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등] 가영이는 어떻게 지내니?

2019년 05월 01일

이번 호 ‘주마등’은 교회 내 성범죄와 청년 착취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독에 주의해 주십시오.


“가영이는 어떻게 지내니?”

헤어진 지 6년, 어머니가 묻자 그간 잊힌 실루엣이 떠올랐다. 짧으면서도 길게 느껴질 1,825일, 어느새 결혼했단 소식을 우연히 접하자 어리벙벙 새벽까지 남아 졸며 과제하던 여명도 함께 떠올랐다.

여자친군 아니고, 같이 교회 다니던 누나 이야기다. 10년 전, 이백사십칠 제곱미터 예배당 앞자리서 벌떡 일어나 도착한 주일학교 아이들에 웃으며 반겨준 바보 같은 누나다. 워낙 활발한 교회 활동에 사모님조차 처음엔 신천지 아니냐 의심까지 한 순진무구 누나, 신가영.

누구든 야유와 함께 반응조차 않은 아재 개그에 깔깔 웃으며 “다신 그런 개그하면 왕따 당할 거라” 걱정해 준 우리 누나, 가영이 누난 어느 순간 조용히 교회를 떠났다. 인사 한 마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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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서 발견한 한 가지
누나가 떠나기 직전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이란 메시지를 자주 접했다. 요즘도 교회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표현을 접하기 쉽다. 여주봉 목사가 펴낸 ‘예배회복’을 정독한 것도 그 무렵이다. 달리는 버스, 먼 대전으로 향한 작은 여행에도 1시간 30분 설교는 가슴을 뜨겁게 했다.

인간 예수도 죽음 앞에 슬피 울었고, 탁자를 뒤엎어 분통 터뜨렸고, 독사를 내세워 욕도 했으니 먹고 사는 문제 걱정 말라며 희로애락을 인간 몸으로 경험했을 예수도 내가 겪은 신앙의 매너리즘을 이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건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였다. 회개 아닌 진정한 회개를 외친지 10년이 지났다. 10년 전 위기가 10년 후에야 살에 와 닿게 시렸으니, 중고등·청년 사역 적임자로 소문난 전병욱과 이동현, 문대식 설교를 곰곰이 들어보면 왜 이런 설교에 시간을 허비할까 되물었다.

외로우니까. 혼자로 남기엔 무서우니까. 헬조선이란 거센 풍파를 맞닥뜨리기 버거운지라 하교하고 돌아간 교회에 학생들이 손에 잡은 피아노와 기타는 말이 없었다. 제도권은 참 든든하다. 나를 제도권에 숨기면 자연인 가영이 누나가 아닌 경건한 신앙인이자 주일학교 교사인 신가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혼자선 힘든 일도 제도권과 구조는 능히 해낸다. 교회만 할 수 있는 일은 매년 여름과 겨울, 수련회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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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고백, 목사님의 사과
여름과 겨울, 수련회 시즌이면 교회는 노아의 방주가 된다. 세상과 교회로 선 긋고 세상에 물들지 말라던 플라톤 뺨치는 이데아에 바울이 의도한 대로 메시지가 전달 된 걸까. 학생들은 노아로 변신했고 가영이 누난 강한 여성 에스더로 변신했고 때론 드보라로 나타났다.

선택 받은 자, 태아부터 너를 알았다던 예레미야의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 텐데, 목사님이 따로 부르면 의아했을 것이고,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영이 누나에겐 교회에서의 삶은 신가영의 당연한 삶이고 끊어지기 힘든 또 다른 신가영이었을 것이다.

목사님과 청년들이 함께 한 독일에서의 여행은 더욱 생생했을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을지, 이미 사라진 고문박물관을 뒤로하고 아쉬워하던 목사님 뒷모습에서 어젯밤 가영이 누나와의 잠자리는 누나에게 헬조선을 견뎌내야 할 잔인해질 기회였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너에게 외로움의 영이 느껴진다고 머리를 쓰다듬었을 땐 내 안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순간이었을 것이다.

영의 눈이 밝은 목사님은 누구보다 가영이 누날 알아주고 이해해 주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영적으로 알아봐준 목사님이 든든했을 것이다. 그런 목사님이 더듬거린 모습이 의아했을 것이고, “너 교회 망하는 거 좋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으로 시작하는 영적인 사과에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거울 앞에 초췌하게 섰을 것이고, 목사님의 명예를 단 칼에 쳐낼 정의로운 드보라 대신 말고의 귀를 자른 성급한 베드로가 서 있었을 것이다.

구슬프게 보이던 예수님 성화
편한 옷차림으로 목사님의 조수석에 앉은 새벽, 그때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선배는 말했다. “이 세상에 안 힘든 젊은이가 어딨겠냐”고. 누구보다 힘든 사춘기, 청년 시절을 알아주고 이해해 줄 거라 목사님을 굳게 믿었을 것이다. 집안 사정부터 어떻게 자라왔는지, 혼자 지내는 게 얼마나 외로울 지 누구보다 더 잘 알 테니까.

아라뱃길과 선유도공원을 지나쳤다. 서울에서 멀어지자 초조해졌고 집으로 데려 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런 방법으로, 외로움을 해결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돌아오던 길은 새벽이란 암흑에 가려져 이따금 가로등을 지나칠 때마다 목사님의 얼굴이 보였을 것이다. 외각으로 빠져나올 때 쯤, 너무도 멀리 와 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편한 옷차림으로 다가와 안아주고 입술을 닿으려 할 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 남자친구랑 너랑 뽀뽀하는 상상하니까 너무 질투가 난다.”

하지 말라고,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목사님 집에 붙은 예수님 성화는 구슬프게 우는 듯 보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을린 눈망울에 새겨진 살려달라는 비명을. 방송실에서 퇴근할 무렵, 유독 불 켜진 사무실에 혼자서 일하던 누나에게 도망치라 말 한마디 해주었다면. 가영이 누나가 자격증 시험 보러 목사님께 주일 예배를 빠져도 되느냐 여쭈었을 때 그 대답이 생각났다. “가영이 쟨 말야, 돈을 너무 좋아해. 사람이 돈에 매여선 안 된다고.” 선배는 옳은 말을 했다. “세상에 안 힘든 젊은이가 어딨겠냐”던 말을 목사님이 발화할 때 아 다르고 어 달라졌다.

4년 만에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답했다. 교회서 함께한 추억을 말하고 싶었지만, 뭔가 문자는 냉랭했다. 너에겐 추억일 테지만, 누군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아니겠냐는 그 느낌.

목사님은 항소심에서도 연인 사이였고 합의에 의한 관계라 강제성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목사님은 로맨스로 느낄 때, 누군가는 에우고픈 그것임을 목사님만 모르는 듯 했다. 어느덧 사무실의 가영이 누나에서 왜소한 갓 스무 살 민찬이가 그 자리를 지켰을 때 머지않아 나는, 죽어버린 신을 두고 교회를 나왔다. 두 번째 해가 지나 민찬이를 다시 보기 전까지 가려진 가영이 누나의 비명을. 민찬이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연예계가 동물의 왕국이라 던져버린 직구에 누군가는 교회를 떠올린다. 가영이 누나를 생각해서라도 기억에서 잊어야 하건만. 제도권 교회를 떠난 지금에서도 누나의 실루엣이 선명하다. 나는 다시 제도권 교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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