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 Page 11

[팔짱만 껴도 좋은걸②] 펭-귄, 페—-ㅇ귄, 뽀뽀 —- 우

여자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애착인형을 데려왔다. 정확히 몇 월 며칠에 왔는지를 서로가 모르는 걸 보면 처음엔 별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에 저장된 걸 보면 애착인형의 첫 사진은 지난해 9월 20일이다. 9월 전후로 애착인형을 데려온 것이다. 인형을 산 건 10년도 더 됐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동생에게 부탁해 에버랜드에서 사 왔다는 것. 영혼 없는 눈망울, 무표정한 얼굴, 입을 여닫을 수 없는 부리. 여자친구는 애착인형더러 “킹 받는다”고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출근하고 집에 없는 동안, 장난끼가 발동했다. 여자친구가 벗어놓은 잠옷을 내가 애착인형에게 입혀 놓고 나간 것이다. 저녁,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나는 능청맞게 장난을 쳤다. “어? 오늘 출근 안했어요?” 여자친구가 맞장구를 쳤다. “뭐지. 그럼 난 뭐지.” 애착인형은 울 줄도 안다. “펭~귄” 여자친구 특유의 발음에 착안해 나는 “펭~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도 재밌다고 따라한다. “펭~귄” 우리끼리만 맛있는 걸 먹으면 애착인형은 삐진다. “펭~~귄” 우리끼리만 재밌는 데 가도 애착인형은 삐진다. “페~~~~ㅇ귄” 그런 애착인형을 여자친구는 무척 아낀다. 내가 애착인형에게 뽀뽀를 하면 “펭귄OO 괴롭히지 마욧~!”이라며 걱정도 해준다. 그런 애착인형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올해 애착인형 2호를 데려온 것이다. 그것도 판교에서 온 녀석이다. 우리의 애착인형과

[커버스토리] 10년이 지나고 나에게 선물 받은 나의 방

10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자 재채기가 나왔다. 이 정도 먼지면 바깥에서 털었어야 했다. 중학생 시절에 만들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 과제를 꺼내 들자 허술하게 관리한 그간의 세월이 먼지만큼 보였다. 뇌리에 남은 미술 선생님 이미지는 두 가지다. 섬세함과 예민함을 갖춘 바람에 우리들에게까지도 엄격함을 요구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이기적인 인간상, 또 하나는 부처상 앞에서 백발배로 성찰하며 자신의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가다듬던 인간상. 그 짧은 반 오십 살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어간 사람들 셋을 보았는데 그 중 한 분이 미술 선생님이었다.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던 예민함과 섬세함을 극대화해 끝내 자신의 성격조차 조각하듯, 하나하나 새겨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런 어른이 가르쳐주셔서 고마웠다. 선생님은 신문지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라 하셨고, 좋아하는 간판을 그리라고 흰 종이를 내주셨고, 배달 음식으로 남은 나무젓가락으로 탑을 쌓아보라 하셨고. 마지막으론 내 방 만들기라는 거대한 과제를 내주셨다. 즐거웠다. 왜냐하면 나는 늘 내 방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집에서 놀 듯, 학교에서도 놀아보라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선지 학교 가기가 가벼웠고 하나 둘 만들어가는 교실 속 광경을 느끼자 내 세상 같았다. 고입선발고사를 위한 미술 공부는 재미없었다. 지금도 머리에 남는 교과서 속 인물은 독창적인 팝아트 거장 엔디 워홀(Andy Warhol)밖에 없다. 점 하나 찍고 돈 세탁이나 하는 줄만 알았던 작품의 세계를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편견을 집어치우고 말았다. 즐겁게 제작하던 10년 전 작품을 다시 손에 들었다. 내 방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작품들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지면은 여행을 떠나고 채워야 했지만, 코로나 파동으로 인해 방 꾸미기 기사로 갈음한다.

