 말해주는 할아버지가 나율과 함께 퇴근한다. 도착한 할아버지 댁은 진성동 재개발 3구역. 얼마 남지 않은 폐가 속 유일한 할아버지 댁에서 나율은 할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한다. 훈장처럼 벽을 도배한 할아버지의 과거 지면신문은 호의 기원을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전쟁통으로 향하던 배 이름을 자신의 호로써 기억하는 할아버지가 숨을 내쉬며 쉬자 나율은 충격을 받는다. 곧 돌아온다던 손자가 문혁이었기 때문이다.(8,32) 문혁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위해 아침마다 박스가 쌓인 곳을 찾아 사진을 찍어 장소를 알려주었다. 생계를 위해 저녁에는 학교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간다. 2022년 기준 한국 참전명예수당은 35만원으로 2000년 당시에는 6만 5천원이었다. 나라를 지키려 목숨을 바친 이들에 대한 대우, 고된 노동이라는 결과,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노인빈곤에 나율은 “인터넷 어디에도 없다던 글”을 발견한다. 그런 나율은 문혁이라는 이름의 뜻을 깨달았다. 밝은 빛 다시 말해 새벽을 새기라는 포부를 담은 이름인 것이다. 그러나 문혁에게 대하는 사회의 자세는 이제 져가는 노을일 뿐이다. 한 순간 빛나, 빛을 잃어버리면 그 자체로 버려지는 그런 존재로만 바라본다. 나율은 사회의 소모적 태도를 거부한다. 학보사로 들어오라는 말이 도와주려는 손짓일 뿐이지만 문혁은 거절한다. 이유를 알지 못한 나율이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율에게 진성동 재개발 3구역은 그저 사라져갈 동네에 불과하다. 선배 문정의 취재가 아니었으면 할아버지와 마주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율은 이미 문혁의 상황을 알고 있었고 회피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다시 문혁이 나율에게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다시 삭제되었다.(11,10)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생각이 바뀌었는지 문혁 자신이 삭제한 것이다.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 나율이 찾아간 진성동 재개발 3구역, 불규칙한 계단을 힘겹게 내려오는 문혁을 발견한다. 문혁의 등에는 할아버지가 실렸다. 낙후된 지역이 말해주는 건 ‘돈 많은 사람은 시간도 산다’는 이면.(11,24) 역설적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문혁의 상황을 글로 남기려던 나율은 고민한다. 문혁의 맨 얼굴을 그대로 보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락을 받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지만 지워버린다. 그리고 벌컥 열린 학보사 사무실 미닫이문. 문혁이 학보사로 들어온 이유가 무엇일까.

[단편소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2022년 07월 26일
“나율아, 문정이가 그렇게 좋아?” “쟤 최문혁 꿈 꾼 거야. 요즘 최문혁 사는 동네에 신문 돌린다고 존나 일찍 일어나잖아. 부럽다. 나도 키 큰 남자가 아기새처럼 감싸줬으면 좋겠다.” 자국 따라 뺨을 매만지느라 언니들의 농담을 흘겨 들었다. 좋아하는 이름을 입으로 굴리는 버릇. 그게 꿈에서까지 이어지다니. “잉, 귀요미 나율이가 이 연약한 다리로 너 따라 달동네 오르내리는데 고생하잖아.” “문소혜. 기사 승인이나 내.” 하루가 지났어도 가슴에 남은 자국이 또렷했다. 스크래치일까 충격일까. 좁은 틈 사이로 스며든 황금빛 노을에 비친 할아버지 사진이 그려졌다. 목 굳은 자세로 선 젊은 할아버지는 지금처럼 웃지 않았다. 훈장을 걸어둔 벽에는 여생 절반을 함께해 온 할머니 영정과 몇 가지 스크랩한 종이 신문이 액자에서 먼지와 함께 바랬다. 소박하다 못해 숨 막힐 듯한 라면 봉지에 목숨을 바쳤다던 할아버지의 말이 거짓말 같았다. 이 모든 건 최문혁 때문이다. 네가 아니었으면 쳐 다도 안 봤을. 진성동 재개발 3구역. 우다원. 우,다,원. 우…다…원…. 동글 거리면서도 단단해. ‘우’에서 입술을 귀엽게 모으다 갑자기 치고 들어가는 ‘다’. 이응으로 동그랗게 말아 들어가다 깔끔하게 매듭 짓는 ‘원’. 미끄러질 듯 ‘우’와 ‘원’을 잡아주려는 담백한 위치의 ‘다’. 당장 혀로 느꼈을 땐 동글 거리지만 꽉 잡아주는 젠틀함이 마냥 귀엽지만은 않아. ‘다’는 자기가 담백한 존재로 불린다는 걸 알기나 할까? 손글씨로 쓸 땐 또 달라. 딱딱한 명찰의 굴림체로는 귀여운 맛을 담지 못한다구. 우다원이 말랑하게 쓴 우다원 특유의 우격다짐체, 혓바닥 구르는 맛, 그래서…. “김나율!” 또 멍 때렸나보다. 언니가 슬슬 짜증낸다. “네!” 또또, 그 습관. 이런 표정으로 바라본다. “김나율! 너 대신 존나게 무거운 삼각대 들고, 땀 삐질삐질…. 정신 차려라, 진짜!” “언니, 미안….” 모든 이름이 그런 건 아니다. 사탕처럼 입안에서 달달하게 퍼지는 이름의 맛이면 다 좋아한다. 새삼 내 이름 예뻐 보이던 밤이 그랬다. 불 꺼지는 순간까지 입술에 비친 그 이름을 굴리고 굴렸다. 입학하고부터 반 친구들을 지나쳐 우다원까지 손가락 개수보다 많은 이름들을 굴리고 또 굴렸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 이유도 한글보다 못 생긴 알파벳 탓이 아닐까 믿어도 보았다. 하지만 어떡해. 좋아하는 이름만 보면 정신 줄 놔 버리는 걸. “됐고! 아줌마 나오면 사진이나 잘 찍어. 노출 값 확인 했나 살피고.” 급한 마음에 헛발 디딘 언니가 넘어져서야 방송국 놈들 장난이란 걸 알아차렸다. 밀려드는 인파 사이로 그 애들이 째려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언니는 가장 먼저 눈에 치인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제일 큰 목소리로 우짤래미 저짤래미 거리던 녀석의 숨통을 조이자 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야, 야! 최문정. 실수였어, 실수!” 같은 편으로 보이는 여자 선배가 언니를 밀쳐버리면서 싸움으로 확전됐다. 주변에선 격투기라도 보듯 가던 길을 멈추었다. “오” 그리고 “와” 끝에선 “싸워라”가 아우성 콘서트로 뒤덮었다. 한 순간 벌어진 난장판. 어떡하지, 어떡하지. 벌게진 언니의 얼굴. 하얗게 먼지로 얼룩진 교복. 뒷걸음치다 누가 미는 바람에 나 모르게 남자애 발을 밟았다. 귀 떨어질 만한 짜증에 압도당해 말 한마디 못 꺼냈다. “김나율! 밟았으면 사과해야 할 거 아냐!” 눈을 질끔 감았다. 아빠 얼굴만 생각났다. “비켜.” 살짝, 조금씩, 눈을 떠보니 모르는 남자애가 낚아채가는 걸 느꼈다. 어깨에 실린 든든한 힘. 정신 차려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여기] 사라진 촉각 되살리는: 「조각충동展」①

