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가난 선생님, 이제 울지 마세요

2025년 07월 17일
잔나비의 정규 4집 Sound of Music pt.1 수록곡 ‘무지개’에는 비장한 제목이 붙어 있다. ‘모든 소년 소녀들2’. 그 뮤직비디오에서 나는 서글픈 직감에 사로잡혔다. 바닥에 쓰러진 채 날지 못하는, 새의 형상을 한 인간. 그리고 멀찍이서 말끔한 정장을 입은 이들이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망원경인지 요지경인지 알 수 없는 쌍안경을 들고, 그들은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코 날 수 없는 이의 날갯짓은 외로워 보였다. 정장을 입은 다수의 사람들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그 몸짓은 이룰 수 없는 ‘시궁창에서 별 바라보기’ 같았다. ‘무지개’는 앞선 곡 ‘모든 소년 소녀들 1 : 버드맨’의 연작처럼 들린다. 두 개의 뮤비가 말없이 이어지며 메시지를 완성하는 것이다. 말끔한 교복을 입고 졸업 사진을 찍는 소녀와 소년들. 미래를 약속받은 듯한 모습으로 사회에 나아가는 희망에 찬 장면들. 그러나 제목이 가리키듯, 버드맨은 아기새를 의미한다. 갓날개를 펴고 꿈을 향해 발버둥치는 존재. 그리고 그 꿈은 결국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저 너머의 하늘만 바라보게 되는 운명으로 귀결된다. 이룰 수 없는 꿈, 닿을 수 없는 이상. 버드맨은 그렇게 다수가 되는 법을 배운다.

[에셀라 시론] 아기새는 날개를 펴 날았을까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조금씩 누나에게 스며든 것도 이 무렵이다. 신앙에 눈을 뜬 누나의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다. 누나라는 사람 그 자체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누나를 알고 싶었다.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누나의 바라보는 시선에 맞추고 싶었다. 곁가지 누나에 관해서가 아니라 누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다. 눈을 마주하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를 원했다. 한갓 고등학생뿐인 내가 누나의 마음을 이해할 리 없었다. 고등학생이라서가 아니다. 서로 다른 환경이 누나를 이해하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스며든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누나를 모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에 먹먹한 가슴만 부여잡았다. 누나는 약대를 졸업한 후 선교사로 일하고 싶어 했다. 신학생도 읽지 않을 두꺼운 교리서 ‘기독교 강요’를 꺼내 들었다. 영적인 대화를 추구했다. 하나님의 일만 하다가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기를 바랬다. 누나에게 사람들은 선교의 대상자였다. 따라서 나를 성경 지식 물어볼 영의 눈이 뜨인 고등학생으로 보았다. 누나의 관심은 마음을 즐겁게 했다. 누구도 물어보지 않을 신앙에 대답하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남들보다 대단하게 바라봐준 시선에 애틋한 감정을 느꼈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둘만의 공간. 세상은 미쳐 돌아가지만 우린 무해하고 올바른 신앙으로 세상에 맞서는 드라마 같은 감성이 등줄기 날개로 돋았다. 누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도 알지 못했다. 이성(二姓)의 감정을 모르던 탓이다. 단지 누나가 함께해 주길 바랬다. 좀 더 마음에 머무르기를 바랬다. 누나가 내 신앙이 아닌 내 마음에 관심 가져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누나와 사귀고 싶은 건 아니었다. 누나가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누나의 쇄골을 보아도 누나는 누나였다. 누나는 나를 대단한 신앙인으로 추켜세웠다. 누나에게 나는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고등학생이면서도 누구에게나 ‘영적인 티’를 내는 담대한 신앙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신앙인이 아닌데’ 생각했다. 수능 앞둔 고등학생, 사람 좋아하는, 삶을 신앙의 언어로 표현하는, 그래서 고독을 느끼며 성서의 문체로 글 써 내려가는 고등학생. 남자아이.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 누나를 만나며 돋아난 날개에서 쓰라린 감정을 느꼈다. 생겨나면 안 될 하찮은 상처로 치부했다. 이미 자라기 시작한 날개를 찢을 수도 꺾을 수도 없었다. 다시 누나를 모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에셀라 시론] 파수꾼의 마지막 등불

