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라 시론] 그 녀석, 여학생의 꿈이 박살난 순간

이상한 표준 만들고서 남의 삶, 부럽게 하니 불안 감정은 요동치고 나의 인생은 부끄럽고 늦게나마 꿈 조각들 주울지 아무도 모르듯 왜들 그리 사시나 왜
2021년 10월 18일

서울대를 동경하던 그 녀석 입에서 꿈에 그리던 순간들이 사라지자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세달 전이다. 녀석이 좋아하던 꿈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시간의 검증이면 충분하다고 봤다. 정말 사랑하면 오랜 시간 지나도 소중한 꿈으로 새겨갔을 테고, 사랑하지 않았다면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말 거라는 검증이다. 일년하고도 반 년 남은 시간 서울대에 합격하겠다던 만들어진 이야기를 보면서 하느님을 만났다는 듯, 삶은 달라져갈 것이고 새로운 나날만이 드리울 거라 믿었던 학부 때 모습이 겹쳐 보였다. 착각 속에서 신을 만난 줄 알았던 완전한 믿음을 검증할 방법 하나 없었고 오로지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은 거짓은 서글픈 감정을 가리켰다. 박살난 꿈 조각, 빛 잃은 별 되어 잊혀서야 눈물을 머금고 나약한 소녀가 에둘러 한 조각, 한 조각 줍던 뒤늦은 당혹감을 보았다.

이 지면에는 여학생 이름 담긴 글 하나가 실릴 예정이었다. 여고생 그 녀석을 끌어당기는 별. 세 번 첨삭 두 번 탈고 끝에 마무리한 글 한 문단만 바꾸고 ‘교회 바깥 나서면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글로 탈바꿈해 게재한 이유에는 사실로 드러나지 않은 시간의 검증이 자리했다. 꿈을 가지라, 희망을 새겨라 따위의 글은 아니다. 그저 모름의 바다를 유랑하는. 어쩌면 답이 아니면서도 답일지 모르는 탈합치(De-coincidence)만을 예고할 뿐이다. 이해는 했다. 남들 열심히 공부하고, 촘촘하게 쌓아가는 듯 보이는 희망의 탑 고공행진 보면서 누구라도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지 말라는 법이 어딨겠나. 고작 신학교 하나 믿고 알량한 믿음 따위 맹신했던 10년 전 나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철든 녀석 앞에서 탈합치니 유랑이니, 헤매는 모름의 바다 따위 단어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의 검증은 그 때의 칼럼을 게재하려던 순간에도 보이지 않던 사실을 일러주었다. 서울대라는 단단한 반석 앞에 모든 바라던 것들이 일순간 녹아버려 사라지는 환상이란 점에서 모든 바라던 것들이 진정 바라던 것들이 맞는지를 묻었다. ‘너 밖에 없다’던 말도 서울대 앞에서 스러져 녹아버렸고, ‘사랑하는 일이잖아’하던 습관들도 단단한 반석 앞에서 스스럼없이 사라지자 가나안에 도착하고 비로소 하느님과 줄다리기 벌이던 그 때의 공동체가 떠올랐다. 신학교만 도착하면, 도달하면! 다 될 줄 알았던 착각이 허무하게 녹아 사라져 버렸다. 시간은 반 년 만에 검증을 마쳤다. ‘네가 가지던 그 꿈이 진짜인 줄 알았냐’며 감사 보고서를 내던졌고,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틀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다’ 조용히 읊조리며 적막한 대강당서 어둠 속 눈물을 흘렸다.

지금이야 유랑으로 말하지만, 불안히 외줄 타던 시절엔 유랑 같은 단어 따위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공포 그 자체였다. 헛발이라도 딛는 순간 죽을 것만 같았다. 교재라도 있으면 했다. 교재대로 살아가면 ‘아, 이만하면 충분한 삶이구나’ 자위라도 하지 않았을까. 어찌어찌 살아가다보니 지금으로 흘러왔고 오늘에 이르렀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며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고 말한다. 나쁘지 않은 말들이다. 꽤 단순하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기어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훈수 두는 인간들. 지금의 삶도 버거운데, 이후의 삶도 설계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이들이 있다. 천국과 지옥, 썩은 내 나는 주술적 단어를 읊조리며 인생이란 이런 거라고 오만한 말들을 내뱉는다. 그들은 표준을 만드는 자들이다. 자기가 표준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른에는 취업할 것, 여자라면 서른다섯까진 결혼할 것, 네 살 차이는 만나지 말 것, 이런 사람 특징 네 가지를 나열하고 이래라저래라 지껄인다. 그 아래 동조하던 댓글들과 아멘들은 가관이다. 유유상종 따로 없다.

