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 Page 10

[팔짱만 껴도 좋은걸②] 펭-귄, 페—-ㅇ귄, 뽀뽀 —- 우

여자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애착인형을 데려왔다. 정확히 몇 월 며칠에 왔는지를 서로가 모르는 걸 보면 처음엔 별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에 저장된 걸 보면 애착인형의 첫 사진은 지난해 9월 20일이다. 9월 전후로 애착인형을 데려온 것이다. 인형을 산 건 10년도 더 됐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동생에게 부탁해 에버랜드에서 사 왔다는 것. 영혼 없는 눈망울, 무표정한 얼굴, 입을 여닫을 수 없는 부리. 여자친구는 애착인형더러 “킹 받는다”고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출근하고 집에 없는 동안, 장난끼가 발동했다. 여자친구가 벗어놓은 잠옷을 내가 애착인형에게 입혀 놓고 나간 것이다. 저녁,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나는 능청맞게 장난을 쳤다. “어? 오늘 출근 안했어요?” 여자친구가 맞장구를 쳤다. “뭐지. 그럼 난 뭐지.” 애착인형은 울 줄도 안다. “펭~귄” 여자친구 특유의 발음에 착안해 나는 “펭~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도 재밌다고 따라한다. “펭~귄” 우리끼리만 맛있는 걸 먹으면 애착인형은 삐진다. “펭~~귄” 우리끼리만 재밌는 데 가도 애착인형은 삐진다. “페~~~~ㅇ귄” 그런 애착인형을 여자친구는 무척 아낀다. 내가 애착인형에게 뽀뽀를 하면 “펭귄OO 괴롭히지 마욧~!”이라며 걱정도 해준다. 그런 애착인형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올해 애착인형 2호를 데려온 것이다. 그것도 판교에서 온 녀석이다. 우리의 애착인형과

[커버스토리] 10년이 지나고 나에게 선물 받은 나의 방

10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자 재채기가 나왔다. 이 정도 먼지면 바깥에서 털었어야 했다. 중학생 시절에 만들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 과제를 꺼내 들자 허술하게 관리한 그간의 세월이 먼지만큼 보였다. 뇌리에 남은 미술 선생님 이미지는 두 가지다. 섬세함과 예민함을 갖춘 바람에 우리들에게까지도 엄격함을 요구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이기적인 인간상, 또 하나는 부처상 앞에서 백발배로 성찰하며 자신의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가다듬던 인간상. 그 짧은 반 오십 살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어간 사람들 셋을 보았는데 그 중 한 분이 미술 선생님이었다.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던 예민함과 섬세함을 극대화해 끝내 자신의 성격조차 조각하듯, 하나하나 새겨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런 어른이 가르쳐주셔서 고마웠다. 선생님은 신문지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라 하셨고, 좋아하는 간판을 그리라고 흰 종이를 내주셨고, 배달 음식으로 남은 나무젓가락으로 탑을 쌓아보라 하셨고. 마지막으론 내 방 만들기라는 거대한 과제를 내주셨다. 즐거웠다. 왜냐하면 나는 늘 내 방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집에서 놀 듯, 학교에서도 놀아보라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선지 학교 가기가 가벼웠고 하나 둘 만들어가는 교실 속 광경을 느끼자 내 세상 같았다. 고입선발고사를 위한 미술 공부는 재미없었다. 지금도 머리에 남는 교과서 속 인물은 독창적인 팝아트 거장 엔디 워홀(Andy Warhol)밖에 없다. 점 하나 찍고 돈 세탁이나 하는 줄만 알았던 작품의 세계를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편견을 집어치우고 말았다. 즐겁게 제작하던 10년 전 작품을 다시 손에 들었다. 내 방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작품들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지면은 여행을 떠나고 채워야 했지만, 코로나 파동으로 인해 방 꾸미기 기사로 갈음한다.