2024년 09월 07일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가영이 누나는 달라진 게 하나 없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 날 만난 게 정말 반가워서 웃는 미소는 여전히 행복하게 만들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지금 여기’ 꿋꿋하게 서 있는 당찬 누나의 모습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달라진 외형 하나 있다면 양손 꽉 쥔 두 아이. 이제는 아이 엄마라는 게 믿기지 않을 나이다. 누나를 다시 만난 이유는 단순했다. 누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과거의 내 모습이 궁금했다. 솔직히 말해 학창 시절 누나에게 빚진 마음은 둘째였다. 누나는 나와 10년 전 새능력교회를 함께 다닌 교우였다. 어렸을 시절 나의 민낯을 그대로 본 사람인 것이다. 기록가로서 눈망울이 빛나는 이유였다. 누나를 위해 나는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었다. 점심을 대접하는 일과 키즈카페 비용을 내준 일, 누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누나는 예민하고 까다로웠던 나의 학창 시절을 서슴없이 나열했다. “그때는 서운했더라” “그때는 미웠더라” “그때는 마음 아팠더라” 늘 누나에게 상처 준 일은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10년 지나서도 사과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련하고도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고맙기만 한 누나의 기억 속에 나는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사는 고등학생’이었나 보다. 그러다 달라지지 않은 누나의 성정(性情)을 발견했다. 잡초 같은 누나의 강인한 생명력을 발견한 것이다. 누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교회를 나오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부모님이 교회를 그만 다니라고 하셨어.” 내가 알던 퍼즐의 조각과 다른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누나의 입에서 “목사의 신념이 나와 안 맞아서” “교회 일이 너무 힘들어서”라는 말이 나오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허나 적어도 교회의 착취 시스템, 기독교 교리의 한계 정도는 말할 줄 예상하고 있었다. 착각이었다. 누나의 신앙은 “죽지 않고 살아서”(시편118,17) 강인하고 질긴 그 무언가였다. 누나는 10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과거의 비밀을 풀어 헤쳤다. 나는 그 비밀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누나의 과거는, 그리고 기억은 송명희 시인의 고백처럼 “비밀이 되어 버린 건축가의 버린 돌”이었다. 오히려 힘겨운 비밀이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짐이 되어 오랜 시간 어깨 위에 지워져 있었다. 따라서 교회의 어려움 따위는 힘든 일도 아닌 것이었다. 욱여쌓임 당해도, 믿음젊음을 착취해도, 교회뼈아픈 과거에도, 신앙꿋꿋한 누나의 신앙과달라지지 않은 미소에‘강인하고 즐긴 생명력’악다구니에 피 토하며 너희 교회에 말하노니“파수꾼의 등불 지키라” 나는 지금도 그날 밤 누나의 한숨, 피로, 적막감을 또렷이 기억한다. 무급으로 교회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토요일은 일요예배를 위해 아예 교회에서 잠을 잤다. 나는 늘 주보를 밤 10시에 발행했다. 방송실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 앞에서 가영이 누나를 마주쳤다. 피곤에 절여 있는, 누가봐도 힘겨움에 고통스러워하는 누나를 보았다. 괜챦느냐고 물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누나의 손에는 목사가 준 일감으로 보이는 용지로 가득했다. 대학 마지막 학기와 취업, 교회생활을 병행해야 했으니 심정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님의 교회생활 반대까지 겹칠 때라면 누나는 나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목사의 한 마디는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수준이다. “가영이 쟤가 말야, 돈을 좇고 돈 따라가서 문제야.” 목사 따위가 자격증 시험보러 일요예배 빠질 수밖에 없는 청년의 심정을 알기는 아나. 누나는 교회에 충성했다. 문자 그대로다. 온몸으로 교회에 헌신했다. 누나의 삶을 갈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목사는 떼를 쓰기 바빴다. 나를 비롯해 청년들을 가리키며 “쟤네들이 사역하는 거 그냥 다 애들 장난 같아 보여. 내가 일하던 때랑 비교하면 노는 것 같다고.” 그러나 목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며 젊은이의 한 번뿐인 청춘을 그대로 갈아 넣었다. 최저시급조차 챙기지 않으며 말이다. 젊은이의 숭고한 정신과 고결한 노동력을 귀한 줄 모르니…. 그래서 예수가 이렇게 말했나보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7,6) 그런데도 누나의 기억 속 교회는 착취 구조와 목사의 비정상 신념에 찬 공간이 아니었다. 날마다 놀러 가면 쉴 수 있는 곳, 토요일이면 사람으로 북적대고 반겨주는 곳, 젊은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행사 준비하느라 생동감 넘치는 곳, 가정과 학교에 치여 갈 곳 없는 나를 받아주는 마지막 등불 같은 곳. 세상 모든 사람이 누나처럼 힘듦을 짊어지고 사는 건 아니다. 애초에 짐의 무게가 다를뿐더러 비교