[내 맘대로 교회 탐방] 1945년 12월 2일, 이곳에 「경동교회」가 섰습니다①

2019년 09월 09일
조영남이 교회 옥상에서 공연을 펼치자 한국교회는 발칵 뒤집혔다. 동아일보는 1970년 9월 16일자 기사에서 “인기 가수의 팝송을 곁들인 새로운 예배 형식을 시도하여 일반 교역자나 많은 청소년 신도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며 기존 교회의 저항과 젊은이들의 관심을 보도했다. ‘京東敎會 새 形式의 파문’. 경동교회는 파격적 교회였고 강원용 목사는 과감한 성직자였다. 따라서 틀에 매이지 않았다. 교회는 곧장 두 의견으로 갈라졌다. 박자도 느리고 재미없는 찬송가 대신 팝송을 도입하자는 입장과 과연 바꾼다고 될 문제인가 회의적 시각이 충돌했다. 50년이 지난 현재 드럼과 기타 없는 교회는 없다.   옥상교회 위 조영남파격적 교회 행보 보이자 두 갈래 갈라진 한국교회 신 죽음의 시대?70년대 장충동 경동교회 하지 못한 일을 진행하다 ◇춘원도 혀를 차게 만든 교회 지상주의(至上主義) 50년이 지난 파격적 교회는 지금도 장충동에 우뚝 서 있다. 한국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춘원(春園) 이광수가 교회 지상주의를 “무엇이건 교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은 모두 악이라 하였다”고 비판했듯, 오늘날 교회는 EDM(Electronic Dance Music·전자음악)조차 어색해한다. 하여튼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면 감정 판단으로 “하나님 중심주의”를 남용한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2019년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교회보다 재밌는 건 많다. 이젠 청년들도 일상에 이리 치이고 저리치어 교회에 발도 들여놓지 않는 시대를 살아간다. 오죽하면 ‘신 죽음의 시대’라고까지 표현했을까? 경동교회는 살아남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취하지 않았다. 옥상교회에까지 딴따라(?)를 부른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지코(ZICO)가 ‘내게 강 같은 평화’를 부르는 그런 느낌? 암만 생각해도 이 비유도 틀린 것 같다. (절레절레) 그런데 1969년 11월, 강원용 담임목사는 한국교회가 이제껏 하지 못한 일을 과감히 진행한다.

[주마등] 가영이는 어떻게 지내니?

