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교회 탐방] 1945년 12월 2일, 이곳에 「경동교회」가 섰습니다②

2019년 09월 12일
주일 2부 예배를 마치고 나서  은은하게 비추인 노출 콘크리트 벽면을 바라봤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동굴 같은 분위기였다.

11시 정각을 훨씬 넘은 시각. 붐비지도, 시끌벅적 않은 불편한 상황에 주보(週報)도 바삐 나눠주지 않았다. 이제 막 도착하자 조용히 건네받은 주보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부끄러울 만큼 고요했다.

한국의 진보적 교회로 유명한 경동교회는 해방 직후 일본 천리교(天理敎) 건물을 인수해 30여 명 어린이와 학생들이 첫 예배를 드리며 시작했다. 재밌게도 영락교회와 성남, 경동. 세 교회는 1945년 12월 2일 창립일이 동일하다. 적산불하(敵産拂下), 일본인 부동산이 교회로 넘어간 덕이다.

경동교회 시무 목사로 부임(1958. 12. 7)한 여해(如海) 강원용은 1965년 ‘크리스챤 아카데미’를 설립해 1970년, 전태일 열사 죽음에 대한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무슨 이유에선지 호출부호 HLKY, CBS 라디오 예배 중계가 외부 지시로 중지되고 마는데. 개인의 구원과 보수적 신학을 토대로 성장한 영락교회와 달리, 사회참여와 민주화 운동, 통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경동교회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고단함 속에도, 음악으로 꽃피우다
평범한 주일 밤 7시, 강원용 목사는 가수 조영남과 송창식, 최영희, 윤형주를 교회로 초청했다. 통기타 들고 단 위에 선 이들 가수는 미국 흑인 민요 ‘목화밭’과 ‘샤론들에 핀 백합화’ ‘주여 기억하소서’를 불렀다. 평범한 문화 행사 아니냐 싶을 테지만, 그 때는 1969년 11월 2일이었다. 지금이야 통기타에 드럼이 결합한 밴드형 예배가 익숙할 테지만.

딴따라 취급 받은 가수를 초청해 세속 음악을 예배당에서 부르게 해 청년은 몰려들었다. 영산싱어즈라는 밴드형 예배를 도입한 여의도 순복음교회보다 27년 빠른 셈이다. ‘새로운 리듬의 밤’이란 파격적 이름의 예배 때문일까? 가수 조영남은 73년 군복무 중 군(軍) 교회에서 특송을 부르던 와중에 김장환 목사 추천으로 이듬해 빌리 그레이엄 초청 전도 집회에서 성가를 불렀다.

경동교회 부활절 예배 기사   동아일보는 1982년 4월 8일 경동교회 옥상에서 ‘가스펠 송 페스티벌’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가수 조영남, 윤형주가 출연해 찬송을 부를 예정임을 밝혔다. 당시 경동교회 옥상에선 이 같은 행사를 벌였다. 서울 시내 한복판, 교회 옥상에서의 행사라니.
가로 막힌 여해문화공간   현재 경동교회 옥상은 일반인이 출입하기 어렵다. 옥상 대신 여해문화공간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출입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해는 경동교회 전 강원용 목사의 호(號)다.

교회 창립 15주년에 전자오르간을 구입하자(1960) 제 1회 경동음악회를 개최(1968)한 경동교회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선보였다. ‘성탄축하 무용과 연극의 밤’(1969), 마임극(1972), 부활절 연극 ‘살았다’(1974), 창립기념일 연극 ‘드고아에서 온 사람’(1974), 성탄음악회 ‘글로리아’(1974), ‘가시관 쓰신 왕’ ‘무덤의 여인들’(1975), 1982년엔 교회 옥상에서 다시 한 번 조영남과 윤형주를 초청해 가스펠송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유신독재 시절임에도 지면에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문화 행사를 향유한 것이다.

대화와 평화, 경동교회에 서린 가치
경동교회는 강원용 목사의 영향으로 사회참여 색채가 짙다. 강원용 목사는 전태일 열사가 저항할 때 ‘한 알의 밀알’(1970)을 설교해 연행됐고, 청계천 동화시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지역사회학교’인 야학을 시작했다(1976). 이듬해 동화모임 연극발표회 사건으로 활동이 중단되는 위기도 겪었지만 사회참여를 강조한 세계교회협의회(WCC)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제 6차 총회까지 참여해 교회 일치 운동(Ecumenism)에 힘썼다.

