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기사
[단편소설] 너를 담은 단 한 장의 _____________
박연우는 관찰하는 인물이다. 사건을 끌고 가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곁에 있는 사람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이 소설은 그 시선이 김보라라는 인물을 향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담은 단편이다.
서사는 단순하다. 담임의 포스터 의뢰, 보라의 등장, 하룻밤 작업, 완성. 그러나 이 소설이 실제로 하는 일은 따로 있다. 보라가 연우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두 사람이 새벽 5시 포스터를 완성하고 나란히 눕는 순간까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천천히 스며드는 온도를 기록한다.
이 소설은 감각의 언어로 쓰여 있다. 연우는 첫 장면부터 발뒤꿈치를 들어 엄지발가락에 온 체중을 싣는다. 그 균형 잡기가 이 단편 전체의 태도다. 쏟아지지 않으면서 버티는 것, 웃음을 참으면서 관찰하는 것. 마지막에 버스를 향해 달리며 가슴 깊은 곳에서 숨이 터져 나왔다가 들이마실 때 허하게 비어지는 느낌으로 정류장에 도착하는 연우의 몸은, 하룻밤을 통째로 통과한 사람의 몸이다. 발뒤꿈치를 들어 균형을 잡던 몸이, 버스를 향해 전력으로 달리고, 마침내 문이 닫히는 버스 안에서 보라와 마주 보며 빙긋 웃는다. 그 몸의 궤적이 이 소설의 또 다른 서사다.
보라는 낙차(落差)로 이루어진 인물이다. 담임 앞에서의 공손함과 복도에서 내뱉는 욕설, 작품 앞에서의 몰입과 트랙패드를 모르는 당혹감, 파자마 차림의 덧니와 4B연필로 매화를 빚는 손가락. 그 낙차들이 쌓이면서 설명이 아니라 장면으로 보라라는 사람의 윤곽이 드러난다.
침이 가득 묻은 손가락을 종이에 문대 매화 잎을 번지게 하는 장면은 이 단편에서 가장 밀도 있는 순간이다. 신체와 재료와 감각이 뒤섞이는 그 찰나에 보라라는 인물의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압축되어 있다. 검지와 엄지가 더는 거멓게 되지 않을 때까지 문대고, 혓바닥에 손가락을 꾹꾹 눌러 침을 묻혀 다시 종이에 댄다. 보라에게 작업은 온몸으로 만드는 의식(儀式)이다.
새벽의 끝에서 보라는 속삭인다. “너무 열심히 안 살아도 돼. 연우야, 난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 하나 둘 셋 하고 눈을 감아.” 이어진 말은 보라가 보라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고 연우는 기억한다. 그 문장이 이 소설의 핵이다. 보라가 연우에게 건네는 것은 위로이자,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다.
하나. 둘. 셋. 연우는 잠이 든다.
폭풍 오기 전의 고요라는 말이 있듯, 보라의 연작을 미리 읽은 독자라면 보라의 이후를 안다. 그러나 이 단편은 보라의 그 이전을 담는다. 아직 무너지기 전의 보라, 침 묻은 손가락으로 매화를 빚어 만들던 보라, “하나 둘 셋”이라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견디던 소녀 김보라. 관찰하는 연우의 시선이 그 시간을 붙잡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