[에셀라 시론] 잘 지내, 퍼피레드

2023년 12월 07일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본 이용수 대표는 넉살스러운 아저씨였다. 운영진들 사이에서 조용히 있다가 말없이 등장해 자기 할 말 풀어내던 지긋한 나이의 포스. 적절히 가벼운 캡 모자 하나가 어울릴 듯한 익살맞은 제스처. 한눈에 봐도 평범한 아저씨로 보였다. “20대를 다 바친 게임” 긍정의 에너지를 바라던 절실한 호소를 폄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퍼피레드M 1차 테스트 때 일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대표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게임 문 닫기 두 달 전 서버가 닫혀 있더라고요. 서버 운영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그렇죠. 그땐 가끔 들어와서 웹사이트 관리하다 메일 확인하고 그랬죠.” 퍼피레드 개발에 앞서 이 대표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논리는 자칭 원작자의 지지층에게서 출발했다. 그가 퍼피레드를 개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상조차 공개되지 않은 불명의 사람이었다. 회사를 운영할 만한 자질도 공개된 바 없었다. 지적재산권(IP)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건지, 게임을 무료로 풀겠다는 건지, 서버를 운영해 관리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었다. 컬러버스 전신 소울핑거가 퍼피레드를 개발하겠다고 나서자 ‘퍼피레드 같은 게임’이라는 괴이한 이름의 지난한 과정을 돌연 중단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무렵 원작자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나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나는 영문도 몰랐지만 떠나는 이들을 붙잡지 않았다. 이 신문은 당시 어느 쪽도 두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훗날 이 신문이 이 대표를 밀어준 이유는 단순했다. 적어도 퍼피레드가 문 닫기 직전 서버를 운영한 사람이고 마지막까지 서버 종료 소식을 건넨 운영자였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자라는 점에서도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퍼피레드는 문을 닫았지만 말이다. 얼마나 부활을 바랬으면 불명의 사람 바짓단이라도 붙잡는 걸까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너무도 가혹했다. 앱 분석 회사 모바일인덱스의 ‘실시간 마켓별 순위’를 보면 퍼피레드가 들어갈 구석이 없다는 걸

[에셀라 시론] 전임자와 탄핵

2022년 12월 17일
박근혜의 탄핵을 겪은 2016년 겨울은 지금만큼 추웠다. 바깥 어디라도 나갈 수 없는 갑갑함이 방 안 가득 밀려온 것이다. 이전 칼럼에선 허상의 공포심이라 표현했다. 공포심은 공포심이나,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부전감(不全感) 속에서 추운 겨울을 보낸 것이다. 박근혜의 탄핵은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탑이, 공들여 세운 노고가 완벽히 무너졌음을 내보인 역사적 사건이었다. 오랜 시간 옳다고 생각한 생각이 이념에 불과했고 부끄러운 감정뿐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며 반성한 계기가 탄핵인 것이다. 그동안 보수와 애국은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뭉쳤다. 민족주의는 감정과 다르지 않았다. 기존의 여성해방이 감정적으로 아이돌을 지지하고 영향력을 행사한 것과 같았다. 허상의 공포심이 하나 둘 해체되면서 남은 감정은 부전감 뿐이었다. 옳은 길을 걸은 것 같았으나 옳은 길을 걷지 않고 있었다는 현실 앞에 눈이 뜨이자 보이지 않았던 진실을 본 것이다. 이제껏 진실을 부르짖으며 애국심 사이에 숨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감정이 진짜라고 믿어왔건만. 사실은 최순실에 온몸을 내던져 나라를 운영하던 구멍가게만도 못한 경영 의식이 진실로 드러나자 공포심은 이내 다가온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판단이 틀릴 수 있다. 따라서 징조가 드러날 때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걷는 이 길이 옳은 걸음인지, 방향은 맞는지를 언제나 늘, 날마다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탄핵의 겨울 앞에 한파를 그대로 맞닥뜨리며 현실의 눈을 뜬 그 때의 아픔을 생각하면 고민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지금도 탄핵의 겨울을 생각하면 눈물을 머금고 부끄러움을 말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변함없는 부전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든든하게 생각했던 신 존재가 무너지고, 허상일 뿐인 대통령의 민낯을 바라만 보며 공허감을 느끼고 공포심 앞에 몸을 떠는 것처럼 부전감이 남아 있다. 그동안 이념과 정치의 목적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지 못했으므로 받아들인 징계와 같은 아픔이 부전감으로 남은 것이다. 어쩌면 탄핵의 겨울은 신 죽음의 시대를 겪기 위한 전조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최상의 존재로 남은 신 존재조차 무너진 시대에 부전감은 오히려 공포심을 넘어 현실을 살아갈 힘으로 다가왔다. 죽음의 역설인 것이다. 관계 청산과 새로운 시대를 여는 힘도 신 죽음에 이르러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임자를 만났다. 콩깍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친밀한 감정 속에서 이제껏 경험해지 못한 마음의 손길을 주고받았다. 전임자는 좋아함을 넘어 사랑을 갈구했고, 끈끈한 관계 속에 이제껏 보지 못한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좋던 시절은 오래지 않았다. 격랑 속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경험했다. 전임자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여러 차례 지적했다. 탄핵의 카드를 꺼내서라도 돌이켜야 한다고 말해왔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파멸을 맞이했다. 언론의 숙명은 진실을 말하는 데 있다. 이 신문은 탄핵의 겨울에도 슬픔을 추스르는데 초점을 맞추었고, 전임자의 탄핵을 맞이해서도 진실을 가리켰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스스로의 가치를 지켜나갔다. 또 한 번의 탄핵을 맞이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에는 보수당 정권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태 앞에 맥조차 추리지 못하고

