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Page 2

증인의 전도지, 외면 못한 이유

광주에 쏟아진 빗방울 412㎜는 말 그대로 극한 호우였다. 내가 타던 KTX는 16분이나 지연되고 말았다. 마지막 역도 목포역에서 광주송정역으로 바뀌었다. 나야 거기서 내리면 됐지만 김제나 목포로 향하던 이들은 안내 방송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한창 칼럼을 마감하던 길이었다. 한 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어떤 문장을 구성할지에 잠기고 말았다. 마지막 역이 바뀌었다는 갑작스러운 안내 방송에 옆자리 할아버지가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몹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는 한참을 스마트폰 화면을 노려다 보았다.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는 화가 풀렸는지 모니터를 향해 손짓하더니 한 말씀을 건넸다. “글씨가 이렇게 작은 데 보여요?” 눈앞 마감보다는 할아버지의 화를 풀어드리고 싶어졌다. “그럼요. 잘 보이고 말고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말문을 터뜨렸다. 무려 한 시간이나 대화를 나눈 것이다.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내가 바라던 주제가 아니었다. 나라 걱정과 애국, 온통 가짜 뉴스로 가득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앞뒤 좌석에 아무도 없었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나는 때론 맞장구를 치기도 했고, 할아버지를 치켜세워드리기도 했다. 이 또한 과거에 나 역시 애국 보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대답이었다. 그가 자신만의 애국 세계를 말할 때마다 나는 조심스레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을 하러 호남 지역으로 내려가는지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이 캐나다에서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꺼낼 때마다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쓸쓸하고 외로운 단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나는 당신의 우국충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마지막 우리는 세 차례나 악수를 했다. 나는 그에게 축복해 마지않았다. 건강하시라고 말이다. 며칠 전 아시아문화전당으로 향하던 길목이었다. 칠순에 가까워 보이는 할머니, 여호와의증인이 내게 전도지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신앙 세계를 말했고, 나는 조심스레 맞장구를 치다 이번 폭우 잘 견디셨는지를 물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었다고 한다. 주저리 이어지는 신앙 이야기에 나는 근처 다리 이름의 유래를 물었다. 물음을 통해 이 지역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나 역시 과거에 독실한 신앙인이었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어디 가시는지, 어느 버스를 기다리는지, 이곳 근처에 사시는지를 물었다. 그는 중간중간 여호와를 믿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증언했지만, 그의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인심 좋은 할머니가 내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두 손을 맞잡았고 서로를 축복했다. 애국 보수와 독실한 신앙,

모든 죽어가는 것들 앞에

2024년 11월 14일
모든 것이 죽어가는 겨울, 죽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모든 가을은 모든 존재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절의 조입인 듯합니다. 죽음은 언제나 인간에게 이별을 안겨다 줍니다. 무엇이든 영원하지

모든 개혁은 해방 너머로부터

2024년 11월 12일
벌써 7년 전 일이군요. 학부 시절 조직신학 수업에서 토론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주제는 방언이 실존하느냐 여부였습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 방언은 성서에서 사도행전(2,2)과

땋은 머리채 귀여운 두 볼

2024년 11월 10일
격하게 싸우는 사람들을 향해 저는 웃으면서 이런 상상을 합니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사귀지 그래?’ 세상만사가 이런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작동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이란 감정도 그런

당신에게 구할 한 가지

2024년 11월 08일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이 야훼 하느님을 원망하던 때였습니다. 야훼는 모세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죠. “장로 일흔 명을 세우고 고기를 먹일 것이다. 하루만 먹는 게 아니라 스무

회사 일도 못하는데 됨됨이도 없는 인간

2023년 10월 21일
무능한 인간을 상사로 둔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다. 월급 더 받는 건 고사하고 일 수습은 아랫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머리도 없고 이간질이나 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는 일이라곤 농땡이나 피우는 주제에 남들보다 덜 일하고도 힘든 내색 보일 때면 헛웃음만 나온다. 그런 무능한 상사가 지난 겨울 회사에 투하 됐다. 경력직이란다.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다. 대표에게 부장의 학력을 물으며 비웃던 그 저녁을 잊을 수 없었다. 얼마나 잘난 인간이기에 실무에서 한창 뛰던 우리 부장을 비웃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능한 상사의 업무 능력은 처참할 지경이다. 하나를 요구하면 두 일감 되돌려주는 꼴이다. 인수인계 문제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업무 능력 자체가 없었다. 당연히 소통이 될 리 만무했다. 말만 전공자일 뿐이지 이쪽 일과는 아무 관련 없는 인간이었다. 대표는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손 모자라는 마당에 어렵게, 어렵게 모신 분이다” 그러니 잘 대하라는 말이었다. 한두 달하다 관둘 줄 알았다. 웬걸 버티기에 돌입했다. 낙하산 인사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란다. 정체가 궁금했다. 처음 회사에 오면 가장 먼저 피해야 할 사람을 찾는다. 인간관계야 언제든 멀어지기도 하고 붙기도 하는 법이다. 이간질은 다르다. 이간질하는 인간은 상종 자체를 말아야 한다. 성장 가능성도 없고 영양가도 없기 때문이다. 말하는 이, 속은 후련할지 모른다. 그런 얘길 이제 막 입사한 사람에게 말한다는 건 인간관계가 고르지 않다는 증거다. 제1배제 대상인 이유다. 문제는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경우다. 대표가 그런 인간이다. 무능한 상사를 감싸느라 우리 부서를 나쁜 사람들이 모인 부서 취급하기 바빴다. “부장이 말이야 새로 들어왔으면 업무도 가르쳐주고 친하게 지내야지….” 무능한 상사는 이간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 부서 사람들을 악마로 만들었지만 시간은 착한 사람들 편이었다. 무능한 상사가 입사한지도 열 달이 지났다. 이제 사람들은 무능한 상사의 무능을 알아차린지 오래다. 인간관계도 엉망인지라 평판도 시원찮다. 요즘 좀 달라졌다. 어떡해서든 일감 구하느라 요란하게 뛰어 다닌다. 재계약 시즌이 다가와서야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가장 잘려야 할 톱3에 꼽혔다고 한다. 이젠 잘리거나 말거나 관심 없다. 때론 세상은 불공정하게 돌아가는 것만 같다. 어차피 무능한 상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온 만큼 관성대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랑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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