표준이란 단어는 매혹적이다. 모른다는 말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표준이 더 있어 보인다. 티키타카 못해도 괜찮은데. 밀당 못할 수도 있는데. 표준에 미달하면 스스로를 못난 사람 취급하는 행동과 정신이야 말로 표준에 달하는지. 싱어송라이터 박소은의 정규 앨범 ‘고강동’ 첫 번째 수록곡이 인상적이다. ‘인생이 박살나던 순간.’ 당혹스러움일까, 분노일까, 배신감일까. 처음 내뱉던 글줄부터 할 말을 잃는다. ‘아무것도 모르겠을 때/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네’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만들어준 표준이 맞는다고 생각하며 달려왔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하등 쓸모없는 현실 앞에서 이 노래가 떠올랐다. 시간의 검증은 이럴 때 유용하다. 시간의 검증은 가장 일차원적 방법이다. 이조차 견디질 못하고 사라져 녹아버린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맞는다. 서울대 앞에 녹아 사라져버린 그 녀석의 꿈처럼.

하지만 모른다. 애써 외면했던 그 녀석, 10년 후 그 소녀처럼 박살난 꿈 조각 하나하나 주우며 뒤늦게나마 제 로(路)로 걸어갈지. 뒤늦다는 말조차 틀렸음을 깨달을지. 박살나도 괜찮은데. 그래도 망가진 삶 아닌데. 끝까지 아껴주고 싶었는데.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오늘도 이 칼럼, 미안하다는 말로 마치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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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라 시론] 소녀의 이름으로

나는 이제껏 김용철의 새능력을 왜 더 빨리 탈퇴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좀 더 빨리 탈교(脫敎) 했다면, 조금 더 빨리 관계를 정리했더라면…. 소년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은 우연히 입수한 18년 전, 한 영상을 보면서 오롯이 해소되었다. 연세중앙교회 YBS 인터뷰에 담긴 소년은 짐짓 말할 수 없는 모든 죄를 짊어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알고 지은 죄인데 왜 그걸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는가….” 도대체 중학교 2학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카메라 앞에 서서 자책하며 스스로를 옥죈단 말인가. 새능력을 탈퇴하고서 나는 단 한 번도 김용철의 설교를 끝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 양심에 찔려서도 아니고 눈물이 감격으로 앞을 가렸기 때문도 아니다. 1시간 설교 모든 문장 옭아맨 감정 동원과 협박 구조, 의미 없는 아멘의 반복, 철학도 신학도 없는 감정만 휘젓는 수준의 처참한 호통은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누구나 깨닫게 된다. 그는 오로지 의식의 흐름에 의지한 채 청중을 감정적으로 끌고 다닐 뿐이다. 각 단락 사이의 논리적 연결은 찾아볼 수 없다. 자기도취에 빠진 간증을 서사로 가져다가 어떻게든 이어 붙이는 게 전부다. 모든 것 공허함의 파도밖에 보이지 않던 시절, 나는 죽을 용기를 가지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시절 스물 두 살의 나는 미지(未知)의 두려움을 견뎌야 했다. 이제는 지옥에 가는 건가 싶었다. 가족도, 연고도 없이 새능력에 붙잡혀 노동 착취를 당했어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탈출이 재생되었다. 때로는 방송실 귀퉁이에서 일을 하는 장면이 꿈으로 재생되었고, 어쩔 땐 빠져 나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많으면 한 달, 뜸하면 서너 달에 한 번 연속된 꿈은 새능력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거의 나로부터 찾아오는 ‘시간의 죄책감’이 나를 오랜 시간 사로잡은 것이다. 몸은 난파선을 벗어났지만 아직도 나의 혼은 그곳에 갇혀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시간. 탈교는 무너진 영혼 속에서 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저 어른들이 주입한 죄책감은 남은 인생의 각도를 비틀었다. 어그러진 관념과 여성성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긴 시간의 교정이 아니었으면 영구히 손상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 소년이 자신의 입으로 토설한 ‘알고 지은 죄’는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은 상징이다. 왜곡된 여성 이해의 뿌리는 기독 담론 그 자체다. ‘성숙한 소녀’라는 어른들의 거짓말이 빚어 만든 망상이 소녀의 노동을 착취했고, 소년의 미래를 짓밟은 것이다. 탈교 이후 나는 차근차근 기독 담론을 해체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소녀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그 소녀는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천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악과를 먹은 후 야훼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침잠한 것처럼 나는 소녀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되어가는 과정을 순연(純然)하게 바라보듯 과거의 시간을 다시 배열하고 재건하는 소녀의 손길을 말없이 볼 뿐이었다. 소녀는 잃었던 재주, 놓쳤던 이름, 잊혔던 얼굴을 되찾았다. 에덴의 난민, 아담과 이브는 재건의 기회조차 잃었으나 소녀는 신의 질서를 거스르고 마침내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자리에 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녀의 일하는 광경 속에서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기억의 화해’가 시대 담론으로 등장하면서 나는 더 이상 기독교의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할 또 다른 층위를 발견했다. 신의 표정으로도 완곡하게나마