[에셀라 시론] 힘없는 인간일지라도, 당신을

2022년 07월 11일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교회 문제로 엄마와 싸우다 한 마디 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렇게 힘들면 뭐 하러 교회에서 일을 하니? 안 다니면 되는 것을.” 맞는 말씀이라 할 말이 없었다.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교회를 다니고, 힘들면서도 무급으로 봉사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교회라는 시스템에 몸이 맞았기 때문이고, 교회를 나와서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나도 그런 사실을 13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제는 일요일 아침 9시에 일어나도 예배당을 찾지 않는다. 그 흔한 대형교회 유튜브 스트리밍조차 청취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내 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몸이 되기까지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교회를 나오고 군복무 마쳐서 돌아온 신학교는 여전히 형편없었다. 룸살롱 다녀오고도 아무 문제 없다고 항변하던 실천신학 교수는 여전히 믿음 좋은

[에셀라 시론] 그 녀석, 여학생의 꿈이 박살난 순간

2021년 10월 18일
서울대를 동경하던 그 녀석 입에서 꿈에 그리던 순간들이 사라지자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세달 전이다. 녀석이 좋아하던 꿈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시간의 검증이면 충분하다고 봤다. 정말 사랑하면 오랜 시간 지나도 소중한 꿈으로 새겨갔을 테고, 사랑하지 않았다면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말 거라는 검증이다. 일년하고도 반 년 남은 시간 서울대에 합격하겠다던 만들어진 이야기를 보면서 하느님을 만났다는 듯, 삶은 달라져갈 것이고 새로운 나날만이 드리울 거라 믿었던 학부 때 모습이 겹쳐 보였다. 착각 속에서 신을 만난 줄 알았던 완전한 믿음을 검증할 방법 하나 없었고 오로지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은 거짓은 서글픈 감정을 가리켰다. 박살난 꿈 조각, 빛 잃은 별 되어 잊혀서야 눈물을 머금고 나약한 소녀가 에둘러 한 조각, 한 조각 줍던 뒤늦은 당혹감을 보았다. 이 지면에는 여학생 이름 담긴 글 하나가 실릴 예정이었다. 여고생 그 녀석을 끌어당기는 별. 세 번 첨삭 두 번 탈고 끝에 마무리한 글 한 문단만 바꾸고 ‘교회 바깥 나서면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글로 탈바꿈해 게재한 이유에는 사실로 드러나지 않은 시간의 검증이 자리했다. 꿈을 가지라, 희망을 새겨라 따위의 글은 아니다. 그저 모름의 바다를 유랑하는. 어쩌면 답이 아니면서도 답일지 모르는 탈합치(De-coincidence)만을 예고할 뿐이다. 이해는 했다. 남들 열심히 공부하고, 촘촘하게 쌓아가는 듯 보이는 희망의 탑 고공행진 보면서 누구라도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지 말라는 법이 어딨겠나. 고작 신학교 하나 믿고 알량한 믿음 따위 맹신했던 10년 전 나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철든 녀석 앞에서 탈합치니 유랑이니, 헤매는 모름의 바다 따위 단어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의 검증은 그 때의 칼럼을 게재하려던 순간에도 보이지 않던 사실을 일러주었다. 