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목걸이를 맨 그대의 고운 목

2024년 11월 11일

너무 예쁘면 할 말을 잃기 마련입니다. ‘너무’라는 단어도 ‘정말’이란 말도 필요 없습니다. 말 그대로 “예쁘다” 이 한 마디면 됩니다. 또 너무도 거룩하면 할 말을 잃게 마련이죠.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 그 감정을 뭐라 말해야 할까요. 신 앞에 선 모세도 야훼 하느님의 영광 앞에 신발을 벗고 말았습니다.(탈출3,5) 선지자 이사야도 야훼의 거룩함 앞에 벌벌 떨었습니다.(이사6,5) 그렇습니다. 정직한 것 앞에서 인간은 할 말을 잃습니다. 정직하게. 말 그대로 예쁘고 거룩함 앞에 우리는 넋을 놓습니다. 따라서 그 예쁘고 거룩한 존재 앞에 ‘너무’ ‘정말’ ‘아주’ ‘상당히’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냥 예쁘다고, 그저 거룩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가끔, 아름다운 것을 보면 넋을 놓고 그대로 바라만 봅니다. 눈에 담고 싶어서, 마음에 새기고 싶어서, 그 자체로 보존하고 싶어서 바라만 볼 뿐입니다. 훼손되어서는 안 될, 순수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조금이라도 나의 생각이 닿기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내 것이 묻기라도 하면 안 될 것 같기에 지켜주고싶은 마음이 앞선 것이죠.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아름다운 것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착각합니다. 때로는 과장된 행위와 폭력을 동원해 가지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숭고한 것이므로 가지려는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이 함부로 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때가 묻고, 더러워지므로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잃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한 게 아닐까요. “너희의 하느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레위19,2)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로 보존하고 그 자체로 숭앙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에게 맞추고싶은 마음을 느낍니다. 하느님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은 진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그 아름다움 앞에 할 말을 잃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워서 그 자체로 지켜주고 싶은, 나의 생각이 묻지 않은 순수함을 보호해주고 싶은, 그래서 너를 닮고 싶은 마음을 느낍니다. 사랑하면 더 알고 싶은 모양입니다. 고양이 다루듯 그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조금씩 다가가고 싶습니다. 하느님도 그 마음을 아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고린1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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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의 전도지, 외면 못한 이유

광주에 쏟아진 빗방울 412㎜는 말 그대로 극한 호우였다. 내가 타던 KTX는 16분이나 지연되고 말았다. 마지막 역도 목포역에서 광주송정역으로 바뀌었다. 나야 거기서 내리면 됐지만 김제나 목포로 향하던 이들은 안내 방송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한창 칼럼을 마감하던 길이었다. 한 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어떤 문장을 구성할지에 잠기고 말았다. 마지막 역이 바뀌었다는 갑작스러운 안내 방송에 옆자리 할아버지가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몹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는 한참을 스마트폰 화면을 노려다 보았다.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는 화가 풀렸는지 모니터를 향해 손짓하더니 한 말씀을 건넸다. “글씨가 이렇게 작은 데 보여요?” 눈앞 마감보다는 할아버지의 화를 풀어드리고 싶어졌다. “그럼요. 잘 보이고 말고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말문을 터뜨렸다. 무려 한 시간이나 대화를 나눈 것이다.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내가 바라던 주제가 아니었다. 나라 걱정과 애국, 온통 가짜 뉴스로 가득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앞뒤 좌석에 아무도 없었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나는 때론 맞장구를 치기도 했고, 할아버지를 치켜세워드리기도 했다. 이 또한 과거에 나 역시 애국 보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대답이었다. 그가 자신만의 애국 세계를 말할 때마다 나는 조심스레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을 하러 호남 지역으로 내려가는지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이 캐나다에서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꺼낼 때마다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쓸쓸하고 외로운 단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나는 당신의 우국충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마지막 우리는 세 차례나 악수를 했다. 나는 그에게 축복해 마지않았다. 건강하시라고 말이다. 며칠 전 아시아문화전당으로 향하던 길목이었다. 칠순에 가까워 보이는 할머니, 여호와의증인이 내게 전도지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신앙 세계를 말했고, 나는 조심스레 맞장구를 치다 이번 폭우 잘 견디셨는지를 물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었다고 한다. 주저리 이어지는 신앙 이야기에 나는 근처 다리 이름의 유래를 물었다. 물음을 통해 이 지역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나 역시 과거에 독실한 신앙인이었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어디 가시는지, 어느 버스를 기다리는지, 이곳 근처에 사시는지를 물었다. 그는 중간중간 여호와를 믿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증언했지만, 그의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인심 좋은 할머니가 내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두 손을 맞잡았고 서로를 축복했다. 애국 보수와 독실한 신앙, 사람은 겪어 본 세계만을 이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계를 온몸으로 겪을 때에야, 지금 여기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교회 방송실의 추억