[에셀라 시론] 가난 선생님, 이제 울지 마세요

잔나비의 정규 4집 Sound of Music pt.1 수록곡 ‘무지개’에는 비장한 제목이 붙어 있다. ‘모든 소년 소녀들2’. 그 뮤직비디오에서 나는 서글픈 직감에 사로잡혔다. 바닥에 쓰러진 채 날지 못하는, 새의 형상을 한 인간. 그리고 멀찍이서 말끔한 정장을 입은 이들이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망원경인지 요지경인지 알 수 없는 쌍안경을 들고, 그들은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코 날 수 없는 이의 날갯짓은 외로워 보였다. 정장을 입은 다수의 사람들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그 몸짓은 이룰 수 없는 ‘시궁창에서 별 바라보기’ 같았다. ‘무지개’는 앞선 곡 ‘모든 소년 소녀들 1 : 버드맨’의 연작처럼 들린다. 두 개의 뮤비가 말없이 이어지며 메시지를 완성하는 것이다. 말끔한 교복을 입고 졸업 사진을 찍는 소녀와 소년들. 미래를 약속받은 듯한 모습으로 사회에 나아가는 희망에 찬 장면들. 그러나 제목이 가리키듯, 버드맨은 아기새를 의미한다. 갓날개를 펴고 꿈을 향해 발버둥치는 존재. 그리고 그 꿈은 결국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저 너머의 하늘만 바라보게 되는 운명으로 귀결된다. 이룰 수 없는 꿈, 닿을 수 없는 이상. 버드맨은 그렇게 다수가 되는 법을 배운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는 올해가 가기 전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이 직감을 기록할 수 있다면 언제가 되었든 글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더욱 글로 남기고 싶은 강렬한 불꽃이 타오른 것은 가난 선생님과 헤어질 무렵이었다. 가난 선생님과 가까워진 건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완전히 완수하고 떠난 후였다. 회사에서 영상을 촬영하면 편집한 후 고객들이 볼 수 있도록 홍보 영상을 만드는 게 가난 선생님과 나의 주 업무였다. 때로는 내가 보조로 촬영을 도와드리기도 했고 내가 가난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얼굴을 마주한 지 3일 만에 통성명을 했다. 가끔은 한국어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선지 내 이름을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가난 선생님은 유능한 통역 업무로 나를 놀라게 했다. 본사 직원이 아닌 대행사 직원임에도 내게도 따뜻하게 대해준 노동자였다. 가난 선생님은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자신의 일처럼 회사를 대했다. 회사 사람들에게도 화사했고, 당찬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하더라도 꿋꿋하게 버티고 견디는 그런 사람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일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인지 알고 싶었다. 그 노력을 임원들이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원체 세상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선한 마음의 가난 선생님은 두 번이나 내 앞에서 눈물을 훔쳐야 했다. 이놈 회사는 당신에게 속상한 대우로 가슴을 아프게 만든 것이다. 어느 날은 축 늘어져 의자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가난 선생님 옆에서 앉아만 있어야 했다.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생했어요” “고생 많으셨네요” 뿐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난 선생님의 아픔과 고통에 함께하는 일뿐이었다. 송구스럽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정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원래 나의 퇴사 기사에는 이곳 회사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풀어갈 생각이었다. 사무실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내가 속상했던 순간들, 화가 났던 기억들. 그것들을 남겨 놓기로 마음 먹었었다. 말 없이 문장을 쌓고, 쌓다 보니 이상하게도 사건은 사라졌고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가난 선생님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옆에서 묵묵히 버텨준 다른 통역사 선생님들의 얼굴도 떠올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일’을 기록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함께 견뎌낸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가난 선생님을 통해 변해가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것을 나는 보았다. 묵묵히 일하는 자의 항상성(恒常性). 웃음이 났다. 그 항상성은 가벼운 토대가 아닐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변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건 사랑, 정의 같은 추상적 가치나 개념 따위만이 아닐 수 있겠구나라고. 이 비참한 사회를 흐름잡고 있는 건 돈의 가치, 힘의 논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굵은 권능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을 때 삶의 토대를 이루는 이름 없는 것들이 항상성을 만들 수 있겠구나를 깨달은 것이다. 마침내 원고를 마감하다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공동체성과 과거의 전통, 사랑에 스며든 고귀한 희생 정신을 잃은 채 그저 삶에 치여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린 채 돈에 절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뮤직비디오에서 느낀 서글픈 직감은 내게 청춘을 가리켰다. 사회의 모순을 견뎌야만 하는, 끝내 꿈을 간직한 채 살아내야 하는 방황의