[시대여행] 잔잔한 세 남자의 인생에 스며든 노래방 속 작은 심령대부흥성회③

2020년 01월 08일
시대여행 <3> 노래방 선택에 실패한 세 남자 그럼에도 기어이 찾아낸 성가 다 함께 완창한 추억의 그 곡 제목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궁금하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말해야겠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로 경건의 포문을 열고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찬송가를

[지금, 여기] 2019년 마지막 여명 이후 「LP와 함께」에 머문 발걸음

2019년 12월 31일
2010년대와 2019년의 마지막 해를 보내자 이내 추워졌다. 정처 없이 떠돌다 카페를 찾아 헤맸다. 그 전날 지도에서 탐색했건만 프랜차이즈 카페까지는 꽤 걸어가야 했다. 아무 데나 가겠다고 게으름 피워댄 탓에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2-30분 더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근처 다방의 따뜻한 커피라도 상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건물 이곳저곳 눈팅하다 2층에 쓰인 반가운 문구와 마주쳤다. “안에 계신가요?” 비좁은 계단엔 책들로 쌓였고 조명도 켜두지 않아 어둑했다. 2층 희미하게 번지던 조명에 의지해 걸어 올라가자 카페 유리문이 보였다. 사장님을 부르니 한동안 잠잠하던 좌측 가정집으로 보이는 통로에서 나오자 인사를 건넸다. 주황빛 감도는 카페에 자연스런 노란 옷을 보고서 사장이라 생각했다. 사장님이 손가락을 더듬자 주황빛 조명이 강해졌다. 아직 영업 종료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저녁 어간이라 커피는 마실 수 없어 3,500원 초코라떼를 주문했다. 하나만 주문하기 껄끄러워 디저트도 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재료 소진인 상황에 배꼽이 배보다 커질 상황이라 단념했다. 추억 돋는다 돋아, LP와 함께한 풍경 외투를 벗자 조금씩 영안 밝아지듯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계산대 옆 규칙 잃은 책들은 헌책방 느낌을 주었고 벽면 가득 채운 LP(Long Playing Record)가 카페 이름을 상기시켰다. 구석 화초들은 조명을 견제하듯 주황빛을 보정했고 가운데 흔들의자는 천과 쿠션으로 옷 입고서 앙증맞게 위치해 있었다. 푹신한 의자보다 단 위의 딱딱한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팔짱 낀 채 추위를 녹였다. LP로 도배된 맞은편 벽면엔 컬러 풍 ‘별들의 故鄕’ 흑백 풍 ‘에펠탑’ ‘빅벤’이 크고 작게 붙었다. 풍금(風琴)으로 보이는 악기 위 프레디 머큐리와 아무리 봐도 익숙하지 않을 4인조 가수 옆으로 옛 교과서와 다이얼 전화기가 놓였다. 팔짱 낀 채 중앙에서 카페를 둘러보니 사장님이 물었다. “저건 몇 년도로 보이세요?” “1960년대 같은데요?” 아니었다. 집에서 검색해보니 ‘별들의 고향’은 1974년 작이다. 구체적 년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벽면 에펠탑과 빅벤, 해금 위 머큐리만 알면 됐다. 카페 콘셉트는 7080에 맞춘 듯했다. 마침 책장에 꽂인 LP 앞 턴테이블과 오디오 스피커가 보였다. 90년생이 LP와 가까울 리 없다. MP3 대신 700MB CD를 구워 라디오 CD플레이어로 듣던 시절이 고작 10년 전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모바일로 접속한 PC화면을 보자 와이파이에게 고마워하던 때가 엊그제였다. 알던 팝송도 별로 없어 사장님의 선의를 추운 몸 녹이느라 주목하지 못했다. 