10년 전 이맘때는 밤을 새는 일이 잦았습니다. 교회 일 때문이었는데요. 11월 마지막 주 추수감사 절기를 보내고 곧바로 대림 절기를 맞아 업무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방송실 근무가 만만치 않더군요. 예배 때 사용할 PPTX 자막을 만드는 일부터 동영상 제작까지, 교회학교와 학생부, 청년부에서 떠넘긴 자료가 한 아름이었습니다. 저를 바쁘게 만든 부서들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교회학교 교사직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열 몸이라도 모자란 상황은 중학생 때부터 매년 반복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방송 일을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2학년과 일병 달 때까지 일하다가 교회 다니기를 관뒀으니, 7년쯤이겠네요. 10년 전 이맘때는 군 입대를 앞두고 슬슬 교회 일을 인수인계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언제나 일들로 가득한 방송실에 발 디디겠다던 학생과 청년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물려줄 수 없는 위기의 상황에서 당당히 두 손 들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재현쌤이 불쌍해 보여서 방송실에 들어왔다”던 저의 동지 안중현 형제였습니다. 그때의 고마움과 설렘은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방송실 근무에 신바람이 났습니다. 오랜 시간 혼자 근무하던 방송실에 생기가 불기 시작한 것이죠. 방송 일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요. 오히려 피드백을 받기도 하면서 변화를 느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구나’를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문학의 밤을 준비한다며 중현 형제가 대본을 가져온 일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처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런 걸 연극이라고 하기에 스토리도 없었고 교훈도 없었습니다. 재미도 없었고요. 편집으로 커버 쳐야 할 생각에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연극에 필요한 배경을 손으로 만들기엔 인력이 들 테니 빔 프로젝터로 우리가 그래픽을 활용해 배경을 만들자고 말입니다. 마이크를 들고 일일이 대사를 읊기엔 학생들도 힘을 테니 저는 아예 미리 녹음하자고 조언했습니다. OST와 효과음도 마련했습니다. 영상으로 만들어 연극할 땐 재생만 하면 된다는 신박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중현 형제는 옆에서 영상 편집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곁에 누군가 있어준다는 사실 자체에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람에 대한 한줄기 빛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제가 교회를 탈퇴해도, 유일하게 연락하고 안부 인사를 건네주는 유일한 사람이 중현 형제입니다. 그 고마운 인연,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게 왠지 모르게 고맙네요. 티스토리 오블완 챌린지도 오늘로 끝입니다. 그러나 이 지면의 칼럼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입니다. 이 마지막 칼럼을 고마운 중현 형제의 이야기로 끝맺고 싶습니다.

모든 기록이 멈춘 순간

초등학생 2학년, 선생님이 쓰라던 날에만 꾸준히 쓰던 일기를 8년 전부터는 매일 컴퓨터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기를 달리 부르고 있습니다. 바로 ‘감회록’으로요. 일기의 확장판인데 감회가

운전면허와 선생님

수능을 마치면 하나둘 자동차 면허를 딴다고 하죠. 게을렀던 저는 반값으로 면허를 따게 해준다는 유혹에도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4년 전 여름, 삼촌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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