[에셀라 시론] 파수꾼의 마지막 등불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가영이 누나는 달라진 게 하나 없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 날 만난 게 정말 반가워서 웃는 미소는 여전히 행복하게 만들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지금 여기’ 꿋꿋하게 서 있는 당찬 누나의 모습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달라진 외형 하나 있다면 양손 꽉 쥔 두 아이. 이제는 아이 엄마라는 게 믿기지 않을 나이다. 누나를 다시 만난 이유는 단순했다. 누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과거의 내 모습이 궁금했다. 솔직히 말해 학창 시절 누나에게 빚진 마음은 둘째였다. 누나는 나와 10년 전 새능력교회를 함께 다닌 교우였다. 어렸을 시절 나의 민낯을 그대로 본 사람인 것이다. 기록가로서 눈망울이 빛나는 이유였다. 누나를 위해 나는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었다. 점심을 대접하는 일과 키즈카페 비용을 내준 일, 누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누나는 예민하고 까다로웠던 나의 학창 시절을 서슴없이 나열했다. “그때는 서운했더라” “그때는 미웠더라” “그때는 마음 아팠더라” 늘 누나에게 상처 준 일은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10년 지나서도 사과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련하고도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고맙기만 한 누나의 기억 속에 나는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사는 고등학생’이었나 보다. 그러다 달라지지 않은 누나의 성정(性情)을 발견했다. 잡초 같은 누나의 강인한 생명력을 발견한 것이다. 누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교회를 나오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부모님이 교회를 그만 다니라고 하셨어.” 내가 알던 퍼즐의 조각과 다른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누나의 입에서 “목사의 신념이 나와 안 맞아서” “교회 일이 너무 힘들어서”라는 말이 나오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허나 적어도 교회의 착취 시스템, 기독교 교리의 한계 정도는 말할 줄 예상하고 있었다. 착각이었다. 누나의 신앙은 “죽지 않고 살아서”(시편118,17) 강인하고 질긴 그 무언가였다. 누나는 10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과거의 비밀을 풀어 헤쳤다. 나는 그 비밀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누나의 과거는, 그리고 기억은 송명희 시인의 고백처럼 “비밀이 되어 버린 건축가의 버린 돌”이었다. 오히려 힘겨운 비밀이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짐이 되어 오랜 시간 어깨 위에 지워져 있었다. 따라서 교회의 어려움 따위는 힘든 일도 아닌 것이었다. 욱여쌓임 당해도, 믿음젊음을 착취해도, 교회뼈아픈 과거에도, 신앙꿋꿋한 누나의 신앙과달라지지 않은 미소에‘강인하고 즐긴 생명력’악다구니에 피 토하며 너희 교회에 말하노니“파수꾼의 등불 지키라” 나는 지금도 그날 밤 누나의 한숨, 피로, 적막감을 또렷이 기억한다. 무급으로 교회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토요일은 일요예배를 위해 아예 교회에서 잠을 잤다. 나는 늘 주보를 밤 10시에 발행했다. 방송실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 앞에서 가영이 누나를 마주쳤다. 피곤에 절여 있는, 누가봐도 힘겨움에 고통스러워하는 누나를 보았다. 괜챦느냐고 물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누나의 손에는 목사가 준 일감으로 보이는 용지로 가득했다. 대학 마지막 학기와 취업, 교회생활을 병행해야 했으니 심정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님의 교회생활 반대까지 겹칠 때라면 누나는 나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목사의 한 마디는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수준이다. “가영이 쟤가 말야, 돈을 좇고 돈 따라가서 문제야.” 목사 따위가 자격증 시험보러 일요예배 빠질 수밖에 없는 청년의 심정을 알기는 아나. 누나는 교회에 충성했다. 문자 그대로다. 온몸으로 교회에 헌신했다. 누나의 삶을 갈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목사는 떼를 쓰기 바빴다. 나를 비롯해 청년들을 가리키며 “쟤네들이 사역하는 거 그냥 다 애들 장난 같아 보여. 내가 일하던 때랑 비교하면 노는 것 같다고.” 그러나 목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며 젊은이의 한 번뿐인 청춘을 그대로 갈아 넣었다. 최저시급조차 챙기지 않으며 말이다. 젊은이의 숭고한 정신과 고결한 노동력을 귀한 줄 모르니…. 그래서 예수가 이렇게 말했나보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7,6) 그런데도 누나의 기억 속 교회는 착취 구조와 목사의 비정상 신념에 찬 공간이 아니었다. 날마다 놀러 가면 쉴 수 있는 곳, 토요일이면 사람으로 북적대고 반겨주는 곳, 젊은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행사 준비하느라 생동감 넘치는 곳, 가정과 학교에 치여 갈 곳 없는 나를 받아주는 마지막 등불 같은 곳. 세상 모든 사람이 누나처럼 힘듦을 짊어지고 사는 건 아니다. 애초에 짐의 무게가 다를뿐더러 비교