서울대라는 단단한 반석 앞에 모든 바라던 것들이 일순간 녹아버려 사라지는 환상이란 점에서 모든 바라던 것들이 진정 바라던 것들이 맞는지를 묻었다. ‘너 밖에 없다’던 말도 서울대 앞에서 스러져 녹아버렸고, ‘사랑하는 일이잖아’하던 습관들도 단단한 반석 앞에서 스스럼없이 사라지자 가나안에 도착하고 비로소 하느님과 줄다리기 벌이던 그 때의 공동체가 떠올랐다. 신학교만 도착하면, 도달하면! 다 될 줄 알았던 착각이 허무하게 녹아 사라져 버렸다. 시간은 반 년 만에 검증을 마쳤다. ‘네가 가지던 그 꿈이 진짜인 줄 알았냐’며 감사 보고서를 내던졌고,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틀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다’ 조용히 읊조리며 적막한 대강당서 어둠 속 눈물을 흘렸다. 지금이야 유랑으로 말하지만, 불안히 외줄 타던 시절엔 유랑 같은 단어 따위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공포 그 자체였다. 헛발이라도 딛는 순간 죽을 것만 같았다. 교재라도 있으면 했다. 교재대로 살아가면 ‘아, 이만하면 충분한 삶이구나’ 자위라도 하지 않았을까. 어찌어찌 살아가다보니 지금으로 흘러왔고 오늘에 이르렀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며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고 말한다. 나쁘지 않은 말들이다. 꽤 단순하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기어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훈수 두는 인간들. 지금의 삶도 버거운데, 이후의 삶도 설계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이들이 있다. 천국과 지옥, 썩은 내 나는 주술적 단어를 읊조리며 인생이란 이런 거라고 오만한 말들을 내뱉는다. 그들은 표준을 만드는 자들이다. 자기가 표준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른에는 취업할 것, 여자라면 서른다섯까진 결혼할 것, 네 살 차이는 만나지 말 것, 이런 사람 특징 네 가지를 나열하고 이래라저래라 지껄인다. 그 아래 동조하던 댓글들과 아멘들은 가관이다. 유유상종 따로 없다. 표준이란 단어는 매혹적이다. 모른다는 말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표준이 더 있어 보인다. 티키타카 못해도 괜찮은데. 밀당 못할 수도 있는데. 표준에 미달하면 스스로를 못난 사람 취급하는 행동과 정신이야 말로 표준에 달하는지. 싱어송라이터 박소은의 정규 앨범 ‘고강동’ 첫 번째 수록곡이 인상적이다. ‘인생이 박살나던 순간.’ 당혹스러움일까, 분노일까, 배신감일까. 처음 내뱉던 글줄부터 할 말을 잃는다. ‘아무것도 모르겠을 때/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네’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만들어준 표준이 맞는다고 생각하며 달려왔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하등 쓸모없는 현실 앞에서 이 노래가 떠올랐다. 시간의 검증은 이럴 때 유용하다. 시간의 검증은 가장 일차원적 방법이다. 이조차 견디질 못하고 사라져 녹아버린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맞는다. 서울대 앞에 녹아 사라져버린 그 녀석의 꿈처럼. 하지만 모른다. 애써 외면했던 그 녀석, 10년 후 그 소녀처럼 박살난 꿈 조각 하나하나 주우며 뒤늦게나마 제 로(路)로 걸어갈지. 뒤늦다는 말조차 틀렸음을 깨달을지. 박살나도 괜찮은데. 그래도 망가진 삶 아닌데. 끝까지 아껴주고 싶었는데.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오늘도 이 칼럼, 미안하다는 말로 마치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