카페 이름처럼 LP 수백 장이 깔려 있으나 정작 LP를 못 알아보는 90년생 아저씨를 위해 사장님이 선곡을 이어간 것이다. 어렸을 때 본가(本家) 흔들의자는 거실에 고즈넉이 대기했다.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 졸음이 왔는데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편해 침대로 이동할 즈음 졸음이 물러가곤 했다. 베란다로 이동한 본가 흔들의자는 이제 곧 영원한 안식을 맞이할 듯 낡아 버렸다. 7-80년대 책만 쌓인 줄 알았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니 ‘코믹 메이플스토리 RPG’가 무척 정겨웠다. 그 62권 75권이 15권, 17권이면 더욱 반가웠을 텐데. 흔들의자와 만화책보다 레트로토피아로 이끌어준 건 냄새 덕분이다. 가게를 따뜻하게 데워준 가스난로에서 풍겨온 냄새. 초등학교 4학년까지 연통 달린 석유난로를 봄 겨울이면 봐야만 했다. 냄새가 지독해도 껴입은 파카에 교실로 도착하면 반 친구들이 삼삼오오 손부터 녹이던 풍경도. 어느 날부터 천장에 박아놓은 히터를 보며 “우리가 사는 시대가 좋아지고 있다”며 껄껄대다 아재가 되고 말았다. 이런. 쯧쯧. 냄새에서 끝나지 않았다. 완성된 초코라떼를 가지고 책상에 올려둔 채 노트북을 켜자 학부시절 도망 온 서점 한 구석이 떠올랐다. 인생은 쓴 거라며 아메리카노에서 달달한 인생을 꿈꾼다고 초코라떼로 바꾸던 그 해, 나는 전공을 포기했다. 에세이를 탐닉하고 과제엔 어떤 괴상한 단행본을 인용할까 간만보다 초코라떼를 마시곤 했는데 그게 벌써 2년 전 얘기가 되고 말았다. LP와 함께 난로 냄새, 오래된 흔들의자 7080 풍경 가득 안은 카페 초코라떼의 단맛 사장님 선의도 잊은 채 통화, 자유론 새도 부럽지 않았다 설렌 마음, 내년의 행복을 선언하며 사장님은 더 콜링(The Calling)의 “Wherever you will go”를 틀었다. LP는 아니었고 오디오 음악인 모양이다. 저녁 가을바람이 불던 15년 전 흔들의자에 앉을 때면 지금의 생생정보통 따위의 프로에서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의 “Sk8er Boi”가 BGM처럼 깔려 맛 집에서 엄지를 척 들고 또 올 거라던 칭찬이 보일 것만 같았다. 어쩜 들어봄직한 음악만을 틀어주셨을까 싶었지만. 죄송하게도 노래는 나중에 음미해야 했다. 선배와의 통화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조금 있다가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했건만. ‘조금 있다가’가 5분이 될 줄은 몰랐다. 그새 카페를 둘러보고 사장님과 동해시 뉴딜 사업에 대한 대화를 마치고 이제 막 자리에 앉자 선배가 떠올랐다. 사장님 마음은 들뜬 상태다. 지난 하반기, 국비 250억으로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이곳 카페가 포함된 발한지구와 삼화지구를 개발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발한지구는 ‘개항문화발전소’ ‘마도로스거리’ ‘복합문화공방’ ‘청소년창작거리’ ‘야시장과 호스텔’을 조성하고 개발할 예정이다. 카페 사장님도 지금의 콘셉트를 아이템 삼아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바꿀 게 있으면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선배와 통화 가능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랜 시간 통화하며 10년간의 회포(?)를 말할까 싶었지만. 더는 과거에 대해 할 말이 없었다. 굳이 케케묵은 2010년대를 논할 필요도 없었고. 과거 대신 현재의 시간에서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광복홍콩 시대혁명] “괜찮습니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나는 이 말을 하고 눈물을 삼켰다