2022년 07월 02일
코로나가 유행하며 사라진 감각은 냄새와 맛뿐만이 아니다. 만지는 감각, 촉각(觸覺)도 사라졌다. 악수 대신 주먹을 맞대거나 안아주기보다 멀찍이서 바라보는데서 끝나는 상황이 2년 가까이 이어졌다. ‘조각충동’에 향한 관심도 잠시 잊힌 촉각이 떠오른 탓이다. 북서울미술관에서 다음 달 15일까지 ‘조각충동’ 전시회를 개최한다. 작품 수는 모두 66점으로 참여한 작가는 17명에 달한다. 언론에서는 젊은 작가들 특성을 강조하지만 막상 작품 앞에 서보면, 작가들 나이보다 일반인 입장에서 생각지 못한 다채로운 표현 방식에 놀라게 만든다. 단지 존재 그 자체로만 서 있던 물건에서 이름과 의미를 갖춘 작품으로 세워지기까지 작가들이 고민한 발걸음을 되짚고 싶어진다. 조각충동 항목 내용 전시명 조각충동 장소 북서울미술관 시간 2022.06.09~08.15 전시부문 조각, 입체 전시장르 기획 작품 수 66점 참여 작가 강재원 고요손 곽인탄

[지금,여기] 노들섬에서도 이어지는 ‘서울조각축제’

2022년 07월 02일
노들섬에 다다르자 작년엔 없던 조각 작품에 눈길이 갔다. 어제만 해도 폭우가 일주일 가까이 내렸다.(2022.07.01) 한강물은 갈색 빛 그 자체였지만 푸르른 빛깔의 노들섬을 다채롭게 해주는 조각 작품이 분위기를 싱그럽게 만들었다. 이달 11일까지 노들섬에서 ‘서울조각축제 in 노들’을 개최한 덕분이다. 전강옥 作 ‘날으는 저전거’, 조영철 作 ‘deer’, 박재석 作 ‘동행’, 송지인 作 ‘하늘을 날며 무지개 뿌리는 얼룩말’ 등 총 15점이 전시된다. 작품명은 ‘날의는 자전거’라 쓰였거늘, 보도자료를 확인해보니 ‘날으는 자전거’로 표기 된 걸로 보아 잘못 인쇄해 붙인 건 아닌지 싶다. 노을 지기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푸른 하늘 아래 카메라를 들게 만든 작품은 작가 박재석 작품 ‘동행’이다. 보라색 사람과 반려견은 익숙하고 평범한 삶을 담아냈다. 빨주노초파남보 물감을 뒤엎은 작품 ‘하늘을 날며 무지개 뿌리는 얼룩말’은 폭우로 짙은 갈색빛 물든 한강과 대비되어 더 다채롭게 보였다. 풍선에 들려 올라가는 자전거 작품 ‘날으는 자전거’는 져가는 노을과 어울린다. 서울조각축제는 노들섬 외에도 서울광장과 한강공원 등에서도 열린다고 하나 이미 종료됐다. 다만 오는 8월 20일부터 9월 21일까지 900여점 특별 전시가 여의도와
1 3 4 5 6 7 11
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