강원용 목사가 강조한 건 대화와 평화다. 2010년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가 개최한 ‘세 명의 거인들이 바라본 이웃종교의 같음과 다름’ 학술대회에서 박종화 목사가 강사로 나섰다. 강 목사를 ‘이웃일 수 있고’ ‘이웃이어야 하는’ 종교 간 만남을 시작한 존재로 묘사했다. 이듬해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가진 ‘참 종교인이 바라본 평화’를 주제로 행사가 열렸다. 전(前) 조계종 총무원장 송월주 승려가 고인이 된 강 목사를 회상했다 “기독교의 사명은 세상을 기독교화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화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크리스천이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된 것이라는 생전의 육성이 새삼 귓전을 울린다” 불교의 승려가 목사를 기억하다니!

미국식 추수감사절에서 민족 명절인 추석으로 옮긴 점도 독특하다.

과다하지 않은 조명   카페처럼 모든 조명을 환하게, 과하지 않게 배치해 파이프오르간이 적절히 돋보였다. 중앙에 위치한 십자가가 세워진 스테인드글라스 뒤로 출구로 향하면 교인들은 세상으로 파송된다.
새 예배당을 1981년 건축한 경동교회는 향후 파이프오르간을 들여놓을 설계를 마친 후 건물을 지었다. 1991년 파이프오르간 건립을 위한 헌금을 모아 1993년, 교회에 들여 놓았다. 한국에 들여놓은 스무 번째 파이프오르간이다.

문화 주도의 상징
가수 초청해 벌어진 통기타예배사건, 마임·연극·음악회·가스펠 페스티벌 문화 주도

사회 참여 주도
강원용 목사 영향에 지역사회학교 운영하다 간첩 사건으로 중앙정보부 연행되기도

도시 속 조화로운 교회
따뜻한 채광·적당한 조명·차가운 노출 콘크리트… 김수근 건축가 설계로 지어지다

재해석된 성서
하나의 성서로 설교하기엔 역부족, 구약─서신─복음으로 나눠 설교하자 감탄하다

경동교회 건물 곳곳에 묻은 친절의 손길
한 번은 와보겠다 마음먹은 지금의 건물도 대화와 포용을 생각하게 만든다. 거대하게 솟은 빨간 벽돌들은 이곳이 교회구나 생각이 들도록 한데 모였고 금빛 ‘경동교회’ 간판은 빨간 벽돌과 조화를 이룬다. 마치 카타콤처럼 어둡기도 하다.

정문에서 바로 보이는 출입문이 잠겨 오른쪽 계단,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 비로소 출입문을 찾았다. 빙 돌아 언덕을 향해야만 입장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알다시피 1981년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했다. 겉으로 봤을 땐 기도하는 손을 닮은 듯, 건물로 들어서니 적막감 속에 주일 예배를 기다리는 교인으로 고요했다.

자리가 꽉 찼다. 1층 중앙 빈 좌석만 보였다. 어색한 웃음의 청년을 맞이해 준 건 옆 자리 교인이었다. 96년 4월, 자체 제작한 ‘경동찬송가’를 모르던 내게 손가락을 짚어주며 도움 준 덕분에 어려움 없이 예배에 참여했다. 친절은 교회 건물 곳곳에도 남았다. 강대상 위 십자가를 말없이 비추는 빛은 채광(採光)이다.

역설적이게도 내부는 전부 콘크리트로 노출했다. 차가운 이미지로 남아버린 콘크리트이기 때문인지 적절히 배치된 조명은 오히려 따뜻했다. 만일 어두운 천장에 대고 플래시를 터뜨렸다면 과감히 드러난 민낯에 깜짝 놀라고 말 것이다. 예배당 왼편에 마련한 장(長) 의자에 비추인 채광은 조명이 없어도 훤했다. 예배가 끝나고 2층에도 올라가 봤다. 불규칙하게 튀어나온 벽면이 사이에 세워져 정제(整齊)를 보였다.