[에셀라 시론] 유랑하는 너의 삶에게 보내는 찬사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선교단체 인터콥에서 인턴 간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쿠팡에서 알바 뛴다는 녀석의 안부를 들었다.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저 허영심 언제쯤 끝나려나’ 지켜본 게

[에셀라 시론] 잘 지내, 퍼피레드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본 이용수 대표는 넉살스러운 아저씨였다. 운영진들 사이에서 조용히 있다가 말없이 등장해 자기 할 말 풀어내던 지긋한 나이의 포스. 적절히 가벼운 캡 모자 하나가 어울릴 듯한 익살맞은 제스처. 한눈에 봐도 평범한 아저씨로 보였다. “20대를 다 바친 게임” 긍정의 에너지를 바라던 절실한 호소를 폄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퍼피레드M 1차 테스트 때 일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대표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게임 문 닫기 두 달 전 서버가 닫혀 있더라고요. 서버 운영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그렇죠. 그땐 가끔 들어와서 웹사이트 관리하다 메일 확인하고 그랬죠.” 퍼피레드 개발에 앞서 이 대표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논리는 자칭 원작자의 지지층에게서 출발했다. 그가 퍼피레드를 개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상조차 공개되지 않은 불명의 사람이었다. 회사를 운영할 만한 자질도 공개된 바 없었다. 지적재산권(IP)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건지, 게임을 무료로 풀겠다는 건지, 서버를 운영해 관리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었다. 컬러버스 전신 소울핑거가 퍼피레드를 개발하겠다고 나서자 ‘퍼피레드 같은 게임’이라는 괴이한 이름의 지난한 과정을 돌연 중단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무렵 원작자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나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나는 영문도 몰랐지만 떠나는 이들을 붙잡지 않았다. 이 신문은 당시 어느 쪽도 두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훗날 이 신문이 이 대표를 밀어준 이유는 단순했다. 적어도 퍼피레드가 문 닫기 직전 서버를 운영한 사람이고 마지막까지 서버 종료 소식을 건넨 운영자였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자라는 점에서도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퍼피레드는 문을 닫았지만 말이다. 얼마나 부활을 바랬으면 불명의 사람 바짓단이라도 붙잡는 걸까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너무도 가혹했다. 앱 분석 회사 모바일인덱스의 ‘실시간 마켓별 순위’를 보면 퍼피레드가 들어갈 구석이 없다는 걸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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