2019년 11월 18일
대학 벽보를 훼손하는 이들과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 본토에 “홍콩을 기억하며 함께하겠다” 우리는 연결된 자유 세계시민 홍콩이 자유를 되찾는 날까지 광복홍콩 시대혁명, 홍콩힘내 웃으며 말했지만. “준비되면 말씀해주세요”라고 카메라를 들자 한 문장도 제대로 내 뱉지 못한 채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하려던 메시지가

[광복홍콩 시대혁명] 신문에서 보지 못한, 파란 물감, 빨간색 피

2019년 11월 18일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사이로 흰 옷 입은 건장한 남성들이 몰려 들었다. 그리고 우산 든 시민을 무차별 폭행했다. 믿을 수 없었다. 카메라 든 기자까지 몽둥이와 각목을 들고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이 한국의 지상파 뉴스로도 보도됐다. 지하철에 난입한 흰 옷 입은 남성들은 성별 가릴 것 없이 때렸고, 한 언론사는 임산부까지 폭행당했다는 기사도 보도했다. 지난 7월 윈롱(위안랑) 전철역에서 벌어진 삼합회를 배후로 추정하는 무차별 폭행이 벌어졌다. 백색테러였다(2019. 7. 21). 시민들은 경찰에 신고했지만 “무서우면 밖으로 나가지 마라”며 전화를 끊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고 30분이 지나서 등장했다. 심지어 흰 옷 입은 용의자에게 “고맙다. 모두의 도움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어깨를 두드리는 경찰 지휘관 모습이 동영상으로 공개됐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늑장 대응한 것도 모자라 용의자에게 고맙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 언론도 홍콩 민주화 운동을 비중 있게 다루곤 한다. 그렇지만 전시회에 낯선 장면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우리 언론의 극명한 한계를 경험했다. 파랗게 물든 홍콩 시민들의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경찰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강경하게 진압했다. 홍콩 경찰은 구룡에서 집회를 연 시민을 향해 빈백탄(주머니탄)을 발사했다(2019. 8. 11). 오른쪽 눈에

[광복홍콩 시대혁명] 거리로 나온 배경엔, ‘송환법 너머’가 있다

2019년 11월 18일
홍콩민주화운동은 범죄인 인도 법안 너머를 봐야 흐름이 보인다.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이유엔 자유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시회에 입장해 순서를 설명 듣고 곧장 사진을 살필 수 있었다. 가로로 길게 뻗은 좁은 통로 사이에도 사진과 설명이 붙어 있었고 사진 옆에는 한국어와

[광복홍콩 시대혁명] 우리는 이들과 2019년을 살아가고 있다:『신문에 보이지 않는 전인후과』 전시회

2019년 11월 18일
“사진 많이 찍어주십시오. 하지만 관계자들이 나오지 않게만 해주십시오.” 순간 떠오른 이미지는 한 순간 사진을 촬영해 사람 숫자를 센다는 중국 공산당 기술을 보도한 뉴스가 떠올랐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붐볐다. 그리고 생각보다 신문과 방송