[에셀라 시론] 녹림청월 이후의 시대에서 보내는 편지

2021년 10월 14일
이제 두 달 후면 이 신문, 자유의새노래를 창간하게 될 겁니다. 아무도 없는 한글날, 복지관 건물에서 매니저 ‘그린냥’을 필두로 개설한 녹림청월을 보고도 놀라면 안 됩니다. 반대진영 무찌르기 위해서 여론조작 일삼고 가면까지 쓰고 친밀한 척 연기하던 자료 눈으로 확인해보면 기막힌 감정부터 느끼게 될 겁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사실들을 글줄로 담기 위해 신문 제작에 열 올리게 될 테구요. 황당하죠. 필명 대한제국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백 서른하나 계정을 이용해 댓글 공작 펼친 걸까 물을 겁니다. 허나 그리 물어서는 곤란합니다. 시선을 돌려서 녹림청월은 무엇을 얻으려고, 무엇을 위해서, 무엇 때문에 백 서른하나 계정으로 여론조작 했는지를 물어야 비로소 보입니다. 필명 대한제국을 둘러싼 이 사태의 진상은 그들 녹림청월 자신의 욕망. 이것뿐입니다. 어떤 욕망일까요. 더 취재하다보면 보일 겁니다. 초딩 디시인사이드라 불리는 원류(源流)에선 찾을 수 없습니다. 내면의 솔직한 감정을 마구잡이 드러내던 지류(支流), 녹림청월에서 명확해집니다. 녹림청월 말하려고 쓴 편지는 아닙니다. 오늘은 다른 시선으로 보려고 합니다. 어른들 얘기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스태프 역할 던져주고, 일선에서 물러난 어른들요. 유명세를 이용하는 건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린 어른들에게 주요한 덕목이겠죠. 그 인간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리 하나 던져주고 부려 먹는 것도 모자라 책 한 권 던져주고 사인만 갈긴다고 끝날 일은 아니죠. 정상적이지 못한, 지극히 중2병다운, 사춘기 흑화된 소녀들을 상대로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책 한 권으로 끝날 문제겠습니까. 그때의 어른들도 인력 보강 대신 무책임한 열정페이를 요구했습니다. 잘하고 있다, “대단해 대한건아!” 한 마디 던지던 과거의 말들이 지금이라고 무엇이 다를까요. 아이돌 포토 사진만도 못한, 방 한 편 버려져 이제는 읽지도 않아서 외면 받은 그 책을 볼 때마다 어른들 욕망이 되살아납니다. 그럼에도 한 때의 기억이고, 과거이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버리지 않기를 잘했습니다. 기억과 함께 보관하기로 마음먹은 그 때의 결정처럼요. 지금도 그 책 겉면을 보면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책임 없는 어른들을 증오합니다. 그러니 값비싼 노동으로 받아 낸 18권, 어른들에게 고마워 마십시오. 마땅히 일해서 받은 것뿐입니다. 대대공작 일삼던 자들이 녹림청월을 어둠 속 장막으로 감춘지도 5년이 지났습니다. 어째서 15년 전 녹림청월에 의한 대대공작(對大工作) 사건을 지금까지도 거론하느냐 물을 겁니다. 먼 미래에는 매듭진 거 아니냐고 하면서요. 원류조차 바싹 마른지 오래입니다. 이 신문 창간호엔 상단에 배치한 녹림청월 발(發) 대대공작 사건보도 뿐만 아니라 반 지성으로 얼룩진 신앙 세태 비판하는 글도 실렸습니다. 지금은 참여교회 담임목사를 대단하다 자부할 테지만 시간만 지나보십시오.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악질로 분류하고 말 겁니다. 그 인간의 수준을 알기까지 10년이 지나야 합니다. 인생 절반을 전체주의와 다르지 않은, 인간성을 상실한 집단에 몸담았다는 점에서 비극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이제껏 어떻게 살아왔는지보다 중요한 건, 현재에도 무책임한 어른들을 마주하느냐는 겁니다. 환경이란 담을 넘어보니, 과거의 삶에서 비극을 느낄 여력 하나 없더군요. 여전히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이제 곧 지류를 만들어 낸 원류를 벗어나 원류라고 생각했던 지류를 바라보며 두 가지 종류의 어른들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책임을 지느냐, 지지 못하느냐. 두 기준으로 보면 명확하게 그 어른을 따라갈지 말지를 알게 될 겁니다. 어른이라고 다 올바른 말들만 하지는 않습니다. 순진하고 착해서 그렇습니다. 좀체 남의 말 의심치 않고, 농담조차 먹히질 않으니. 고지식한 보수적 태도가 때로는 안정적인 삶으로 이어갈 동력일 테지만, 세상만사 일장일단(一長一短)일 뿐입니다. 그러니 어른들을 의심하십시오.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은 채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는 원류적 어른들이 많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듯, 방치 된 스태프, 필명 대한제국은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당신의 시간에선 그 자체를 비극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원류를 벗어난, 지류로 보일 원류 앞에선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보일 따름입니다. 멍청하고 어처구니없는 공간은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게 당연한 겁니다. 그분도 지류로 보이는 원류 앞에서 공허감을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곧 당신이 지지하게 될 그분의 기일입니다. 왜 그 세계로 갔을지,