출입구로 향하는 의미는,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세상으로 파송받는 삶이었다.

의문? 왜 성서를 구분하는 걸까
경동교회를 방문해 주일예배에 정독하는 성서가 세 가지라는 점에 주목했다. 문뜩 의문이 들었다. 경동교회는 분명 개신교회임에도 왜 가톨릭교회처럼 구약, 서신, 복음의 말씀으로 나눠 읽는 걸까하고. 기독교 성경은 총 66권으로 나눠진다. 가톨릭은 여기에 더해 제 2경전도 더하기에 개신교회보다 경전이 많다. 66권을 세 등분으로 나누면 구약, 서신서, 복음서로 구분한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다룬 구약과 패망을 예언한 서신서. 그리스도를 담은 복음서로, 예수가 괜히 율법과 예언서로 구분한 게 아니다(마태 7,12; 누가 24,44). 흥미로운 건 같은 신약임에도 세 등분으로 구분해 ‘복음서’와 ‘바울서신’ ‘일반서신’으로도 나눌 수 있다. 복음서 예수는 때론 분노하고, 슬퍼하는 인간다운 존재지만, 바울서신에서 예수는 신(神), 그 자체다.

복음서 예수와 바울서신 예수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부터, 예수도 그냥 예수가 아니라 ‘복음서의 예수’ ‘서신서의 예수’ 이렇게 구분 짓곤 한다. 그러다보니 가톨릭교회나 경동교회처럼 ‘구약의 말씀(제 1독서)’─‘서신의 말씀(제 2독서)’─‘복음의 말씀(복음)’으로 구분한 이유는 아무래도 성서가 구약─신약이란 이분화를 넘어 구약─복음서─서신서로 시간이 지나며 재해석이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론했다.

작품, 인간으로 오신 예수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한 예수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졌다. 어린 양이 되어 대신 죄를 해결한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핵심 내러티브(narrative)다. 신이 인간을 위해 몸소 죽음을 선택한다는 놀라운 이야기에 기독교인은 이를 복음이라 표한다. 예수는 분열된 인간을 하나 되게 만들었고, 신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 희생했다(에베 2,18).

다시 말해, 메시아로서의 예수라는 면모만 본다면 나사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 장면은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반대로 갈릴리(디베랴) 바다에서 수많은 군중을 위해 빵을 나눠준 예수(요한 6,1-15)만 본다면 열왕기하에 등장하는 엘리사 이야기가 요한 시대에 전승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단지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만을 지시하게 될 것이다.

다시 바라본 십자가.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나님
채수일 담임목사는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나님’을 제목으로 요한복음 6,1-2, 14-15을 강독했다. 그는 병행구절로 1열왕기서 4,42-44에 등장하는 엘리사의 기적과 에베소서 4,1-6의 한 분인 하느님을 선포한 바울의 말을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 정리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 감사하는 것이 이적이며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적을 보이는 예수를 봐야하며 이적을 보아서는 안 된다, 신비체험의 절정은 하나 됨이며 그 하나 됨은 범재신론(panentheism)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설교의 요지였다.

세 가지로 나눠진 성서를 엮어내는 모습에 피곤함 중에도 감탄해 마지않았다. 요한복음서 본문 하나로만 설교 하려면, 성서 전체가 말하려는 ‘재해석된 메시지’를 선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타자에게도 절대자가 안에 계신다고 믿는다면, 내 행동은 어떻게 달라질까? 원하는 대로 바뀌길 바라고 폭력으로 편리에 따라 세상이 돌아가길 바라는 험악한 시대에, 수도원 같은 교회 안. 밝게 비추인 채광을 바라보니 그 자연스러움과 절대자의 자연(自然)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정제된 계단   골고다 언덕길을 상징하는 교회 본당으로 향하는 길. 물론 예수는 정제된 계단 길을 오르진 않았을 것이다. 빙 돌아야 본당 출입구로 향하는 독특한 길목.
기도하는 손? 수도원 건물?  교회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이 존재했다. 누군가는 기도하는 손을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카타콤을 떠올릴 것이다. 나는 시커먼 굼벵이(?)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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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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