[내 맘대로 교회 탐방] 1945년 12월 2일, 이곳에 「경동교회」가 섰습니다②

2019년 09월 12일
11시 정각을 훨씬 넘은 시각. 붐비지도, 시끌벅적 않은 불편한 상황에 주보(週報)도 바삐 나눠주지 않았다. 이제 막 도착하자 조용히 건네받은 주보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부끄러울 만큼 고요했다. 한국의 진보적 교회로 유명한 경동교회는 해방 직후 일본 천리교(天理敎) 건물을 인수해 30여 명 어린이와 학생들이 첫 예배를 드리며 시작했다. 재밌게도 영락교회와 성남, 경동. 세 교회는 1945년 12월 2일 창립일이 동일하다. 적산불하(敵産拂下), 일본인 부동산이 교회로 넘어간 덕이다. 경동교회 시무 목사로 부임(1958. 12. 7)한 여해(如海) 강원용은 1965년 ‘크리스챤 아카데미’를 설립해 1970년, 전태일 열사 죽음에 대한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무슨 이유에선지 호출부호 HLKY, CBS 라디오 예배 중계가 외부 지시로 중지되고 마는데. 개인의 구원과 보수적 신학을 토대로 성장한 영락교회와 달리, 사회참여와 민주화 운동, 통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경동교회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고단함 속에도, 음악으로 꽃피우다 평범한 주일 밤 7시, 강원용 목사는 가수 조영남과 송창식, 최영희, 윤형주를 교회로 초청했다. 통기타 들고 단 위에 선 이들 가수는 미국 흑인 민요 ‘목화밭’과 ‘샤론들에 핀 백합화’ ‘주여 기억하소서’를 불렀다. 평범한 문화 행사 아니냐 싶을 테지만, 그 때는 1969년 11월 2일이었다. 지금이야 통기타에 드럼이 결합한 밴드형 예배가 익숙할 테지만. 딴따라 취급 받은 가수를 초청해 세속 음악을 예배당에서 부르게 해 청년은 몰려들었다. 영산싱어즈라는 밴드형 예배를 도입한 여의도 순복음교회보다 27년 빠른 셈이다. ‘새로운 리듬의 밤’이란 파격적 이름의 예배 때문일까? 가수 조영남은 73년 군복무 중 군(軍) 교회에서 특송을 부르던 와중에 김장환 목사 추천으로 이듬해 빌리 그레이엄 초청 전도 집회에서 성가를 불렀다. 교회 창립 15주년에 전자오르간을 구입하자(1960) 제 1회 경동음악회를 개최(1968)한 경동교회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선보였다. ‘성탄축하 무용과 연극의 밤’(1969), 마임극(1972), 부활절 연극 ‘살았다’(1974), 창립기념일 연극 ‘드고아에서 온 사람’(1974), 성탄음악회 ‘글로리아’(1974), ‘가시관 쓰신 왕’ ‘무덤의 여인들’(1975), 1982년엔 교회 옥상에서 다시 한 번 조영남과 윤형주를 초청해 가스펠송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유신독재 시절임에도 지면에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문화 행사를 향유한 것이다. 대화와 평화, 경동교회에 서린 가치 경동교회는 강원용 목사의 영향으로 사회참여 색채가 짙다. 강원용 목사는 전태일 열사가 저항할 때 ‘한 알의 밀알’(1970)을 설교해 연행됐고, 청계천 동화시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지역사회학교’인 야학을 시작했다(1976). 이듬해 동화모임 연극발표회 사건으로 활동이 중단되는 위기도 겪었지만 사회참여를 강조한 세계교회협의회(WCC)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제 6차 총회까지 참여해 교회 일치 운동(Ecumenism)에 힘썼다. 강원용 목사가 강조한 건 대화와 평화다. 2010년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가 개최한 ‘세 명의 거인들이 바라본 이웃종교의 같음과 다름’ 학술대회에서 박종화 목사가 강사로 나섰다. 강 목사를 ‘이웃일 수 있고’ ‘이웃이어야 하는’ 종교 간 만남을 시작한 존재로 묘사했다. 이듬해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가진 ‘참 종교인이 바라본 평화’를 주제로 행사가 열렸다. 전(前) 조계종 총무원장 송월주 승려가 고인이 된 강 목사를 회상했다 “기독교의 사명은 세상을 기독교화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화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크리스천이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된 것이라는 생전의 육성이 새삼 귓전을 울린다” 불교의 승려가 목사를 기억하다니! 미국식 추수감사절에서 민족 명절인 추석으로 옮긴 점도 독특하다. 문화 주도의 상징 가수 초청해 벌어진 통기타예배사건, 마임·연극·음악회·가스펠 페스티벌 문화 주도 사회 참여 주도 강원용 목사 영향에 지역사회학교 운영하다 간첩 사건으로 중앙정보부 연행되기도 도시 속 조화로운 교회 따뜻한 채광·적당한 조명·차가운 노출 콘크리트… 김수근 건축가 설계로 지어지다 재해석된 성서 하나의 성서로 설교하기엔 역부족, 구약─서신─복음으로 나눠 설교하자 감탄하다 경동교회 건물 곳곳에 묻은 친절의 손길 한 번은 와보겠다 마음먹은 지금의 건물도 대화와 포용을 생각하게 만든다. 거대하게 솟은 빨간 벽돌들은 이곳이 교회구나 생각이 들도록 한데 모였고 금빛 ‘경동교회’ 간판은 빨간 벽돌과 조화를 이룬다. 마치 카타콤처럼 어둡기도 하다. 정문에서 바로 보이는 출입문이 잠겨 오른쪽 계단,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 비로소 출입문을 찾았다. 빙 돌아 언덕을 향해야만 입장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알다시피 1981년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했다. 겉으로 봤을 땐 기도하는 손을 닮은 듯, 건물로 들어서니 적막감 속에 주일 예배를 기다리는 교인으로 고요했다. 자리가 꽉 찼다. 1층 중앙 빈 좌석만 보였다. 어색한 웃음의 청년을 맞이해 준 건 옆 자리 교인이었다. 96년 4월, 자체 제작한 ‘경동찬송가’를 모르던 내게 손가락을 짚어주며 도움 준 덕분에 어려움 없이 예배에 참여했다. 친절은 교회 건물 곳곳에도 남았다. 강대상 위 십자가를 말없이 비추는 빛은 채광(採光)이다. 역설적이게도 내부는 전부 콘크리트로 노출했다. 차가운 이미지로 남아버린 콘크리트이기 때문인지 적절히 배치된 조명은 오히려 따뜻했다. 만일 어두운 천장에 대고 플래시를 터뜨렸다면 과감히 드러난 민낯에 깜짝 놀라고 말 것이다. 예배당 왼편에 마련한 장(長) 의자에 비추인 채광은 조명이 없어도 훤했다. 예배가 끝나고 2층에도 올라가 봤다. 불규칙하게 튀어나온 벽면이 사이에 세워져 정제(整齊)를 보였다.