[에셀라 시론] 51%

2021년 09월 01일
가영이 누나에게 탈출을 권했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1층 작은 예배실은 토요일 저녁이면 컴컴했다. 한편에 들어찬 사무실 미닫이 문 열고서 바라본 누나의 뒷모습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웃음이 많았고 미소가 은은했다. 한 숨을 쉬어가며 마치지 못한 그 일을 끝내 내 앞에 가져온 저녁이 떠오른 건. 그 일을 한 집사와 학생, 셋이서 만들어갈 무렵이다. 교회를 나오지 않으며 저절로 승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기억을 더듬었다. 자격증 시험을 위해서 주일 예배를 빠져도 되겠냐던 물음에 하나님 일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던 대답과, 그 자리 떠난 누나의 온기도 사라지기 전 목사의 지껄이던 “쟤는 돈을 너무 좋아해” 한 마디는 지금도 황당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한심한 교회는 지금에서야 리빌드(rebuild) 운동을 펼치는 중이다. 웃기는 소리다. 내 사람도 못 챙겨서 뿔뿔이 흩어진 그 교회가 청년들 데려 온다고 티셔츠나 만들어서 찬양 집회 따위나 열고 있으니. 있을 때도 못 챙겨준 당신의 교회가 교회 밖 젊은이를 끌어나 올 수 있을는지. 기막힌 건 설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사람도 성숙해 간다. 그러나 이 교회 목사는 격(格)이 다르다. 성숙치 않은 퇴행적 단어들을 내뱉는다. 이슬람이 어쩌고 동성애가 저쩌고, 대면 예배가 안 되니 여의도 순복음 저 부지 팔아 2000억 차익 본 이야기나 지껄인다. 교인 수 300명도 안 되는 교회가 80만 대형교회 손가락질이다. 크기 얘기가 아니다. 한다는 설교가 증오의 정치나 작동시키며 말세와 소수자 탄압, 교회 생활 강요로 점철돼 프로파간다만도 못한 웅변이나 내걸고 있으니 기막힐 따름이다. 이 교회의 문법은 좆소라 불리는 부실기업과 다르지 않는다. 함께 성장한다는 이유로 되도 않는 희망, 미래, 천국, 열정, 성령충만 단어를 성경구절 명언처럼 섞으며 인재처럼 대우한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해 사람을 갈아 넣는다. 사람이 없으므로 모든 일이 주먹구구 이뤄진다. 사수도 없으므로 인수인계를 기대하지 말자. 일요일도 나와야 한다. 토요일도 요구한다. 급성장 시절 화려한 영광에 취한 채 그때의 열정을 교인들이 내보이길 바란다. 너희는 죄인이고 회개해야 산다며 가스라이팅을 진행한다. 그러다 교회를 옮기면 언급 금지 대상자가 된다. 심하면 신천지를 앞세우며 지옥에 갈 수 있다고 겁박한다. 꼬박꼬박 십일조를 내야 한다, 교회에. 좆소는 월급이라도 챙겨주지만 이 교회는 봉사라는 명목으로 한 푼도 챙겨주지 않는다. 하나님에게 마땅히 해야 할 봉사라며 ‘사역’이란 단어로 얼버무린다. 그런 교회를 누가 다니고 싶겠나. 탈출도 지능 순이라지 않은가.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사망원인통계에는 믿기 어려운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 제목 51%는 20대 사망 원인인 고의적 자해를 의미한다. 자살이란 단어 말이다. 헬조선이 무상하다. 더는 내려갈 곳 없어 이 세상을 떠나는 슬픈 청년들을 생각한다. 망할 좆소 욕지거리 내뱉으며 추노한다. 도무지 1% 되지 못한 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숫자는 생각보다 강하다. 어른들은 숫자에 약하다. 생산가능인구가 떨어지고 학령인구가 줄어들자 대학들이 벌벌 떤다. 아직까지는 숫자로 내세울 가짓수가 많을 테니 피부에 와닿지 않을 것이다. 크게 잃은 건 없을 테니 리빌드니 부흥이니 헛소리 할 여유는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리빌드 운동을 제창하던 눈망울엔 불안이 서려 있었다. 나와 같은 청년들이 없었다면 그 목사는 리빌드 운동조차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떠나간 청년들 숫자가 목사를 움직였다. 더 이상 청년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 사회생활 가르치던 어른들 목 주위가 서늘하다. 나이 들어 고독사하는 어른들이 많아졌다. 청년의 때에는 누구든지 연약하니 강해져야 하는 건 맞는 소리다. 사회생활 앞세우며 노동 착취하는 철없는 어른들이 문제일 뿐이다. 그런 어른들 혼내줄 방법은 그 공간을 벗어나는 일에서 출발한다. 태극기를 빙자해 정치권을 팬클럽 따위로 전락시킨 인간들을 쫓아내고,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지도자를 세우는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정치를 몰라도 괜찮다. 하나 둘 배워가면 된다. 앞으로도 모르면 나쁜 어른들을 답습해 갈 뿐이다. 더러운 어른들 문법을 배우는 이유도 앞으로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어른들은 순진한 청년들을 꼬드긴다. 가스라이팅도 이 단락에서 시도한다. 결국은 개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으므로, 구조를 뒤엎자는 얘기다. 리빌드 운동은 1123 운동처럼 실패할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콘셉트도 애매한 그런 중소형 교회부터 무너질 것이다. 그런데도 다른 목사들의 걱정에도

