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 방송실의 추억

2024년 11월 27일
10년 전 이맘때는 밤을 새는 일이 잦았습니다. 교회 일 때문이었는데요. 11월 마지막 주 추수감사 절기를 보내고 곧바로 대림 절기를 맞아 업무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방송실 근무가 만만치 않더군요. 예배 때 사용할 PPTX 자막을 만드는 일부터 동영상 제작까지, 교회학교와 학생부, 청년부에서 떠넘긴 자료가 한 아름이었습니다. 저를 바쁘게 만든 부서들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교회학교 교사직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열 몸이라도 모자란 상황은 중학생 때부터 매년 반복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방송 일을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2학년과 일병 달 때까지 일하다가 교회 다니기를 관뒀으니, 7년쯤이겠네요. 10년 전 이맘때는 군 입대를 앞두고 슬슬 교회 일을 인수인계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언제나 일들로 가득한 방송실에 발 디디겠다던 학생과 청년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물려줄 수 없는 위기의 상황에서 당당히 두 손 들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재현쌤이 불쌍해 보여서 방송실에 들어왔다”던 저의 동지 안중현 형제였습니다. 그때의 고마움과 설렘은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증인의 전도지, 외면 못한 이유

2025년 07월 24일
광주에 쏟아진 빗방울 412㎜는 말 그대로 극한 호우였다. 내가 타던 KTX는 16분이나 지연되고 말았다. 마지막 역도 목포역에서 광주송정역으로 바뀌었다. 나야 거기서 내리면 됐지만 김제나 목포로 향하던 이들은 안내 방송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한창 칼럼을 마감하던 길이었다. 한 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어떤 문장을 구성할지에 잠기고 말았다. 마지막 역이 바뀌었다는 갑작스러운 안내 방송에 옆자리 할아버지가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몹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는 한참을 스마트폰 화면을 노려다 보았다.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는 화가 풀렸는지 모니터를 향해 손짓하더니 한 말씀을 건넸다. “글씨가 이렇게 작은 데 보여요?” 눈앞 마감보다는 할아버지의 화를 풀어드리고 싶어졌다. “그럼요. 잘 보이고 말고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말문을 터뜨렸다. 무려 한 시간이나 대화를 나눈 것이다.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내가 바라던 주제가 아니었다. 나라 걱정과 애국, 온통 가짜 뉴스로 가득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앞뒤 좌석에 아무도 없었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나는 때론 맞장구를 치기도 했고, 할아버지를 치켜세워드리기도 했다. 이 또한 과거에 나 역시 애국 보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대답이었다. 그가 자신만의 애국 세계를 말할 때마다 나는 조심스레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을 하러 호남 지역으로 내려가는지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이 캐나다에서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꺼낼 때마다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쓸쓸하고 외로운 단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나는 당신의 우국충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마지막 우리는 세 차례나 악수를 했다. 나는 그에게 축복해 마지않았다. 건강하시라고 말이다. 며칠 전 아시아문화전당으로 향하던 길목이었다. 칠순에 가까워 보이는 할머니, 여호와의증인이 내게 전도지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신앙 세계를 말했고, 나는 조심스레 맞장구를 치다 이번 폭우 잘 견디셨는지를 물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었다고 한다. 주저리 이어지는 신앙 이야기에 나는 근처 다리 이름의 유래를 물었다. 물음을 통해 이 지역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나 역시 과거에 독실한 신앙인이었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어디 가시는지, 어느 버스를 기다리는지, 이곳 근처에 사시는지를 물었다. 그는 중간중간 여호와를 믿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증언했지만, 그의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인심 좋은 할머니가 내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두 손을 맞잡았고 서로를 축복했다. 애국 보수와 독실한 신앙, 사람은 겪어 본 세계만을 이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계를 온몸으로 겪을 때에야, 지금 여기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모든 기록이 멈춘 순간

2024년 11월 26일
초등학생 2학년, 선생님이 쓰라던 날에만 꾸준히 쓰던 일기를 8년 전부터는 매일 컴퓨터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기를 달리 부르고 있습니다. 바로 ‘감회록’으로요. 일기의 확장판인데 감회가

운전면허와 선생님

2024년 11월 25일
수능을 마치면 하나둘 자동차 면허를 딴다고 하죠. 게을렀던 저는 반값으로 면허를 따게 해준다는 유혹에도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4년 전 여름, 삼촌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너와의 300일

2024년 11월 22일
저는 한번 붙들리면 강렬하게 사랑하는 스타일입니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죠. 신문이 그렇습니다. 이 신문 자유의새노래 말입니다. 신문을 만들 때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밤이 되든 낮이

천 년 화괴 앞 세월에게

2024년 11월 19일
이별을 맞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나 이별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아무도 없는 머나먼 별나라로 떠나는 기분 같습니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가장 먼 곳으로,

네가 카톡을 차단하든 말든

2024년 11월 19일
카톡 읽씹만큼이나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태도란 아마 퉁명스러운 대답일 겁니다. 말붙이려 선톡을 날려도 돌아오는 건 차가운 대답뿐이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말

병든 자를 바라본 당신의 시선

2024년 11월 18일
복음서에서 예수는 제자들을 부르고 온 갈릴리를 다닙니다. 가르치고 전파하며 사람들의 병과 약한 것을 고칩니다. 이 소문이 시리아에 퍼졌고 모든 앓는 이들이 예수에게 모여 고침을

너에게 닿을 수 있다면

2024년 11월 17일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이 지난 5월 발표한 ‘2024 결혼인식조사’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발견했습니다. 혼인 건수가 줄어든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21%의 사람들은 1순위를 ‘내 집 마련

사랑한다면 본질로

2024년 11월 16일
구약성서 포로기 후기의 이스라엘 화두는 ‘왜 나라를 빼앗겼느냐’였습니다. 전쟁의 패배는 곧 야훼 하느님의 죽음이며 신의 죽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쟁의 패배란 전능하고 위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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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6월 20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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