[내 맘대로 교회 탐방] 경동교회 주보는 이렇습니다

2019년 09월 09일
오르가니스트의 아름다운 연주로 시작하는 경동교회 주일예배는 독특할 어떠한 건 없었다. 예배는 오전 11시 30분 정각이 시작했고 찬송가 67장을 부르며 첫 순서 ‘모임’이 진행됐다. 예배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모임’과 ‘말씀’ ‘보냄’. 예배 인도자인 목사와 교인이 복음서와 서신서를 교독하면 성가대가 송영(頌榮)을 부르고, 응답송을 교인이 부른다. 응답송의 경우 찬송가가 아닌 경동교회가 자체 집대성한 ‘경동찬송’을 부른다. 그 중엔 테제 찬송(찬양하여라)도 포함해 낯익은 풍경을 경험했다. 교인이 침묵의 기도로 한 주간의 죄를 고백하면 목사는 용서를 선언한다. 두 번째 순서인 ‘말씀’에선 구약의 말씀과 서신의 말씀, 복음의 말씀을 읽으면 경동찬송 한 절씩 부른다. 복음의 말씀까지 읽고 나서 찬송가를 부르고 교회 소식과 기도, 응답송, 성가대의 찬송이 마쳐지면 담임목사는 설교를 한다. 그 흔한 드럼과 기타 없이 전통적 예배에 교인과 목사는 성령의 일치를 요청한다. 복음성가와 결이 다른 경동찬송이 아니라면 어색하지도 않다. 성경을 봉독하고 교인들이 응답송을 부르는 광경이 가톨릭 미사와 비슷하지만 마지막 순서 ‘보냄’은 어떠한 파송 없이 봉헌과 보냄 찬송, 축도가 전부다. 목사가 두 손 들고 교인들 앞에서 축도한 후 오르가니스트의 후주와 함께 퇴장하는데. 파송이란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해서 파송이 아닌 건 아니다. 조용하다 해서 교회 문이 닫은 게 아니듯. 후주가 마쳐지면 교인들은 십자가 문을 통해 교회 건물을 나선다. 사람 키 보다 큰 십자가 스테인드글라스 앞에 서면 십자가가 세워진 광경을 목도한다. 교회처럼 세워진 걸까,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탑을 세운 걸까. 스테인드글라스뿐만 아니라 교회 건축물 이곳저곳, 어떤 의미를 가진 걸까 고민하게 만든다. 그렇게 교회를 나설 무렵, 스테인드글라스는 세상으로 보내는 예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세워진 그리스도인을 상징하지 않을까 상상해봤다. “세상으로 가라”(마가 16,15)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며. 섹션 순서 내용 전주 오르가니스트 연주 *모임 모임찬송 찬송가 67장 *모임 예배 부름 복음서 교독 *모임 송영 성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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