2019년 05월 01일
이번 호 ‘주마등’은 교회 내 성범죄와 청년 착취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독에 주의해 주십시오. “가영이는 어떻게 지내니?” 헤어진 지 6년, 어머니가 묻자 그간 잊힌 실루엣이 떠올랐다. 짧으면서도 길게 느껴질 1,825일, 어느새 결혼했단 소식을 우연히 접하자 어리벙벙 새벽까지 남아 졸며 과제하던 여명도 함께 떠올랐다. 여자친군 아니고, 같이 교회 다니던 누나 이야기다. 10년 전, 이백사십칠 제곱미터 예배당 앞자리서 벌떡 일어나 도착한 주일학교 아이들에 웃으며 반겨준 바보 같은 누나다. 워낙 활발한 교회 활동에 사모님조차 처음엔 신천지 아니냐 의심까지 한 순진무구 누나, 신가영. 누구든 야유와 함께 반응조차 않은 아재 개그에 깔깔 웃으며 “다신 그런 개그하면 왕따 당할 거라” 걱정해 준 우리 누나, 가영이 누난 어느 순간 조용히 교회를 떠났다. 인사 한 마디 없이. 떠나고서 발견한 한 가지 누나가 떠나기 직전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이란 메시지를 자주 접했다. 요즘도 교회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표현을 접하기 쉽다. 여주봉 목사가 펴낸 ‘예배회복’을 정독한 것도 그 무렵이다. 달리는 버스, 먼 대전으로 향한 작은 여행에도 1시간 30분 설교는 가슴을 뜨겁게 했다. 인간 예수도 죽음 앞에 슬피 울었고, 탁자를 뒤엎어 분통 터뜨렸고, 독사를 내세워 욕도 했으니 먹고 사는 문제 걱정 말라며 희로애락을 인간 몸으로 경험했을 예수도 내가 겪은 신앙의 매너리즘을 이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건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였다. 회개 아닌 진정한 회개를 외친지 10년이 지났다. 10년 전 위기가 10년 후에야 살에 와 닿게 시렸으니, 중고등·청년 사역 적임자로 소문난 전병욱과 이동현, 문대식 설교를 곰곰이 들어보면 왜 이런 설교에 시간을 허비할까 되물었다. 외로우니까. 혼자로 남기엔 무서우니까. 헬조선이란 거센 풍파를 맞닥뜨리기 버거운지라 하교하고 돌아간 교회에 학생들이 손에 잡은 피아노와 기타는 말이 없었다. 제도권은 참 든든하다. 나를 제도권에 숨기면 자연인 가영이 누나가 아닌 경건한 신앙인이자 주일학교 교사인 신가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혼자선 힘든 일도 제도권과 구조는 능히 해낸다. 교회만 할 수 있는 일은 매년 여름과 겨울, 수련회로 이어진다. 목사님의 고백, 목사님의 사과 여름과 겨울, 수련회 시즌이면 교회는 노아의 방주가 된다. 세상과 교회로 선 긋고 세상에 물들지 말라던 플라톤 뺨치는 이데아에 바울이 의도한 대로 메시지가 전달 된 걸까. 학생들은 노아로 변신했고 가영이 누난 강한 여성 에스더로 변신했고 때론 드보라로 나타났다. 선택 받은 자, 태아부터 너를 알았다던 예레미야의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 텐데, 목사님이 따로 부르면 의아했을 것이고,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영이 누나에겐 교회에서의 삶은 신가영의 당연한 삶이고 끊어지기 힘든 또 다른 신가영이었을 것이다. 목사님과 청년들이 함께 한 독일에서의 여행은 더욱 생생했을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을지, 이미 사라진 고문박물관을 뒤로하고 아쉬워하던 목사님 뒷모습에서 어젯밤 가영이 누나와의 잠자리는 누나에게 헬조선을 견뎌내야 할 잔인해질 기회였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너에게 외로움의 영이 느껴진다고 머리를 쓰다듬었을 땐 내 안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순간이었을 것이다. 영의 눈이 밝은 목사님은 누구보다 가영이 누날 알아주고 이해해 주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영적으로 알아봐준 목사님이 든든했을 것이다. 그런 목사님이 더듬거린 모습이 의아했을 것이고, “너 교회 망하는 거 좋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으로 시작하는 영적인 사과에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거울 앞에 초췌하게 섰을 것이고, 목사님의 명예를 단 칼에 쳐낼 정의로운 드보라 대신 말고의 귀를 자른 성급한 베드로가 서 있었을 것이다. 구슬프게 보이던 예수님 성화 편한 옷차림으로 목사님의 조수석에 앉은 새벽, 그때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선배는 말했다. “이 세상에 안 힘든 젊은이가 어딨겠냐”고. 누구보다 힘든 사춘기, 청년 시절을 알아주고 이해해 줄 거라 목사님을 굳게 믿었을 것이다. 집안 사정부터 어떻게 자라왔는지, 혼자 지내는 게 얼마나 외로울 지 누구보다 더 잘 알 테니까. 아라뱃길과 선유도공원을 지나쳤다. 서울에서 멀어지자 초조해졌고 집으로 데려 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런 방법으로, 외로움을 해결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돌아오던 길은 새벽이란 암흑에 가려져 이따금 가로등을 지나칠 때마다 목사님의 얼굴이 보였을 것이다. 외각으로 빠져나올 때 쯤, 너무도 멀리 와 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편한 옷차림으로 다가와 안아주고 입술을 닿으려 할 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 남자친구랑 너랑 뽀뽀하는 상상하니까 너무 질투가 난다.” 하지 말라고,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목사님 집에 붙은 예수님 성화는 구슬프게 우는 듯 보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을린 눈망울에 새겨진 살려달라는 비명을. 방송실에서 퇴근할 무렵, 유독 불 켜진 사무실에 혼자서 일하던 누나에게 도망치라 말 한마디 해주었다면. 가영이 누나가 자격증 시험 보러 목사님께 주일 예배를 빠져도 되느냐 여쭈었을 때 그 대답이 생각났다. “가영이 쟨 말야, 돈을 너무 좋아해. 사람이 돈에 매여선 안 된다고.” 선배는 옳은 말을 했다. “세상에 안 힘든 젊은이가 어딨겠냐”던 말을 목사님이 발화할 때 아 다르고 어 달라졌다.

하느님, 주님께로 가는 길이 멉니다

2018년 09월 09일
서울, 희망여행 <3> 장대비가 쏟아졌다. 확 내렸다가 금방 그칠 기세는 아니었다. 향린과 영락교회로 향하려다 피신해야했다. 예상과 달랐다. 명동성당을 마지막에 오려고 했는데……. 생각과 달리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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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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