[에셀라 시론] 보이지 않는 나라를 꿈꾼다

2021년 08월 07일
박원순과 나경원이 맞붙던 시절의 이야기다. 종북(從北) 단체와 친밀하게 지낸다는 박원순 후보의 일설을 믿고 순진한 마음으로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의 답변은 간단했다. 정치는 단순한 이념으로 보는 게 아니라고. 이념으로 사람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답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새로운 눈이 뜨이자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왜곡된 정치의 시각으로도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앙의 끝으로 달려가던 와중에 붙잡은 정치 이념이 보수적 깨시민으로 만든 후였다. 대학을 입학했다.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 나라’는 많았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가 대표적이다.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하느님 나라를 꿈꾼다. 보수적 성향의 시민도 보이지 않는 나라를 꿈꾼다. 대깨문이 박멸되는 나라. 진보적 성향의 시민도 다를 바 없다. 토착 왜구가 청산된 나라.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는 사회와 다른, 현실 세계에 입문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나라를 경험한다. 사회생활 단어도 ‘보이지 않는 나라’를 설명하는 맥락에서 사용한다. 슬프게도 코로나 파동을 겪은 이 시점에서도. 눈물 흘리지 않고서는 맨 눈으로 보기 힘든 ‘보이지 않는 나라’가 스며든다. 죽음. 고독사가 휩쓸고 지나간 집에서 청소하던 일꾼을 마주했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대로 살겠구나’ 그리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보이지 않는 노동의 짐,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 좋소에서 또 좋소로 이직해야 하는 절망. 어른이 되고서야 자기 몸 하나 건재하기 힘겨운 대한민국이란 보이지 않는 나라를 보았다. 2020년에 발표한 통계청 사망원인통계는 20대 사망원인을 고의적 자해 51%를 꼽는다. 노인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같은 자료에서 고의적 자해는 50대부터 급증한다. 미친 나라다. 보이지 않는 죽음의 나라를 선택한다. 도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사람, 두 사람 떨어져 나가는 광경을 지켜만 보던 개개인이 무엇으로 바깥 경계로 내몰린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박원순과 나경원의 사투를 보면서 나경원이 이기는 것만이 이 나라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믿었던 것처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를 운운하며 보이지 않는 나라를 꿈꾸는 이들도 그저 보이는 대로 손을 뻗는다. 언젠가 보이지 않은 세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울컥했다. 저 사람은 오늘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편안하게 쉴 수 있을까. 저 부장은 돌아가서 혼자 무슨 반찬을 해먹을지. 팀장은 한 시간도 넘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쪽잠이라도 잘 수 있을지. 보이지 않는 노동의 나라 저 끝자락을 상상할 때마다 눈물이 차오른다. 하지만 눈물은 어김없이 분노로 바뀐다. 퇴근하고 내내 욕을 내뱉었다. 속이 타오를 때까지 욕을 했다.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비명에 스피커까지 틀어가며 제 할 말만 떠드는 인간들을 때문이다. 비명이라 말했다. 정치는 나약한 이들을 위해서 작동해야 하건만. 대깨문과 토착왜구 사이에서 성실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비명이 양쪽 스피커에서 깨끗하게 사라진다. 계급으로 전락한 이들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나라’가 된다. 신학자 김진호는 저서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에서 ‘그 바깥’ 단어로 설명을 이어간다. 어느 누구도 그 바깥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나라로 향한다 하더라도. 왜곡된 정치관이 사라진 순간은 조선일보를 절독한 시점이 아니었다. 조선일보가 비로소 조선일보로 보일 때다. 보이지 않는 나라, 저 조선일보가 판을 짜고 프레임을 섬세하게 엮어내던 장인정신 깨닫고서 현실을 알아차렸다. 일찍이 보이지 않는 나라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듯했다. 그런 어른은 서로를 ‘친구’라고 부른다. 높고 낮음을 구분하지 않으며, 동등한 인간으로 대한다. 인생 경험 가르치는 인간들의 맥락과 결이 다르다. 더불어 살아가는, 보이지 않는 당신의 나라 속 친구는 서로가 서로를 끌어다주는 독특한 관계를 의미했다. 친구라 부르던 두 어른은 묵묵히 노동자로 하루를 살아간다. 서울대만으로도 이뤄질 수 없는 나라.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도 이뤄낼 수 없는 나라. 없는 셈 치더라도 숨길 수 없는 나라. 그저 파란나라 꿈꾸던 혜은이 목소리로 상상하던 나라. 정치인이, 종교인이 만들어 낸 허상의 보이지 않는 나라를 빗금으로 지우고. 나약한 자를 친구로 삼고 보이지 않는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의 우정으로 다시 써 넣어 그려본다. 성실히 살아가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나라는 이념의 경도된 시각, 대깨문과 토착왜구라는 단어들 사이에서 이뤄질 수 없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을 외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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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8월 5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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